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새글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6.21 18:10
연재수 :
293 회
조회수 :
1,525,227
추천수 :
30,516
글자수 :
2,237,580

작성
23.06.15 18:10
조회
11,655
추천
182
글자
19쪽

불꽃(2)

DUMMY

밀려오는 기운이 해일과도 같았다. 처음 곤륜산에서 운공을 하는 순간 느꼈던 것과 같았다. 다만, 이번에는 그 파도가 자연지기가 아닌, 활활 타오르는 극양의 화기라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


‘젠장.’


몸에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기운이 아니었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이 화산(火山)이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공간에 고인 화기는 다른 누군가가 남겨놓고 간 기운이었다. 신체가 극양지체(極陽肢體)라도 되는 사람이었는지.


위험했다. 진심으로 목숨의 위협이 느껴졌다. 혈령쌍귀를 상대했을때 보다도 더욱.


‘맞서면 안돼.’


정면으로 부딪히면 정말로 새까맣게 타 죽어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열양지기를 수련하던 무인 중 불타 죽은 이들이 있다는 소리는 간간히 전해지는 괴담같은 것이었다.


‘호흡으로 몸을 감싸고.’


하단전에서 내공을 뽑아올렸다. 동시에 운연동공을 이용해 몸에 소주천을 돌린다. 자연지기에 가장 가까운 기운. 순수한 풍기가 온몸을 휘돌며 감쌌다. 일순 화끈거리던 몸 주위로 불어오는 옅은 바람이 산뜻했다. 몸에 바람을 두르고 불구덩이로 뛰어든 듯 했다.


‘똑같이 위험한거 아닌가?’


순간 드는 의문. 다만 상황은 직전보다 나았다. 몸에 두른 바람을 쉬지 않고 회전시킨다. 겉으로 흐르는 기운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 그를 타고 쏟아지는 화염의 파도가 비껴 흐르기 시작했다.


점차 흐름은 안정되어 갔다. 의지가 없는 화염의 기운은 백연만을 노려 쏟아지지는 않았다. 강물이 흐르듯 서서히 옆으로 비껴 흘러갈 뿐.


체내의 기운 덕이었다. 자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듯, 몸을 가득 채운 운연동공의 내공이 철저하게 몸을 방어해주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마치 기운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강렬한 화기가 서서히 옅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끊임없이 흘려보내자 화기로 가득 차 있던 공기가 가벼워지며 평범한 자연지기가 그 자리를 채워나갔다.


그렇게 눈을 감고 소주천을 돌리기를 잠시. 고여있던 화기가 전부 사라지고 나서야 백연은 눈을 떴다.


“후우.”


그제서야 입과 눈이 마르고 피부가 화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공간에 들어찬 화기가 실제 몸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런걸 몸에 담는다고?’


아무래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운연동공으로 얻어낸 기운을 화기로 바꾸어 몸에 담는다는 발상. 생각 자체는 타당했다. 화기를 다룰 수 있게 되면 무공의 파괴력이 크게 상승하니까.


하지만 직접 마주한 화기는 몸에 담을 수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화기를 담기 전에 몸이 불타서 없어질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백연, 안에 뭐 있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뒤따라 들어오는 단휘. 그가 백연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 옷이 왜 그래? 얼굴은 왜 그리 빨갛고.”

“옷?”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니 무복의 소매가 검게 그슬려있었다. 화기의 영향이 이렇게 강하게 미쳤을 줄이야.


“별거 아니야. 혹시 물 좀 있어?”

“여기.”


물을 받아 들이키자 한결 시원한 감각이 몸을 식혀주었다. 남은 물주머니를 털어 얼굴에 뿌리자 화끈거리던 얼굴이 조금 나아졌다.


“한결 낫네. 고마워.”

“그래서 뭐 좀 찾았어?”

“음.”


간이 대장간이 자리했던 뒤뜰. 부서진 화로와 금속 조각만이 흩어져 있는 풍경은 허름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에 분명 백철을 다루는 야장이 머물렀었다.


‘이런 화기를 남길만한 사람은 아마 야장.’


다른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추정컨데 수라궁도는 그런 무공을 사용하지 않고, 우연히 극양지체의 사람이 이곳을 방문했다 하는것도 이상했다.


