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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

아, 귀찮게 좀 하지 마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휴학생P
작품등록일 :
2020.05.14 19:41
최근연재일 :
2022.05.17 09: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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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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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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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왕이 잠든 땅 (11)

안녕하세요~




DUMMY

지금은 비록 늙고 약해졌다고는 하나 오로지 검으로 일가를 이룬 사내였다. 황제가 되면 그런 검들도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허나 소위 ‘진짜’ 라고 불리는 이들은 그의 즉위에 별로 관심도 없었고 순종적이지도 않았다.


미궁의 재앙과 붉은 비의 재앙이 대륙에 내리고 첫 성광의 달이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제도의 하늘은 다시금 황금빛 햇살이 아닌 피처럼 붉은 하늘 아래에 있었다. 황궁은 시끄러웠다.


“젠장! 파스크란이고 누구고! 다 데리고 와!”


익숙해질 수가 없는 현상이었다. 저 붉은 하늘이 떠오르면 천공성에서 전령이 내려왔다.


“제도 전역에 마법을 억제하고 침입을 감지하는 역장이 펼쳐져 있을 텐데... 그대는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다른 곳도 아니고 황제가 위치한 대전이었다. 대륙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그 안에 이방의 침입자가 태연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그는 제국 그 자체에 둘려 쌓여 있는 것이다.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마치 좀 더 많은 사람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투로.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제도에 머무르는 귀족들까지 모였을 때 그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지상의 인간 여러분!”


그의 생김새와 한껏 과장된 제스처. 사람들의 인상에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저잣거리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는 재주를 이용해 벌어먹고 사는 존재.


‘광대.’


진한 와인색의 턱시도.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이 기괴하게 교차된 가면. 그리고 그의 등 뒤에 부유하고 있는 세 장의 타블렛.


“저는 그녀의 기사단, 첫 번째 종복이자 첫 번째 프라임. 파르미르라고 합니다.”


끔찍한 정적이 흘렀다.


“이런이런, 호응이 약한 분들이군요. 무대를 이어가기 힘들답니다.”


일반인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들 사이사이에 있는 마법사들은 끔찍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영창은커녕 마나의 유동조차 불가능하다.’


삐쩍 마르기는 했지만 거의 2m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였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웃는 가면으로 물들었다.


“워워, 진정하시길. 제가 오늘 여기에 온 건 단지 말을 전하기 위함이니까요. 곳곳의 신사 분들? 마법의 사용은 자중해주시지요.”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타블렛 중 한 장이 은은한 붉은색으로 반짝였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은 섬뜩한 분위기마저 조성했다.


“하늘에 오늘처럼 붉은 축복이 내리면 당신들은 천공섬에 발을 들일 자격을 얻게 됩니다.”


“자격? 그게 무슨 소리지?”


황제였다.


“도전권... 이라고 해야 할까요?”


“굳이 들어가야 할 이유는?”


당장 오늘까지만 하더라도 제도에는 큰 이변이 없었다. 말 그대로 굳이였다. 굳이 접근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의 손바닥이 천천히 안면으로 향했다. 슬픈 표정의 가면이었다.


“간단하지. 나의 자비로우신 주인님께서 유흥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는 무대 위에서 그분을 위한 유흥이 되어야 한다.”


급변한 말투에 황제는 섬뜩함을 느꼈다.


“...건방지군. 거...”


“이행하지 않는다면 여기에 있는 전원. 죽이겠다. 그걸로 본보기를 삼아야겠지.”


터무니없는 협박이었다. 황제는 거절의 의사를 말하려고 했지만 뒷말이 뱉어지지 않았다. 황제는 다급히 자신의 목을 확인했다. 분명히 서늘한 예기가 느껴졌다. 그만 느낀 감각이 아니었는지 곳곳에서 비슷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광대의, 첫 번째 프라임 파르미르의 얼굴은 어느새 다시 웃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런! 너무 걱정은 마시길! 여러분의 협조만 있다면 당장은 그럴 일은 없으니 말이죠!”


그의 무력을 맛본 강자들이 곳곳에서 자신의 기운을 드러냈다. 그는 역시나 과장된 제스처를 보였다.


“워허우! 이거이거! 제가 인간 분들을 너무 과소평가한 거였을까요!”


그의 얼굴은 다시 슬픔으로 변했다.


“그 투지로 주인님께서 만족하실 유희를 보여라. 그러면 그때는 이쪽도 열광으로 상대해주겠다.”


퍼엉-!


파르미르가 있던 곳에서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자! 이제부터는 듣기만 하시길!”


