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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

아, 귀찮게 좀 하지 마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휴학생P
작품등록일 :
2020.05.14 19:41
최근연재일 :
2022.05.17 09:05
연재수 :
1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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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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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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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79. 기사, 최선의 기사 (10)

안녕하세요~




DUMMY

기억은 깎이고 깎여서 앙상한 토대만 남았다. 그 마지막 기둥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네가 마음에 들었다. 기사야. 널 내 수족으로 부리기로 결정했다.〉


그는 금이 간 보옥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균열은 거대해졌고 이내 보옥은 완전히 갈라졌다.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양의 마나와 기억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육체로 바다의 격류를 견딜 수는 없었다.


“젠장! 아시---인! 네놈은 반드시! 반드시 내 손으로 찢어 죽일 것이다!”


닫히는 시야의 끝에 놈이 있었다. 놈의 얼굴 만은 기억할 것이다.


〈그러시던지.〉


퍼억!


“앨리...스.”


간신히 손에 담아둔 한 줌의 기억.

이맘때쯤 피기 시작하는 새하얀 히아신스가 생각나는 그녀의 미소.

최후의 순간,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준 그녀의 슬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한방물까지 소실되기까지는. 간신히 뻗은 그의 검은 아신의 눈앞에서 정지했다. 그의 신형은 무너졌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줘야 타산이 맞지. 넌 좀 더 깊은 층으로 넣어도 좋겠어.〉






◎◎◎◎◎◎





프리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크읏. 또 그 녀석을 보러 가야하나. 지긋지긋하군.’


눈을 뜨면 지긋지긋한 하얀 공간일 것이다. 그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잠깐이나마 쉬고 싶어서 눈을 오래 감고 있었는데 바닥의 차가운 감촉이 사라지질 않았다.


“다행스럽게 늦지는 않았군요.”


프리드의 가슴 정도나 될까? 아담한 키의 소녀가 물의 장벽을 만들어 기사의 검을 막아내고 서있었다.


“잘했어. 운다인.”


“히히!”


그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건 다름 아닌 루아리였다.


「정령이라... 저 인간 여자는 정령술까지 익힌 모양이로군. 그것도 꽤나 높은 급수의.」


프리드는 그녀의 기도가 확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주무장인 검에는 손도 대지 않은 상태로 기사를 막아내고 있었다.


“당신, 루아리 씨가 아니야. 누구지?”


“이런, 눈치가 빠른 아이네요. 적당히 넘어갈 법도 한데.”


잠깐의 활약으로도 그녀는 루아리보다 훨씬 도움이 될 것 확실했다. 허나 존재조차도 불명확한 존재에 등을 맡길 정도로 넉살이 좋지는 못했다.


“우리, 구면일 거예요. 아마.”


“운다인, 그의 허벅지를 치료해줘요.”


프리드와 싸울 때보다 격렬한 공격이 이어졌지만 그녀는 훌륭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어? 오른쪽!”


프리드는 감작스레 그녀의 우측으로 날아드는 뇌전의 창을 보고 소리쳤다. 루아리는 가볍게 뛰어서 공격을 피해냈다.


“고마워요.”


그녀는 미소를 한번 보여주곤 검을 뽑았다. 스노우드롭은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이제야 조금 익숙하네요.”


프리드는 대충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금 시점에서 대륙에서 레이피어라는 무기를 가장 잘 쓸 거라고 생각되는 여인과 저주받은 검의 천재의 대결이었다.


검을 감싼 찬란한 빛이 그 모습을 거두고 검은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루아리가 사용하던 검이 아니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매서운 검격을 날리던, 기사의 손에 들려있던 그 검이 지금 루아리의 손에 들어왔다.


“안에서 전부 지켜봤답니다. 당신, 제 검을 아주 잘 다루시던데요? 받아갈게요.”


“...”


기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검을 뽑는 대신 한 손을 들고 뇌전의 창을 조형했다. 검은 투구 속에서 푸른 안광이 번뜩였다.


피융-!


매서운 속도로 날아가던 창은 그대로 둘을 지나쳐 벽에 박혔다.


“피한... 건가?”


「아니, 그러기엔 저 여자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인의 얼굴이 잠깐 꿈틀했다.


