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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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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203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5.05 19:20
조회
67
추천
2
글자
12쪽

21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마법을 배우는 리나를 보다 보면,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행복하다.

그나저나 리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도망쳤던 프레그가 떠오른다.


- 요정의 정체를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겼다고는 해도 놓쳤다.

그리고 프레그와 마주친 뒤부터 적이 제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적은 위즈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으리라.

정원의 위치를 알아낸 수만 명이 동시에 마법을 쓰는 생각을 하다 몸을 떤다.


‘그건 그렇고 요정을 내놓으라니.’


위즈가 애쓰는 리나를 보면서 피식 웃는다.


“+왜?+”

“+어?+”


리나가 위즈를 노려보자 위즈가 눈썹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미소를 짓는다.


“+별거 아니야. 그냥 재밌는 게 생각나서.+”


의심하듯 조금 노려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린다.


‘요정이라.’


위즈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뭐, 확실히 이 지역에서 저런 모습으로 뛰어다녔으면······.’


흰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숲을 뛰어다니는 모습.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요정 같았으리라.


리나가 숲을 뛰어다닐 날도, 크레센타로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살짝 고개를 돌려 오두막을 본다.


‘여기도 다시 조용해지겠지?’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든다.

리나가 온 뒤로 오두막은 전보다 더 시끌벅적해졌다.


‘그런데 왜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지?’


처음 속성이 정해질 때 고요함을 바랐을 정도로 위즈는 시끄러운 걸 싫어한다.

유일한 친구가 너무 시끄러워서 처음에는 고역일 정도였으니.

오두막에서 혼자 살게 되었을 때도, 다른 이유도 있긴 하겠지만,

외롭다는 생각은 거의 안 하고 그저 편하다고만 여겼다.


‘대체 왜 리나랑 지내는 게 나쁘지 않았을까.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지냈다는 듯.’


조금 생각해보고 말을 건다.


“+리나.+”

“+응?+”


고개를 들자 손 위에서 움직이던 마력은 심하게 떨다 흩어진다.


“+여기 생활은 마음에 들어?+”


리나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왜?+”

“+그냥 뭐······. 여기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들인 적이 없으니까. 환자를 돌보거나 한 적도 없고. 무엇보다 제자를 둔 것도 처음이니.+”

“+나쁘지 않아.+”

“+구체적으로는?+”


속으로 조금 정리해보고 말한다.


“+여기서 지내니까 좋아. 동물들도 많고, 마법도 배우고. 꼭 책에 들어온 것 같아.+”

“+하지만 정원 너머에는 널 노리는 자들이 있어. 무섭지 않아?+”


위즈가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다.


“+응. 안 무서운데?+”


리나는 그런 것도 질문이냐는 표정으로 답한다.


“+안 무섭다고? 왜?+”

“+위즈가 지켜줄 거잖아. 그렇지?+”


리나가 위즈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당연하다는 느낌보다 그래줬으면 하는 느낌.

부디 잘 대해주다가 갑자기 돌변하지 말길 바라면서,


“+위즈는 강하다며? 얘기하는 것만 들어보면 수십, 수백이 와도 날 지키면서 싸울 수 있을 것 같던데? 물론 나도 뒤에서 돕겠지만.+”

“+그······.+”


리나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렇지. 내가 지켜줘야지.+”


그리고 리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민다.


“+그래도 너무 믿지는 마.+”

“+어? 왜?+”

“+왜긴.+”


이마를 문지르는 리나에게 조용히, 그리고 어둡게 말한다.


“+사람을 믿으면 믿을수록, 배신당했을 때 절망감이 너무 크니까.+”


마치 처음 만난 날, 위즈가 장난으로 리나를 위협했을 때 느꼈던 감정.

상대가 상대인 만큼, 혹시 두려워하던 일이 정말로 일어날까 침을 삼킨다.


“+물론 내가 그럴 일은 없지만.+”


그제야 숨을 이상하게 내쉬며 몸에서 힘을 뺀다.


“+놀랐어?+”


놀란 것도 놀란 거지만, 위즈가 지었던 그 표정이 더 신경 쓰인다.


“+그런 적, 있었어?+”

“+뭐, 여러 번.+”


위즈가 별거 아니라는 듯 볼을 긁적인다.


