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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귀찮게 좀 하지 마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휴학생P
작품등록일 :
2020.05.14 19:41
최근연재일 :
2022.05.17 09:05
연재수 :
1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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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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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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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종막 (2)

안녕하세요~




DUMMY

장내를 채운 귀족들은 침음성을 흘렸다. 젊은 황제의 저 포악한 성정이 언제 자신들을 향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병력을 증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귀공의 영지에는 초원에 파견할 강하고 용맹한 병사들이 없나 보군. 그게 아니라면 황제의 육신에 손을 대면서까지 부탁을 할 리가 없잖은가?”


의도가 다분한 도발성의 발언. 황제는 결코 도발하지 않는다. 황제는 누구보다 위에 있어야 하며 누구보다 강한 힘으로 군림해야 한다. 적도 아닌 자신의 신하에게 도발을 한다는 건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간 중앙권력에 어떤 야욕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남부를 지켜온 벡크 백작가가 받을 대접은 겨우 이정도가 아니었다. 로만은 이를 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건 아닙니다만...”


“그만, 고개를 왜 숙이나? 귀공의 건을 묵살하겠다는 게 아니야. 라팡 경! 지금 크레이만은 요양 중에 있나?”


“예, 일단은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거 잘되었군. 이참에 바닷가 쪽에 보내서 바람이나 쐬고 오게 만들지. 동의하나?”


“허나 폐하, 아직 크레이만 경은...”


“그만, 누가 혼자 보낸다고 했나? 정 그러면 청기사 몇 데려가면 될 일이 아닌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 숙인 로만을 바라봤다.


“어때? 로만 경? 청기사단장이 직접 벡크 백작령으로 가서 그대의 영지를 도울 예정인데... 설마 부족한가?”


로만은 입을 닫았다. 이 이상 의미를 부여하면 스스로의 기사도가 흔들릴 것만 같았다.


“...당치도 않습니다. 페하의 넓으신 은혜에 탄복합니다.”


“그래. 혹시 검을 줘보겠나?”


“...여기에 있습니다.”


벡크는 스스로의 허리춤에 찬 검을 풀어서 황제에게 건넸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황제는 그 검을 받고는 그대로 뽑았다.


“날카로운 검이구나. 그렇지 않나? 벡크?”


“제가 기사가 되던 날, 아버지께서 제도로 오셔서 제게 건네주신 검입니다.”


“참으로 의미가 깊구나. 아버지의 사랑은 깊고도 깊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벡크.”


황제는 검에 머무르던 시선을 그에게 돌렸디.


“네 충성심에 의심이 간다. 벡크. 내게 충성을 보여라.”


그 말을 남긴 그는 검을 다시 로만 벡크에게 건넸다. 검을 받아든 그는 황제의 의중을 알 수가 없어 받아든 그 자세로 서있었다.


“제가 어떻게.,.”


“이것까지 내가 알려줘야 하겠나? 벡크, 짐의 옥체에 손을 댄 그 불경한 손을 잘라버려라.”


단상 아래에 위치한 긴 탁자에 많은 귀족들이 보고 있었다. 그런 공간에서 황제는 자신의 기사에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귀족들이 무어라 나서보려 했지만 황제는 그 전에 선수를 쳤다.


“벡크가 충성을 증명해내지 못한다면 다른 누가 증명하겠나? 누가 벡크가 충성심을 증명하길 돕겠는가?”


광기마저 어린 그 목소리. 젊은 기사는 검을 뽑아들었다. 그러곤 잠시 망설이다 자신의 오른손을 베어냈다.


“크윽!”


“크하하핫! 제대로 기억하겠다! 작발리 요새를 지키는 남부의 충신! 벡크 백작가! 이봐! 이 친구를 신전에 데려가. 황제의 명으로 무조건 붙여서 돌려보내라고 해.”


잘린 손아귀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황제는 초연했다. 다른 기사가 그를 부축해서 나가는 그 순간까지 황제는 웃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지.”


“하오나 폐하, 아직 안건이...”


“그대도 충성심을 증명하고 싶은 건가?”


“...”


귀족은 급하게 입을 가리며 침묵을 지켰다.


“짐이 곧 제국이다. 나머지는 내일 다시 모이도록! 그때 전부 들어주겠다.”


광기가 이 정도로 짙었던 건 처음이었다. 근래에 진행된 내무회의는 죄다 이런식이었다. 황제의 컨디션과 기분 등에 따라 폐회가 결정되었다.


