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새글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9.20 18:19
연재수 :
365 회
조회수 :
1,824,057
추천수 :
36,042
글자수 :
2,700,996

작성
24.08.01 18:10
조회
1,424
추천
44
글자
17쪽

별하늘이 지는 밤에(2)

DUMMY

미친듯이 펄럭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메운다. 백연을 끌어안은 살막주의 호리호리한 신형에서 막대한 진기가 실타래처럼 풀려나오고 있었다. 그를 보며 백연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어떻게?”

“아, 좀 던져달라고 했습니다. 서방에서는 자주 부리던 묘기라. 높은 성채를 넘어가려면 이런 것 정도는 필수지요.”


생긋 웃은 살막주. 백연을 붙잡은 손길이 단단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하하고 있는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잠시간 살막주의 하얀 얼굴을 쳐다본 백연이 이윽고 되물었다.


“어검비행이라도 할 줄 아십니까?”

“그걸 실제로 할 줄 아는 사람이 존재합니까?”

“......허공답보?”

“한낱 살막주한테 너무 많은걸 바라시는군요.”


옅은 한숨을 내쉰 백연이 주변을 힐끗 돌아보았다. 이제는 구름보다 지평이 가까운 상황. 살막주에게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면 결국 운룡대팔식을 펼치기 위해 그릇을 깨야 할 상황이었다.


“대신, 이런건 있죠.”


하지만 그때쯤 품을 열심히 뒤적거리던 살막주가 무언가를 쑥 꺼내들었다. 커다란 천과 같은 물건이었는데, 실타래로 이어진 그것을 이리저리 굴리던 살막주가 손을 탁 튕기는 순간.


촤르르르르르르륵!


커다란 천이 바람을 받아 수배의 크기로 단번에 커져오른다. 허공을 따라 구름처럼 부풀어 오르는 천조각은 흡사 거대한 우산과 같은 형상이었는데, 그 사방을 따라 이어진 실타래는 살막주의 팔뚝에 단단히 휘감겨 있었다.


이어진 줄을 따라 솟구쳐 오르는 것은 살막주 본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진기.


그와 함께 떨어지던 그들의 속도가 삽시간에 줄어든다. 허공에 둥실 떠오르는 듯한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미친듯이 휘몰아치던 바람 소리조차 잦아드는 상황.


바람결을 타고 느릿하게 강하하는 풍광 속에서 살막주가 태연히 덧붙인다.


“서방 물의 도시에 의뢰를 처리하러 갔다가, 신기한 것의 설계를 보았지요. 어디서 뛰어내릴 일이 많은 처지라 한번 만들어봤는데. 마음에 드십니까?”

“......곧 찢어질 것 같습니다만.”

“아하핫.”


백연이 위를 힐끗 올려다보고는 옅은 기침을 뱉었다.


이어진 천조각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처럼 위태로웠으나, 그 사이를 살막주의 막대한 진기가 엮어 붙들고 있었다. 그의 힘을 생각하면 저걸 버티는 정도는 쉬운 일이겠지.


“후우, 쿨럭.”


백연이 연이어 기침을 뱉어냈다. 막 선천진기를 끌어올리려던 것을 멈추고서였다. 숨결을 따라 피가 한움큼 흘러나왔는데, 살막주가 그에 반응했다.


“괜찮......지 않군요. 이건.”


그의 가슴께를 살핀 살막주가 미간을 화악 찌푸렸다.


“이런. 큰 부상이군요. 빠르게 내려가서 조치를 취해야 하겠......”


살막주의 말끝이 흐려진다. 아니, 백연 자신의 정신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었다.


‘안되는데.’


선천진기를 일으키려던 것을 멈추고, 전투의 활력이 빠져나가자마자 정신이 침잠한다. 뒤늦게 밀려온 태허무극결의 반동과 종리군에게 입은 부상이 심대했다. 전신을 짓이기는 것 같은 무거운 통증 속에서 점차로 감각이 둔해진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솟구치던 용의 유해는 부서져 흩어지고 있으나 이제는 황실 군문이 문제였다. 종리군과, 저만한 군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한 손이라도 아쉬운 상황.


설령 나단의 군세가 합류했다고 해도 황실 군문의 세력을 상대로 승리하긴 어렵다. 적혈보의를 가지고 안전하게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허나 손끝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검파에 올려놓은 손이 스륵 미끄러진다. 움직이지 않는 몸 안으로 의식이 침잠하며 세상이 흐릿하게 일그러졌다.


