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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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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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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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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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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칠룡

DUMMY

※※※



“분위기가 묘한데.”


단휘가 중얼거렸다.


객잔에 짐을 풀고 난 직후였다. 안휘의 회녕은 섬서 서안과는 또다른 별세계였다. 도시의 크기도 크기였지만, 몰려드는 상단의 수가 엄청났다.


장강 본류가 경유하는 도시인 탓이다. 수로를 따라 이동하는 물류의 양이 차원이 달랐다. 서안은 육로로 이동하는 물류가 모여드는 도시라면, 이곳은 수로를 따라 움직이는 물류의 거점 중 하나였다. 부가 넘쳐 흐르는 곳이다. 곳곳에 물건을 가득 쌓아두고 장사하는 이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묘한 불안감이 어려 있었다. 허리춤에 검 하나 차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


“청해만큼은 아니지만, 그다지 평화로워 보이지는 않네. 중원 무림이 본래 이러한가.”

“아니야. 사형이 정확히 보고 있어.”


백연이 답했다. 그의 눈에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였다. 평온하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 항시 위험을 대비하듯이.


안휘 회녕은 남궁세가의 영역이다. 도시 본성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천주산 자락에 자리한 남궁세가라지만, 그 장원의 크기는 어마어마하다. 회녕은 당연히 남궁세가의 보호권 안에 들어온다. 더 나아가면 이 안휘 지역 전체가 남궁세가의 제왕검(帝王劍)이 뻗치는 영역이라 볼 수 있다.


불안할 이유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사파 무뢰배들을 비롯한 무도한 이들이 감히 넘보기 어려운 영역이기에.


“소면 두 그릇만 주시지요.”

“네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식사를 하기 위해 사람이 꽤 모인 객잔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백연은 귀를 열고 있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이야기 들었소? 섬서에서 사파 놈들이 드디어 자취를 감추었다고.”

“종남과 화산이 직접 걸음했으니 그럴만도 하지. 구파의 고매한 신선들이 직접 검을 뽑아드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네.”

“섬서는 그리 되었으니 다행이지만, 요새 길을 걸음하기가 무섭네. 하도 흉흉하니.”


눈을 감은채 귀를 기울였다. 낮은 목소리로 술잔과 함께 주고받는 이야기들. 회녕에 온 상인들인 듯 했다.


“수적 놈들도 극성이야. 이번에도 배를 싹 털릴뻔 했네. 이러다가 장사는 커녕 물고기 밥이 되는것 아닌가 모르겠어. 육로를 찾아야 하나 싶구먼.”

“예끼 이사람. 육로는 뭐 다른 줄 아나? 얼마전에 구룡표국이 몰살 당했다는 소문도 못 들었어?”

“구룡표국이? 허어. 거기에 속한 고수가 몇인데......”

“다른 곳도 아니고 호남에서 그랬다 했소. 이제 장강 이남에 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지경이지.”

“장강 이북이라고 뭐 다른가. 구파와 세가들은 무엇하고 황실은 무엇하는지.”

“자네 미쳤는가? 말을 조심하게. 용봉지회가 코앞이거늘......”


이윽고 잦아드는 목소리.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음이 그 위를 덮었다.


‘중원이 어지럽군.’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러했다. 수라궁이 섬서를 뒤흔든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닌 듯 했다. 수라궁의 목적은 야장에 있었지만, 그런 것을 제외하고서도 무림이 흉흉한 분위기였다.


호남에서 표국이 몰살당했다는 이야기도 그렇다. 장강 이남의 지역은 상대적으로 정파의 세가 약하다 하나, 호남은 조금 다르다. 호북에 바로 붙어있는 지역은 무당파와 제갈세가의 눈길이 닿는 곳이다. 그리 위험하지 않아야 할 지역인 것이다.


“여기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사이 준비된 소면이 앞에 놓였다. 식사를 하면서도 백연의 생각은 전혀 다른 곳으로 가 있었다.


‘우선은 만금장과 금원방이 중요하다.’


만금장. 사파의 잔악한 문파중 하나가 어찌 정파와도 연을 맺으며 중원 전역에 상회로 위장해 나아갔는지 알법했다. 작금의 무림 정세가 어지러운 것도 하나의 이유일터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재력은 무소불위의 힘에 가깝다.


‘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금원방의 위치는 찾기 어렵지 않을터다. 이미 루주에게 대략적인 위치를 받아온 상황. 문제는 만금장 쪽이었다. 막대한 자금을 이용해 상회로 활동하는 만금장은 대놓고 양지로 나서는 집단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들의 지부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다른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고 있을 터.


