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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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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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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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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성화방주(2)

DUMMY

※※※



“이거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할지 모르겠네.”


반각이 흘렀다. 눈앞의 소년이 명백히 하령 본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태청신공으로 달아오른 상단전이 확인해주었다.


아 아이가, 성화방주 본인이 맞다고.


하지만 동시에.


“원래는 이렇게 보여줄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바닥에 쓰러져 있던 소년도 하령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느 하나 다른 것이 없었다. 손의 크기, 다리 한쪽에 나 있는 자국, 머리칼의 길이나 하다못해 오똑하게 떨어지는 코끝의 너비까지.


그건 분명 하령 본인의 몸이었다. 숨을 쉬지 않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달리 말하면 시체라고 해야할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랬다. 혼란스러운 기분을 안은채로 백연은 하령의 처소에 앉아 있었다.


“일단 이거라도 좀 마실래?”


스윽.


하령의 손짓에 자그마한 찻잔이 두둥실 떠 백연의 앞에 놓였다. 그러나 백연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설명부터 듣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하아. 그래.”


하령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찻잔을 저 멀리 치워버린 하령이 손을 모았다. 드물게 걷어올린 기다란 소매자락이 의자를 타 넘어 흘러내렸다. 그렇게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백연이 차를 다시 달라고 해야하나 막 고민하기 시작하던 그때, 하령의 입이 열렸다.


“너는 혼백(魂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백연이 눈을 깜빡였다. 혼백이라고?


“무슨 의미입니까?”

“강호 무림에서도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잖아. 망자의 혼이 실재하냐, 하지 않느냐.”

“사후(死後)를 믿지 않는 이들도 존재하죠.”


그랬다. 소림과 같은 불문 종파에서는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비롯한 사자(死者)들에 대한 믿음이 충실하다. 허나 세간에서는 그런 것이 의미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없지않아 있었다. 죽은 뒤에 남는것은 없다고.


사람이 정기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무인이 동의하는 바. 그러나 사람의 상단전 영성이, 육체가 죽은 뒤에도 영혼이라는 실체적 형태로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것이다.


본디 검귀는 어느쪽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사후를 입에 담기에는 현실이 중요했고, 혼을 부정하기에는 강호에 기이한 일들이 너무 많다. 영물, 혼백을 다루는 이들, 영성을 지닌 무당과 귀신을 이용해 무공을 펼치는 이들까지.


허나.


“......하지만 저는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망자, 사자, 어떤 호칭으로 부르든 마찬가지겠지만.”


백연은 검귀와는 다르게 생각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이 바로 그 증거다.


백여년 전에 죽은 검귀의 영혼이, 소년의 몸에 깃들었다.


부정할 수 없는 스스로의 경험. 달리 말할수도 없는 것이다. 부정한다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그래? 그럼 좀 이야기가 쉽겠다.”


백연의 말에 하령의 표정이 밝아졌다.


“우선 내 무공이 남들과는 많이 다르다는걸 알겠지. 네가 술법무공에 대해서 어디까지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술법의 종류는 그야말로 하늘 아래 모래알의 개수많큼 많아. 개중에는 혼백을 다루는 술법무공도 존재하고.”

“모산파의 귀혼대법(歸魂大法)처럼 말인가요?”

“그것도 맞......는데. 잠깐만, 너 그거 어떻게 알고 있어?”

“문제라도 있습니까?”


하령이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들어서는 안될 말을 들은것처럼.


“귀혼대법은 금술(禁術)이야. 모산파가 보유하고 있는 무공은 맞지만, 사용이 금지된 술법무공이지. 그걸 모산파가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텐데?”

“천살문 대주한테 들었습니다. 금술인 것은 몰랐지만요.”


천살문의 참월대주가 직접 입에 담았다. 마교와 유착해 천마를 부활시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이번 비무제전에서 모산파를 조심하라고까지 말했던 사람이다. 가능성 낮은 추측에 불과했으나 백연은 그것을 머릿속에 계속 담아두고 있었다.


“놈들도 별걸 다 아네. 그나저나 천살문 대주와는 어쩌다가......아니다. 그건 나중에 듣기로 하고.”


피곤한듯 눈두덩이를 문지른 하령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런 혼백을 다루는 술법무공은 아주 위험하고, 까다로워. 수많은 술법무공 중에서도 극히 귀하게 취급되지. 그리고 그 속에서도 갈래가 몇가지로 갈리는데, 그중에는 혼백을 전이(轉移)시키는 술법무공도 존재해.”


