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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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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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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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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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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안휘행(3)

DUMMY

작은 객잔 내에서 불길을 휘감은 검이 번뜩였다. 열댓에 달하는 무인들. 강한 수적 우세를 기반으로 압박해온다. 백연은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화신풍.’


그가 일궈낸 보법 구결이 몸을 따라 줄기 줄기 풀려나온다. 단타 격발로 폭발된 진기가 한번에 중첩되어 발바닥을 따라 터져나왔다. 암기를 들고 자신을 견제하려던, 가장 멀리 떨어진 무인의 신형이 순식간에 눈앞에 커졌다.


서걱.


붉은 선이 허공을 그어냈다. 한줄기 불꽃이 경악성을 내뱉으려던 무인의 몸을 양단했다. 백연의 손속에는 거침이 없었다.


“무슨 정파 무인이 이리......!”

“잔악한 놈이다. 모두 조심해!”

“참나.”


백연이 헛웃음을 지으며 검을 재차 휘둘렀다.


캉! 카앙!


두번의 검격. 일순 자신의 검을 막아낸 무인의 손이 빨랐다. 개중에 좀 더 강한 이인 듯 했다. 그러나 금안나찰과 비교하면 날파리만도 못한 놈이었다. 아니, 처음 만났던 거력부와 비교해도 어중이떠중이들 뿐이다.


“누가 들으면, 내가 먼저 죽이려 든 줄 알겠어?”


검을 휘두르는 사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객잔 곳곳에 새겨진 옅은 자국들. 전부 혈흔과 검상이다. 과거에도 이 객잔에서 이런 일이 여러번 있었다는 소리였다. 이곳을 지나가는 객을 노리고 강도질을 하는 놈들이다. 돈을 갈취하기 위해 살인을 밥먹듯이 하는 사파의 괴물들.


“쓰레기는 치워야지.”


여상한 중얼거림과 동시에 그의 손이 급가속했다. 동시에 화신풍 보법이 유령처럼 눈앞의 무인을 지나쳤다. 뒤편에서 쓰러져 내리는 무인의 가슴에서 피분수가 터져나왔다.


“손속에 망설임이 없는 놈이다. 모두 간격을 두고, 암기를......”

“마도(魔道)의 검은.”


휘익.


백연이 가벼운 걸음으로 사람들을 지휘하려 들던 놈에게 향했다. 다섯 명의 상인 무리중 하나였다. 한순간에 공간을 격하듯 움직인 소년의 신형이 상인 앞에 섰다.


“수단이다. 네놈들 같은 쓰레기들을 치워버리기 위한 수단.”


그의 눈이 번뜩였다. 어느새 일어난 불꽃이 눈가에 일렁이며 그의 검은 눈을 짙은 적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눈가가 뜨거워지며 그에게 짓쳐오는 사방 모든 공격들의 상황이 한줄기 기세로써 느껴졌다. 마치 그가 제 삼자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 마냥.


“적화검류(赤花劍流).”


일순 허공에 불꽃의 파도가 일어났다. 사방을 휩쓰는 날카로운 검격. 허공을 이끄는 검로가 찰나에 수십번 이어지고, 다음 순간 피어난 붉은 화염의 꽃잎이 암기를 던지려던 상인 다섯의 몸을 난자했다.


한순간이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불꽃에 주변 무인들의 시야가 가렸다. 다음 순간 불꽃이 잦아들고 다섯 구의 시체가 땅으로 쓰러졌을때, 그들 사이에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부, 불꽃! 불꽃의 검로를 다루는 무인에 대해서 들어봤어. 설마 저자가 금안나찰을 격살한......”

“암화? 그런 무인이 대체 왜 여기에......!”


그 순간.


피잇-!


허공을 가르는 강렬한 파공성이 들렸다. 휘파람처럼 이어진 날카로운 소리. 일순 백연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게 만들 정도였다. 그와 함께 허공을 가르는 검은 선이 보였다.


푸욱!


피륙음과 함께 아직 남아있던 무인들 중 둘이 갑자기 바닥으로 털썩 쓰러져 내렸다. 둘 모두 정확히 목덜미 옥침혈(玉枕穴) 부근이 묵빛 비도로 꿰뚫린 상태였다. 즉사였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하고 쾌속한 비도 솜씨였다.


백연의 시선이 구석에 앉아있던 암녹색 피풍의의 소년에 닿았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소년의 손 끝에는 이미 세 자루의 비도가 더 들려있었다.


“잘하네.”


백연의 말에 소년이 미간을 살풋 좁히더니 답했다.


“내가 왼쪽.”

“좋아.”