한없는 고단함이 느껴졌다.


의식을 잃기 직전 마지막 순간 백연의 시야에 엿보인 것은 당황한 듯한 녹빛 눈동자와, 저편 아래에서 푸르게 솟아오르는 검왕의 진기 파문이었다.



※※※



가경(可驚)할 일.


조금 전의 상황이다.


솟구치는 거대한 적룡(赤龍). 꿈틀거리는 몸이 지반을 짓이기며 솟구치는 것이 가히 인세의 재해에 가깝다. 검을 한차례 크게 휘저어 종리군을 떨쳐낸 뒤 펼친 검왕의 푸른 검기에도 잠깐 주춤하고는 그대로 구름을 짓이기며 승천한다.


그 거침없는 전진을 따라잡은 유일한 사람은 별안간 허공에 이형환위(移形換位)의 잔상을 남기며 바람을 밟고 솟아오른 한 소년 뿐.


어검비행의 극치에 이르렀어도 따라잡지 못할 능공허도의 격이나, 그것을 보면서도 검왕은 옅은 기침을 뱉을 따름이었다.


저 적룡은 대적불가의 괴물이다.


이 순간 검왕마저 그리 느꼈다. 허나 저리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직전의 거대한 검기를 뽑아낸 여파로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중이었으나, 그는 이내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풍백.”

“예?”

“이 늙은이가 전력으로 저것을 막아보겠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별안간 모두의 음성이 잦아들었다.


화염을 휘두르던 우호법도, 풍신의 여파를 두른채 부서지는 대지를 밟아내던 풍백도, 혈귀들의 시체를 쌓아놓고 그 위에 창을 박고 앉아 핏물 배인 머리칼을 늘어뜨린 악예린도, 그리고 천하에 제일갈 궁격을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숨쉬듯 쏘아대던 종리군까지.


찰나.


모두가 보기전에 느꼈다.


경지에 오른 무인으로써 지닌 하나의 육감같은 반응.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감각으로써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뒤늦게 눈으로 인지한다.


허공을 따라 산산히 흩어지는 혈기(血氣). 이곳 미궁의 지저에서부터 창공까지 이어진 거대한 피구름이 바람결에 조각나 흩어지고, 그 가운데로 솟은 거대한 교룡의 형상을 한 백골이 일거에 쪼개진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창공 전체를 희끄무레하게 물들이는 검로(劍路).


마치 대기에 뇌전(雷電)으로 이루어진 용의 형상을 슥슥 그려낸 듯 한 풍광이다. 검 한자루를 붓 삼아 세상에 스스로의 심상을 새겨내는 경지.


“......무당의 말코 늙은이나 보여줄 칼질을.”


남궁산이 뇌까렸다.


경탄이 섞인 음성이 퍼져나가며 침묵을 깨었고.


“저건 위험하군.”


딱딱하게 굳은 낮은 음성이 검왕의 귓가에 틀어박혔다.


“거듭 고민하고 있었지만......”


그 음성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검왕이 시선을 돌리는 순간, 종리군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


여태까지와 완전히 다른 기세. 담담한 표정으로 적혈보의의 회수만을 우선시 하던 종리군이다. 검왕과의 교전에서도 크게 살초를 펼치는 기색은 없었건만, 이 순간부터는 아니었다.


“저자는 여기서 죽이는게 옳겠다.”


마치 죽음을 선고하는 듯한 음성. 그 순간 검왕의 신형이 일그러졌고, 다음 찰나 무한보의 경파를 폭풍처럼 휘감은 검왕은 종리군의 앞에서 검을 내리치고 있었다.


푸르스름하게 물든 무형검이 대기를 짓이기며 낙하한다. 허나 그 기세는 처음과 같지 못했다. 적룡의 승천을 저지하는 것에 너무 많은 진기를 쏟아부은 탓.


그 찰나, 종리군의 몸에서 휘황한 진기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왔다. 묵빛과 금빛이 섞인 강대한 갑주. 찰나지간에 궁사의 전신을 뒤덮으며 뿜어져 나온다. 그와 함께 종리군의 손에 들린 활 전체가 단숨에 묵빛 진기로 물들었다.


흡사 활 자체가 하나의 묵빛 강철로 화하기라도 한 듯이.


쩌저저저저정!