가볍게 내뱉었다.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얼마 전 천독도 그러하더니, 이들은 벽력탄 같은 발언을 숨쉬듯 내뱉는 취미라도 있는지.


침묵이 내려앉았다. 말을 한 하령의 목울대가 살풋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였다. 침을 삼키는 것이 어째서인지 약간 긴장을 한 것 같기도 했다.


‘혼백의 전이라. 위험한 무공인데.’


백연은 생각했다.


가불가의 여부는 따지지 않았다. 백연 자신의 존재가 그 모든것을 무용하게 만든다. 하령이 입에 담은것을 모두 진실이라 받아들이고 생각해야 했다.


영성이 아니다. 혼백이라 했다. 한 사람의 존재를 통째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볼수록 위험했다.


“그 무공이, 정확히 어떻게 작용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죽은자의 혼백을 옮기는 것인지. 산자의 몸을 갈아치우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타인의 몸을 빼앗는 것인지......”


마지막에 이르러 말끝을 흐렸다. 백연의 시선이 하령의 눈을 마주했다.


“제가, 혹 검을 뽑아야 할지 고민중이라서.”


담담한 어조였다. 그 말에 하령이 미소를 지었다.


“너는 내가 얼마나 오래 살아왔을 것 같아?”


꼬마 방주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반로환동을 한 줄 알았는데.”

“아주 오래 전부터야. 이제 와서는 세는것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을 정도로.”


말하는 목소리가 투명했다. 언뜻 과거의 무언가를 돌이켜 회상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령의 시선이 허공을 더듬는다.


“나는 누군가와 약조를 했고, 그걸 지키기 위해 오랜 기간 살아왔어. 반로환동으로는 버텨낼 수 없는 세월이야. 벽을 넘어설때마다 육체의 재구성이 이뤄지는데, 벽을 넘는 횟수에는 한계가 있거든.”

“그래서 몸을 바꿔오신 겁니까? 혼백을 새로운 몸에 전이시켜서?”

“맞아.”


담백한 답변.


백연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내용이 예상을 훨씬 벗어난 수준이다. 몸을 한번만 갈아치운 것도 아니라 했다. 오랜 세월의 기간동안 살아왔다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이다. 눈앞의 꼬마는 죽지 않는 것이다.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평생을 찾아 해맨것이 백연의 눈앞에 있었다. 동시에 백연은 깨달았다.


‘위험한 사람이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하령의 성정과 별개의 얘기였다. 이 사람이 지닌 술법무공 자체가 문제였다. 그 공능. 세상의 모든 사람이 탐낼만한 무공이다. 영생(永生)에 대한 욕망을 지닌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런 무공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려져도 무림에 겁화가 일어날 것이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무공이 하늘에 닿은 무인이라 해도 사람의 몸으로 몇백년씩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 백연은 본능적으로 기감을 펼쳤다. 주변에 듣는 귀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다 확인하고 이야기한건데.”


하령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더없이 천진한 아이같은 모습에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왭니까? 성화방주의 위에 앉은 분이, 이 말이 진실이라 했을때 가질 위험성을 모르는 것도 아닐테고. 저한테 어째서 이걸 전부 이야기해주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살인멸구라도 할 것이 아닌 이상에야.”


그를 죽여 없애면 확실할 일이다. 아예 증거를 인멸하기 전에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적합했다. 그러나 하령은 눈을 크게 뜨며 손을 내저었다.


“무슨 소리 하는거야? 살인멸구라니.”

“그럼 왭니까.”

“......내가 너를 선택했으니까.”


하령이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의미를 알기 어려운 말에 백연이 잠깐 눈을 깜빡였다.


“선택이라뇨?”

“내 술법무공은 전에도 말했지만, 세간에서 실전되었거나 한 것도 많아. 모산파나 제갈세가가 다루는 술법과도 결이 다르지. 일인전승(一人傳承)이라 해야할까. 내가 없어지면 전부 덧없이 사라질 것들.”

“......”

“나는 본래 누구에게도 무공을 전수한 적이 없어.”


하령의 말이 바람결처럼 스쳤다.


