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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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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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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4.2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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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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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3쪽

4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저기, ‘잘 먹겠습니다’를 호라에서는 뭐라고 해?+”


아이가 밥을 먹기 전에 묻는다.


“잘 먹겠습니다.”

“자 머께음미다?”

“잘, 먹겠, 습니다.”

“잘, 머껫, 슴니다?”

“+응. 그렇게 발음하면 돼.+”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한다.


“잘 머껫슴니다.”

“잘 먹겠습니다.”


아이가 죽을 한 숟갈 푸자 마법사가 반찬 중 갈색을 올려준다.


“+이건 뭐야?+”

“+양념에 어······, 짭짤한 양념에 오래 놓아둔 고기를 구운 거.+”


아이가 입에 넣고 몇 번 씹더니 감탄하는 소리를 낸다.


“+맛있어?+”


아이가 씹으면서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마법사가 다행이라고 말하면서 똑같이 한 입 먹는다.

이번에는 빨간 걸 가리킨다.


“+괜찮겠어? 너희에게는 조금 매울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나 매운 거 잘 먹어.+”

“+그래?+”


마법사가 속는 셈 치고 작은 조각 하나를 올려준다.

그리고 자신 있게 먹은 아이는 먹자마자 곧바로 물을 찾아댔다.


“+뭐야, 이거? 너무 매워!+”

“+그거 그······, 빨간 고추를 매운 양념과 함께 어······, 섞어서 만든 건데.+”

“+왜 그런 음식을 만드는 거야?+”


‘듣고 보니 그러네.’


그렇게 소리치고는 다시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걸 보면서 마법사가 미소 짓는다.


“+왜?+”


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묻는다.


“+아니, 다른 사람이랑 같이 밥 먹는 게 오랜만이거든.+”


다른 사람이랑 같은 식탁에 앉는 것도,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마법사에게는 몇 년 만이다.


“+그런데 이 음식들, 다 직접 만든 거야?+”


아이가 회상을 깨면서 묻는다.


“+아니, 이 고기랑 이거, 이거, 이거는 받은 거고, 죽이랑 이거, 이거는 내가 직접 만든 거야.+”

“+아······, 요리 못 하는구나.+”

“+어? 칭찬하려던 거 아니었어?+”


아이가 헛기침하고는 말을 돌린다.


“+이 음식 만든 사람 정말 대단한 사람 같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에서도 먹어본 적 없어.+”


‘+****?+ 집이나 고향을 얘기하는 건가?’


+“****에서 일하는 ********들도 이런 음식은 절대 못 만들던데. ****로 데려가고 싶어.+”

“+글쎄, 일터가 있어서 어떨지 잘 모르겠는데······.+”


‘+****? ********?+ 무슨 뜻이지?’


처음 듣는 단어에 마법사가 물어보려고 했지만, 귀찮아서 그만둔다.

평소 같으면 꼬치꼬치 캐물었을 텐데.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아, 그래도 배울 수는 있지 않을까?+”

“+배우는 정도라면 뭐······. 외국에서 온 손님이니까 미리 얘기하면 괜찮을 거야.+”

“+정말? 얘기해줄 수 있어?+”

“+응. 이 숲속에 살아도 외부와 연락 정도는 가끔 하니까.+”


아이의 표정이 좀 더 밝아진다.


‘뭐, 아무튼 맛있다는 얘기니.’


마법사는 생각을 멈추고 죽을 뜬다.

아이는 이제 대놓고 마법사가 만든 음식을 피해서 고른다.


죽을 먹으면서도 마법사의 젓가락질을 유심히 보고는 숟가락을 쥔 채 움직이는 모양을 조금씩 따라 해본다.


“+왜? 다시 보여줄까?+”

“+응? 아, 아니.+”


부끄러운지 마법사가 볼 때는 손을 가만히 두지만.


곧 식사가 끝나고, 마법사는 물을 따른 잔을 아이에게 건넨다.

그리고 입을 닦다가 문득 생각나 말한다.


“+신기하네?+”


아이가 물을 마시면서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마법사를 본다.


“+보통 음식을 먹으면 입 주위에 조금이라도 묻을 텐데, 너무 깨끗하잖아.+”


정말로 아이의 입은 닦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그런데 아이는 오히려 입을 닦는 마법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입 주위에 음식이 묻으면 종아리 맞잖아?+”

“+응, 뭐. 맞기는 하······, 어?+”


마법사가 곰곰이 생각하고 묻는다.


“+종아리를 맞는다고? 그냥 한 소리 듣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응. 원래 그러는 거잖아?+”

“+응?+”

“+어?+”


마법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하고는 말한다.