“안 맞춘 걸까? 아니면 못 맞춘 걸까”


그녀가 검을 잡고 자세를 잡자 기사가 그랬던 것처럼 주위에 얼음덩어리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반대편 손이 검을 얇게 감쌌다.


“검에는 빙하의 마나를...”


그녀의 검이 천천히 얼어붙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여리여리한 움직임으로 저 괴물같은 녀석과 맞수로 검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완벽하다.”


기사의 검을 봤을 때의 감탄과는 다른 의미로 그녀의 검에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었군. 정점은 저 여자다.」


프리드는 답조차도 거르고 검에 집중했다. 그녀가 검을 뽑음과 동시에 프리드는 볼 수 있었다.


====================================

「잊힌 세계의 영웅을 눈앞에서 목도합니다.」

「세계의 뿌리를 찾아가십시오. 그녀의 흔적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정령검희, 앨리스 화이트】

====================================


이 하나로 그녀의 강함은 보증되었다. 프리드가 느끼는 감정은 전율이었다. 단지 보는 걸로 검사로서의 프리드는 성장하고 있었다. 정점은 칭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정점이었다.


“당신, 내 검을 본 적이 있나요?”


그녀의 물음에도 기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차앙-!


“어설프지만 그래도 끝을 본 적이 있군요. 그런 검이에요. 제 검, 아무나 흉내낼 수 없거든요.”


기사는 곧바로 다음 동작에 진입했다.


“허?”


그 동작이 놀라우리만치 간결했다. 또한 유사했다. 허나 그렇다고 승부를 짓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녀가 너무나도 강해. 변수는 없다.”


완전무결한 강함.


챙! 챙!


“이제는 편히 쉬시길.”


그녀가 순간 놈의 품으로 파고들며 기사의 몸을 향해 검을 뻗었다.


“목표는... 목과 몸 사이의 틈! 거기로 할게요!”


푸욱!


“이게 뭐야.”


새하얀 검신을 타고 검은 피가 흘렀다. 그는 검을 놓쳤다. 자신의 검을 놓치고 여인의 검을 붙잡고는 거리를 벌리기 위해 움직였다. 허나 부족했다.


“그 검과 기술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어. 그네들이 말하던 초월의 격에 발을 들였다고 봐도 무방할 거야. 그럼에도 결과가 저렇다면 결론은 하나 아니겠어?”


기사는 주먹을 쥐고 검날을 타격해 검을 부수고자 했다. 허나 북해의 빙하를 통으로 흡수한 검이었다.


“당신의 기교는 놀라워요. 제가 높이 사겠습니다. 허나 정점을 될 수 없어요.”


「이제야 이해가 될 것도 같군,」


“뭐가?”


「저런 사기적인 능력에 아무런 리스크가 없을 수는 없지 않나? 최고의 반열에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발을 올릴 수 있지만 정점에는 오를 수 없다. 그게 저 기사의 속성이지.」


(비참하군. 미궁의 설계자도 이건 예상치 못했겠지. 갑자기 하늘에서 정점이 뚝 떨어질 걸 누가 예상했겠나?)


투욱.


그녀가 검을 뽑아내자 기사는 끈이 풀린 인형처럼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투구가 마침내 벗겨졌다.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저거 벗겨지기는 하는 거였나.”


「좀 가까이 가보지. 이 정도의 실력자라면 내가 알 수도 있겠어.」


(본인도 ‘조금’ 특별한 리빙아머 정도나 될 거라고 생각했는떼.)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들의 만담과 다르게 루아리를 가장한 앨리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얼굴이 그 안에 있었던 것이다.


“우, 운다인!”


그녀는 처음으로 당황하며 말까지 더듬는 모습을 보였다. 모습을 드러낸 물의 정령은 주인의 감정에 동조하는 건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히히?”


“이 남자를 살려. 꼭! 부탁할게!”


안면의 절반은 화상으로 뭉개져 흉한 몰골이었지만 그렇기에 그녀에게 더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잊을 수가 없었다.


“히히!”


물의 소녀는 다급하게 그에게 치유를 시도했지만 기사의 주위로 죽음의 기운만 퍼지고 있었다. 쓰러진 기사의 입이 조심스레 트였다.


“앨... 리스.”


프리드와 싸울 당시 반복하던 그 이름이었다.


“나 여기에 있어요! 정신 차려! 정신 좀 차려주세요! 제발!”