더불어, 정확히 화로가 있는 이 공간에만 화기가 고여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백연도 백철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몰랐다. 다만 그 방법이 평범하지 않으며, 지극히 배우기가 어렵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만약 이 화기가 야장이 남긴 것이라면 모든 조건을 충족했다. 이런 기운을 사람의 몸에 담고 있는 일이 쉬울리가 없으니까.


“단서를 찾은 것 같아.”


야장의 유일한 흔적. 휘몰아치는 화기.


“정말로?”

“응. 근데 마을 주변을 좀 돌아야 할 것 같아.”


이 정도의 화기를 품은 사람이라면 흔적을 어딘가에는 흘렸을 터이다. 주변을 샅샅이 뒤지면서 찾다 보면 찾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서북쪽 방향만 훑으면 될 것 같은데.”


하령이 알려준 경로를 바탕으로 다음 이동 방향을 추측하면 찾아야 하는 범위도 그다지 넓지 않았다.


‘다만.’


수라궁이 문제였다. 수라궁도 필시 야장의 뒤를 쫓고 있을텐데.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까지 잘 도망쳐 다녔으니 아직은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조금 서두르자. 될까?”

“걱정마.”


단휘가 자신의 다리를 톡톡 두들겼다.


“너랑 수련한 양이 얼만데. 이 정도는 가뿐하지.”


백연이 미소지었다.


“수라궁의 머리 끄트머리라도 발견하면 우선 바로 도망갈거야. 알았지?”

“명심하고 있어.”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의 검파를 쥐었다.

빠르게 야장을 찾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수라궁을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럼, 가자.”


마음이 여유롭지 않았다.



※※※



하나 하고도 반 시진 뒤였다.


“찾았다.”


명백한 화기의 흔적을 찾아낸 것이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서북쪽 길. 여름의 초입에 접어들어 파릇하게 자라야 할 풀이 말라 비틀어져 죽어있는 장소였다.


“완전히 말라 죽었군.”


무진이 풀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였다. 흙 위로 가득 자란 잡풀들은 하나같이 전부 수분을 빼앗겨 갈색으로 죽어있었다. 자연적이지 않은 흔적이었다.


확실히 화기를 지닌 사람이 지나간 장소였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수라궁도 지나갔어.”


주변에 가득 찍힌 발자국. 그들이 발견한 화기의 흔적 근처에 남겨져 있었다.

약간 거리가 있어 수라궁도 이 흔적을 발견했는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적어도 같은 방향으로 이동중이야.’


지금까지 야장의 뒤를 쫓아왔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야장이 서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은 저들도 알고 있을테니.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청율의 물음. 연푸른 도포를 입은 사숙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마을에서 시체들의 눈을 감겨주며 묻은 피가 한가득이었다.


“이대로 계속 야장의 뒤를 쫓을 생각?”


이대로 포기하고 돌아가는 방법도 있다. 아니면 하오문의 지원을 요청하거나.


‘하지만 지원을 요청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대로 움직이다가 수라궁을 맞닥뜨리면 지극히 위험하다.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면서 추적을 하려 했으나, 수라궁과 정면 상대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특히 자신 혼자라면 몰라도 다같이 움직이는 것은 더욱 그랬다.


“......이대로 가는건 위험합니다.”


한참 고민하다 결국 결정을 내린 백연이 입을 열었다.


“사숙과 사형들은 서안으로 돌아가주세요. 하령에게 말해 야장의 흔적을 찾았다고. 그리고 이 방향을 알려주면 하오문이 지원해줄 겁니다.”


수라궁이 위험하다 해도 야장을 놓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수라궁의 손에 야장이 넘어가면 그게 더욱 문제다. 그렇기에 추적을 포기할 수는 없다.


“뭐?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너는?”

“나는 야장을 찾아야지.”

“야, 너......!”


무진이 발끈하며 앞으로 나오려 했다. 그러나 그전에 연푸른 도포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잠시만 기다려봐요.”


차분한 목소리의 청율. 차분한 목소리의 사숙이 백연을 쳐다보았다.


“무슨 의미인가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야 해요.”


수라궁의 궁도들. 개개인은 사형들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무리로 뭉쳐있다면 이야기가 좀 달랐고, 행여나 강한 놈이 튀어나오면 더욱 이야기가 다르다.


평범한 궁도들이 아닌 궁주의 직속으로 움직이는 괴물이 있다 했다. 하령이 말해준 이야기였다. 그가 서안지부를 비우면서까지 움직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그 하령이 직접 움직였음에도 격살에 실패했다고 했다.


지금의 그들이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다.


