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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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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195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4.23 21:17
조회
495
추천
3
글자
11쪽

1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숲속에서 지내면 신기한 것들과 자주 마주친다.

죽어가던 사람 10명을 바로 일어나게 할 수 있다는 전설의 약초.

당장 내다 팔아도 제국 서울의 큰 집 열 채보다 비싼 값을 받는 희귀 동물의 가죽.

이런 것들을 2년 동안 거의 매일 보다 보니 웬만한 것들에 놀라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자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숲속에서 쓰러져있는 외국인을 보고 덤덤할 수는 없었다.



******



호라 제국 엘렌 지역 유르페르의 숲 한가운데에 있는,

단 한 명만 들어올 수 있는 정원과 오두막.


사람 마주칠 일 없이 느긋하게 지내는 마법사의 하루는 언제나 같다.


아침에 일어나기.

씻고, 아침밥 먹기.

정원에서 약초 캐기.

점심밥 먹기.

숲속을 돌아다니면서 약초를 캐거나 짐승들 사냥하기.

저녁밥 먹기.

공부하고 자기.


2년 동안 지속한, 변함없는 일상.

그 일과에 맞춰서 지금은 약초를 캐러 울창한 숲속을 돌아다니고 있다.


나무가 어찌나 빽빽하게 자랐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다 나무뿐.

그나마 침엽수라 햇빛은 어느 정도 땅에 도착한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보라색 눈동자로 숲속을 샅샅이 뒤지는 마법사.

정원에서 기를 수 없는 약초는 부수입도 되지만,

캐는 것 자체가 나쁘지 않은 소일거리다.

특히 이렇다 할 오락거리가 없는 숲에서는 더더욱.


그리고 숲을 돌아다니다 보면 예상치 못한 소득도 얻곤 한다.

오두막을 나온 지 30분이 흘렀을 때,


“어?”


마법사가 손에 든 호미를 바구니에 넣고 천천히, 몸을 살짝 숙인 채 걸어간다.

한 걸음, 한 걸음.


“끼이익!”


허리를 편 마법사의 손에 평범한 저녁 찬거리, 아니 토끼가 잡혔다.

고기를 유난히도 좋아하는 마법사에게 고기를 찾는 것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

적당히 기절시켜서 바구니 안에 넣은 마법사는 다시 다른 저녁 찬거리를 찾아 돌아다닌다.


그렇게 다시 걷기를 30분. 찬거리는커녕, 다람쥐 한 마리도 보이지를 않는다.


“어?”


어제까지만 해도 동물이 이렇게 적지는 않았다.

고기를 좋아한다고 씨를 말려버릴 마법사도 아니다.

그리고 고민하는 마법사 앞에,


“크르르르.”


고기 대신 늑대가 나타난다.

물론 늑대도 잡으면 고기겠지만.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늑대가 숲에 나타났지.’


본디 늑대가 살지 않는 숲인데도 밤마다 늑대 소리가 오두막 근처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길을 잃고 무리에서 떨어진 건가.’


아무리 냄새를 잘 맡아도 이 정도로 빽빽한 숲에선 별 의미 없으리라.

그런데 늑대 몇 마리가 들어왔다고 해서 이 정도로 숲이 바뀔 리는 없을 텐데.


‘사람도 아니고 늑대가 먹이들 씨를 말릴 리도 없고.’


앞에서 늑대가 대놓고 위협해도 별로 두려워하진 않던 마법사가

문득 늑대 목에 달린 나무판을 본다.

주인 있는 늑대라는 걸 알려주는 동그란 나무판.


‘늑대 부리미 모임이라도 있나?’


그렇다고 하기에도 조금 모호하다.

애초에 이 숲 자체가 늑대를 데리고 사냥하기도 힘들고,

숲 근처 평원에서 모였다고 해도 길 잃은 늑대 한 마리가 동물들을 다 잡아먹었을 수도 없고.


‘일단 주인은 찾아줘야겠지.’


늑대 부리미가 기르는 늑대는 꽤 순하다 들었다.

그래서 별 두려움 없이 늑대에게 다가가 나무판을 보려고 하는데,


“앗!”


늑대가 그대로 손을 깨물려 한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


‘방금, 저 나무판 문양,’


늑대가 마법사를 깨물려고 몸을 흔드는 사이에 흔들린 나무판.

