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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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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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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4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5.04 07:20
조회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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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9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이 꽃의 이름은 하르미니시아. 제 시조 할머니 성함입니다. 호라 제국이 이렇게 큰 영토를 차지한 건 그 시조 할머니의 공이 아주 컸지요.”


그 상태에서,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보랏빛 눈동자를 빛내며 조용히 말한다.


“그런데 당신들이 내 시조 이름을 가진 이 꽃을 해치는 꼴은 절대 못 봐.”


그런 위즈를 보고도 프레그는 겁먹은 기색 없이 담담하다.


“희귀성이 가치를 높인다, 라.”


그러고는 딴소리를 한다.


“당신이 요정의 정체를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이는 애초에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크지.”

“마치 노예상인이 할 법한 말 아닙니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프레그가 위즈 눈을 계속 보다가 몸을 돌린다.


“몇 년 전, 제 친구들이 신세를 졌던 모양이더군요.”


위즈의 눈꼬리가 살짝 흔들린다.


“아아, 그런 표정 짓지 마시지요. 저는 그저 사과하고 싶을 뿐입니다.”

“사과?”

“예. 의도치 않게 제 친구들이 폐를 끼쳤다는 걸 들었습니다. ‘그 학살’에 대해 당신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애초에 자격도 없고요.”


위즈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노려본다.


“그럼 왜 그 얘기를 꺼낸 겁니까?”

“흠, 이런 얘기는 차와 과자가 곁들어져야 좋은데······.”


프레그가 눈을 살짝 돌리다가 말한다.


“저희와 함께할 생각 없으십니까?”


위즈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니까, 저희가 대충 누구인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

“제 친구들 때문에 저희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갖고 계시겠지만, 사실 저희는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름의 이상과 사상을 가지고,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것뿐이지요.”


위즈가 가만히 쳐다본다.


“솔직히 억울하지 않으셨습니까?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핍박받는 것 말입니다. 저희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에 저항하는 이들입니다.”

“흠.”


프레그가 신이 나서 얘기한다.


“‘위대하신 분’께서는 장차 온 세상을 정복하고 핍박받는 이들을 구원하실 겁니다. 그분께서는 시간도 거스르는 분으로, 신께서 직접 선택하신 분이십니다.”


주위가 영 시끄럽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쫓아내겠다는 것처럼.


“자, 함께 하시겠습니까?”


위즈가 팔짱을 끼고 아랫입술을 내밀다가 말한다.


“조건은 뭐지?”

“요정을 넘기십시오. 조건은 그것뿐입니다.”


위즈가 피식 웃더니 말한다.


“거절.”

“어째서?”


프레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계집 때문에 구원을 거절하겠다고?”

“아니, 그게 구원인 것 같지도 않고, 사실 처음부터 들어갈 생각은 없었는데,”


위즈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다가 프레그를 노려본다.


“조건을 들으니까 더 화가 나서 말이야.”

“조건이 뭐 어때서 그런 겁니까?”

“그 애를 내놓으라고?”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무서운 기운을 뻗치며 프레그에게 다가간다.


“그 애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그런 아이를 희생시켜서야 얻을 수 있는 승리에 가치는 없어. 당신네 수령은 그런 것도 모르나?”

“뭐?”


갑자기 프레그의 분위기가 바뀐다.


“방금 뭐라고 했지?”

“어?”

“방금 뭐라고 했냐고.”


이상해서 잠깐 멈추기는 했으나, 겁은 먹지 않았다.


“느그 수령은 그런 것도 모르냐고.”

“이 미천한 것이.”


조용히 품에서 단검을 꺼내더니 둘 사이의 거리가 갑자기 좁아진다.

한 발짝만 더 갔어도 완전히 찔렸을 거리.

위즈가 살짝 당황하며 빠르게 뒤로 빠지는데 옷자락이 베인다.


“미천한 것이 감히 누구를 모욕하느냐!”


‘역린을 건드렸나?’


눈매가 완전히 바뀌었다.

덩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속도.


‘단검을 휘두르긴 했으나 마력이 느껴지는 걸 보면 마법사.’


창을 솟아나게 해서 공격하기에는 거리도 가깝고 속도도 빨라

일단 사슬로 주위를 막는다.

마법을 쓰는 건지 프레그가 칼 옆면을 손바닥으로 한 번 문지른다.


“그 무례한 언동, 당장 취소하라.”

“싫어.”


땅이라도 접은 듯 다시 또 거리가 빠르게 줄고

위즈는 그에 맞춰 사슬을 위로 올린다.

다만 죽일 순 없어 한 발짝 먼저 올라오게 해 막기만 한다.


“불경한 것!”


사슬이 철렁거리는 사이에 프레그가 팔을 휘둘러 액체를 위즈에게 튀긴다.


“쓰으읍!”


