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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귀찮게 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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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생P
작품등록일 :
2020.05.14 19:41
최근연재일 :
2022.05.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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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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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왕이 잠든 땅 (13)

안녕하세요~




DUMMY

어차피 도주는 무의미했다. 정말 살고자 한다면 거대한 덩치를 이용해서 지척에서 회피하는 게 더 유효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검 한 자루에 기대서 교전을 빙자한 회피를 준비했다.


허나 예상했던 충돌은 느껴지지 않았다.


「흠, 네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냐?」


육성이 아닌 머리로 들어오는 목소리였다. 프리드의 얼굴에 그나마 화색이 돌았다. 검이 안 박힐 것 같은 친구는 예로부터 피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기에 대화라도 통한다는 부분에서 알 수 없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프리드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경외감이 절로 들었다. 이제 콘쿼러의 검신은 완전한 붉은빛을 보이고 있었다.


「이거 당대의 인간들은 언어능력을 상실하기라도 한 건가? 생긴 건 짐이 살아있을 시절과 익숙한데 말이지.」


“오랜만? 실례지만 날 압니까?”


「글쎄다. 난 아마 널 모르겠지. 하지만 짐의 일부는 너를 아는 것 같구나.」


‘일부라고?’


초점을 잃은 프리드의 눈을 본 거신은 마치 한숨을 쉬는 느낌을 보였다. 그는 프리드를 볼 때보다 시야를 좀 더 낮게 잡았다.


「기억해내라. 네 힘의 본질을 자각해라. 대체 바깥에서는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익숙한 패턴이었다.


「짐의 일부지만 참으로 미약한 조각이구나.」


“저, 그 실례지만...”


프리드는 이름을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콘쿼러를 원래 사용하던 인물. 그러니까 정복의 마나를 발생시킨 장본인의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허나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 깨달은 것 같으니 더 생각할 것 없다. 짐은 확실하게 잊혀진 게로구나.」


도무지 혼자 생각할 시간을 안 주는 양반이었다. 대화를 나누곤 있었지만 참으로 적응이 안 되는 크기였다. 새삼 의문이 갔다. 이 정도로 거대한 힘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는데 당연히 모습을 보여야 할 ‘그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저, 인간 아니십니까? 그 몸은... 아니, 애초에 몸이라는 표현이 맞습니까?”


「이 거대한 석상은 짐의 힘을 잠시나마 담기 위한 그릇이다.」


“굳이 그렇게 클 필요가 있습니까? 오히려 움직이기 버거울 것 같은데요?”


「이것이 짐의 힘을 담기 위한 최소한의 크기다.」


재앙과 같은 발언이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신이 아닌 일종의 골렘과 같은 상태. 개체의 평균치로 본다면 당연히 후자의 능력이 월등했다. 허나 그조차도 부족해 이런 거대한 그릇이 필요하다는 소리였다.


〈우어어어!〉


아무래도 뒷정리가 미흡했던 것 같다. 그러면 그렇지. 단순하게 던지는 걸로 죽을 괴물이 아니었다. 복부가 다 찢어져서 내장을 질질 끌고 다니면서도 잘만 살아있던 놈이었다. 오히려 죽는 게 더 개연성에 문제가 있었다.


“어, 일단 저거부터 어떻게 해주시면 안 됩니까?”


「당대에 선택된 짐의 후인은 참으로 나약하구나. 짐에게 저런 미물은 상대조차 되지 못한다. 지켜보거라. 네게도 도움이 될 터이니.」





◎◎◎◎◎◎





프리드는 골똘히 생각했다. 바실로프들의 지하도시 구석에 있던 유적. 그러니까 패왕의 묘지는 사실 정복왕의 힘이 잠든 장소였다.


‘어째서 저 양반이 굳이 여기에 잠들어 있던 걸까.’


생전의 그와 바실로프라는 종족 자체가 어떤 연관점이 있었던 건 명확했다. 그의 생각이 나스란과 싸우던 그 순간까지 번졌다. 생각해보니 나스란의 마나에 새벽이 반응했었다.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당시에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쿠웅.


단지 발을 들었다 뗌으로 발생한 소음이었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그를 현실로 데려왔다.


“뭐, 확실히 저 정도라면 그렇게 기를 쓰고 깨우려고 하는 게 이해는 가네.”


내용물을 알고 있었는지는 불명확했으나 저 정도 힘이면 미궁의 법칙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깐만...”