거기엔 유난히도 익숙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급히 팔을 빼다가 실수로 강하게 머리를 내리쳐 정신 못 차리고 비틀대는 늑대.

하지만 마법사는 늑대가 멀쩡할 때보다 더 긴장하고 있다.


‘어째서? 그럴 리가 없는데?’


본가에서 봤던, 저 끔찍한 문양.

그러다 멀리서 늑대 무리의 울음이 들린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일단,’


자기 무리를 찾아가려고 몸을 간신히 돌리는 늑대.

평소 같으면 문양이 어떻든 늑대가 어떻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마법사도

지금은 모른 척할 수 없다.


까만 하늘을 잡아먹던 불길을 잊을 수 없으니.


“미안한데,”


비틀거리며 몸을 옮기는 늑대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는다.

누가 위인지 알았을까, 이제 마법사에게 덤벼들지 않고 가만히 낑낑댄다.


“네 목걸이 좀 가져갈게.”


그렇게 늑대를 처리하고 소중한 저녁 찬거리는 마법으로 날린 채 늑대가 바라보던 방향으로 달린다.

막연히 숲을 달리기에는 나무가 너무 빽빽해 최대한 떨어지지 않게 나무 위를 돌아다닌다.


“컹! 컹”


울음이 가까워질수록 묘한 기분이 계속 샘솟는다.

꽤 오랜만에 느껴 신선하면서도 기분 나쁘다.


‘이런 게 싫어서 그렇게 노력했는데.’


아래를 살피며 달리다 이질감이 느껴져 멈추고 바닥에 내려간다.

나무에 찢긴 채 걸려있는 천 조각.


‘사람······.’


넓고 빽빽한 만큼 길을 잃기 쉬워 웬만한 사람들은 이 숲에 들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나라에서 이따금 숲에 사람을 보내도 숲 입구 근처만 돌고 돌아갈 뿐.

그래서 일부러 숲을 거처로 삼았는데.


‘유난히 사납게 울던 늑대. 사냥꾼이나 늑대 부리미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옷감.’


별로 좋은 조합은 아니다.


‘일단 이 천 주인을 한 번 찾아볼까.’


그러다 문득 아침에 들은 얘기가 떠오른다.


- 널 위해 안배해둔 이야기.

- 어차피 넌 내 손 안에 있으니까.


정해진 운명 위에서 걷기만 하라는 그 말투.


‘어쩌면 이것도 그 자가 말한······.’


운명론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마법사라 평소 같으면 그냥 돌아섰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의 행실을 생각하면 딱히 특별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호기심 때문일까, 다른 무언가 때문일까.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간다는,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을 하고야 만다.


늑대를 쫓고 있다고 해도 유난히 확신이 서는 목표 방향.

자기 목숨이 달린 것도 아닌데 계속 솟아나는 다급함.

눈치채지 못하고 빠르게 나무 위를 달린다.



******



“헉, 헉.”


천 조각 때문일까, 금세 늑대를 따라잡았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늑대가 쫓을 목표를 찾아 더 빠르게 달렸다.


“이 짓도 못 해 먹겠네.”


도착한 곳은 마법사도 잘 오지 않는, 숲 깊숙한 곳 작은 공터.

늑대 소리가 가까이서 들리자 마법사는 주위를 향해 손을 휘두르고,

일정 거리 떨어진 곳에 보라색 선이 그어져 원을 이룬다.


“별별 것들을 다 봐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틀렸다.

숲은 생각보다 더 놀라운 것들을 내놓는다.


그도 그럴 게, 보통 다리가 부러진 외국인 여자애와 마주치는 걸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까.


‘어, 그러니까······.’


흰 머리카락을 보면 분명 외국인이다.

옷차림이나 장신구를 보면 그중에서도 꽤 높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오른쪽 종아리는 완전히 부러져 이상한 각도로 꺾였으나 다행히 뼈가 살을 뚫진 않았다.


‘응급 처치는 해야겠는데······.’


학교에서 배우기는 했지만 보통 의사들이 해주니 실제로 해본 적은 없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시도했다가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다리뼈가 없어진다든가, 엉뚱하게 팔뼈가 없어진다든가.


고민하는 사이 늑대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추측이 정확했던 모양이다.

함부로 뛰다가 어디 한 군데 부러지기 쉬운 이 숲에서 정말 한 군데 부러져 있고.

땀으로 꽤 젖어있고 늑대들은 이곳으로 몰리고.