“이렇게 나눠서 움직이는게 가장 효율적입니다.”


야장의 추적, 하오문의 지원, 그리고 혹시 모를 수라궁과 맞닥뜨리는 위험까지. 전부 계산하에 넣을 수 있다. 만약 수라궁과 마주쳐도 혼자라면 몸을 뺄 자신이 있었다.


“백연.”


그러나 청율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우리가 약하기 때문인가요?”

“......예?”

“지금 우리들의 무력으로 수라궁도와 만나면 필패이기에?”

“그건.”


필패인가?

스스로 질문했다. 답은 금방 나왔다.


‘아니.’


한줌씩 무리지어 다니는 수라궁도들. 수가 적당하다면 충분히 상대할 만 했다. 지금의 사형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았다. 그 수가 많다면 지겠지만, 그것은 사형들이 아닌 백연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백연은 고개를 저었다.


“하면 어째서죠?”

“......위험합니다. 일반 궁도들보다 훨씬 강한 놈이 있습니다.”

“그자를 만나면 위험한건 백연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건 맞지만.”


마을의 광경이 눈앞에 생생했다. 살아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 장소. 그 시체들 사이에 곤륜파의 무인이 섞여 있다면.


머릿속이 복잡했다. 속이 울렁이는 기분이었다. 화기를 상대하다 탈이라도 난건지.


“백연.”


그때 차분한 청율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 들었다. 시선을 들어올리자 단단한 눈빛과 눈이 마주쳤다.


“백연이 우리를 걱정하는 것은 잘 알아요.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위험하니 안전한 서안으로 보내고 홀로 야장의 뒤를 추적하겠다?”

“그건......”

“백연은 강하죠. 하지만 그 이전에 곤륜의 막내 제자입니다. 백연이 홀로 위험을 감수한다 했을때, 우리가 느낄 걱정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 본 적 있는지 묻고 싶네요.”


말문이 막혔다.

저들이 걱정한다고? 나를?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백연은 앞서 걷는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그러했다. 검을 처음 붙잡기 전 거리를 헤매고 다닐 때부터, 검귀의 위명을 얻을 때까지도.


상대방이 자신을 걱정할거라는 생각을 해본적은 당연히 없었다. 그는 동경의 대상이었지 마음을 쓸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몰랐습니다.”


그에 미소짓는 청율.


“괜찮아요. 무슨 의미로 말한지는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조정이 좀 필요할 것 같네요.”


청율이 앞으로 나섰다. 말라붙은 풀에 다가간 그가 손으로 바닥을 쓸었다.


“야장을 찾아야 한다는 것. 동의해요.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도 수라궁에게 백철 야장이 넘어가는 건 좋지 않은 일입니다. 당장 청해의 사파 세력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테고, 그 여파가 곤륜에 미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죠.”


침착한 목소리다. 무궁각주는 무공에 대한 조예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야장을 추적하는 건 계속하죠. 그를 위해서는 백연이 움직여줘야 합니다. 우리 중 가장 민감하게 화기의 흔적을 느낄 수 있으니.”


청율의 입으로 모이는 사형의 시선들.


“그리고 현재 가장 위협이 되는건 수라궁인데, 이들의 동선을 주시해야 될 것 같네요.”


청율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멈추었다. 가장 키가 작은 사형. 소홍이 시선을 들어올렸다.


“소홍. 수라궁의 흔적을 추적해주세요. 만약 그들의 모습을 발견하거나, 발각될 것 같다 싶으면 즉시 몸을 빼고요. 그들의 동선을 찾으면 다시 이곳으로 복귀하면 될거에요.”

“잠깐, 너무 위험한......”

“안 걸리고 추적할 수 있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소홍. 늘상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에 미미한 자신감이 어렸다.


“백연을 제외하면 소홍이 가장 몸이 날래니까. 부탁할게요. 그리고 단휘와 무진.”

“예, 사숙.”

“두 사람은 백연의 말대로 하오문에게 소식을 알려주세요. 수라궁과의 충돌이 있다면 하오문의 힘이 필요합니다. 야장을 찾고 나서도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에요.”


두 사형이 군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오문을 불러낸다면 그들과 같이 이곳으로 움직이세요. 소홍이 흔적을 찾으면 여기로 올테니, 같이 합류해 움직이면 될 거에요.”

“그럼 사숙께선.”

“저는 백연과 같이 움직입니다.”