“콜록! 폐하는 지켜라!”


“룰은 간단합니다! 개문의 주기는 알려드릴 수 없지만! 그럼에도 준비할 시간은 넉넉하다구요!”


푸슉-! 서걱!


연기 속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쪽에서 거둬가는 목숨은 전 인원의 5%입니다! 좋지 않습니까? 100명을 보내신다면 딱 5명만 죽이고 전원 생환시켜드리겠다는 말이지요!”


푸슉!


“으아아악!”


“물론! 저를 비롯한 모든 존재를 죽인다면 살아서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희 주인님에게 손을 대실 수는 없겠지만요!”


까앙!


처음으로 고기를 베는 소리가 아닌 금속성의 충돌음이 들렸다.


“어라라? 인간들 중에서도 제 절기에 반응할 수 있는 분이 계셨네요?”


스윽.


“알량하구나. 한낱 잔재주를 가지고 제국의 심장을 우롱하려 들다니. 그 죄는 죽음으로 갚아도 부족하다!”


중년의 기사는 메이스에 마나를 가득 담아 휘둘렀다.


스스스.


“흐음... 잘 알았습니다. 저희도 나름의 준비는 하라는 말이군요! 게임이 더욱 재미있어 지겠어요!”


그는 연기의 사이로 사라졌다.


“위너~ 위너~ 치킨 디너! 그럼 다음에 만나길!”





◎◎◎◎◎◎◎




노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프리드가 단검을 향해 검을 내리찍는 순간 세상의 소리가 지워지는 착각이 일었다. 어마어마한 빛이 터졌지만 어떠한 소음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건 그 자체로 기이한 일이었다.


단검에 응축되어 있던 세월의 마나가 그대로 터져 나왔다. 노사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에 프리드의 위치를 찾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은 것처럼 서있었다. 그런 그를 뒤로 하고 노사는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이, 이럴 수가! 이런 미친 짓거리에 대업이!”


진을 타고 흘러야 할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병에서 흘러나온 침묵은 빠른 속도로 일대를 잠식하고 있었다.


“됐다!”


온몸은 너덜너덜했지만 훌륭하게 성공해낸 것이다. 그래도 폭발의 여파에서 무사할 수는 없었는지 엉망진찬으로 파괴된 육체가 빠른 속도로 수복되고 있었다.


일대에 침묵이 걷히기 까지는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노사는 충격에 그 자리에 고개를 처박고 쓰러진지 오래였고 프리드는 새삼 빛을 잃은 진을 발로 헤집으며 확실한 처리를 했다.


“지치네.”


멀리서 톳포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 썩을 꼬맹이는 꼭 죄다 끝나면 나타나더라.”


“이방인!”


“내가 니 친구냐? 저렇게 되기 싫으면 존댓말 붙여. 용케도 알고 왔다?”


“애초에 여기까지 안내한 것도 나거든...요?”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비 냄새다.”


“비? 그게 뭐야...요?”


실소가 터져 나왔다. 계층 전역이 내리쬐는 사막이라 그런가 이 꼬맹이에게는 비라는 존재도 생소했던 것이다.


“야, 꼬맹이.”


“뭐, 아니, 네.”


“여기서 나가게 해줄게. 저 늙은이보다 훨씬 끝내주는 방법으로.”


“난 별로 나가고 싶다고 말한 적 없는데... 요?”


“이 썩을 애새끼가 여기서는 감사하다고 하면 되는 거야.”


얼마만의 휴식인가?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저 땅 속임에도 어울리지 않는 진한 비의 냄새와 우중충한 천장. 그게 전부였다.


“잠깐만.”


뭔가 위화감이 그를 감쌌다. 그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봤다.


“이런... 씹!”


까앙-!


끼아아악! 끼아아아악!


노사는 품에서 노란 보석을 꺼내 그대로 바닥을 향해 강하게 내리찍었다. 날카로운 면에 손이 베어 피가 흩뿌려졌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다. 프리드가 긴장을 놓은 그 잠깐의 시간.


신화의 존재가 현현했다.


거대한 천둥이 울부짖는 소리와 조류의 울음소리가 같이 들려왔다.


끼아아아악! 쿠르릉!


하늘, 단단한 암반으로 이루어진 천장에 금이 가더니 순식간에 빛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시팔. 신이라도 강림하려는 이펙트구만.”


“이방인 님! 저거 좀 어떻게 해봐! 요!”


“나도 모르겠다! 대체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 두께가 일반적인 범위를 넘어선 거대한 뇌전의 기둥이 그들이 있는 부근을 타격했다.