일단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허리춤에 달아둔 물통의 물로 적신다.

그리고 아이의 이마를 닦는데,


“******!”


아이가 번뜩 눈을 뜬다.

어찌나 크게 떴는지 연한 빨간색 눈동자가 온전히 다 보일 정도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주위를 보더니, 손수건을 든 마법사와 눈이 마주친다.


“음······. 어······. 안녕?”


2년 만에 처음으로 사람과 인사하는 마법사가 조심히 인사를 건넨다.


그러자 여자애는 좀 더 마법사를 보다가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마법사를 공격하려고 팔을 휘두른다.

그걸 피하자 아이가 발까지 쓰며 공격하려고 하지만,


“*********!”


곧바로 부러진 쪽 허벅지를 꽉 쥐며 외국어로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린다.

이 정도로 부러졌으면 가만히 있어도 아팠을 텐데,


‘용케도 모르고 있었네.’


그 모습을 본 마법사는 중얼거리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이에게 말한다.


“잠깐. 그렇게 큰 소리 내다간 늑대들이 여기에······.”


컹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우당탕하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온다.

그 소리에 마법사를 깨물려던 아이가 입을 벌리고,

마법사는 그 틈에 아이 다리에 진통 마법을 건다.

마법이 들었는지 숨을 헐떡이기만 할 뿐 소리를 지르지는 않는다.


‘생각보다 조금 지저분하게 됐네.’


마법사가 느긋하게 뒤를 돌아보며 생각한다.

보라색 선에서 사슬들이 튀어나와 늑대들의 다리를 걸고, 멈추지 못한 늑대들이 자기들끼리 엉키다가 벽을 세웠다.

놀라서 계속 소리를 지르는 아이와 달리 예상한 마법사는 덤덤하다.


손가락을 살짝 올리자 땅에서 끝에 창날이 달린 검은 사슬들이 튀어나와 늑대 주위에서 몇 번 돌더니 자기들끼리 엉키다가 땅에 박힌다.

마지막에는 다시 당겨 더 튼튼한 늑대 벽을 만든다.


“컹! 컹컹!”


늑대들이 묶여서도 계속 짖자 아이가 뒤에서 더 움츠린다.

마법사는 아이를 흘끔 보고는 손가락을 살짝 굽혀 땅을 가리킨다.


“깨갱! 깨갱!”


사슬이 늑대들의 살을 파고든다.


‘고기들도 이렇게 많이 잡히면 참 좋을 텐데.’


마법사는 머리를 긁으며 다시 뒤를 돌아본다.

아이는 눈앞에서 일어난 광경을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마법사가 눈높이를 맞추려고 쭈그려 앉자 아이는 최대한 뒤로 더 물러난다.

그래 봤자 나무에 막히지만.

마법사가 천천히 말한다.


“우리-말, 할-줄-아-니?”


아이가 반응이 없자 다시 말해본다.


“어-디-서 왔-니?”


마법사가 늘려서 말하자 아이는 이상한 사람 보듯이 마법사를 보기 시작한다.


‘일단 오두막으로 데려가야겠지? 다리 때문이든, 늑대 때문이든.’


아이에게 손을 뻗는데 아이는 그 손을 매몰차게 쳐낸다.


‘적으로 생각하나?’


그렇다고 여기 둘 수는 없고, 묘한 기분과 함께 데려가야 한다는 의무감만 샘솟는다.

평소라면 전혀 하지 않을 생각.


아무튼, 여기 묶여있는 늑대가 전부라고 할 수 없다.

이 늑대들이 계속 낑낑대면 다른 늑대들도 여기 올 것이다.


무엇보다 오두막에 던져놓은 저녁 메뉴, 아니 토끼가 도망갈지도 모른다.


‘그래. 그냥 기절을 시키자.’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뻗는다.


“아프진 않을 거야.”


아이는 겁에 질리기도 전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자 적당한 나무 막대가 사슬에 끌려온다.

챙겨 다니던 붕대로 부목을 대어 준 뒤 주위에 떨어진 게 있나 살피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법사의 몸에 선들이 나타나고 그 상태로 축 늘어져 있는 아이를 어깨에 둘러멘다.


‘처리는······.’


손에 넣은 나무판의 문양도 있겠다, 이대로 늑대들을 보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 애를 끼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


“흠.”


조금 고민하다가 그냥 늑대를 두고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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