가벼운 끄덕임과 동시에 두 소년이 움직였다. 불꽃을 휘감은 백연이 오른편의 무인들을 향해 검을 내쳤다. 한순간에 아홉번 꺾어 내친 검격이 날아오던 암기와 비도를 전부 쳐내며 그 뒤의 무인들까지 베어냈다. 튀어오른 핏물이 불꽃의 열기에 순식간에 증발해 사라졌다.


그와 함께 옆에서 휘파람 같은 소리가 들리고, 묵직한 피륙음과 함께 무인 둘이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남은 하나는 몸을 비틀어 피하려 시도한 듯 했는데, 대신 어깨가 꿰뚫렸다.


“끄으아!”

“시끄럽다.”


암녹색 피풍의가 펄럭였다. 소년의 신형이 소리없이 백연의 옆으로 쇄도하며 손을 내쳤다. 백연의 눈에도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쾌속한 암기 발출. 손에서 뻗어나오는 묵빛 섬광이 비명을 지르던 무인의 가슴을 격하고, 이윽고 객잔이 조용해졌다.


“남아있는 기척이 없군. 필히 안쪽에도 놈들이 더 있었을 텐데......?”


백연의 중얼거림에 소년이 답했다.


“안쪽은 네가 처음 발검하는 순간 처리했다.”

“손이 빠르네.”


그때 객잔의 문이 벌컥 열렸다. 검을 뽑아든 단휘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걸어들어왔다. 그의 검신을 따라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명 놓쳤잖아. 내가 대신 잡아줬다.”


차음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백연의 말대로 밖으로 몸을 날린 사형이었다. 혼란을 틈타 몰래 도망가려던 사파 무인을 처리해준 듯 했다.


“잘했어.”

“그나저나, 이러면 또 노숙인가.”


단휘의 얼굴이 금새 침울해졌다. 그가 잔뜩 아쉬운 눈으로 객잔 내부를 둘러봤다. 바닥에 흩어진 음식과 술들이 아직도 따뜻한 김을 올리고 있었다.


“뭐 어때. 자고 가면 되지.”

“여기서? 시체들이랑?”

“위에 방은 멀쩡하잖아.”


그의 말에 곁에 서 있던 소년이 반응했다.


“그렇게는 안되겠군. 침실에도 독연(毒煙)이 깔려있다. 보통 무인들이라면 다음날 무공을 펼치지 못하게 될거다.”

“아쉽게 되었네.”


암녹색 피풍의의 소년이 돌아섰다. 그의 시선이 백연을 마주했다.


비범한 기도가 흘러나오는 소년이었다. 외양은 소년과 청년 사이 어디가에 머물러 있는 앳된 얼굴이었는데, 짙은 검은색 눈동자가 한없이 깊었다. 날카로운 눈매가 냉막한 얼굴과 어우러져 흑랑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허나 굵은 눈썹과 다물린 입술에는 다른 방향의 기품이 자리했다.


몸가짐 하나 하나에 어린 움직임이 가볍지 않았다. 걸음조차도 예법 교육을 받은 것이다. 비범한 가문 출신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불꽃의 검로. 들은적이 있다. 네가 섬서에서 금안나찰을 격살했다는 암화인가.”


백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러는 너는 당가의 자제인가 본데.”


비도와 암기를 다루는 무공. 소리없는 살수와 같은 보법. 거기에 더해 이곳은 사천이다. 암기를 다루는 명문세가라면 천하에도 몇 없었다.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이 사천의 지배자밖에 없었다.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가의 당소하라 한다.”


그에 뒤편에 서 있던 단휘가 반응했다. 그가 살짝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소가주, 독룡(毒龍)......!”


그 말에 백연도 눈썹을 치켜올렸다. 당소하라 자신을 지칭한 소년은 부정하지 않았다. 백연은 그 속에서 확신을 얻어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소년은 다른 이가 아닌, 당가의 소가주 본인이었던 것이다.



※※※



“악질적인 놈들이었다. 당가에서도 꼬리를 밟아 수색하고 있었지. 대규모로 움직이면 혼란을 주고 놈들이 도주할 수 있으니, 은밀히 잡아내려 했고.”


당소하가 객잔의 주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자리에는 비도에 꿰뚫려 절명한 시체가 두 구 있었다. 당소하는 시체가 그 자리에 없는 듯이 여상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가주 본인이 직접?”


그에 당소하가 피식 웃었다.


“실적이다. 소가주는 그저 아무런 행동 없이 이루어지는 자리가 아니야.”


공적을 쌓으려 했다는 소리이다. 후계 구도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가주께서는 무엇보다 실력을 우선시 하시지. 내가 소가주가 된 것은 독룡이라는 별호를 얻고 나서이니까.”

“독룡. 천독불침(千毒不侵)의 몸이라고 유명하던데, 사실입니까?”