연기를 내며 녹는 옷과 피부.

급하게 손으로 문지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만 조금 남고 멈춘다.


‘독?’


독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왜 이렇게 상대하기 껄끄러울까.


“그분께서는 위대하시다! 그분을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쓰러지리라!”

“그럼 여기서 살아서 돌아가 보든가.”


커다란 창이 솟아나고 프레그가 피할 법한 곳에 달려드는 사슬.

그 중 하나에 들어맞아 프레그를 노리는데 덩치에 안 맞게 생각보다 잘 피한다.


위즈가 방심한 틈을 타서 접근하니

이번에는 위즈가 칼을 피해 왼손으로 프레그의 오른 손목을 움켜쥔다.

곧바로 마법을 쓰려고 하나,


“그분 앞에 무릎 꿇어라!”


프레그가 남은 팔로 위즈의 팔을 잡자 강한 통증이 몰려온다.

반대팔을 휘두르지만, 프레그는 자기 팔이 빠지자마자 이미 물러났다.


“그분께서 내리신 독이다. 굶주린 이들의 고통을 맛봐라.”

“나한테는 안 통해.”


얼얼해서 머리가 살짝 띵하기는 해도 그뿐이다.

머리를 이리저리 비틀며 목을 푸는 모습에

프레그가 다시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본다.


“그것도 네 능력이더냐?”

“그런데?”

“이미 그분의 많은 축복을 받아 놓고도 내려놓지 못하니,”


다시 칼 옆면을 문지른다.


“그분의 복음이 필요하다.”

“축복 같은 소리 하지 마.”


단 한 번도 축복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

오히려 저주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니.

거기에 애초에 이 힘을 준 존재를 직접 만났는데 무슨.


“그리고 뭐? 굶주린 이들의 고통?”


바지 속, 다리에 선이 생긴다.

빠르게 다가오는 프레그.

사슬로 칼을 살짝 쳐내고 그대로 발로 가슴팍을 찬다.


“겨우 그 정도의 고통을 느끼라고? 굶주린 채 잠도 못 자고 일했는데 게으르다고 얻어맞는 고통을 네가 알아?”


차라리 학교에서 훈련이랍시고 설산에서 잤던 게 훨씬 마음 편했다.


“내려놓으라고? 당신은 모든 걸 내려놓고 살아서 살이 그렇게 피둥피둥 쪘나?”

“난 그러지 않아도 된다.”


프레그가 입가를 닦으며 일어나 자세를 다잡는다.


“위대하신 분께 선택된 자들은 영원한 영광을 누리리니, 이 또한 그 일부다.”

“역겨워서, 진짜.”


팔을 휘둘러 사슬칼을 만들고 쥔다.


“그럼 당신도 나 이상으로 핍박받고 살았나? 그렇기에 보상을 받는 거야?”

“날 네놈과 같은 미천한 것과 동급으로 취급하지 마라. 위대하신 분께서 직접 선택한 집안 출신이노라.”

“그건 그냥 귀족이라는 얘기잖아. 기득권층이 무슨.”


그 말이 또 거슬렸는지 다시 달려든다.

위즈는 칼을 크게 휘두르고 칼에서 나온 검은 사슬이 칼의 궤적을 따라 주위 나무에 부딪히나 프레그는 몸을 숙여 피한다.


“죽어라, 이단!”


아예 독액이 흐르는 칼을 찌르자

위즈가 왼손바닥을 내지르는데 칼이 손바닥을 뚫는다.

이어 튀긴 독이 위즈의 옷을 조금씩 녹인다.


“위대하신 분의 선택을 받은 내가,”


사슬을 상당히 아슬아슬하게 피하더니 숨이 찬 모양이다.


“그런 공격을 맞을 리가······.”

“없지. 피하라고 한 거야.”


꿰뚫렸을 위즈의 팔이 징그럽게 움직이더니

사슬 뭉텅이로 변해 칼과 프레그의 팔을 붙잡는다.

그리고 보라색 선이 가득한 오른팔로 프레그를 치기 시작한다.


시끄럽던 숲이 조용해지고 주위의 동물들이 말없이 구경만 할 때까지,

이런 놈들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한 리나가 그나마 덜 안타까울 때까지.


“후, 후,”


그러면서도 내려놓는 순간까지 프레그의 숨을 끊지 않는다.

만신창이가 된 프레그를 내려다보고 경고하려고 하는데,


“흐흐흐, 흐흐, 흐흐,”


프레그가 갑자기 웃더니 퉁퉁 부은 눈으로 위즈를 본다.


“그렇군. 역시 그랬어.”

“더 맞고 싶어?”

“대체 왜 살아남은 용병들이 목숨은 잃지 않고 다시는 싸우지 못할 몸으로 돌아왔나 했더니,”


생각보다 괜찮은지 몸을 일으킨다.


