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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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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215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4.24 22:20
조회
175
추천
2
글자
12쪽

6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없어지고 리나가 잠이 들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더라도 늑대에게 쫓기는 것만으로 충분히 혼란스러울 테고,

무엇보다 위즈의 정체를 조금은 눈치챈 것 같으니.


‘이런 일을 대충 예상은 했는데, 실제로 겪으니 기분이 영 별로네.’


조용히 방에 들어가 종이와 펜을 챙겨 나온다.

잔뜩 긴장했으면 깰 법도 한데도 피곤했는지 그냥 잔다.

바싹 경계하던 그 모습에 왜 이렇게 슬퍼질까.

한 번도 이런 적 없는데.


혹여나 리나가 자는 데 방해라도 될까,

천장에 달린 등불을 끄고 거실 탁자에 놓인 초를 켠다.

보낸 지 얼마 안 되기는 했으나, 위즈도 받는 대상도 크게 상관하지 않으리라.

오히려 외국인이 관여된 문제이니 빨리 보내는 게 낫겠지.


- 친애하는 동생에게.


“흠······.”


위즈가 인사말만 적어놓고 고민한다.

근래 들어 줄어든 사냥감. 늑대의 습격. 아에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것들을 일일이 설명하는 게 아니다.


‘보급을 두 배로 받는 방법. 두 배로 받는 방법이라.’


당당하게 보급량을 늘릴 수 있게 말해야 한다.

물론 이유만큼은 당당하다.

식구가 늘었는데 얻을 수 있는 고기양이 줄어들고 있다.


‘고기’ 양이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집안 사정이 어떨지는 모르니 최대한 설득하고 회유해야 한다.


‘겸사겸사 리나를 보낼 방법도 의논해야 할 테고.’


맘 같아서는 동생을 불러와 바로 데려가라고 하고 싶지만,

외교 문제 때문에도 늑대 때문에도 동생의 지위 때문에도 함부로 부를 수 없다.

동생도 동생 나름대로 바쁜 삶을 살고 있다.

편지를 보내도 답장 없이 보급품만 보내오는 걸 보면 분명.


아마 무시하는 건 아닐 거다.


위즈가 머리를 긁고 예의상 언제 한번 놀러 오라고 적는다.

솔직히, 놀러 와도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채 대화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리나를 보낼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펜을 잉크에 담가 적신다.


‘언제까지 이 좁은 오두막 안에 붙잡아두고 있을 수도 없고.’


크레센타에 있다는 ‘노예’라는 이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는 몰라도,

이 오두막보다는 큰 곳에서 살 거라고 위즈가 생각한다.


“노예라······.”


잉크가 떨어지는 펜을 내려놓고 기지개를 켠다.


호라가 크레센타와 오랫동안 동맹을 맺으면서도 따라 하지 않은 제도.


위즈의 집안을 비롯한 귀족 가문에는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다들 급여를 받고 일하는 지역의 유력자다.

그래서 ‘노예’라는 말을 처음 들은 위즈는 그런 비슷한 거로 생각했지만,


- 아니, 노예들은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던데?


라고 학생 시절, 유일한 친구가 얘기해줬다.


‘리나는 알까.’


위즈가 닫힌 문을 돌아보며 말한다.


“잠깐만.”


귀한 집에서 자란 듯한 의복.

귀한 집에서만 갖고 있다는 노예.


대부분의 집안일은 해낼 수 있다는 듯한 태도.

대부분의 잡일을 맡기기 위한 노예.


“혹시······.”


하지만 위즈는 바로 고개를 젓는다.

겨우 그런 게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리나에 대한 추측인 일절 금한 채 편지를 끝낸다.


‘맞다.’


본가를 생각하니 아까 늑대가 걸고 있던 목걸이가 떠오른다.

그 난리 통에도 용케 잘 챙겨왔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더 기분 나쁜 문양.


‘역시······, 그 문양이겠지?’


잠시, 그것도 우연히 봤었지만, 절대 잊을 수 없다.

기분 나쁜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와 인상을 찌푸리며 나무판을 움켜쥔다.


“왜 그 늑대들이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내면 동생이 알아봐 줄 테니 추신을 적고 봉투에 나무판을 넣는다.

넣는 순간까지도 기분 나쁜 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이목구비 없는 문양이 노려보는 기분이다.

나쁜 걸 봉인한다는 기분으로 두꺼워진 봉투에 유난히 세게 인장을 눌러 봉한다.


“후.”


그제야 마음이 가라앉는지 허리를 펴고 한숨을 쉰다.

그리고 빤히 손에 든 인장을 쳐다본다.