“+하지만 전에 호라를 방문한 크레센타 인이 식사를 마치고 입 주위를 닦던데?+”

“+정말?+”


그러자 아이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는 어릴 때 엄청나게 혼냈어.+”

“+그래?+”


마법사는 집안 특징인가보다 하고 얘기를 끝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보통 아무리 엄격해도 그 정도는 아니니까.


‘우리 집안도 그런 정도는 아니었고. 아무리 나라도 그런 거로 혼난 적도 없고.’


- 천한 것이, 우리 가문 사람이라고 하지 마라!


‘그런 소리까지 들었지만, 밥을 더럽게 먹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지.’


거기까지 생각하자, 괜히 소름이 돋는다.

이미 죽은 사람 생각해서 그런 걸까.

아무튼, 황족이나 귀족이 아닌 이상 그런 일은 없을 텐데, 아이의 정체가 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저기······.+”

“+응?+”

“+······아니야.+”


그래도 잠깐 보고 말 사이인데 굳이 깊이 알 필요는 없으니까.

궁금한 표정을 짓는 아이를 두고 마법사는 다 먹은 그릇을 정리한다.


“+나도 도울게.+”

“+됐어. 손님이고, 다리도 성치 않잖아. 쉬어도 돼. 아, 다시 방으로 옮겨줄까?+”

“+아니, 나도 뭔가 할 게 없을까?+”


아이가 안절부절못하고 마법사를 본다.

입가에 뭔가를 묻히면 종아리를 맞는 집안.

뭔가를 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


‘정말, 헷갈리네.’


마법사가 피식 웃자 리나가 마법사에게 무슨 의미냐는 표정으로 올려다본다.


“+아니야. 그럼, 도움받을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마법사가 설거지를 멈추고 같이 생각해본다.


“+저, 그러면 빨래라도 할까?+”

“+빨래?+”

“+내 옷도 있으니까, 적어도 내 빨래라도 하고 싶어. 안 될까? 빨래는 앉아서 해도 괜찮으니까.+”


마법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뭐. 네가 편하다면야. 마침 네 옷은 아직 안 빨기도 했고. 그런데 잘할 수 있어?+”

“+응. 손빨래는 몇 번 해봤어. 찬물로도 해본 적 있고.+”

“+굳이 찬물로 빨래할 필요는 없어. 날도 차지 않고, 따뜻한 물 있으니까 얼마든지 써도 돼.+”


그리고 의자 채로 아이를 들어서 부엌 뒷문 밖으로 데려간다.

작은 도랑이 정원을 가로지르는데, 오두막 근처로 다가오다가 부엌 옆을 지난다.

그 도랑 바로 옆에 간이 빨래터와 건조대가 같이 놓여있다.


“+바닥에 앉아서 해야 할 텐데 괜찮겠어?+”

“+응. 이 정도는 문제없어.+”


마법사는 아이를 조심히 바닥에 앉힌다.

그리고 사슬로 아이의 빨래와 도구, 뜨거운 물이 담긴 양동이를 가져오니

아이가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본다.


“+자, 여기 있어. 무슨 일 있거나 모르는 거 있으면 부르고.+”

“+응.+”

“+다 했으면 그, 줄에 무리해서 걸려고 하지 말고 나 불러. 그러다가 다시 다리 상태 나빠지면 빨래도 못 도와줄 테니까.+”

“+알겠어.+”


아이가 꾸벅 고개를 끄덕여 마법사도 미소로 화답한다.


‘그래, 뭐. 이렇게 해맑게 웃는 아이가 높은 집안의 자제일 리가 없지.’


마법사는 기억 속의 기분 나쁜 웃음을 떠올리며 무의식적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릴 때 동생에게 하듯이.

손가락 사이로 튀어나오는 머리카락의 촉감을 느끼면서 문지른다.


“+어, 어어?+”


그런데 아이가 화들짝 놀라더니, 그대로 뒤로 넘어간다.

한쪽 손이 물에 빠진다.


“+괜찮아?+”


하지만 정작 빠진 손은 신경도 쓰지 않고 마법사가 쓰다듬은 머리를 반대쪽 손으로 가린다.


“+왜, 왜?+”


그리고 아이 만큼이나 마법사도 당황했다.


“+머, 머리······!+”

“+어? 왜? 머리가 왜? 혹시 머리도 아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다행히 머리를 다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당황하는 거야?+”

“+그게, 그, 그, 그······.+”

“+······혹시 머리를 쓰다듬는 것 때문에 그래?+”


아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미안해. 싫어할 줄 몰랐어.+”


바로 사과한다.


“+어?+”

“+그, 앞으로는 조심할게. 미안.+”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아이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 복잡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응.+”



******



일과가 끝나고, 마법사는 방에서 책을 챙겨 부엌에서 읽는다.

방은 그냥 아이에게 내주었다.


‘거실 바닥에서 자면 허리 아플 텐데.’