찰나에 여섯발이었다. 초근접 궁격. 본래라면 화살을 뽑아서 쏘아낼 수도 없는 시간이었으나, 쪼개진 간극 속에서 검왕은 보았다. 별안간 그의 코앞에 묵빛으로 허공을 쪼개며 나타나는 무수히 많은 화살들의 향연.


곧장 검왕의 무형검에 틀어박혔다. 강대한 발경력 여파가 투쾅-일어나며 무채색의 파문을 그려내었고, 그로 인해 검로가 틀어지며 남궁산의 천주검이 스치듯 종리군의 허벅다리를 지나쳤다.


쩌저정!


짧은 충돌 사이에 호신강기가 벼락처럼 일어나며 불티가 사방으로 튀어오른다.


검왕이 검격을 내치고, 빗나간 그 순간이었다.


쪼개진 간극 속에서도 극히 찰나에 불과하건만, 천하제일궁(天下第一弓)에게는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우우우우우웅-


묵빛으로 물든 활 시위에 검은 화살이 나타났다. 무형의 진기로 이루어진 화살 다발이 허공을 맴돌며 종리군의 주위에 둥실 떠올랐다.


동시에 선명한 의념이 투명한 물에 먹을 툭 떨군듯이 점차로 번져나갔다.


[일현파천궁(一弦破天弓).]


천하제일궁의 신공절학이 현현했고, 다음 순간 하늘과 땅을 잇는 검은 선이 새겨졌다.


‘빗나갔......!’


검왕의 시선이 곧장 솟구쳤다. 일격 여파가 대기를 짓이기는 모습. 그 속에서 허공을 걷던 소년이 몸을 급박하게 트는 것이 눈에 보였고, 다음 순간-


콰득.


두번째 묵빛 선율이 하늘에 뜬 푸른 별빛을 관통했다. 산산이 부서져 흩날리는 푸른 옷자락의 여파가 이곳까지 눈에 닿는다. 하지만 검왕은 곧장 깨달았다.


죽지 않았다.


그것을 방증하듯 떨어지는 백연의 몸에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을 인지한 즉시 검왕은 힘을 끌어내었고.


쿠구구구구구궁-!


그와 종리군의 머리 위로 막대한 압력이 곧장 현현했다. 제왕검형의 압도적인 광역 권역. 그 거대한 힘의 파문이 천하제일궁의 움직임을 잠시나마 봉쇄시킨다.


동시에 무형검을 회수하며 곧장 진격. 천주검에 칼날같은 바람이 깃들었다. 무색투명한 천풍검법의 칼바람을 그대로 내치기까지가 찰나.


쩌저저저정!


종리군과 검왕의 신형이 이지러지며 빠르게 교차. 뒤이어 허공에 떠오르던 무형의 화살들이 전부 일거에 분쇄된다.


“칼질은 그대가 한수 위임을 안다.”


발끝이 땅에 틀어박힌 순간 종리군이 뱉은 이야기였다. 여전히 담담한 시선으로 검왕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특유의 절도있는 분위기 만큼은 한결 같았다. 그의 몸을 따라서 넘실거리는 진기가 파도처럼 솟구친다.


“허나, 그것만으로 나를 막을수는 없다.”

“후학을 건드린 이의 말이라 그런지 들리지 않네만.”

“군문이 오고 있다. 여기에서 물러나면 그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텐데.”


검왕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대충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두르기까지가 찰나, 그 사이에 저편에서 솟구치는 풍신의 바람결이 느껴진다. 제왕검형과 천주검으로 종리군을 견제하면서도 검왕은 그에 힘을 보태었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소년을 붙잡기 위한 거대한 진기의 파문.


그때였다.


뿌우우우우우우-


웅대한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와 동시에 검왕의 시야 한켠이 별안간 붉게 물들었다.


직후 한줄기 붉은 유성이 대지에 떨어져 내렸다. 앞에 있는 모든것을 갈라버릴 듯한 막대한 보신경 경파. 더운 모래바람이 검왕의 얼굴을 스쳤고, 그의 앞에 서 있던 종리군에게 그대로 틀어박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대지가 출렁이며 신음한다. 찰나지간 종리군마저 미간을 좁히며 압도적인 보신경으로 거리를 벌릴 수 밖에 없는 일격.


치이익-


허공을 따라 희끄무레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사자같은 짙은 적발을 흩날리며 우뚝 선 거한이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하얀 벼락에게 약조한 바를 지키러 왔다.”