단휘의 물음이었다. 그 사이 주방에 놓여있는 술병들에 다가간 당소하가 고개를 저었다.


“조금 다르지.”


그가 자연스레 손을 뻗어 병을 집어들고는 순식간에 들이켰다. 백연이 말릴 틈도 없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옅은 기파가 일어났다. 이윽고 그가 미간을 살풋 찡그리며 손을 뻗었다. 그와 함께 육안으로도 보이는 옅은 연기가 당소하의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진기를 뽑아내는 듯한 동작이었다.


“미혼산(迷魂散), 산공독(散功毒), 망혼초(亡魂草). 악질적인 것들 투성이군. 미미하지만 마비산의 흔적도 있어.”

“독으로 버무려 놓은 수준이네.”

“배합이 정확한데. 이들 중에 누군가 독을 다룰줄 아는 천재가 있었거나, 아니라면 제 삼자가 개입했다 보는것이 옳겠군.”

“그렇게 독이 든 걸 먹어도 괜찮은겁니까?”


당소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체내에 독을 돌려 빼낼 수 있는 환경이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만독불침, 천독불침이라 할 수는 없으나 대부분의 독은 내게 통하지 않지.”


그렇게 말하며 술을 한모금 더 홀짝이는 당소하의 모습. 그에 백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슨 독이 든지 아는건 한모금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싶은데.”


꿀꺽.


어느새 무게가 훌쩍 가벼워진 듯한 술병을 내려놓은 당소하가 씩 미소지었다. 냉막하던 얼굴에 미소가 걸리자 한결 어려진 느낌을 주었다.


“가문이 엄격한 편이니. 이럴때가 아니면 마시기가 힘든지라.”

“웃긴 놈이네.”


백연이 픽 웃었다.

세상 천지에 독이 든 술을 좋다고 마셔대는 놈이 있다니. 심지어 그놈이 정파 명문 오대세가의 일익인 사천당가의 소가주다. 세간에 말하면 아무도 믿지 못할 일이다.


그에 당소하가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웃었다.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않으리라 믿지.”

“말한다고 믿을까.”

“가주님의 귀에 들어가면 문제니까 말이다.”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노력해볼게.”


박살난 객잔을 정리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사방에 늘어진 시체 사이를 돌며 당소하는 무언가 필요한 증거를 찾아 모았다. 백연이 오기 전까지 단독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만큼 신속했다. 명문 세가의 소가주는 무공 자질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인 끝에 소년들은 객잔에서 벗어났다. 객잔에는 불을 붙인 뒤였다.


“사고로 위장해야지. 눈이 좋은 놈이 있으면 흔적을 찾겠지만, 네 덕에 내 무공의 흔적은 거의 남지 않았으니 봐도 알기 어려울 터다.”

“당가가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안되나 보군.”


당소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쓴 독. 구하기 쉬운것이 아니다. 전 중원에서 이런 독에 쉬이 손댈 수 있는 문파는 거의 없으니.”

“......그게 너네 가문 아니야?”

“그렇다.”


당소하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래서 나 혼자 움직이는 것이기도 하지. 가주님과 나를 비롯한 두셋 빼고는 모르는 일이다.”

“당가도 바람 잘 날이 없나보네.”


타오르는 객잔을 지켜보며 백연이 검파를 쓸었다. 옆의 단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에 당소하가 입을 열었다.


“우리 가문에서 밤을 지내고 가도 된다.”

“당가에서?”

“섬서의 암화라 하면 가주께서 환대하지 않으실 리가 없다. 더해 내 일을 도와주기도 했고.”


백연은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사천의 끝자락. 당가가 자리한 사천성도까지는 너무 멀었다. 그곳에 들렀다 가면 추가로 하루에서 이틀 가량을 더 지체하게 된다.


“갈 길이 멀어서.”

“아까 들었는데, 안휘로 가는건가?”

“그렇지.”

“용봉지회에 초청받았나 보군. 천주산까지의 거리는 짧지 않지.”


피풍의를 갈무리한 당소하가 백연에게 시선을 던졌다.


“네 무위가 인상적이더군. 소문이 허언이 아님을 봤어. 용봉지회에서도 단연코 돋보일거다.”


백연이 말없이 미소지었다. 당장에 용봉지회에 검룡보다 강한 이가 없다면 그에게 적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공 수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전에서 얻어낸 싸움의 경험 자체에서 차이가 났다.


세월에 걸쳐 쌓아온 검귀의 경험. 검격 한번을 내칠때도 담아내는 감각 자체가 달랐다. 본디 지금의 나이에 쌓을 수 없는 시간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천주산에 가면 조심해라. 무림은 본디 뛰어난 재능에게 그리 호의적인 집단이 아니다. 하물며 그것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벗어난 곳에서 튀어나온 자라면 더욱 그렇지.”


