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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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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202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4.25 18:27
조회
152
추천
2
글자
12쪽

8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식기류가 두 개씩이라서 다행이지······.’


혹시나 동생이 오지 않을까 해서 수를 맞춘 것이었는데 어찌어찌 다행이다.

아침은 밥과 본가에서 보내준 반찬, 그리고 위즈가 주위에서 캐낸 약초를 장에 버무린 것이다.


다시 침대에 엎드려서 다리를 움직이며 공책을 읽는 리나 모습을 보면 꼭 다 나은 것 같다.


‘어찌어찌 처치는 했어도 아직 아플 텐데.’


위즈가 빠른 회복력에 감탄하며 리나를 부르자

리나가 절뚝거리며 부엌으로 와 의자에 앉는다.


“+그,+ 잘 먹겠, 습니다?”


조심스레 말하자 위즈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리나는 틀렸나 싶어 또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위즈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웃고 똑같이 말한다.


“잘 먹겠습니다.”


그제야 리나도 살짝 웃는다.

아침밥을 준비하는 그 짧은 사이에 더 많이 외운 모양이다.


“+무슨 반찬 줄까?+”


라고 크레센타 말로 물어보면


“저거, 주세요.”


라고 말하고, 입에 넣고 나서는 환하게 웃으며


“맛, 맛, 있어요.”


라고 말하고, 다 먹고 난 뒤에는


“잘 먹었습니다.”


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위즈는 리나가 말할 때마다 잠시 멍하니 리나를 쳐다봤다.

문장을 보여주면서 직접 발음을 하는 게 계획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리나.+”


리나가 대답하듯이 눈을 한번 크게 뜨며 위즈를 쳐다본다.


“+그럼, 공책에 있는 건 다 외운 거야?+”

“+아니, 다는 아니고,+”


그럼 그렇지, 라고 위즈가 생각하는데,


“+쓰는 법만 배우면 돼. 글자 생김새는 어느 정도 외웠는데 쓰는 방법은 몰라서.+”


상상을 넘어버렸다.

잘못 들은 건가 해서 다시 묻는다.


“+정말로, 정말로 내가 공책에 써준 걸 다 외웠다고?+”

“+어······, 응.+”


리나가 한 번 더 고민해보고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위즈가 눈썹을 찌푸리며 고민한다.


‘내가 책을 너무 잘 만들었나?’


“+위즈, 위즈.+”


리나가 위즈를 불러 정신 차리게 한다.


“+그럼 글자 쓰는 법 가르쳐 줄래?+”


위즈가 잠깐 고민해보다가 답한다.


“+그래. 다 외웠다니까. 그래도 한 번씩 확인만 해볼게.+”

“+응!+”


리나가 해맑게 웃자 위즈도 따라서 웃는다.


빠르게 설거지를 끝내고 리나가 외운 것을 점검해 본 결과,

한 가지 결론이 나왔다.

리나는 천재다.


‘아무리 크레센타 어로 발음을 적어줬다고 해도, 뜻까지 다 외웠다고?’


틀린 문제는 문자 모양이 비슷해서 틀렸을 테고.


‘문자까지 알면 다 맞았겠네.’


위즈가 체크목록을 내려놓으며 허탈하게 한숨을 쉰다.


“+왜? 많이 틀렸어?+”

“+아니, 너무 많이 맞아서 의욕이 생기지 않아.+”


리나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본다.


“+문자만 가르쳐주면 더는 가르칠 게 없을 것 같아.+”


리나가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인다.

위즈가 종이를 건네준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해볼까?+”


그리고 바로 펜과 잉크를 가져와 종이에 크게 단어를 적는다.

하나는 크레센타에서 쓰는 문자로, 하나는 호라에서 쓰는 문자로.


‘유르페르 문자’


“+호라 제국에는 세 민족이 섞여서 살고 있어.+”


위즈가 갑자기 역사 얘기를 시작한다.


“+오르, 유르페르, 마구르. 이 세 민족은 한 조상에서 나왔어. 유르페르 문자는 이름처럼 유르페르 민족이 본래 쓰던 문자지.+”

“+언어는? 말도 같아?+”

“+응. 억양이나 그 나라에서만 사용하는 말이 있어서 헷갈리기는 하는데, 그런 건 이 나라 안에서도 꽤 겪거든.+”


너희도 나라가 넓으니 지역마다 말이 조금씩 다르잖아, 라는 말에 리나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잘 모르겠어.+”

“+그래?+”

“+응. 다른 곳을 가본 적은 없어서.+”

“+하긴, 나도 학교 때문에 옮겨 다닌 것뿐이니까.+”


위즈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위즈. 위즈는 그럼 유르페르 민족이야?+”


고개를 젓는다.