그와 함께 협곡으로 접어드는 기마 군세. 교룡이 승천하며 몸을 뒤튼 여파로 솟구쳐 오른 대지를 밟아내는 인마의 기척이 날랬다. 협곡의 사이를 틀어막으며 전진하는 군세의 진격. 그 숫자가 백여기가 넘는데, 각기 뿜어내는 기세마저 남달랐다.


동시에 허공을 따라 백연을 붙잡으며 떨어지는 누군가의 모습마저 엿보인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검왕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대막의 왕이시오?”

“그리 되었다. 중원인. 네가 그 푸른 검인가보군. 전황이 어떻지?”

“목표한 바는 확보했소만, 백연은 전투불능이오.”

“......솟구치는 용을 보았다. 그걸 막은건가?”


검왕은 짧게 끄덕여 답을 대신했다.


그때 바람을 휘감은 외팔의 검객이 그의 옆에 내려앉았다. 내뱉는 음성이 담담했다.


“군문입니다.”


한치의 의심도 없는 목소리. 직전 협곡 너머에서 몰려오는 무리들을 확인한 풍백이었다. 그가 군문이라고 말했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장수들도 있는가?”

“네.”

“사방장군은......”

“그들은 없습니다. 하지만 만호(萬戶) 둘을 비롯해 장성의 일대를 수호하는 백전노장들이 대부분에, 근래 전공을 크게 세웠다는 남당(南塘)도 동행한듯 보입니다.”

“......남당 척계광이?”

“사방장군을 제외하고 황실이 즉각 투입할 수 있는 최정예라 봐도 좋습니다.”


거기에 더해 저편에 고고히 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종리군까지다. 이제는 이쪽을 응시하며 진기를 끌어올리고 있는 모습.


‘저자에, 군문의 세력까지 도착한다면.’


이곳이 바로 장성이다. 그리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남궁산은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황상은 대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 무엇을 원하기에 신음하는 민초들을 버리고 이리 맹목적으로 움직이는가.


허나 그것은 남궁산이 알 수 없는 일일 터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다만 방금 전 보았던 일검에 희망을 걸 따름이니.


“대막의 왕. 그대가 이끌고 온 병력은 얼마나 강하오?”

“......방금 전 내가 들은걸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들을 상대로는 시간 끌기밖에 안된다. 우리의 주력은 아직 멀리 있다. 검은 성도에 이르러 소식을 듣고 날랜 이들만을 뽑아 급박하게 전진했지. 아륵탄이 길을 내준게 아니었다면 더 지체되었을 것이다.”

“아륵탄은 움직이지 않았소?”

“그도 이변을 눈치채고는 채비를 하고 있더군. 허나 본인이 직접 성도를 비울 생각은 없어 보였다.”


검은 성도에서의 지원은 기대하기 어렵다. 검왕은 그리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퇴각은 가능하겠소?”

“퇴각......?”

“부상자를 데리고, 저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겠냐는 물음이외다.”


검왕은 나직한 음성으로 나단을 향해 물었다. 그에 나단이 입매를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다. 우리 전사들의 기마술은 너희 중원인들보다 배는 날래고, 검은 성도의 근처에 이르면 우리의 주력이 기다리고 있으니 충분하다.”

“하지만, 저자를 막지 않으면 퇴각은......”


풍백이 말끝을 흐렸다. 그의 시선이 저편에 고고히 선 천뢰시 종리군을 향했다.


북방의 도지휘사. 그의 궁격 사거리에는 제한이 없다 봐도 좋았다. 아무리 대막의 기마군세라 해도 저자가 자유로이 풀려나 있다면 도주란 불가능하다. 종리군의 시야에서 벗어나 도망치기 전에 반수 이상이 학살당할 터.


화살 한발로 성벽을 붕괴시키는 괴물의 일격이다. 말들이 지나칠 대지에 마구 궁격을 투사하는 것 만으로 지반을 뒤집어버릴 수 있을 터인데, 그렇게는 도망칠 수 없다.


허나 검왕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말게.”


그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나단과 풍백을 뒤로하며 내딛는 걸음이었다.


쿠웅.


그의 주변으로 펼쳐진 제왕검형의 여파에 대지가 쩌적 갈라지며 신음했다. 푸른 무형검을 비스듬히 늘어뜨린 검왕의 옆으로 낡은 철검이 둥실 떠올랐다.


“아이의 신변을 확보하는 순간 퇴각해주시오. 전력으로.”