“일단 자리를 피하자.”


“어? 네!”


마지막 발악을 보인 늙은 바실로프는 이미 보석의 여파로 깔끔하게 탄화해버리고 말았다. 일곱 번째 뇌전이 지상을 강타했을 때 그는 볼 수 있었다. 붉은 섬광 속에서 태어나는 거대한 존재감을.


노사가 당초에 열고자 시도했던 거대한 문은 상정을 뛰어넘는 거대한 힘에 붕괴되고 있었다.


================================

【뇌광의 날개, 카르나한】

================================


“아, 그쪽이 진짜셨어?”


놈은 내리치는 번개를 삼키며 그 덩치를 불려갔다. 이런 진짜배기가 실제로 존재하는데 격이 한참은 떨어지는 잡새가 자기 행세를 하니 화가 날 것도 같았다. 어찌나 강대한지 흩뿌리는 외전의 여파만으로 지형이 붕괴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이렇게 깽판을 치는데 그쪽이라고 못 칠 것도 없긴 하지.’


끼아아악!


『패왕의 무덤이 개방됩니다.

대륙에 정복왕의 발자취가 드러나게 될 겁니다.

대륙은 전란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


“이건 또 뭔...”


아다리가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 수가. 당장 눈앞에 저 전기 닭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데 무너진 입구 너머로 사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패왕의 존재를 느낍니다.

숨겨진 방향으로 진입합니다.

모든 세계를 하나의 세상으로 편입합니다. 』


“하나의 세상?”


주위의 풍경이 빠른 속도로 변해간다. 거대한 봉인의 문, 날뛰는 뇌조,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는 프리드. 이 셋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단순히 무너지기만 하던 도시는 불길에 휩싸였고 보이지 않던 바실로프들의 시체들이 발치에 널려 있었다.


가장 보고 싶지 않던 재회도 이뤄졌다. 지척에서 놈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앙그리아.”


놈이 자신과 같은 공간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톳포, 숨어라.”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었다. 민간인은 전장에서 제외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시선을 돌린 곳에 꼬맹이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살아있는 꼬맹이는 없었다. 프리드는 재빨리 다가가 아공간을 열었다. 상비하고 있던 포션을 들이부었다. 맥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나의 세상이라고 불리는 곳과 프리드가 존재하던 곳의 현실이 합쳐지며 죽은 상태인 이곳의 톳포와 살아있는 상태의 톳포가 충돌하게 되었고 세계는 죽은 톳포를 인정한 것이다.


바람이 낮게 가라앉았다.




제 글이 여러분에게 어떤 방향으로라도 영향을 끼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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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186. 종막 (7) 22.05.17 18 0 10쪽
186 185. 종막 (6) 22.05.14 11 0 19쪽
185 184. 종막 (5) 22.05.10 11 0 11쪽
184 183. 종막 (4) 22.05.07 13 0 11쪽
183 182. 종막 (3) 22.05.03 14 0 11쪽
182 181. 종막 (2) 22.04.30 25 0 11쪽
181 180. 종막 (1) 22.04.26 23 0 11쪽
180 179. 기사, 최선의 기사 (10) 22.04.23 17 0 11쪽
179 178. 기사, 최선의 기사 (9) 22.04.19 16 0 12쪽
178 177. 기사, 최선의 기사 (8) 22.04.16 35 0 12쪽
177 176. 기사, 최선의 기사 (7) 22.04.12 21 0 11쪽
176 175. 기사, 최선의 기사 (6) 22.04.09 16 0 11쪽
175 174. 기사, 최선의 기사 (5) 22.04.05 27 0 12쪽
174 173. 기사, 최선의 기사 (4) 22.04.02 35 0 12쪽
173 172. 기사, 최선의 기사 (3) 22.03.29 27 0 10쪽
172 171. 기사, 최선의 기사 (2) 22.03.26 30 0 12쪽
171 170. 기사, 최선의 기사 (1) 22.03.22 43 0 11쪽
170 169. 왕이 잠든 땅 (13) 22.03.19 22 0 11쪽
169 168. 왕이 잠든 땅 (12) 22.03.15 33 0 12쪽
» 167. 왕이 잠든 땅 (11) 22.03.12 37 0 11쪽
167 166. 왕이 잠든 땅 (10) 22.03.08 24 0 12쪽
166 165. 왕이 잠든 땅 (9) 22.03.05 26 0 12쪽
165 164. 왕이 잠든 땅 (8) 22.03.01 25 0 12쪽
164 163. 왕이 잠든 땅 (7) 22.02.26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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