처음 여기 와서 안을 둘러볼 때 인장 두 개가 발견되었다.

하나는 시조가 숨을 거두는 날까지 계속 사용했다던 인장,

다른 하나는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는, 처음 보는 문양이 새겨진 인장이다.

인장들과 함께 쪽지가 놓여있었다.


- 이곳을 찾아낼, 후계자에게 남기는 선물.


‘지금 기준으로도 정말 대단한 양반이라니까.’


인장을 천 조각으로 닦은 뒤 몸을 일으켜 봉투를 들고 조용히 오두막 밖으로 나간다.

끼익, 하는 소리에도 리나가 깰까 봐 문도 최대한 천천히 닫는다.


편지는 폭포 근처에서 사는 매의 다리에 달아 본가로 보낸다.

그런데 가는 길이 험해서 밤에는 계단 옆에 만들어 둔 상자에 넣어놓는다.

보통 거기에 넣는 것 자체를 잊어버려서 문제이기는 하지만.


‘날이 꽤 시원하네.’


문을 닫고 밤공기를 마시며 찌뿌둥한 기분을 최대한 날려 보낸다.

팔도 크게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하자 허리에서 경쾌한 소리가 울린다.


하품하고 다시 들어가려는 위즈.

그런데 저 멀리 뭔가 이상한 게 보인다.

평소와 다른 하늘.


이미 해가 졌는데도 엘렌 성 근방 하늘이 불이라도 난 듯 유난히 붉다.


‘축제······, 는 아닐 테고.’


엘렌 성에서 벌어지는 축제는 건국절 축제와 승전 기념일 축제뿐이다.

그리고 둘 다 아직 한참 남았다.


“진짜 불이라도 난 건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당연히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거기다 엘렌 성은 제국 동부에서 가장 큰 성이니.


‘그런데 전쟁도 아니고, 저렇게 큰불이 일어날 수가 있나.’


보이는 것만으로는 한쪽 성벽이 통째로 불타는 것처럼 보인다.

꼭, 성 밖에 적이 있어 온종일 방비 태세라도 갖추고 있다는 듯이.

그러다 정말 저 정도로 불을 일어났던 일이 떠올라 급히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 보니 늑대들도 나타나고.’


악몽 속에서 이따금 보이는 문양을 달고 다니는 늑대.

그리고 늑대와 같이 있을 늑대 부리미.

물론 위즈가 착각했을 가능성이 아주 조금은 있으나

애초에 늑대 부리미가 늑대를 놓고 사라지는 건 불법이다.


늑대에게 쫓기던 크레센타 소녀.

놈들의 문양을 달고 다니던 늑대.


‘생각해보면 그 늑대들, 호라에서 서식하는 종이 아니지 않나?’


학교 다닐 때 학과 특성상 제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당연히 직접 야생동물을 사냥하기도 했고 단순히 책으로만 접하기도 했으며,

늑대 부리미도 직접 만나봤다.

부리미와 함께 다니던 늑대는 모두 숲에서 봤던 놈들과는 생김새가 크게 달랐다.


“크레센타에서 호라를 방문했다가, 엘렌을 공격하려던 놈들에게 공격을 받고, 리나는 숲으로 도망쳤다······.”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한숨을 쉰다.


‘생각하면 뭐 해.’


머리를 긁으며 다시 몸을 돌린다.


‘어차피 숲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데.’


탁자 위의 초가 절반 이상 줄었다.

미리 꺼내놓은 이불을 바닥에 펼친다.

잡동사니가 많아 좁긴 해도 누울 수는 있다.


‘내일 아침엔 허리 아프겠네.’


이상하게 바닥에서 자는 건 절대 익숙해지질 않는다.

베개와 덮는 이불까지 제대로 갖추고 나서 촛불을 끈다.



******



어떻게 잠들 수가 있었을까.

그런 끔찍한 일을 겪고, 말로만 들었던 끔찍한 인물과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데

어떻게 긴장을 풀고 푹 잠들 수 있었을까.


“+으음.+”


눈을 아예 못 뜨거나 떠도 책에서 보던 고문실 같은 곳에 잡혀가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잠들지 않으려고 버텼으나 결국 잠든 모양인데,

다행히 멀쩡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혹시 모두 꿈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나 앉지만, 붕대로 감싼 오른쪽 다리가 보인다.

어제보다는 덜해도 욱신거리는 걸 보면 확실히 꿈은 아니다.


“+잘 잤어?+”


절뚝이며 방문을 나서자 위즈가 부엌에서 아침을 차리며 인사한다.

리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간단하게 씻고 와. 아침 먹자.+”


혹시 음식에 독을 탄 게 아닐까, 하고 잠시 머뭇거린다.