“잠깐, 설마 검왕께서......”


풍백이 무언가를 느낀듯 덧붙이려 했으나, 검왕은 한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이 늙은이도 그대들이 없는게 편하겠네.”


허허로이 웃음기마저 섞인 음성. 터벅터벅 걸어나간 검왕의 등이 가벼웠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하단전을 따라 깨진듯 일그러진 진기의 파동이 물결처럼 번져나왔다.


그와 동시였다.


“장군!”


쿠구구구구구-


대지가 진동하는 울림과 함께 협곡의 너머로 수많은 인마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비스듬히 무너진 용해곡의 절벽 위를 따라 도열한 군문의 병사들이 기백에 달했다.


그 앞에 선 장수들의 면면을 본 검왕이 천천히 웃음을 지었다. 어느 순간 무형검 천주(天柱)를 비스듬히 치켜든 채로였다. 찰나 그의 몸을 따라 푸르게 물결치는 진기 파동이 사방으로 투확-번져나갔고.


“손속에 여력을 둘 생각이 없으니, 휘말리지 않게들 조심하시게.”


투쾅!


단숨에 대지가 쪼개졌다. 제왕검형의 권역이 휘몰아치며 압축되더니, 단박에 사방을 뒤덮으며 펼쳐졌다. 그 여파로 인해 지반이 쿠궁-하며 일장 가까이 가라앉았다. 어느 순간 밖으로 보신경을 펼치려던 종리군마저 제자리에 묶어버리는 가공할 권역의 힘.


쩌적-


느릿하게 일어서는 종리군의 발 아래 대지가 천천히 쪼개지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초월적인 압력을 육신으로 견뎌내며 일어선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단신으로 군문을 상대하겠다?”

“틀렸네. 내가 군문을 상대하는게 아니라.”


검왕이 허허로이 웃었다. 별안간 횡격으로 일어난 시퍼런 검로를 앞에 두고서였다.


“군문이 나를 상대하는 것이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곤륜환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39 임전(2) +5 24.08.17 1,191 39 12쪽
338 임전 +6 24.08.16 1,215 38 14쪽
337 결집(4) +5 24.08.15 1,181 43 13쪽
336 결집(3) +6 24.08.14 1,242 42 13쪽
335 결집(2) +6 24.08.13 1,302 41 16쪽
334 결집 +5 24.08.12 1,310 38 14쪽
333 격랑(激浪)(6) +3 24.08.10 1,379 42 15쪽
332 격랑(激浪)(5) +6 24.08.09 1,380 38 14쪽
331 격랑(激浪)(4) +5 24.08.08 1,317 39 14쪽
330 격랑(激浪)(3) +4 24.08.07 1,376 39 15쪽
329 격랑(激浪)(2) +7 24.08.06 1,352 44 16쪽
328 격랑(激浪) +6 24.08.05 1,366 43 15쪽
327 별하늘이 지는 밤에(4) +6 24.08.03 1,421 44 12쪽
326 별하늘이 지는 밤에(3) +5 24.08.02 1,342 43 13쪽
» 별하늘이 지는 밤에(2) +6 24.08.01 1,425 44 17쪽
324 별하늘이 지는 밤에 +6 24.07.31 1,463 45 15쪽
323 용살(龍殺)의 검(4) +8 24.07.29 1,573 45 20쪽
322 용살(龍殺)의 검(3) +8 24.07.27 1,440 46 13쪽
321 용살(龍殺)의 검(2) +5 24.07.26 1,434 44 18쪽
320 용살(龍殺)의 검 +6 24.07.25 1,428 45 14쪽
319 초월(4) +5 24.07.24 1,436 42 13쪽
318 초월(3) +6 24.07.23 1,400 43 15쪽
317 초월(2) +7 24.07.22 1,481 40 14쪽
316 초월 +8 24.07.20 1,486 45 17쪽
315 용해곡(龍骸谷)(7) +7 24.07.18 1,565 47 17쪽
314 용해곡(龍骸谷)(6) +6 24.07.17 1,444 42 14쪽
313 용해곡(龍骸谷)(5) +6 24.07.16 1,422 43 14쪽
312 용해곡(龍骸谷)(4) +5 24.07.15 1,443 43 13쪽
311 용해곡(龍骸谷)(3) +6 24.07.13 1,574 48 14쪽
310 용해곡(龍骸谷)(2) +3 24.07.12 1,523 40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