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제대로 얘기한 적 있던가?+”
“+어······, 아니?+”
리나가 ‘어. 했어.’라고 말하려다가 바꾼다.
위즈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전 세계에 위즈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있어서 그렇지.
“+지금 자세히 얘기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사실 나 여기 온 이유가······.+”
위즈가 단어를 고르고 고르다가 다시 입을 연다.
“+그, 무서워서, 도망친 거거든.+”
“+무서워서?+”
뜻밖의 이유에 리나가 눈을 크게 뜬다.
거짓말이라는 건 둘째 치고 위즈가 뭔가를 무서워한다는 말 자체가 비문 같다.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자기 집안 사람들을 모두 학살했다는 위즈가,
“+무서워서 도망쳤다고?+”
“+응.+”
위즈가 리나의 눈길을 피하며 말한다.
“+뭐가?+”
“+그게, 음······.+”
위즈가 하늘을 보며 잠시 생각한다.
분명 그걸 말하면 자연스럽게 과거까지 말하게 된다.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조금씩 옛 일을 떠올린다.
- 뭘 하는 게냐! 가서 마당이나 쓸어라!
“+내가 가문 사람들이랑 관계가 안 좋았다는 건 알고 있지?+”
리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이런저런 학대를 받았어. 법에는 걸리지 않을 정도로.+”
“+혹시 그게 무서웠던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갖은 고초야 어릴 적 본가에 끌려오다시피 들어왔을 때부터 겪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어.+”
“+그건 익숙해진 게 아니라······.+”
“+어?+”
리나가 조심히 말한다.
“+그, 책에서 읽었거든. 그런 건 익숙해진 게 아니라,+”
마음이 못 견뎌서 죽어버린 거라고.
그 말에 위즈가 멍하니 리나를 본다.
“+죽어버렸다······.+”
“+미, 미안. 책에서 본 그 말이 떠올라서. 그,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아니. 괜찮아.+”
리나가 당황하자 위즈가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정말로 리나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아니, 그게······.+”
“+사실, 그런 말 몇 번 들어봤거든.+”
너무 참아댄다고, 속이 남아나질 않겠다고.
그러다 언제부터였나 그런 말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
“+어?+”
“+위즈 감정 말이야. 나랑 얘기하면서 이렇게 웃기도 하고, 아무리 봐도 죽은 건 아닌데?+”
그러고 보면, 이렇게 웃으며 대화하던 게 언제였을까.
아니, 있긴 했을까?
“+웃는 걸 빼도, 위즈는 분명 감정이 살아있는걸.+”
“+정말? 예를 들면 어떤 점이?+”
“+어?+"
거기까진 생각 안 했던 모양이다.
“+그, 위즈는 숲에서 날 살려줬고, 여기서 지내게도 해줬고, 마법도 가르쳐주고······.+”
“+그건 감정이랑 별 상관없잖아.+”
그래도 위즈의 장점을 어떻게든 찾으려는 리나 모습을 보며
감정이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만약 감정이 정말 죽었다면 리나 머리를 이렇게 쓰다듬으며 즐거워할 리 없으니까.
안쓰럽다고 생각한 건지 가만히 있다.
“+리나 네 덕분이야.+”
“+나?+”
“+응. 고마워.+”
그 말에 리나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살짝 숙이자 그제야 위즈는 손을 뗀다.
“+아무튼, 폭언이나 폭력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어.+”
“+진짜 때리기도 했어?+”
- 네놈이 잘나 봤자 버러지일 뿐이지! 쓸모없는 녀석, 빨리 일어나!
“+응. 그래도 뭐,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어. 걱정하지 마.+”
“+정확히 왜 괴롭힌 거야?+”
“+‘성물’ 때문에. 성물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봤지?+”
스케루드 황가의 조상 니롯샤-아루바네 스케루드가 아라(시간)에게 받아 동료들에게 나눠줬던 힘.
“+마법사 데스트리아누스가 받았던 게 분명, 마력에 관한 거였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마력에 대한 거라는 건 알고 있어.+”
“+응. ‘메르타시아키나’라고 부르는 건데 그게 세대를 거치며 전해져 와.+”
“+세대마다 한 명?+”
“+응. 정확히는, 기존 소유자가 죽은 순간의 가장 마지막 세대 중 한 명이 물려받지.+”
“+그럼 위즈가 그걸 물려받은 거야?+”
“+맞아. 그런데 성물이 가진 실제 능력과 상징성 때문에 매번 가문 내에서 말이 많았어. 거기다가 내가 시조의 직계 후손이기도 하고.+”
“+진짜?+”
리나가 입을 벌린다.