백연은 문득 신강에 가기 전의 일을 떠올렸다. 하령에게 술법무공을 알려달라 하자 고민하는 듯 하다 수락했던 기억. 그것이 가볍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네가 처음이었고, 또 마지막이 되겠지. 내 술법무공을 전수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제가 심상에 진입하는 것 외에 다른 술법무공을 전수받겠다 한적은 없습니다만.”

“그럼 사라지는거지. 제자가 배우기 싫다는데 억지로 가르칠까.”


하령이 생긋 웃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스승이 제자라 칭하는 모습이 뻔뻔했다. 이윽고 한숨을 내쉰 백연이 고개를 저었다.


“보통은 재능이 있다면 억지로라도 가르치지 않습니까? 구파의 장문인들을 보면.”

“그런 방법을 원한다면야.”


하령의 눈이 반짝였다. 머리를 긁적인 백연이 몸에 힘을 풀었다. 긴장감이 조금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혼백을 전이시키는 술법무공이 존재한다, 이건 알겠습니다. 허면 그 무공의 자세한 공능에 대해 알고 싶군요.”

“그거야 쉽지.”


하령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숫자를 세듯 하나씩 접어나가기 시작했다.


“첫번째로, 술자 본인의 혼백만 전이가 가능해. 타인의 혼을 바꿔치고 이런 것은 다른 영역이야. 두번째는 술자 본인이 살아있을때만 가능해. 이거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죽은 영혼이 술법무공을 사용할 수는 없다는 소리군요.”

“당연하지. 무공은 정기신 전체를 사용하는거야. 고작 혼백만으로는 할 수 있는일이 없어.”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겨둘 이야기였다. 죽은 놈의 영혼이 뒤통수를 치는 것은 사양하고픈 일이었다. 산 사람 상대하기도 바쁜것을.


“세번째로, 내공과 육체는 전이되지 않아.”

“......아?”


이것이야말로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완전히 놓치고 있던 부분이다. 혼백을 옮긴다 해서 그 몸에 원래 지니고 있던 내공이 깃들리는 없는 것이다. 육체도 마찬가지다. 머리에 담긴 지식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가 없다는 소리다.


그러나 눈앞의 꼬마는 분명 무공을 사용했다. 일전과 기도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힘을 잃었다면 당장 이곳에 깔린 거대한 술법진부터 사라졌을 일이다.


“그러면 하령은 어떻게 된건가요?”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내 무공의 근원은 체내 내공이 아니야. 아까 들어오면서 맡은 혈향 있지? 그거인데, 아직 네게 설명하기에는 어려운 방식이야. 아무튼 그렇기에 나는 몸을 바꾸면서도 무위를 유지할 수 있는거고.”


모호한 말이었지만 하령은 그 방식에 대해서는 더 설명해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백연은 그에 대해서 캐묻지 않았다.


“그게 전부인가요?”

“큰 틀에서는.”


세가지로 압축되었지만 첫번째와 세번째가 매우 큰 제약이었다. 조건을 알고 나자 이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 위력만큼의 대가를 지불한다 봐야 할까.


그러나 아직 백연에게는 남은 질문이 있었다. 그가 여차하면 검을 뽑아들 생각을 하고 있었던 이유.


“......그렇다면, 혼백이 전이되는 몸은 어떻게 얻는겁니까?”


가장 중요한 물음이었다. 하령이 사용하는 무공이, 과연 타인의 몸을 빼앗을 수 있는가. 그리고 하령이 목숨을 이어나가기 위해 타인의 몸을 빼앗았는가의 여부다.


타인의 몸을 취했다 하면 그건 놔둘 수 없는 일이었다. 무릇 사람이라 하면 지켜야 하는 선이 있다. 백연은 마음속에 선을 그어두고 있었고, 그것을 넘는 자들을 보아 넘길 생각이 없었다. 그 선을 넘은 이들은 그의 기준에 이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혹 살아있는 사람의 몸을 빼앗는다거나.”

“가능해. 생자의 영성을 짓이겨 산송장으로 만들고, 그 몸이 죽기 전에 술법무공을 시전한다면 불가한 것은 아니지.”


하령의 미간이 살포시 구겨졌다. 말하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야.”

“그러면 그 몸은 무엇입니까?”

“만든거야.”


하령이 고갯짓을 했다. 이제는 침상 한켠에 반듯하게 눕혀져 있는 몸뚱아리를 향해서였다.


“육체를 구성하고 본뜨는 작업. 술법무공 수십개를 엮어서 한땀한땀 만든 내 걸작이라고.”