프리드가 생각하는 정복왕이 인간이 아닌 바실로프라면? 일단은 그들도 유사인종으로 분류될 것 같은 체형에 문명이 존재하고 고등한 지능을 가진 종족이었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아귀가 들어맞는 것 같기도 했다.


정복의 마나가 본디 바실로프의 것이라면... 나스란에게 허락된 동류의 힘도 설명이 가능했다. 그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동안에도 정복왕이라고 불렸던 거대한 힘은 손을 펼치고 앙그리아를 향해 뻗었다.


지잉-!


물리적인 접촉은 없었다. 적어도 프리드가 보기에는 그랬다. 허나 그는 명백하게 앙그리아를 통제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힘의 응용이군. 이런 식이 맞나?」


그는 프리드에게 말을 걸어왔다. 거리가 상당히 벌어졌음에도 이게 가능하다는 건 그에게 그만큼의 여유가 있다는 소리였다.


“예?”


자세히 보니 놈의 몸은 거대한 육면체에 눌리고 있었다. 프리드가 큐브라고 부르던 힘의 응용이었다. 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힘을 운용했다. 그 절경에 넋을 놓고 감상하던 프리드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질렀다.


“그, 그만! 그만 누르십쇼!”


이미 앙그리아의 육체는 큐브에 눌려 지면 아래로 파묻힐 수준으로 눌린 상태였다. 확실하게 보이는 곳에서 끝내야 했다. 그런 쪽에서 불안감이 엄습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기우는 현실이 되었다.


정복왕이 가한 힘보다 더욱 깊은 구멍이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영약한 새끼.”


프리드는 한숨을 깊게 뱉었다. 끝을 내야만 했다. 가장 확실한 기회가 왔지만 어이가 없게 놓치고 만 것이다. 그는 정복왕을 올려다봤다.


‘무식한 새끼.’





◎◎◎◎◎◎





정복왕의, 사막의 계층은 끝이 났다. 그것도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방법으로. 살아남은 바실로프는 원래 구속되어 있던 수의 절반조차 살아남지 못했으며 그중에서도 이름이 남은 존재는 에플리케가 유일했다.


프리드는 계층을 수습하고 놈이 사라진 구덩이를 바라봤다. 꽤나 깊은 부분까지 시야가 닿았는데 반투명한 막과 같은 것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계층간섭... 아직도 유효하려나.”


정상적인 방법이라 함은 계층의 시련을 이겨낸 뒤에 통로를 통해 이동하는 것이었다. 다만 미궁의 경우 그 크기가 마법으로 극도로 확장되어 있기는 하나 본질적으로 물리 세계에 구속되어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편법은 존재했고 그런 편법을 막기 위해 설치한 장치가 이 계층간섭이었다.


“무식한 새끼.”


앞서 언급했지만 정상적인 존재가 저 아래로 넘어가려고 한다면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앙그리아는 그 말도 안 되는 회복력으로 ‘억지로’ 건너간 것이다.


「이거 면목이 없군.」


“알면 힘이나 돌려주시죠. 대륙에 명성 한번 떨쳐 보겠습니다.”


프리드가 거신의 육체에 손을 얹자 그 낮은 부분부터 빛이 새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힘에 미련은 없으니 받거라.」


“그건 잘됐네요. 있다가 없으니까 고생 좀 했습니다. 그거.”


「오랜만에 썩 괜찮은 유희였다.」


오랜 시간 비어있던 그릇이 충만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거신은 프리드의 손으로부터 먼 거리에 있는 부위부터 서서히 먼지로 화하고 있었다.


「애송이,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지. 지금의 감각을 기억해라. 짐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네가 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가 대륙의 정점에 도달했을 때에는 선을 넘은 존재가 몇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지금의 시대는 달랐다. 느껴지는 것만 하더라도 그 수가 이전과는 비교를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세상에서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하시네.”


「아마 네가 가진 조각과 합쳐질 거다. 그렇게 된다면 짐은 긴 여행을 떠나게 되겠지.」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표정이나 감정적인 부분은 느껴졌다. 세대를 얼마나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오래된 전설이었다.


“아마 기억할 겁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제는 해야 할 일을 할 시간이 왔다. 지나간 시간은 아마 성광의 달부터 시작해서 황금의 달까지.


특히나 길었던 계절이었다.

특히나 미련이 많았고 그만큼 많은 모험을 했던 계절.

잃어버렸던 길이 보이기 시작한 계절.