막연히 후손이라는 건 알았는데 그대로 쭉 올라가면 소설 속 주인공이 있다니.
“+그리서 대체 뭐가 무서웠다는 거야? 가문 내 *****이야 좋은 건 아니지만, 크레센타에서도 흔한데.+”
“+그게······.+”
- 준비, 시작!
- 막아! 빨리 막아! 막······.
- 잘못했네! 사실 난 그럴 생각 없었어! 전부 다······.
“+······즈?+”
위즈가 몸을 떨기 시작한다.
- 멈춰! 지금 뭐 하는 거야?
- 대체 언제부터······.
“+위즈? 괜찮아?+”
비를 막던 마력 우산이 사라지고 위즈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요동치는 눈동자.
뭔가 위험하다 싶어서 위즈를 붙잡고 몸을 흔든다.
“+어?+”
그런데 위즈를 잡은 부위 주위가 빛나더니 없어졌을 선이 다시 심장에서 뻗어온다.
선은 그대로 리나에게 닿아 팔을 타고 빠르게 올라온다.
움직이지 않아 손을 뗄 수도 없고 그대로 팔이 위즈가 마법을 쓰듯 선으로 뒤덮인다.
“+잠깐······.+”
어떻게 반응할 틈도 없이 선에 잡아먹힌다.
******
“흐억!”
얼굴에 떨어지는 냉기에 새삼스레 눈을 뜬다.
숨을 몰아쉬자 같이 비를 맞으며 위즈를 내려다보던 리나와 눈이 마주친다.
“+위즈! 위즈!+”
“어, 어?”
“+괜찮아?+”
여전히 우중충한 하늘.
그보다 왜 이렇게 드러누워 있던 걸까.
리나는 왜 이렇게 걱정하고 있고.
“+왜 그래? 몸 안 좋아?+”
리나가 위즈의 손을 꼭 잡으며 외친다.
“+몸?+”
그러고 보니 몸이 주체 못 할 정도로 떨린다.
몸도 식어가는지 움켜쥔 리나 손이 유난히도 따뜻하다.
토운사나스 얘기를 하다 리나와 숲 밖으로 나가는 얘기를 했고,
이어서 무서워서 이곳으로 도망쳤다는 얘기를······.
“+괜찮아? 왜 그렇게 숨을 몰아쉬어?+”
“+자, 잠시만. 잠시만 가만히 있어 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새하얗다.
가슴이 옥죄인다.
앞니로 입술을 으깨기라도 하겠다는 듯 꽉 문다.
손을 떨면서 리나 손을 쥐었다가 놓길 반복한다.
최대한 심호흡에 정신을 집중한다.
“+위즈? 내 말 들려? 위즈?+”
위즈의 팔을 주무르자 위즈도 허공을 더듬거리다가 리나의 팔을 잡는다.
“+리나, 너 몸이······.+”
“+위즈도 마찬가지잖아.+”
어느새 비를 막던 마법이 사라져 리나도 위즈도 몸이 흠뻑 젖어있다.
정신을 잃었던 동안 강해진 빗줄기에 둘 다 흠뻑 젖다 못해 물이 흐른다.
“+갑자기 왜 정신을 놓고 그래?+”
“+······얼마나?+”
“+어?+”
위즈가 멍하니 하늘을 보며 묻는다.
“+얼마나 정신을 놓고 있었어?+”
“+그, 3분 정도?+”
리나도 정신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나 그래도 위즈를 안심시키려고 그렇게 답한다.
“+······그래?+”
위즈가 한숨을 쉰다.
‘또’ 이 꼴이 되어버렸다.
“+미안해. 쫄딱 젖게 만들어버렸네.+”
“+그건 상관없는데, 위즈, 일단 손 빼줄래?+”
“+어? 아······.+”
리나 손과 팔을 힘주어 쥐고 있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떨리는 손을 빨리 뺀다.
“+괜찮아, 위즈?+”
“+괜찮······.+”
웃으며 말하고 싶으나 그냥 사실대로 말한다.
“+아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네.+”
떨리는 손으로 다시 마법을 쓰려고 하지만 집중이 되지 않는지 계속 실패한다.
결국, 인상을 쓰며 손을 툭 내린다.