그러나 그들을 찾기 위해 하오문을 이용할 수도, 개방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우선 이곳의 하오문 지부는 금원방의 영향이 큰 곳이다. 하오문을 찾아가 정보를 사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 그러나 개방이라고 안전하지도 않았다. 구파일방의 일익인 개방은 남궁세가와도 연이 있을테고, 더해 만금장과 어찌 엮여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백연은 정파라는 집단을 믿지 않았다. 무인 개개인이라면 몰라도.


‘직접 찾아야겠네.’


간단한 결론이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사형. 사형 아버지께서 일했던 곳 있잖아.”

“일했던 곳? 아.”


단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긴 왜?”

“특별히 사들이는 물건이나 이런거 있어?”

“......음.”


단휘가 잠시 고민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귀중한 병장기나 금속을 가장 많이 매입했어. 사다가 다시 파는 것 같기도 하던데. 어디에 파는지까진 몰라. 이쪽이 관리한건 매입 장부쪽이라.”

“그럼 내 검같은 것도 사겠네?”

“니 검? 그거야 당연히......야. 설마 그거 팔건 아니지?”


단휘가 백연을 당황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에 백연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근데 한번 시도해 보고 싶은게 있어서.”


만금장의 지부.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면 직접 찾으면 그만이다. 용봉지회 전까지 시간이 남아있었다. 이걸 위해 이렇게 일찍 온 것이었으니까.


“나도 야장 흉내나 한번 내보려고.”



※※※



화르륵.


집중하는 순간 손끝에서 불꽃이 거칠게 터져나왔다. 삽시간에 쏟아진 화염이 대장간을 가득 물들이며 손에 들린 돌을 달궈내었다. 이윽고 그것을 화로에 집어넣자 그 속에서 달궈진 백철 원석이 형체를 잃고 서서히 무너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된다.’


눈으로 봐두었던 천관의 기예. 기억을 더듬어가며 따라했는데 훌륭히 재연하고 있었다.


회녕 외곽에 자리하는 작은 대장간이었다. 사람이 없어 먼지만 날리던 대장간의 주인은 백연이 돈을 준다고 하자 좋아하며 자리를 빌려주었다. 그곳에서 백연은 하루 종일 백철 덩어리를 다루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걸 완전히 녹여서.’


녹아내린 백철이 무너지며 아래의 거푸집들에 담긴다. 비도를 제작할때 쓰이는 거푸집이었는데, 형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럴듯한 모양만 잡히면 그만일 뿐.


이윽고 백연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의 몸속에 담아낸 수기(水氣)의 고리. 이곳까지 향하는 여정 속에서 연습한 감각을 그대로 불러왔다. 화기를 가두고 있던 고리에서 자연스레 물의 기운이 가닥가닥 풀려나왔다.


그것을 끌어올려 잔뜩 달아오른 백철에 가져다 대는 순간.


치익-!


요란한 소리가 귀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화기에 비해 수기가 턱없이 부족했다. 아직 그가 수기를 다루는 내공운용법을 완성하지 못한 탓이었다.


‘문제없어.’


그럼에도 그가 원한 목적은 달성해내고 있었다. 삽시간에 굳어드는 백철들. 화기를 적절히 줄여 표면을 다듬고 수기로 식혀내기를 반복한다. 한참을 그렇게 계속하자 백철은 점점 무기같은 형태를 갖춰나갔다.


중간 중간 망치로 두드려 모양을 잡는 것은 야장을 흉내내는 과정의 일환이었다. 그래도 균형 정도는 맞춰줘야 했으니까.


진짜 백철 병장기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화기와 수기를 다루는 것 뿐만 아니라, 백철을 정확히 다뤄 균형을 맞추고 섬세하게 주조해야 하는 일. 그의 능력 바깥의 영역이다.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형태를 만드는 것 정도는 백연도 할 수 있었다.


백철 원석은 구하기 쉽다. 거기에 적양공과 이틀의 시간이 더해지고 나자, 백연의 손 끝에서 탄생한 것은 열 자루의 비도였다. 이틀간 거의 오십여 자루가 넘는 비도를 만들어 겉보기에 그럴듯 해보이는 것을 골라내는 과정 끝에 완성된 것이었다.


“와, 이게 가짜라고?”


비도를 집어든 단휘가 헛웃음을 지었다.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짜야. 금방 깨질 물건이지.”