“그게 가능합니까?”

“당연하지.”

“재료로 사람을 썼다거나 한건.”

“야.”


진심으로 기분이 상한듯한 하령이 입술을 내밀었다.


“한번만 더 그런 소리 하면 아무리 너라도 혼나.”

“확인해야 해서 그랬습니다.”


백연이 하령과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스승이 선을 넘었으면, 제자가 베어야 하니까요.”


그에 하령의 표정이 툭 풀렸다.


짐짓 화난듯 찡그리고 있던 표정이 펴진다. 스승이라는 소리가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살풋 올라가는 것이 백연의 눈에는 보였으나, 모른 척 하기로 했다.


소년은 생각했다. 눈앞의 꼬마같은 외형을 지닌 성화방주가 어쩌면 외로움을 많이 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기나긴 세월을 살아왔다 했다. 시간을 세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누군가와의 약조를 입에 담았는데, 홀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약간이나마 마음이 동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금안나찰과의 일전에서 백연 자신을 한번 살려준 적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스승이라는 호칭을 입에 담은것도 어쩌면 그래서였는지.


“흠흠, 아무튼 내 몸은 직접 만든 인형 같은거야. 물론 지금 이렇게 혼백을 담고 있을때는 진짜 사람의 몸과 별 차이가 없고.”

“그 외형을 하고 있는것에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 외형? 아, 이건......”


하령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간단한 이유야. 혼백이 다른 몸으로 전이되었을 때 그 몸이 과거의 것과 너무 차이가 크다면, 영성이 불안정해져.”

“그렇단 말은......”

“응. 이건 그냥 내 과거의 모습이야. 맨 처음, 이 술법무공을 처음으로 시전하기 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대로였어.”


긴 이야기가 끝났다. 모든 의문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지만, 언젠가 자신에게 술법을 배우면 그때 전부 들려주겠다는 하령의 말에 넘어가기로 하였다.


여태껏 미미하게 지니고 있던 긴장감도 완전히 해소되었다. 백연은 다 식은 차를 홀짝거리며 몇가지 궁금한 것을 더 물었다.


“혼백 전이의 술법은 하령만 알고 있는건가요?”

“확실하지는 않아. 아마 모산파와 제갈세가는 이 무공을 모를 가능성이 높지. 마교라면 몰라도. 아, 황실 무공서고에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황실에 말입니까?”

“거기는 없는게 더 적을거야. 이런말 하기는 그렇지만, 암야서고와 비견될 수 있을 정도지.”

“암야서고를 너무 고평가 하는 건......?”


가벼운 대화가 흘렀다. 소년이 차를 다 마실때까지였다. 하령의 기분이 어느때보다도 즐거워 보였다. 백연에게 전부 털어놓아서인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기를 한참.


탁.


백연이 마침내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럼.”


가볍게 흐르던 대화가 잦아들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미래에도 또 있을 것이다. 이제는 다른 이야기를 입에 담을때가 왔다.


“찾아오라 한 이유부터 들어볼까요.”


하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주의 미소가 가라앉았다.


“본론부터 들어갈게. 몇달 전, 네가 신강으로 갔을때 나는 방주 소집에 참석했어. 그건 알고 있지?”

“예. 하오문 수뇌부 전체를 소집했다고.”

“일단 기본적으로는 천주산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야. 용봉지회에서 금원방주가 일을 쳤고, 그걸 수습해야 했으니까.”


천주산의 일이 머리에 스쳤다.


금원방주. 만금장. 함정과 그에게 권격을 내치던 금원방주를 흔적도 없이 집어삼킨 거대한 폭발.


“금원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단은 금원방도 방주 대리가 맡고 있는 형태야. 조만간 자격이 갖춰지면 방주로 올라서겠지. 그런데 문제가 좀 있어. 금원방주가 살아있는 것 같아.”

“......살아있다고요?”

“어쩌면.”


놀랄만한 소식이었다.


금원방주가 휩쓸린 폭발은 분명 엄청나게 강력한 것이었다. 백연 자신도 창명류수검이 아니었으면 필히 죽었다. 폭발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졌음에도 그러했다. 헌데 방어초도 펼치지 않고 폭발에 휩쓸린 금원방주가 살아남았다니.


“근거가 있습니까?”