“+일단 나는 오르 민족인데, 애초에 피가 섞인 경우가 많아서 따로 구분하지는 않아.+”

“+흐음.+”

“+뭐, 그 와중에도 요즘 시대에 순수혈통을 고집하는 어리석은 집안들도 있지만.+”


위즈가 비웃듯이 말한다.


“+순수혈통?+”

“+다른 민족이랑 섞이면 안 된다고 주장하곤 하거든.+”

“+왜?+”

“+그러게 말이야. 그것 때문에 우리 가문은 대부분 오르 민족 순수혈통이야.+”


유난히 인상을 찌푸린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자.+”


그렇게 말하며 새 종이에 크게 또박또박, 모래시계같이 생긴 글자를 쓴다.


“+이 문자는 [ㄱ] 발음을 내. 따라 해 봐.+”


위즈가 발음대로 소리를 내고, 리나가 똑같이 따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써.+”


위즈가 손가락으로 글자 적는 순서를 보여준다.


“+쉽지? 자, 한번 써봐. 연습이니까 꽉 채워서 크게.+”


리나가 펜을 들어 똑같이 따라 한다.


“+어? 어?+”

“+아니, 펜 떼지 말고 그대로.+”

“+여, 여기?+”

“+아니야. 그대로 쭉.+”


그러나 글자 쓰는 걸 어려워하기에 위즈가 손을 잡아서 순서대로 그려준다.


“+크레센타에서 쓰는 문자랑은 다르게 유르페르 문자는 획 하나가 끝났다고 바로 펜을 뗄 필요가 없어. 꺾어도 종이에 댄 채로 꺾는 거야.+”


새 종이를 건네며 말하는데 리나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연필을 쥔 손을 반대쪽 손으로 붙잡고 있다.


“+자, 다시 써보자.+”


위즈도 옆에서 같이 펜을 잡는다.

리나는 위즈가 한 획 한 획 그을 때마다 자기 종이에 따라 긋는다.


“+어때, 알겠어?+”


리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위즈가 새 종이를 바로 건네준다.

나름 비장한 표정으로 펜을 들고 바로 적어 내려간다.


“+아니, 아니, 아니, 거기가 아니라······.+”

“+어, 어? 그러면 여기?+”

“+거기는 아예 아니잖아.+”


똑같은 곳에서 틀린다.


“+그럼, 이렇게 해보자.+”


이번에는 위즈가 처음에 적은 종이에 화살표와 번호를 크게 더하고는 리나 앞에 놓는다.


“+어때, 보기 쉽지? 이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돼.+”

“+그렇기는 한데······.+”


어릴 때 막 글자를 배우던 때가 떠올라 리나는 기분이 묘하다.


“+괜찮아. 처음에는 다 그렇지.+”

“+그렇다고 이렇게 못 하지는 않잖아.+”


리나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대신 읽고 외우는 건 금방 하잖아. 솔직히 놀랐는걸.+”

“+······정말?+”


리나가 위즈를 살짝 곁눈질한다.


“+응. 이 정도로 머리 좋은 사람은 본 적이 없어.+”


위즈가 진심 어린 칭찬을 한다.


“+나 다음으로 똑똑할걸?+”


자기 자신을.

그 말에 리나가 피식 웃더니 이내 정색하고 자세를 다잡는다.


“+위즈. 머리가 좋다는 말을 호라에서는 뭐라고 해?+”


한결 기분이 풀린 리나가 묻는다.


“+머리가 좋다? 음······. +‘천재’+라고 표현하곤 해.+”

“천새?”

“재. 천, 재.”

“천재?”

“+응. 맞아. 그렇게 말하면 돼.+”


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나는, 천재, 입니다.”


라고 호라 말로 말한다.


“어?”

“+맞지? 맞았지?+”


위즈의 멍한 표정에 리나가 살짝 웃는다.

방방 뛰고 싶어하는 걸 참으면서.


“+어떻게 알았어?+”


위즈가 정말로 놀라서 멍하니 묻는다.


“+위즈가 공책에 적어준 걸 보니까 알겠던데? 문장이 다 쉬워서.+”

“+와······.+”


위즈가 손뼉을 치자 리나가 기쁨을 참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좋아한다.

그렇게 위즈의 칭찬에 들떠 즐거워하면서 수업을 하고, 끝난 뒤에서야 깨달았다.


“+왜 그래? 갑자기 그렇게 얼굴을 감싸고?+”


칭찬과 지식욕을 이기지 못하고 수업을 즐겨버렸다는 걸.


수업이 끝나고 점심까지 먹은 뒤.


“+어?+”


위즈가 나갈 채비를 하자 계속 글씨 연습을 하던 리나가 고개를 든다.