기사의 눈동자는 완전히 퍼진 상태였다. 입은 계속해서 그녀를 말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녀를 알아볼 수 없었다. 이미 망각해버린 이후였기에 그는 그녀가 자신이 찾던 그녀라는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기사의 멀어져가는 시야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그 감정을 읽어냈다.


“나와! 릴라이트!”


이번에는 빛의 소녀였다. 원소 중에서 빛을 담당하고 있는 정령이며 정신계통의 마법에서 발군의 효과를 발휘하는 녀석이었다.


그녀는 흥분해서 전신의 마나를 짜내기 시작했다.


“릴... 라이트?”


“후후?”


“저 남자의 기억을... 재생시켜줘.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소녀는 그녀의 명령에 항상 최선을 다해 따라줬다. 그녀의 최선에 해당하는 정령이었으니까.


“후후!”


기억을 만지는 마법은 정신 마법 중에서도 최악의 마법.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그녀의 몸에서 마나가 딸려 나왔다.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녀의 안색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루아리의 코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크읏.”


프리드는 조심스레 그 옆으로 다가갔다.


“싸움보다 좋은 선택지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마나에 헐떡이는 그녀의 뒤로 다가간 프리드가 한 행동은 참으로 뜻밖의 것이었다.


“이거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 까짓 한번 해보죠.”


바닥에 떨어진 한줌 정도 크기의 녹색의 보석. 그것을 시작으로 무수한 양의 마석과 정령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일단은 마나 덩어리라서... 일단은 도움 받았으니까.”


다만 그들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의 기억 중 앨리스에 관련된 부분만을 되돌리는 데에도 고룡 란이 긴 시간을 걸려서 성공한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허나 거의 무릎꿇은 그녀의 눈높이까지 온 마석들에서 빠른 속도로 마나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릴라이트의 전신에서 한층 강한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릴라이트!”


“후후!”


마치 자신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주먹으로 치는 소녀의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프리드는 쓰지 않았던 검은 영혼석들까지도 전부 마나로 치환시켰다.


(쯧, 저건 좀 아까울지도 모르겠어.)


“후후!”


“뭐?”


다급하게 그녀의 앞에 날아온 릴라이트는 뭔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보였다.


“뭐라고 합니까?”


“회복되는 양이 너무 미약해서 소실의 저주를 감당할 수 없다네요. 젠장!”


아직 많은 양의 마석이 남아있기야 했지만 한순간에 사용할 수 있는 양이 한정적이었다. 밑빠진 독에 물대포로 물을 채우는 것과 물뿌리개로 물을 채우는 건 명백히 다른 일이었다.


“앨... 리스”


릴라이트의 등 뒤로 기사가 손을 뻗었다. 허공에 잡히지 않은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이게 그가 지난 긴 세월 안에서 느낀 감정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제 글이 여러분에게 어떤 방향으로라도 영향을 끼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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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186. 종막 (7) 22.05.17 1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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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184. 종막 (5) 22.05.10 11 0 11쪽
184 183. 종막 (4) 22.05.07 14 0 11쪽
183 182. 종막 (3) 22.05.03 14 0 11쪽
182 181. 종막 (2) 22.04.30 25 0 11쪽
181 180. 종막 (1) 22.04.26 23 0 11쪽
» 179. 기사, 최선의 기사 (10) 22.04.23 18 0 11쪽
179 178. 기사, 최선의 기사 (9) 22.04.19 16 0 12쪽
178 177. 기사, 최선의 기사 (8) 22.04.16 35 0 12쪽
177 176. 기사, 최선의 기사 (7) 22.04.12 21 0 11쪽
176 175. 기사, 최선의 기사 (6) 22.04.09 16 0 11쪽
175 174. 기사, 최선의 기사 (5) 22.04.05 27 0 12쪽
174 173. 기사, 최선의 기사 (4) 22.04.02 35 0 12쪽
173 172. 기사, 최선의 기사 (3) 22.03.29 27 0 10쪽
172 171. 기사, 최선의 기사 (2) 22.03.26 30 0 12쪽
171 170. 기사, 최선의 기사 (1) 22.03.22 43 0 11쪽
170 169. 왕이 잠든 땅 (13) 22.03.19 22 0 11쪽
169 168. 왕이 잠든 땅 (12) 22.03.15 3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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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163. 왕이 잠든 땅 (7) 22.02.26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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