당소하가 머리를 쓸었다. 백연은 그 모습을 보다가 반문했다.


“너는?”

“무슨 의미지?”

“너는 그다지 거부감이 없는 듯 보이는데.”


당소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말했잖나. 당가는 철저한 실력주의라고. 나는 당가의 적장자가 아니다. 혹 형님들이라면 너를 싫어할지 모르겠군. 그것도 상당히.”

“그렇군.”

“여하간, 천주산에선 움직임을 신경써라. 네가 금안나찰을 격살했다는 소문. 종남과 화산이 공증했기에 뒷말이 적게 나오고 있다 하나 믿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당장 나도 오늘 네 검격을 보기 전까지는 반신반의 하고 있었으니까.”


백연은 소년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독룡 당소하. 첫인상과는 달리 털털한 성격에 더불어 가감없이 말을 뱉는다. 무공 수위도 그의 눈에 스친 것만 보아도 낮지 않았다.


더해 이 객잔. 그가 오지 않았더라도 당소하가 처리했을 것이다. 소가주씩이나 되는 이가 몸을 사리지 않고 직접 움직이는 모습은 귀감이라 할만 했다.


“그럼 여기서 작별하지. 조금 바쁜 몸이라 서둘러 성도로 돌아가야 하겠다.”

“그래.”

“이름이 백연이라고 했던가. 그 옆의 사형은 단휘이고.”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당소하가 가벼이 포권하며 웃었다.


“두 사람 다, 용봉지회에서 보지.”


백연과 단휘도 마주 포권했다. 인사하며 백연이 말을 덧붙였다.


“천주산에서 보면 술 한번 살게.”

“호오. 그것 참 마음에 드는 제안이로군.”


씩 웃은 당소하의 몸에서 강렬한 기파가 일었다. 이윽고 가벼이 경공을 일으킨 소년의 신형이 빠르게 서편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백연이 중얼거렸다.


“사형.”

“응?”

“이제 갈까?”

“노숙 한다는거 아니었어?”


백연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봤는데 나도 객잔에서 자고 싶어서.”


그가 옆에 서있던 말 위에 훌쩍 올라탔다. 가벼이 목을 쓰다듬은 백연이 고삐를 쥐었다.


“객잔을 찾을때까지 오늘은 밤새 달려보자고.”

“......곤륜으로 돌아갈까.”

“아하핫.”



※※※



열아흐레가 흘렀다. 중간 중간 객잔에 머무르는 것을 제외하면 바쁘게 달린 나날이었다. 가을에 접어든 주변의 풍경은 운치가 가득했다.


중경을 거쳐 호북에서 들어선 이후부터는 길거리에 흔히 보이던 거친 무인들도 별로 없었다. 남존무당(南尊武当)의 영역이었던 탓이다. 도가 검문의 절대자에 가까운 문파의 영역은 감히 무뢰배들이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었다.


덕분에 그들의 여정에 더 이상의 별다른 일은 없었다. 가끔 가다 시비를 걸어오는 무인들이 있긴 했으나, 그들은 전부 단휘가 검도 쓰지 않고 때려눕힐 만한 사람들이었다. 간간히 만나는 도적은 백연이 불꽃을 끌어올리는 순간 꽁지 빠지게 도망갔다.


‘이렇게 하는건가. 감이 조금 잡히는데.’


그간 백연은 새로운 무공을 연마했다.


적양공의 불꽃을 통제하기 위한 방편. 갈수록 강해지는 화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수기를 움직이는 무공을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가닥가닥 수기를 해체하고 체내 혈맥을 따라 돌리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손끝에 닿을 것 같은 감각이 길지 않은 시일 내에 내공운용법을 하나 더 창안해낼 수 있을 듯 했다.


그렇게 스물 하루째 되던 날 아침. 마침내 시야에 거대한 성도가 들어왔다. 안휘의 중심지. 천주산 바로 옆에 자리한 회녕(懷寧)에 도착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의 물결이 벌써부터 성도를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가히 장관이라 할만 했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백연이 검파를 쥐었다. 용봉지회가 시작되기까지 아직 이 주 가량의 시일이 남았음에도 사람이 넘쳐났다. 중원의 자금과 시선이 이쪽으로 흐르고 있다 봐도 무방했다. 그만큼 거대한 행사였던 탓이다.


‘저 사이에 어쩌면, 만금장과 금원방도.’


그 광경을 내려다보던 백연이 이윽고 고삐를 당겼다. 성도에 도착해 할 일이 적지 않았다. 두 소년이 천천히 회녕을 향해 내려갔다.


바삐 움직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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