“그러면 사용해보면 쉽게 들키는거 아니야?”

“그래서 비도로 만든거야. 사들인 비도를 연습삼아 검으로 마구 내리칠 인간은 별로 없으니까.”


열 자루의 은회색으로 일렁이는 비도. 백철 병장기의 겉보기 모습만큼은 충실히 재현한 물건이었다. 허나 그 공능은 가짜. 대신 그 비도들에는 다른 것이 담겨 있었다.


“사형. 그거 들고 객잔 바깥으로 나가볼래?”

“알았어.”


비도중 한 자루를 집어든 단휘가 머물고 있던 객잔 바깥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기척. 사형이 나간것을 확인한 백연이 그대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다음 순간, 그의 정신이 침잠하며 기감이 확장되었다. 그러자 이윽고 바깥에서 일정하게 일렁이는 기운이 느껴졌다. 객잔에서 살짝 떨어진 위치였다.


잠시 뒤 눈을 뜬 백연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성공이다.’


바깥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그의 앞에 놓인 나머지 아홉 자루의 비도에서 흘러나오는 기운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가 비도를 제작하며 적양공의 화기를 주입한 탓이었다.

그렇다 해도 다른 사람은 아예 인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아주 옅은 기운이었으나, 백연 자신의 몸이 기운에 극히 예민하기에 느낄 수 있었다.


잠시 뒤 단휘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성공한거야?”


백연은 사형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만금장을 찾기 위한 미끼가 될거야.”



※※※



일주일이 흘렀다. 그 기간동안 백연과 단휘는 열심히 움직였다. 비도를 각기 다른 상인들에게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적잖은 시간이 걸렸지만, 열심히 발품을 판 끝에 비도를 전부 처리할 수 있었다.


“이제 기다리면 될거야.”


정확히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만금장이 단휘의 말대로 그런 물건들을 매입하고 있다면, 결국 비도의 상당수는 그쪽으로 흘러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만큼 백철 병장기는 희귀한 물건이니까.


그 사이 회녕의 분위기는 점차 시끌해지고 있었다. 그들이 회녕에 도착한지도 벌써 열흘 가까이 된 것이다. 용봉지회가 코앞이었다.


“하루마다 사람이 배로 늘어나는 것 같네.”


비도를 전부 팔아치우고 난 다음날이었다. 거리를 걷던 단휘가 중얼거렸다.


“그러게. 오늘은 유달리 더 심한걸.”

“언제라고 했지?”

“오늘부터 사흘 뒤.”

“우리도 이제 가야하는 거 아니야?”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가야지.”


전 중원에서 모여드는 후기지수들. 이제 하나둘씩 천주산으로 합류하고 있을 터다. 그가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이미 몇몇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 회녕을 거쳐 천주산으로 향했다고 들었다. 사람들 사이를 걷다 보면 들리는 이름이 한둘이 아니었다. 개중에는 익숙한 별호도 하나 섞여 있었다.


“거, 내가 어제 그 독룡을 봤다니까 글쎄?”

“그래? 어떻던가?”

“소문대로 차갑기 그지 없더군! 하긴 그 당가에서 소가주에 오르려면 그만한 인물이겠지. 당가주의 혈맥에는 피 대신 독이 흐른다던데. 과연 그 가주의 후계라고 해야할까.”


백연이 눈을 깜빡였다.


‘그 정도인가.’


아주 잠깐 본 거긴 하지만, 그리 차가운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분위기가 조금 괜찮아졌네.”


그가 생각하는 사이 사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형의 말이 맞았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결 밝아보였다.


“그럴만 하지.”


용봉지회다. 전 무림에 이름 좀 있는 후기지수들이 모여드는 상황이다. 그들의 무력만 합쳐도 작다 할 수 없는데, 명망 높은 세가나 문파들에서는 그런 후기지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고수들마저 따라붙는다.


적어도 지금부터 용봉지회가 열리는 한달간은 이곳이 전 무림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될 터이다.


“신교......아니, 마교 정도 되는 세력이 아니라면 이곳에 발끝만 들여도 궤멸일거야.”


사파가 최근 무림을 어지럽히고 있다 하나 그들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알 터이다. 머리는 어깨 위가 허전해서 달고 다니는 장식이 아니니까. 오히려 집요하게 정파의 보호가 약한 지역만 치고 빠지는 움직임이 교활한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휘에 발을 들이지는 않겠지.


“슬슬 갈까.”