모든 이들이 그렇게 빠져나가자 그 안에는 황제와 최소한의 인력들. 그리고 기사 라팡만이 남았다.


“그래서 라팡, 천공섬은? 뭔가 움직임은 있었나?”


“현재로써는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지 싶습니다. 늘 인원수는 제대로 맞추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범죄자들이나 천한 것들로 채워. 그 여행자라는 족속들로 대충 채워서 올려보내도 좋고.”


“알겠습니다.”


기사 라팡마저 떠나자 황제는 혼자가 되었다.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제도가 보이는 테라스로 향했다. 당장에 해야만 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야만족들이나 오크 따위에게 휘둘릴 수는 없다.”


가장 밝아야 하는 테라스가 하늘에 떠있는 거대한 부유섬에 의해 짙은 그늘에 덮혔다.


“내가 제국의 황제다.”





◎◎◎◎◎◎





똑. 똑. 똑.


어둠 속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울렸다.


“으음...”


프리드는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


‘정신을 잃었던 건가.’


계단으로 죽기살기로 달려가 뛰어들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가 위치한 곳으로부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설치된 횃불들. 그 정도가 프리드의 시야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광원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문뜩 잊어먹고 있던 게 기억이 났다.


“루아리!”


“참 빨리도 찾으시네요.”


“예?”


“잠은 잘 자셨나요?”


프리드는 익숙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생각했다.


‘루아리인가? 아니면 아직도 앨리스? 어느 쪽에 맞춰야 하는 거지?’


“프리드는 생각을 하면 전부 얼굴에 보이는 스타일이군요.”


“예?”


“앨리스랍니다.”


“아, 네...”


상층에서 스스로가 했던 일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었고 그렇기에 후회도 없다. 다만 당사자의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기는 힘들었다.


“그, 미안하게 됐습니다.”


“뭐가요?”


“좋은 시간 방해하는 건 나도 안 좋아합니다. 때린 것도 미안하고요.”


차라리 몇 대 정도 맞아주고 끝을 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는 건 좀 잘하는데요 기분이 불편하시면 조금 때리셔도 될 것 같아요.”


그는 눈을 감았다.


“후훗, 재미있는 남자네요.”


“예?”


“때리는 건 별로네요. 대신 약속 하나만 해줄 수 있어요?”


“약속 말입니까?”


“이 앞은 혼자 가셔야 해요. 부디 끝까지 나아가주세요. 이 아이는 이제 함께 갈 수 없을 겁니다. 제 불찰이었어요.”


수준에 맞지 않는 동작을 몸에 담은 반동이 이미 온몸에 와있는 상태였다. 막판에 정신없이 쏟아버린 마나의 영향도 컸고.


“본의는 아니었지만 이 아이의 기억을 살짝 엿봤답니다.”


프리드는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적어도 이 아이의 시점에서 본 당신은 충분히 정의롭더군요. 용기를 가지고 있었어요. 다만...”


그녀의 낯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흠?”


“지금 당신이 찾고 있는 적은 제가 봐도 너무나 혼란한 존재였어요.”


프리드의 뇌리에 상층에서 도망친 녀석이 떠올랐다.


“오로지 본능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짐승은 그렇게 사악할 수 없습니다. 말이 되지 않아요.”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세계가 아닙니까? 제게 이 세계는 그런 대상입니다. 경의와 환상으로 가득한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역시 쉽사리 꺾이지 않는군요. 그래도 이번에는 지나치게 위험합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죠. 그렇다면 나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냥 기다린다고 봄이 오는 세계가 아니었다. 기피하고 도망치면 봄은 찾아오지 않는다. 시종일관 어두웠던 그녀의 얼굴이 프리드의 답을 듣고는 풀렸다.


“충분하겠네요.”


그녀의 앞이 일그러지며 사람 하나 정도가 간신히 들어갈 크기의 게이트가 열렸다.


“나는 어차피 이 미궁에 구속된 몸이에요. 후인을 믿겠습니다.”


“노력 정도는 해볼 생각입니다.”


루아리의 육신이 게이트를 넘어감과 동시에 앨리스의 영체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앞으로 꽃피울 대륙의 미래를 위해!〉

〈변변찮지만 그대에게 축복을!〉


흩어지는 기운의 일부 정도는 프리드에게 깃들었다. 차갑고도 날카로운 기운이었다. 머리 옆에 떠다니던 오브도 그 기운을 일부 받더니 기분이 좋은지 머리를 두 바퀴 정도 돌았다.