단말기에 미궁의 남은 인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계층에 들어오고 보름 정도가 지났을 시점이었을 것이다. 지금 남은 인원은 프리드를 제외하고 단 둘. 미궁의 진실에 한 걸음 정도 더 나아간 기분이었다.


최상의 결과.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그는 스스로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어째서 오펜하임이 뭔가를 알고 있음에도 이곳에 들어오기를 마다한 건지.


「오랜만이군.」


“오랜만이지.”





◎◎◎◎◎◎





신검합일의 검사. 일생을 오로지 검에 몰두했고, 그 검을 바탕으로 주군의 방패로 서길 주저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실패한 기사였다. 주군의 끝을 마지막까지 지키지 못한 죽음의 기사. 그것이 지금의 그였다.


생전의 기억은 서서히 희미해져만 갔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검을 잡은 그의 손아귀는 기억하고 있었다. 한때 높은 긍지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로운 죽음을 받아들이고 기나긴 시간이었다.


“하아...”


공동 내부에 묵직하고도 서늘한 숨소리가 퍼졌다. 투구 속에 감춰진 푸른 안광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세월의 틈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갑옷에는 죽음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뽑아본 적이 없었던 검이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스르릉.


놀라우리만치 부드러운 일련의 동작이었다. 검은 지금껏 기다려온 것이다.


“선생은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지 난 모릅니다. 어째서 내 앞에 섰는지, 이 춥고 고독한 장소를 지키고 있게 된 건지 모릅니다.”


사내는 단단하게 단련된 신체와 자신의 애병을 믿었다. 전투는 기술의 투쟁! 힘의 투쟁! 지혜의 투쟁! 끈기의 투쟁!


“다만 나는 전사입니다. 그러니 내가 제일 잘하는 걸 하겠습니다. 그게 내가 선생에게 줄 수 있는 구원의 방식이고.”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고!’


모습을 드러낸 기사의 검이 오색창연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공동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린다고 할 수 없는 힘이었다. 위화감이 전신을 감쌌다.


빛이 걷힌 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내도 어깨 너머로나 잠깐 봤던 기물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카드였다.


“성검? 저게 왜 여기에 있어.”


그 근간을 황금시대로 추측하는 여러 기물 중에서도 대륙급. 주사위는 이미 굴려졌다. 결론이 내려지기 전까지 이제 무대의 위에선 누구도 내려오지 못하리라.


“이건 좀 위험할 수도 있겠군.”




제 글이 여러분에게 어떤 방향으로라도 영향을 끼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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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장막을 내리는 글 22.05.17 13 0 15쪽
187 186. 종막 (7) 22.05.17 18 0 10쪽
186 185. 종막 (6) 22.05.14 11 0 19쪽
185 184. 종막 (5) 22.05.10 11 0 11쪽
184 183. 종막 (4) 22.05.07 14 0 11쪽
183 182. 종막 (3) 22.05.03 14 0 11쪽
182 181. 종막 (2) 22.04.30 25 0 11쪽
181 180. 종막 (1) 22.04.26 23 0 11쪽
180 179. 기사, 최선의 기사 (10) 22.04.23 18 0 11쪽
179 178. 기사, 최선의 기사 (9) 22.04.19 16 0 12쪽
178 177. 기사, 최선의 기사 (8) 22.04.16 35 0 12쪽
177 176. 기사, 최선의 기사 (7) 22.04.12 21 0 11쪽
176 175. 기사, 최선의 기사 (6) 22.04.09 16 0 11쪽
175 174. 기사, 최선의 기사 (5) 22.04.05 27 0 12쪽
174 173. 기사, 최선의 기사 (4) 22.04.02 35 0 12쪽
173 172. 기사, 최선의 기사 (3) 22.03.29 27 0 10쪽
172 171. 기사, 최선의 기사 (2) 22.03.26 30 0 12쪽
171 170. 기사, 최선의 기사 (1) 22.03.22 43 0 11쪽
» 169. 왕이 잠든 땅 (13) 22.03.19 23 0 11쪽
169 168. 왕이 잠든 땅 (12) 22.03.15 33 0 12쪽
168 167. 왕이 잠든 땅 (11) 22.03.12 37 0 11쪽
167 166. 왕이 잠든 땅 (10) 22.03.08 24 0 12쪽
166 165. 왕이 잠든 땅 (9) 22.03.05 26 0 12쪽
165 164. 왕이 잠든 땅 (8) 22.03.01 25 0 12쪽
164 163. 왕이 잠든 땅 (7) 22.02.26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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