더 이상 회녕에 머무를 이유는 크게 없었다. 이제 천주산으로 올라갈 시점이었다.


객잔에서 행낭을 챙긴 두 소년이 말에 올랐다. 천주산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한쪽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대다수가 상인들이었는데, 용봉지회에 쓰일 물품을 납품하러 가는 이들과 장사를 해 한몫 챙기려는 이들로 길이 혼란스러웠다.


“걸어가야겠네.”


한동안 느릿하게 길을 따라 움직이던 백연과 단휘는 결국 말에서 내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객잔에 맡겨두고 올걸 그랬어.”

“한달씩이나?”

“그건 좀 기네.”


길을 가득 채운 사람들. 길의 너비가 작지 않았음에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잘 닦여있는 대로 양쪽을 꽉꽉 채워 길을 오가는 것이, 사람의 물결로 가득한 장강과 다를바가 없었다.


“느긋하게 가지 뭐.”


고삐를 잡아끌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가을에 걸친 날씨가 산뜻했다. 시끄러운 사람들의 인파 속에서도 운치가 느껴졌다.


그때였다.


“길을 비키시오!”


뒤에서부터 웅성이는 소리가 일더니, 사람들이 멈춰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울려퍼지는 목소리가 컸다.


백연도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에 말을 타고 천천히 달려오는 일련의 무리가 보였다.


“거기, 당장 비키시오!”


맨 앞에서 앞서 달리던 사람이 그를 향해 외쳤다. 목소리에 담긴 내공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앞에 선 백연은 가만히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렇게 서 있자 앞서 달리던 사람이 그의 코앞에서 말 고삐를 잡아당기며 멈춰섰다. 호리호리한 외양의 사내였다. 그가 잔뜩 인상을 쓰며 말 위에서 백연을 내려다보았다.


“거기 당신. 길에서 나오지 못하겠소? 지금 오시는 분이 누구인지 아시오?”

“알아야 합니까?”


백연의 반문에 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기 오시는 분은, 대 하북팽가(河北彭家)의 대공자이자 칠룡(七龍)의 일인이신 도룡(刀龍) 팽악이시오. 바쁜 걸음이니 당장 길에서 나오시오.”

“싫습니다만.”

“지금 뭐라......”

“당신들이 뭔데 저한테 비켜서라 하는지 모르겠군요. 팽가의 자제 하나를 위해 길을 가는 사람 전체가 멈춰서 길을 비켜줘야 합니까?”


그의 말에 남자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남자의 목소리가 천천히 낮아지며 살기를 띄었다.


“귀하신 분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지 마시오.”

“귀하다. 웃기는군요. 여기 길을 가는 모든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당신들의 시간이 귀하다 말입니까?”

“한낱 민초들과 팽가의 대공자가 가는 길이 같겠소?”

“제가 알기로.”


백연이 남자의 눈을 마주쳤다.


“이 땅에 높은 길을 걷는다 칭할 수 있는 존재는 한 사람밖에 없다 압니다. 황도(皇道)를 걷는 대명(大明)의 주인뿐이지요. 지금 팽가는 스스로가 높은 길을 걷는다 칭하는 것입니까? 역(逆)을 입에 담는 것은 멸족의 죄인데.”

“이 미친......!”

“그만.”


그 사이 남자의 뒤에 도착한 인영들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앞으로 나오며 입을 열자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그대는 혀가 칼이로군.”


말을 타고 앞으로 걸어나온 사람. 그야말로 거대한 체구의 사내였다. 우락부락한 외양에서 힘이 넘쳐 흘렀는데, 그 모습이 잘 갈무리되어 있었다. 어깨 뒤로 매인 거대한 한자루의 대도(大刀)가 지극히 인상적이었다. 짧은 턱은 굳게 다물려 있었는데, 그 형태가 고집이 쎈 사람임을 나타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눈매였다. 두꺼운 눈썹 아래 자리한 짙은 흑색의 눈동자. 단단한 눈매가 자존심이 더없이 강한 사람임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동시에 눈동자에는 옅은 광기가 서려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자가 팽악이었다.


“검 한자루만 차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무인이로군. 용봉지회에 참여하는 자인가?”

“네, 뭐.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그에 팽악이 입꼬리를 찢었다. 그의 눈에 옅게 서려있던 광기가 형형해졌다. 불타오르는 듯한 눈빛이 그를 지긋이 응시했다.


“같은 대회에 참가하는 무인으로써......비무를 청하고 싶군. 지금, 이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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