망막 구석에 떠있는 숫자는 이제 진정 1이 되었다. 미궁에는 완전히 그 혼자만이 남게 된 것이다.


나스란에게 전해 들었던, 시나드에게 전해 들었던, 그들의 경고 탓에 결국에는 누군가 혼자 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런 방식이 될 줄은 몰랐다.


“이건... 역시 좋아해야 하는 건가. 갑자기 장르가 호러가 되어버리네.”


허리춤에 걸린 콘쿼러를 잡았지만 딱히 이질적인 감각은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꽉 잡아도 난 아냐.」


쿠웅-!


그가 있던 공간 자체에 커다란 충격이 왔다. 천장의 돌가루 따위가 우수수 떨어졌다.


“확실히 이제 가까워졌어. 이 아래 같은데.”


(그대가 쫓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이 모험은 충분히 마음에 들었다. 따라가도 좋겠어.)


허공에 프리드보다 머리 2~3개는 커다란 거인의 형상이 떠올랐다.


“뭐야? 아저씨, 아직도 내 머리에 붙어 있었나. 아까 영혼석도 일부러 다 부숴버린 건데.”


(사념체 같은 거니까. 그대가 내 영혼석에 손을 댄 순간부터 계약은 맺어졌다. 적당히 즐기고 내 발로 나갈 테니 많은 모험을 하게.)


아마 고된 싸움이 될 미래였다. 친구가 둘이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네? 줄곧 같이 다녔다고요?”


“네. 거의 반 이상을 같이 있었을 거예요.”


로레인은 책상을 두드리며 오열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마치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나오는 그녀의 반응에 카나는 쿡쿡 웃었다.


“저야 뭐, 4계층에서 바로 포기했으니 기억나는 건 둘이 주구장창 걸었던 기억 뿐이네요.”


로레인은 감정을 잘 숨기는 아이였다. 허나 지금은 그런 게 너무나도 잘 드러났다. 그녀의 얼굴은 실시간으로 배신감에 물들고 있었다.


“하하! 카나! 그만해! 애 진짜 울려고 하잖아. 꺄핳핳”


왕도로 돌아오고 난 뒤에도 줄곧 침상 신세를 면치 못했던 루아리가 그야말로 박장대소했다.


“흐어어. 오늘따라 기운이 없네요. 전 먼저 일어나려구요...”


추욱 늘어진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녀를 카나가 붙잡았다.


“장난이에요.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네? 정말요? 진짜에요?”


“오구구, 먼 곳에 나간 낭군님이 다른 여자랑 놀아날까 무서웠어요?”


“그, 그게 아니라!”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로레인은 부끄러우면 얼굴에 티가 다 나네요. 귀랑 정수리가 엄청 빨갛게 물들었는데요?”


“꺄하핳! 얘 미치겠다! 정말 왜 이렇게 귀여운 거니?”


“로레인은 그 남자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건데요?”


“아, 아뇨! 저희는 그냥 동료고! 그, 뭐랄까! 친구라고 해야 하나... 은인이라고 해야 하나...”


“에이! 여기는 우리밖에 없는데? 그렇게 숨길 거야?”


루아리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래요. 로레인, 좋아하는 거죠?”


그녀는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제 글이 여러분에게 어떤 방향으로라도 영향을 끼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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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184. 종막 (5) 22.05.10 11 0 11쪽
184 183. 종막 (4) 22.05.07 14 0 11쪽
183 182. 종막 (3) 22.05.03 1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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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176. 기사, 최선의 기사 (7) 22.04.12 21 0 11쪽
176 175. 기사, 최선의 기사 (6) 22.04.09 16 0 11쪽
175 174. 기사, 최선의 기사 (5) 22.04.05 27 0 12쪽
174 173. 기사, 최선의 기사 (4) 22.04.02 35 0 12쪽
173 172. 기사, 최선의 기사 (3) 22.03.29 27 0 10쪽
172 171. 기사, 최선의 기사 (2) 22.03.26 30 0 12쪽
171 170. 기사, 최선의 기사 (1) 22.03.22 43 0 11쪽
170 169. 왕이 잠든 땅 (13) 22.03.19 2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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