꼬르륵.

그런데 허기를 이길 수가 없다.


‘그래.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밥은 먹어야 하니까.’


그렇게 합리화하며 순순히 씻으러 간다.

혹시 씻는 사이에 공격하지 않을까, 하고 바싹 긴장한 채.


그런 리나의 노력이 의미 없을 정도로 위즈는 리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분명 어제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면 어색하다는 게 눈에 띌 텐데

위즈는 크게 나무라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다.

오히려 리나에게 불편한 건 없냐고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본다.


“+다리는 어때?+”


식사가 끝나고 침대에 어색하게 앉아있는데 위즈가 설거지를 마치고 다가온다.

혹시나 해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물러나지만, 위즈는 거리낌 없이 다가와 리나의 다리를 붙잡는다.

붕대를 풀자 어제보다는 훨씬 나아도 여전히 종아리 부분이 크게 멍들어있다.


“+아프진 않아?+”

“+응.+”


위즈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짧게나마 대답한다.


“+알았어. 잠깐만.+”


전날 책상에 올려뒀던 책을 펼치고 리나 다리와 번갈아 보며 묻는다.


“+어제 부러졌던 곳이 여기던가?+”

“+여기는 괜찮아? 그, 당기진 않아?+”

“+여길 누르면 어때? 참지 말고 아프면 말해.+”


얼마 없는 의학 지식과 어색한 크레센타 말로 리나를 진찰해주려 노력한다.

그렇게 무섭다던 마법사가 지금 눈앞에서 다리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진짜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일까.


“+이 정도면 많이 나은 것 같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붕대를 감고 리나를 안심시키려 일부러 얼굴을 보고 웃자

리나도 어색하게나마 같이 웃는다.


“+그럼······.+”

“+저기, 그,+”


방을 가득 채운 어색한 공기가 너무 답답해 자신도 모르게 먼저 위즈를 부른다.


“+응? 왜?+”

“+저, 그,+”


일단 위즈를 부르기는 했는데,

진짜로 자기 가문 사람을 죽였나, 하고 다짜고짜 물을 수도 없다.


“=궁금한 거 있어? 불편한 거나?+”

“+그게, 그,+”


정작 위즈는 리나가 말을 걸었다는 사실이 좋은지 미소를 띤다.


“+어제 위즈가 여기에 있는 책들 위즈한테도 어렵다고 했잖아.+”

“+응.+”

“+그런데 그 책은 읽을 수 있어?+”

“+어······, 그러게?+”


생각해보니 정말 리나 말대로 읽는 게 몹시 어렵진 않다.

아니, 정확히는 리나가 다친 부분 내용만 눈에 쉽게 들어온다.


“+나도 나름대로 공부 열심히 했고, 상황도 상황이라 더 잘 읽히는 모양이야.+”


위즈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책을 소리 나게 덮는다.


“+그럼 일단, 숲을 다녀와야 하는데.+”

“+숲?+”


혹시 정말 늑대와 늑대를 부리던 이들과 내통하는 사이일까.


“+원래 숲을 돌아다니면서 약초 캐는 게 일과거든. 어제도 그러다가 리나 널 발견했고.+”

“+그래? 그런데 나, 같이 갈 수 있을까.+”

“+같이? 왜?+”

“+어? 나도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니야?+”


위즈가 무슨 그런 말을 하냐는 투로 말한다.


“+됐어. 다리도 성치 않으면서. 숲에 늑대도 돌아다니잖아.+”

“+그렇지만, 그,+”


보통 포로나 인질을 눈에 두는 곳에 두려고 하지 않나?

아니면 굳이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신이 강하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숲에 가고 싶어? 가야 하는 이유라도 있다거나.+”

“+그······.+”


이유야 없진 않다.

오히려 위즈와 상관없이 리나가 나가자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간 위즈가 내 정체를 알아차릴지도 몰라.+’


그리고 리나의 정체를 눈치챈 위즈는 지금처럼 대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리나를 적에게 팔아넘길지도 모른다.


“+아니야. 여기서 쉬고 있을게.+”

“+잘 생각했어. 점심 먹기 전까진 올 테니까 쉬고 있어. 아,+”


위즈가 부엌에서 의자 하나를 꺼내 현관 밖에 둔다.


“+의자 밖에 둘 테니까 심심하면 일단 정원이라도 구경하고 있어.+”


리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뒤에도 위즈는 계속 리나가 불편하지는 않을까,

따로 힘든 점은 없을까 주의 깊게 살핀 뒤

한참 후에나 오두막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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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 21.05.01 9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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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화 21.04.29 9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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