“너, 사람을 죽이려 하지 않구나.”


약점을 들켰다는 초조함.

사슬로 적을 꿰뚫으려 하는데 프레그가 눈치채고 몸을 피한다.


“그게 더 잔인한 건데 말이야.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부양할지, 가족은 어떻게 부양할지 생각은 했나?”

“살려준 거에 감사해야지.”

“살려준 게 아니지 않나? 죽이지 못한 것일 뿐.”


얼굴과 몸 이곳저곳이 붓긴 했으나 싸우는 데는 지장이 없는 모양이다.

품에서 새 단검을 꺼낸다.


“아니, 오늘은 여기까지. 이단이 근처에 있으면 더러운 냄새가 옮거든.”

“느그 수령에게 가서 핥아달라고 하던가. 돌아갈 수 있으면.”


자기 안위도 생각 않고 바로 앞에 창을 솟아나게 하지만, 독만 흩뿌린 채 위즈 뒤쪽으로 가서 어깨를 노린다.

어깨를 깊게 베고 스며드는 독은 고통을 참으려는 듯 반대쪽 팔로 움켜쥐자마자 상처와 함께 사라지고,

이어 날라오는 사슬을 마 엘구룬을 던져서 막는다.


“공격 말고 도망치는 것만 잘하네. 너희 특징이야?”


그 말에 아예 손으로 독을 흩뿌리나 그렇다고 상처를 입을 리 없다.

위즈 말에 프레그는 상당히 화가 난 모양이지만, 대신 양팔을 펼치며 말한다.


“그분은 지프메(신)도 무찌르실 분. 모든 건 그분의 승리를 위해서.”


위즈 팔에 선이 생기며 사슬들이 다시 솟으나,


“이미 많은 것을 알았으니 오늘은 물러난다.”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생긴 연기 속으로 사라지자

급히 사슬로 프레그가 있던 자리를 찌른다.

연기가 걷히고 주위를 보지만 싸운 흔적뿐, 프레그는 없다.


“놓쳤나.”


이겼지만, 영 찜찜하다.

공격을 쉽게 피해서도, 독을 사용해서도 아니다.


광신.

저 정도로 뭔가에 미쳐있는 건 처음 본다.


‘단검은······.’


빼앗은 단검에서 뭔가 알아보고 싶어도 그냥 평범한 단검이다.

그래도 적에 대한 단서는 얻었다.

아니, 이미 확실했던 정체에 단서만 더해줬다.


“어차피 99% 확실하니까.”


손잡이에 새겨진 문양과 늑대 부리미가 갖고 있던 문양.

그리고 이미 죽은 원로들이 갖고 있던 문양.

오죽하면 교과서에서도 봤던 그 문양.


“아사르군더니움.”


북쪽의 그 도적들.

위즈가 이 숲에서 못 나가게 만든 장본인이나 다름없는 이들.

움켜쥐자 서서히 사라지는 칼을 차갑게 내려다본다.


- 몇 년 전, 제 친구들이 신세를 졌던 모양이더군요.


혹시 위즈 때문에 놈들이 온 건 아닐까.

아니, 그렇다고 막연히 복수를 위해, 혹은 위즈를 데려가기 위해 온 것도 아닐 터.

늑대 부리미나 프레그가 리나를 언급한 걸 보면 그보다 규모가 더 큰 일이리라.


“+다녀왔어.+”


그렇게 한참 고민하고 돌아왔을 때,


“+위즈, 꼴이 그게 뭐야?+”

“+어, 어?+”


수첩을 읽고 있던 리나가 놀란다.


“+난장판이잖아. 어디서 굴렀어?+”

“+구른 건 아닌데, 어, 그렇게 티나?+”

“+응. 여기 찢어지고, 여기, 여기, 여기는 심하게 구겨지고.+”


한숨을 쉬면서 이어 말한다.


“+정말, 빨리 줘. 꿰매야 하니까.+”

“+어? 직접 꿰매주게?+”

“+응. 그러면?+”


리나가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짓는다.


“+나도 밥값은 해야지.+”


그러자 위즈가 피식 웃는다.


“+왜?+”

“+아니야. 고마워서.+”


그리고 옷을 갈아입으러 침실로 들어가다 멈춰 뒤를 돈다.


“+리나.+”

“+응?+”

“+적어도 이 숲에 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너를 공격하게 두지 않을게.+”


이런 애를 적이 멋대로 제물로 삼게 둘 수는 없다.

정말로 죽여서 제물로 바치든, 협상을 위해 데려가든,

도구로 쓰이는 걸 보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말해도 머리 쓰다듬게 해주지는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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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 21.05.01 96 2 13쪽
14 13화 21.04.30 95 2 12쪽
13 12화 21.04.29 9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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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화 21.04.25 153 2 12쪽
8 7화 21.04.25 16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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