“금원방주의 기물인 은령팔환(銀嶺八環)을 회수하지 못했어. 흔적도 없었다고 하던데. 폭발 따위에 불타 없어질 물건이 아니니 누군가 가져갔다고 보는것이 합리적이야. 그리고 방주의 기물은 그 주인만을 따르지.”


금원방주의 손으로 자유로이 회수되던 은색 반지들을 떠올린 백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좋은 소식이군요.”

“이건 그다지 중요한 내용은 아닌걸. 다만 조심하라고 일러주는거야.”


찰나 하령의 얼굴에 걱정의 빛이 스쳤다.


“금원방주는 강하고 교활한 놈이야. 혹여나 너를 암습하기라도 하면......”

“걱정 마세요.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습니다.”


백연이 담담히 답했다. 잠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령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리고 다음 이야기가 좀 더 중요해. 문주가 공식적으로 후계 구도의 중재를 선언했어.”

“어째서 갑자기?”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있으니까. 문주의 속내는 잘 모르지만 더 이상 내부 다툼에 힘을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


합리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그다지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여태껏 방치해두다가 이리 움직인다고? 어쩐지 다른 이유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당장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문주가 내건 조건은 간단해. 최소 다섯개의 방이 의견 합치를 볼 것.”

“어렵군요. 이쪽은 두개나 설득해야 하는겁니까?”

“설득을 하든, 무력으로 굴복을 시키든 상관은 없지만, 여름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한다고 했어. 그리고 두개가 아니라 한개야.”


백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에 하령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하오문 칠방중에 총영방(摠營幇)은 총괄 단체의 성격이 짙어. 문주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도 하고. 그렇기에 어느 한쪽으로 구도가 쏠리면 그곳의 손을 들어줄거야. 그러니 한개만 설득해 네 방의 구도를 만들면 총영방까지 우리의 편이 되어주겠지.”

“그렇군요. 생각해놓은 방법은 있습니까?”

“몇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를 너한테 부탁하고 싶어.”


말하며 백연의 눈을 응시한다. 백연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조력 약조는 기본적으론 흑랑과 한 것이니 그 기회를 사용하는 건 아닐테고, 개인적인 부탁인가 보군요.”

“그렇게 되려나.”

“......들어보고 결정해도 되겠습니까? 당장 그리 여유로운 몸은 아니라서.”

“당연하지. 호북 운현(均縣)알지? 무당산이 있는 곳.”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리가 없는 것이다.


“그곳에 하오문 운현지부가 있어. 보통이라면 사파 문파인 하오문의 지부를 다른 구파도 아닌 무당파에서 눈 감아줄리가 없지만, 운현지부는 그 특수성 덕분에 무당파의 코앞에 자리잡을 수 있었지.”

“특수성이라 함은?”

“운현지부 지부장은 하오문 철야방(鐵冶幇)의 철야방주. 철야방은 더없이 뛰어난 야장들이자, 무당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방이야.”


하령의 투명한 시선이 백연과 마주쳤다.


“철야방을 설득해 우리측으로 합류시켜줄 수 있겠어? 대가는 제공할게.”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가 이전의 문제였다. 하오문 세력구도를 유리하게 끌어오는 것은 그에게도 중요한 일인 것이다. 더해 무당산 바로 앞에 위치한 지부라 하면 비무제전 기간동안 시도해 봐도 충분할 일이다.


“좋습니다.”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령이 생긋 웃었다.


“정말? 진짜 고마워.”


아이처럼 신을 내는 모습. 그러나 백연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럼 이제 대가에 대해서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백연이 몸을 숙였다. 다탁 위로 손을 모으면서였다. 고양이 같은 소년의 눈매가 생긋 휘어졌다.


“스승이 소중한 제자를 위해 어떤 엄청난걸 준비했나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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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철야방(8) +4 23.12.22 2,927 83 19쪽
141 철야방(7) +4 23.12.21 2,943 82 17쪽
140 철야방(6) +4 23.12.20 2,924 82 17쪽
139 철야방(5) +4 23.12.19 2,932 83 19쪽
138 철야방(4) +4 23.12.18 3,055 78 18쪽
137 철야방(3) +5 23.12.16 3,128 79 15쪽
136 철야방(2) +3 23.12.15 3,055 82 15쪽
135 철야방 +4 23.12.14 3,047 84 16쪽
134 재회(3) +5 23.12.13 3,139 86 19쪽
133 재회(2) +4 23.12.12 3,140 85 16쪽
132 재회 +5 23.12.11 3,235 8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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