“+어디 가?+”

“+잠깐 밖에 좀 갔다 올게.+”

“+늑대 때문에 위험하잖아. 굳이 가야 해?+”

“+괜찮아. 내가 늑대 이기는 거 봤잖아.+”


위즈가 씩 웃는다.


“+그리고 내가 가는 곳은 늑대가 없어.+”

“+어? 그런 데가 있어?+”

“+응. 나중에 알려줄게. 나오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리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깨에 가방을 메며 리나의 공부 성과를 슬쩍 본다.

엉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순서는 제대로 지키고 있다.


“+절대로, 무리하게 움직이려고 하지 말고.+”

“+응. 알았어.+”


리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다녀오세요.+”


위즈가 눈을 잠깐 크게 떴다가 웃는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리나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먼저 놀라 손을 뗀다.

리나는 한 박자 늦게 머리를 뒤로 뺀다.


“+미, 미안. 나도 모르게······.+”


위즈의 표정을 본 리나도 똑같이 당황한 채로 말한다.


“+아, 아니, 괘, 괜찮아······.+”


역시 무섭지 않다.


“+그, 그럼 다녀올게······.+”


그 말과 함께 위즈는 더 버티기 힘들어지기 전에 오두막을 빠져나간다.

문을 닫고 자기 뺨을 때린다.


“실수하지 말자. 싫어하는 짓 하지 말자.”


그자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 지난번에 썼던 편지를 들고 폭포로 향한다.


오두막 뒤,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는 숲.

시조의 마법으로 나무가 덜 빽빽하다 보니 햇살도 더 잘 들어온다.

마법에 빠진 숲을 지날수록 우렁찬 소리가 점점 커진다.


은둔자의 폭포.


호라의 초대 황제가 제위에 오르기 전에 시조 데스트리아누스 테 살베니움을 찾아왔다가 이 폭포를 보고 말했다.


- 은둔자의 폭포에서 별이 쏟아져 내리듯, 은둔자에게서 지혜의 말이 쏟아져 내리길.


훗날 이 오두막으로 돌아온 시조는 폭포 주위에 마법을 걸어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니, 말 그대로 ‘운둔자의 폭포’가 되었다.


그래서 다들 실존하는 폭포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시조의 책을 따라 오솔길을 찾은 위즈의 눈앞에는 정말로,

별이 쏟아져 내렸다.

위즈가 방금 막 도착한 순간에도 처음에 그랬듯 웅장한 말발굽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나중에 리나랑 여기 산책 와도 괜찮겠다.’


폭포 옆에 숨겨진 계단을 타고 올라가 횃대 옆에 서자 매 한 마리가 매섭게 날아온다.

시조가 살아있을 당시에도 시조만 쓸 줄 알아서 매 부리미의 후손이라는 얘기가 있었을 정도로 배우기 힘들어 실전(失傳)되었다고 하는 매 부리기 기술.

정작 위즈는 배우지 않고도 매가 먼저 다가와 자연스럽게 매를 부릴 수 있다.


‘역시 기술이 아니라는 그 말이 맞겠지.’


전에 매 부리미에 대해 들었던 걸 떠올리며 매에게 편지를 물린다.


“부탁할게.”


리나를 대할 때와는 달리 일관되게 무뚝뚝한 말투.

이미 충분히 익숙한 매는 고개를 끄덕인 뒤 횃대를 박차고 서쪽으로 날아간다.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계속 보다가 돌계단으로 내려와 풀을 밟자 향긋한 냄새가 풍긴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나오는 약초들이······.’


위즈는 정원에 없는 약초들을 차근차근 세어본다.


‘맞네. 곧 뼈에 좋은 약초가 나올 시기야.’


리나 다리를 고칠 때, 책에 약초도 달여 먹이라는 말이 있었다.

운이 좋다.

위즈는 가방 안을 뒤져 약초를 담는 데 쓰는 작은 주머니와 깨끗이 씻어둔 호미를 꺼낸다.

달이기에는 아직 조금 이르니 정원에서 기르는 게 나으리라.


‘어디 보자, 그 약초가 있던 방향이,’


부스럭.

갑자기 옆에서 들리던 소리에 위즈가 고개를 돌린다.


“또 만났네?”


나무 사이로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늑대 부리미들.

이렇게 빽빽한 숲에서는 오히려 저렇게 큰 늑대가 불편할 텐데, 용케 낙오자 없이 여기에 온 모양이다.


“또 만나긴.”


방금까지 하던 즐거운 생각은 접고 무뚝뚝하게 답한다.


“날 쫓아왔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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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21.05.02 11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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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 21.05.01 96 2 13쪽
14 13화 21.04.30 95 2 12쪽
13 12화 21.04.29 96 2 12쪽
12 11화 21.04.28 10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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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화 21.04.26 118 2 12쪽
» 8화 21.04.25 15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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