청율이 담담하게 말을 맺었다. 망설임 없는 빠른 결정이었다. 사형들은 반발하지 않았다.


백연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도 들었지만, 사형들의 표정을 보니 뭐라 말할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네요. 사숙의 말이니.”

“훌륭한 제자군요.”


청율이 웃었다.



※※※



“백연의 말을 들으니 확실히 느껴지네요.”


허공에 손을 뻗은 청율. 기감을 돋구고 있는 것이었다.

백연의 사숙은 무학에 대한 오성이 낮지 않았다. 어떻게 지금까지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제대로 된 가르침이 없어서 그랬던걸까.


“허공에 머무른 화기. 저한테는 아주 미약하게 느껴지는데, 이걸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니. 대단해요.”


손을 거둔 청율이 뒤를 힐끗했다. 백연을 바라본 그가 미소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 뒤로 따로 물어본 적은 없네요.”

“뭐를 말입니까?”


추적을 시작한지 한참이었다. 출발 전 수라궁에 대해 걱정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들은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계속해서 서북쪽으로 이동하던 화기의 흔적이 어느 순간부터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었다.


수라궁의 흔적이 향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때문에 처음에는 말없이 빠르게 이동하던 그들의 속도에도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이런 대화를 나눌 정도로.


“화기를 다루는 무공. 고민하고 있던 걸로 아는데요. 진전은 있었는지.”

“아직 없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화기의 성질이 파괴적이고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몸속에 담고 있을만한 기질이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몸에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닌 이상에야, 몸을 해칠 가능성만 높았다.


“시간을 두고 하다 보면 충분히 될거에요.”


미소짓는 청율.


“근거는 없지만 그런 믿음이 가네요.”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요?”

“하하.”


그렇게 걷기를 한참이었다.

반나절 정도의 추적 후에 해가 땅에 다다를 때쯤, 마침내 그들은 걸음을 멈춰섰다.


“산이군요.”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산맥이었다. 곤륜산에 비하면 낮았지만, 그리 작다 할 크기도 아니었다.


“이 안쪽으로 들어간 듯 한데.”


화기의 흔적은 산 초입에서 멈춘 뒤 안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산맥 안으로 들어간 듯했다.

청율과 백연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걷기를 일각.


조용히 걸음을 옮기던 백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안쪽에서는 흩어져서 찾는게 낫겠군요.”

“그게 낫겠네요. 안에 들어오자마자 흔적이 사라지다니.”


동의하는 청율이었다.

지금까지 추적의 징표로 삼던 화기의 흔적이 산에 들어오는 순간 사라졌다. 명확한 길이 사라진 이상 두 사람이 나뉘어 찾는게 빠를 것이다.


‘수라궁은 아직 없으니.’


당장 위험할 일도 없다.


“저는 왼쪽으로 갈게요.”

“알겠습니다.”

“한시진 정도 찾아보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걸로.”


그렇게 청율과 흩어졌다.


늦은 오후의 산에서는 멀리까지 사물을 분간하기 쉽지 않았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가려 빠르게 어두워지는 탓이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산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든다면 마땅히 있어야 할 오솔길이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수풀을 헤치고 걷기가 한층 어려웠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주변에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았다. 잠시 안법을 사용할까 고민이 들었다.


‘귀안이면 보일텐데.’


멈춰서 바위에 걸터앉은 백연이 한숨을 내쉴때였다.


‘음?’


갑자기 근처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짐승의 것이 아니었다. 쉬이 분간할 수 있었다. 짐승들의 움직임은 특유의 규칙성이 존재했으니까.


사람이었다.


백연은 가만히 손을 늘어뜨렸다. 여전히 바위에 걸터앉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서서히 기운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단전에서 뽑혀 올라와 활성화된 내공이 몸을 타고 휘돌았다.


다음 순간.


삐이-


밤새가 울고, 동시에 갑작스레 기척이 움직엿다.


파삭!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 동작이 컸다. 백연은 일부러 한발짝 느리게 움직였다. 소리로 파악한 상대의 간합은 길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재빠르게 달려드는 인영.


길게 뻗은 손 끝에서 번뜩이는 은빛 광채가 보였다. 짧은 검이었다. 백연의 등허리를 노리고 찔러오는 움직임이 빠르지만 어설펐다.


자연스레 백연의 팔을 타고 바람이 휘감겼다. 검에 찔리기 직전, 환상처럼 움직인 손이 그대로 상대방의 팔목을 낚아챘다. 유려한 금나수법이었다. 화산의 낙화검이 연상되는 움직임.