“+그럼 그때부터 다른 사람 안 믿었어?+”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한 가지 길을 더 생각하는 편이야.+”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살아남는 데는 이미 익숙하다.

아니, 이골이 났다고 표현해야 할까.


“+그러면 나도 위즈 믿지 말까?+”

“+어?+”


뜻밖의 질문.


“+위즈를 믿다가 배신당하면 안 되니까, 위즈 절대로 믿지 마?+”

“+그······.+”


왜 리나한테는 다른 이들에게 하듯 모질게 굴질 못할까.


“+나를 믿는 거야? 무엇 때문에?+”

“+위즈가 날 지켜준다고 했으니까. 날 지켜주는 사람을 못 믿으면 어떻게 해?+”


평소 같으면 “+그렇지만 내가 널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데?+”라고 답했겠지만,


“+괜찮지? 나 위즈 믿어도 되는 거지?+”

“+그······.+”


왜일까,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전혀 다른 대답을 한다.


“+······래. 믿어도 돼.+”

“+그러면, 위즈도 나 믿어도 돼.+”


배신당해봤다는 위즈가 안쓰러워

리나가 일부러 자기 가슴팍을 두들기면서 호기롭게 말한다.

뜬금없는 소리에 위즈가 멍하니 있다가 대답한다.


“+갑자기 뭘 믿으라는 거야?+”


리나도 거기까지 생각한 건 아닌지 당황해서 하나씩 세어본다.


“+그러니까 그······, 다리가 나을 수 있다든가, 마법을 배울 수 있다든가, 집안일을 할 줄 안다든가······.+”

“+이미 다 과거형이잖아.+”

“+아무튼.+”


리나가 위즈를 흉내 내듯이 허리에 손을 얹는다.


“+위즈가 날 믿는다면, 배신하지 않는다면 나도 위즈를 배신하지 않을게. 그게 평범한 기대든, 싸우면서 등을 맡기는 거든.+”


리나와 만난 이상, 위즈도 이제 리나의 사람이다.

그리고 다시는 자기 사람이 죽는 걸, 무너지는 걸 보지 않겠다고 했다.

위즈가 리나를 지키는 만큼 리나도 위즈의 무너지지 않는 기둥이 되고 싶다.


“+날 믿어. 내가, 위즈의 희망이 되어 줄게.+”


희망이 되어 줄게.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마치 눈앞에서 섬광이 터지듯 머릿속이 하얘진다.


“+어? 위즈, 울어?+”

“+아니. 이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어? 언제 날이 흐려졌었지?+”

“+빨리 들어가자, 리나. 안에서 연습하면 되니까.+”


위즈가 리나를 잡아 일으키자 기다렸다는 듯 빗방울이 많아진다.

리나는 비를 맞는 게 좋은지, 물에 젖은 잔디 위를

거의 다 나은 다리로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조심해. 그러다 넘어지면 다시 치료해야 한다고.+”

“+괜찮아!+”


프레그가 말한 것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웃으면서 빗속을 돌아다니는 게 확실히 요정 같기는 하다.


“희망이라.”


위즈가 살짝 미소 짓는다.


‘딱히 당장 필요하진 않지만, 그래도 한 번 믿어볼까.’


배가 고픈지 소리를 내며 침을 흘리는 하늘.


“비가 와서 다행이네.”


위즈가 하늘을 보면서 중얼거리곤, 눈가를 닦는다.



******



“+그러게 빗속에서 뛰지 말라고 했지?+”


둘 다 씻고 나서 위즈가 하늘을 찌르는 입꼬리를 한 채

리나의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주며 말한다.


“+그래도 멀쩡한데······.+”

“+‘다행히’ 멀쩡한 거지. 만약에 잘못 넘어졌으면 어쩔 뻔했어?+”


이 어수룩한 요정님은 물먹은 잔디가 미끄럽다는 걸 몰랐는지

신나게 달리다 보기 좋게 미끄러져 몇 미터를 그대로 나아갔다.

다행히 오른쪽 다리에 이상은 없지만,

엉덩방아를 세게 찌었는지 위즈가 다가갈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이제 내일 봐봐. 아파서 아침에 움직이지도 못할걸.+”


잘못을 아는 건지 신경을 안 쓰는 건지, 리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다.

머리에서 물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가 되자 위즈는 그대로 자기 머리를 닦는다.