그렇다고 손님이자 환자를 바닥에서 재울 수도 없으니.


아이는 침대에 앉아서 손이 닿는 위치에 있는 책들을 꺼내 보지만, 전부 호라 말이다.

그나마 있는 그림들도 알아보기 힘들다.

곧 침대 위에는 읽지도 않고 펴보기만 한 책들이 쌓인다.


“+*****?+”


그때 유난히 눈에 익은 글씨가 보인다.

호라 말로 크게 적혀있는 제목과 그 아래에 적힌 크레센타 말.


<호라 사람들을 위한 크레센타 어 교재>


1장뿐이지만, 책을 펼치자 공부한 흔적이 있다.

크레센타가 고향인 아이에게는 동화책만도 못한 수준이나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무슨 내용일까 해서 훑어보다가 어느새 집중해서 읽는다.


“+어? 크레센타 어 교재?+”


새 책을 가져가려고 방에 들어온 마법사가 말한다.


“+이거, 1***까지만 공부했네.+”

“+아니, 마지막까지 했어. 처음에 책 샀을 때 공책이 없어서 그, 처음 부분만 책에 적었거든.+”


아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본다.


“+그 책을 다 공부하고 다른 책들도 끝냈어. 봐, 지금 이렇게 너랑 크레센타 어로 대화하잖아?+”

“+흐음, 정말?+”

“+그럼. 정말이지. 그런데 갑자기 왜 너희 말 공부를 하는 거야?+”

“+심심한데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없어.+”


아이가 옆에 쌓인 책을 가리킨다.


“+아, 그렇구나. 하긴, 여기 놓인 건 다 호라 말로 된 어려운 책들뿐이니.+”

“+어려워?+”

“+호라가 세워지기 전부터 전해지던 책들도 있으니까. 거의 천 년 가까이 된 책들이지.+”


그 말에 아이가 조금 전과 달리 조심스럽게 책을 든다.


“+그러다 보니까 나도 읽기 조금 버거워. 지금은 쓰지 않는 말들도 많고.+”

“+그럼 이게 우리나라보다 훨씬 오래된 거야?+”

“+뭐, 그런 셈이지.+”


아이가 읽지도 못하면서 눈을 반짝이며 책을 이리저리 본다.

조심스레 냄새도 맡고 표지를 살살 긁어 소리도 들어본다.


‘그러네. 여기 있으면 딱히 할 게 없겠구나.’


아이가 책을 조심스럽게 넘기다가 한 페이지를 골라 마법사에게 들이민다.


“+읽어봐.+”


마법사가 눈을 살짝 찌푸리며 글씨를 보더니 천천히 읽는다.


“+무슨 뜻이야?+”

“+나도 몰라. 여기는 아직 해석 못 했거든.+”

“+아예 모르는 거야?+”

“+음, 대충······, 에리하에 대한 거네?+”

“+에리하가 뭔데?+”

“+용의 옛 이름이야.+”


에리하는 뿔이 나고 날개가 달린 커다란 도마뱀이다.

이 마법사의 시조가 살던 시절에는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에리하가 사라졌다.


“+정말?+”

“+응. 에리하에 대해 조사한 글 같은데, 지금은 쓰지 않는 말들이 많아서 읽기 힘들어.+”


마법사가 책을 받아들고 손으로 짚어가며 조금 더 읽는다.


“+일단 뭐, 뿔이 달렸다거나 비늘이 났다는 부분은 읽겠지만, 나머지는 무리네.+”

“+그럼 이런 책들은 어떻게 *****해?+”

“+어? 못 알아들었어. 뭐라고?+”

“+그······, 어떻게 읽고 뜻을 알아?+”

“+다른 책들을 같이 보는 거지.+”


마법사가 뒤에 놓인 다른 책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러면 한 번에 여러 책을 같이 보겠네?+”

“+응. 맞아.+”

“+재밌어?+”

“+시간 보내기에는 나쁘지 않아.+”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법사에게 책을 다시 받아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아무 페이지나 펼친 뒤 책을 들이민다.


“+그럼 여기는 해석 돼?+”

“+어······, 아니. 아예 모르겠는데.+”

“+에이.+”


아이가 김빠진다는 표정으로 다시 책을 덮고 옆에 둔다.

처음 보는 문자, 처음 보는 마법사.

고국보다 역사가 더 길다는 책.


‘+이래저래 일이 많은 하루였네.+’


늑대에게 쫓기기 이전은 둘째 쳐도 갑자기 책 속에 빠진 것 같다.

마법사가 목숨을 구해주고 책에나 나오는, 마법으로 감춘 오두막에 들어오고.


‘+어쩌면 전부 꿈 아닐까. 크레센타를 떠난 것도, 호라에 온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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