찔러오는 움직임을 그대로 당겨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동시에 손아귀에 강하게 힘을 주자 검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억눌린 듯한 신음소리와 함께.


백연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휘돌듯 상대방의 팔을 꺾으며 비어있는 손으로 발검했다. 달빛 아래 이지러진 검광이 어두운 숲속에서 번뜩였다.


상대를 메치듯이 바위에 꽂아누르며 검으로 겨눴다. 깔끔한 제압이었다.


“누구냐.”

“으, 으윽!”


그새 높이 떠오른 달빛이 나무들 사이를 뚫고 떨어져 내리며 제압당한 사람의 얼굴을 드러냈다.


“......응?”


상대의 얼굴을 본 백연이 의아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분노가 가득 담긴 얼굴의 외양이 너무 앳되었기 때문이었다.


일그러진 얼굴. 달빛을 받아 창백하게 달아오른 얼굴은 뺨 언저리와 이마 부분만 옅은 붉은기를 띄고 있었다. 짧은 머리는 유려하게 떨어지는 턱선 언저리에서 싹둑 잘려 있었는데 혼자서 단검으로 자른 것 마냥 엉망이었다. 눈물이 고인 눈매는 고양이 같은 모양이었고, 그 안의 눈동자는 특이하게도 진한 적갈색이었다.


“이거 놔! 이 사파의 개자식이......”


발버둥치는 모습. 앳된 외양과 다르게 팔은 꽤나 단련이 되어 있었다. 어깨부터 이어지는 근육이 단단했다. 어깨선도 곧게 잡힌것이 하루이틀 수련해서 나올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그 전에.’


“난 사파 아닌데?”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었다.


“거짓말! 너도 할아버지의 검을 노리고 온 거잖아!”

“뭔 소리야? 네 할아버지가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고......아.”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설마 네가 말한 할아버지가, 백철 야장이냐?”

“......아, 아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지차, 녀석이 눈을 피했다.


“허.”


백연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곤륜환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7 신강 +7 23.09.04 5,870 109 22쪽
86 설화(雪花)(4) +8 23.09.01 6,110 108 21쪽
85 설화(雪花)(3) +9 23.08.30 6,311 116 23쪽
84 설화(雪花)(2) +6 23.08.28 6,514 109 21쪽
83 설화(雪花) +8 23.08.25 6,816 117 17쪽
82 선택(5) +6 23.08.23 6,947 121 21쪽
81 선택(4) +5 23.08.21 6,781 122 20쪽
80 선택(3) +8 23.08.18 7,300 126 22쪽
79 선택(2) +6 23.08.16 7,261 120 24쪽
78 선택 +6 23.08.14 7,422 127 21쪽
77 검귀의 검, 곤륜의 검(6) +8 23.08.11 7,493 139 19쪽
76 검귀의 검, 곤륜의 검(5) +8 23.08.09 7,193 125 20쪽
75 검귀의 검, 곤륜의 검(4) +7 23.08.07 7,324 132 21쪽
74 검귀의 검, 곤륜의 검(3) +6 23.08.04 7,587 134 18쪽
73 검귀의 검, 곤륜의 검(2) +4 23.08.02 7,798 134 19쪽
72 검귀의 검, 곤륜의 검 +5 23.07.31 8,137 140 16쪽
71 검왕(4) +10 23.07.30 7,637 121 13쪽
70 검왕(3) +7 23.07.29 7,392 138 12쪽
69 검왕(2) +7 23.07.28 7,413 134 15쪽
68 검왕 +8 23.07.27 7,503 141 16쪽
67 마기 +5 23.07.26 7,529 132 14쪽
66 금원방(2) +5 23.07.24 7,695 141 16쪽
65 금원방 +4 23.07.23 8,149 136 17쪽
64 용봉지회(9) +6 23.07.22 8,160 138 20쪽
63 용봉지회(8) +4 23.07.21 7,885 137 15쪽
62 용봉지회(7) +6 23.07.20 7,951 141 16쪽
61 용봉지회(6) +5 23.07.19 7,933 143 18쪽
60 용봉지회(5) +6 23.07.17 8,286 150 17쪽
59 용봉지회(4) +6 23.07.16 8,371 153 16쪽
58 용봉지회(3) +5 23.07.15 8,474 152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