주먹을 쥐고 화라도 내고 싶지만, 리나가 옆에 있어 차마 그럴 수가 없다.
“+미안해. 산책은 여기까지 하고, 빨리 들어가자. 감기 걸릴라.+”
그러나 일어나자마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허겁지겁 몸을 일으키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저, 위즈.+”
그걸 안쓰럽게 쳐다보던 리나가 무릎으로 걸어 위즈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머리에 손을 올린 뒤 천천히 문지른다.
“+착하다, 착하다.+”
비에 푹 젖은 머리를 쓰다듬자 위즈가 멍하니 리나를 쳐다본다.
“+착하다, 착하다.+”
“+어······.+”
위즈가 눈을 올려 리나의 팔을 보고 다시 리나를 본다.
“+괜찮아?+”
“+어? 아, 어. 괜찮기는 한데······.+”
위즈가 말 대신 손가락으로 리나의 팔을 가리킨다.
“+사실 그, 내가 울 때마다 **********가 해주던 거야.+”
“+울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뭐, 괜찮아졌다며.+”
리나가 입을 삐죽 내밀며 삐진 척하자 위즈가 힘없이 살짝 웃는다.
누군가와 같이 웃는 건 억지로 조건을 넓혀서 토운사나스와 겪은 적 있다고 해도 이렇게 누가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되어준 건 한 번도 없었다.
잠시 리나에게 기대어 눈을 감았다가 말한다.
“+이제 괜찮아. 진정됐어.+”
“+그래?+”
리나가 손을 떼고 물러나자 위즈가 다시 힘차게 일어난다.
“+고마워. 덕분에 힘이 났어.+”
위즈가 다시 마법을 쓰자 이번에는 완벽하게 된다.
기세를 몰아 몸의 물기도 없앤다.
“+감기 걸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그래도 리나 너나 나나 체온 떨어졌으니까 빨리 돌아가자.+”
“+응.+”
둘이 나란히 서서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간다.
“+그러고 보니 다람쥐 집 찾는 건 결국 못 했네.+”
“+어차피 이렇게 비가 오면 더 보기 힘들 거야. 날도 흐리고.+”
그래도 리나가 계속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기에
위즈가 리나 머리에 손을 툭 올리고 말한다.
“+대신 날이 개면 내가 멋진 거 보여줄게.+”
“+멋진 거?+”
“+응. 리나 너, 아마 처음 보는 게 아닐까 싶은데.+”
“+뭔데? 뭔데?+”
“+폭포야. 은둔자의 폭포.+”
리나가 눈을 크게 뜬다.
“+정말? 책에 나오던 그 폭포? 거기 올라가 볼 수도 있어?+”
“+날씨만 맑다면 괜찮아. 그리고 굳이 못 올라가도 보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야.+”
“+왜?+”
“+우리 집안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볼 수 있거든.+”
시조의 후계자가 가족이라고 여겨야만 이 정원과 은둔자의 폭포를 방문할 수 있어
가문 내에서도 볼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안 된다.
“+그러다 보니 다들 전설 속에만 등장하는 폭포라고 생각했어. 밖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폭포에 닿지 않으니까.+”
“+그런데 위즈가 여기 들어와서 찾은 거구나?+”
“+그렇지.+”
리나가 조금 생각해보고 묻는다.
“+그런데 폭포까지 보여줘도 돼?+”
“+응? 왜?+”
“+나는 따지고 보면 외부인이잖아. 보여주면 나중에 가문에서 문제 삼거나 하지는 않아?+”
“+괜찮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리나 반응이 기대된다며 웃는 위즈.
방금까지 빗속에서 떨던 사람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못 믿을 정도로 밝다.
그렇지만 마냥 좋아할 수 없다.
‘+어떻게 사람이,+’
선이 리나를 뒤덮었을 때 보고야 말았다.
‘+그 모든 걸 끌어안고도 이렇게 살 수 있는 걸까.+’
비록 단면이지만, 위즈가 느끼는 슬픔과 분노와 가책과 책임이 모두 흘러들어왔다.
정신을 붙잡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던 순간.
“+응? 왜 그렇게 봐?+”
안타까워서 너무 빤히 쳐다봤는지 위즈가 묻는다.
밝고 근심이라곤 없다는 얼굴로.
리나가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빨리 폭포 보고 싶어.+”
그리고 웃어준다.
아니, 웃는다.
제대로,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더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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