“+비 맞는 게 그렇게 좋았어?+”


리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몸에 뭔가 떨어지는 데 시원해서 재밌었어. 풀을 밟으니까 물이 튀는 것도 그렇고.+”

“+어?+”


위즈가 손을 멈춘다.


“+비 안 맞아 봤어?+”

“+응. 처음이야. 왜?+”


리나가 위즈를 뒤돌아 올려다보며 말한다.


“+너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


“+······여러 일을 여기에서 처음으로 겪어보네.+”

“+응. 그래서 여기서 지내는 게 재밌어.+”


위즈가 간신히 말을 참는다.

리나의 삶에 관해 물어보려면, 위즈도 자신의 삶을 얘기해줘야 한다.


그게 두렵다.

엘렌 성에서 저지른 짓을,

늑대와 늑대 부리미에게 저지른 짓을 알게 되면 리나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섭다.


‘내가 누군지 짐작은 한 모양이지만······.’


여기서 며칠간 지내면서 리나와 많이 가까워졌다.

당장은 무리지만, 언젠간 속마음까지 터놓고 싶은 그런 아이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말하기 무섭다.

위즈가 누군지 알면 다시 멀어질까 봐.


“+위즈. 왜 그래?+”

“+어? 어······.+”


리나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왜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어?+”

“+······머리 더 닦아줄까?+”

“+그 핑계 대고 만지려고?+”


둘이서 실없이 웃는다.


“+내일은 다시 날이 맑겠지?+”

“+글쎄. 슬슬 비가 많이 올 시기라서. 한동안 비만 내릴지도 몰라.+”

“+그러면 마법 공부는?+”


고개만 팍 들어 자기 등 뒤에 있는 위즈를 올려다보는 게 퍽 귀엽다.


“+일단 마력 조종하는 걸 끝내자. 그건 안에서도 가능하니까.+”

“+위즈는 숲에 안 가?+”

“+가긴 할 거야. 비 오는 날에 유난히 잘 보이는 약초가 있어서.+”


꺾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아사르군더니움 병사의 목이라는 약초가.


“+그렇지만 나도 찝찝하니 그렇게 자주 나가진 않을걸? 아마 며칠 정도는 이 안에 있겠지.+”

“+그러면 나 더 많이 봐줄 수 있겠네.+”

“+학구열이 너무 뛰어난 것 아니니?+”


그렇게 말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헤집는데 딱히 저항하지 않는다.


서로 근심과 걱정 없이 지내는 삶.

지금까지 계속 찾았던, 그토록 바라던 삶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 사건을 일으키고 숲으로 도망친 건 분명 위즈의 선택이고

자기 행동에 변명할 생각도 없으며

같은 순간이 돌아와도 똑같은 생각을 할지 모른다.


그래도 만약 이런 일상이 그 사건 전에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런 끔찍한 짓은 안 저지르지 않았을까.’


갑자기 손이 멈춰 이상하다고 생각한 리나가 다시 위즈를 올려다본다.


“+왜 그래, 위즈?+”


새빨간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보는 모습이

마치 잃어버린 과거 같아 괜스레 가슴이 답답하다.

혹여나 계속 보다가 울까 두려워 그대로 머리를 잡고 다시 헤집는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럴 리 없다는 걸 리나가 알고, 리나가 알고 있다는 걸 위즈도 알지만,

그냥 그렇게 당당히 거짓말한다.


마치 지금까지 힘들었던 걸 보상이라도 받듯 행복하다.

하지만 결국, 이 가짜 행복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이면 괜찮지 않을까.’


전보다 더 잘 웃어주고,

전과 달리 이렇게 머리 닦는 걸 핑계로 머리를 문질러도 크게 저항하지 않고,

전보다 더 가까이 다가온다.


“+리나. 그······.+”


그래서 입을 열려고 했으나,


“+응?+”


리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 생각이 사라진다.


“+오늘 저녁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 있어?+”

“+먹고 싶은 거? 음······.+”


실패하자 자책감과 죄책감이 한 번에 몰려온다.

리나는 분명 눈치를 챘겠지만, 그래도 직접, 전부 알려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끝까지 말할 수가 없다.


‘언젠가는 말해야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겁이 많아서, 손에 넣은 걸 잃어버릴까 봐, 입을 다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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