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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000 님의 서재입니다.

염전노예에서 재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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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000
작품등록일 :
2024.06.15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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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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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직업의 의미

DUMMY

* * *


“아들의 아이디어를 알아본 유일한 사람이자 아들을 위해 장사꾼이 된 남자의 이야기라······. 나쁘지 않은데?”


김춘식은 내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거리며 어마어마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런데 정말로 일회용 비닐 우산집이라는 게 돈이 될까?”


소설 속 주인공처럼 장사꾼이 되어 큰돈을 만지겠단 꿈도 생긴 것 같았다.


“글쎄요. 근데 있으면 좋을 것 같지 않나요?”

“글쎄다. 그냥 우산꽂이에 있는 거 아무거나 들고 나오면 되는 거 아닌가?”


그보단 악마의 사고방식으로는 ‘일회용 비닐 우산집’의 가치를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일회용 비닐 우산집의 상품성이 뛰어나든 뛰어나지 않든 도둑놈이 되느니 비를 맞겠다. 도둑놈을 잡을 수 없다면, 도둑놈에게 도둑질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 부모는 아들을 믿어주고 밀어주는 사람이다. 이런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면 되는 거 아닌가요?”

“훗, 그래. 소설은 그래야지. 상품성도 있어 보이긴 해. 비닐이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겠어. 우산 잃어버렸다고 징징거리는 놈들한테 시달릴 대로 시달린 업주들이라면 푼돈을 아끼진 않겠지.”


김춘식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미 작가가 됐다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나라에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열린 덕분에 ‘일회용 비닐 우산집’을 수출할 기회를 잡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만, 소설이니까 안 될 것도 없지. 아니, 소설이라면 그래야지. 한국인이 쓴 소설에선 미국인보다 한국인이 최고여야지!”


‘일회용 비닐 우산집’이라는 소설은 단순히 이놈을 내 개로 만들기 위한 수가 아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이 게임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수다.

내 편지를 받은 아줌마가 내 기대를 저버리더라도 다른 플레이어를 통해 이놈과 이 섬의 악마들을 처단하기 위한 수인 것이다.

이 글이 내가 기대하는 만큼의 인기를 끌지 못하면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될 수도 있지만, 84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된다면 글의 인기와 상관없이 내 글이 화제가 될 수 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84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개최를 예언한 소설이 있단 사실을 방송사 보도국에 전화만 넣어도 될 것이다.

그럼 알아서 화제가 될 거고, 뒤늦게나마 베스트셀러 넘어 밀리언셀러가 될지도 모른다.


“알아보니까 12월은 되어야 신춘문예가 시작된다더구나. 12월에 접수를 받고 3월에 수상작을 발표해서 신춘문예라더군.”

“네.”

“그때까지 한가하게 놀고먹을 생각하지 말고 부지런히 써. 최대한 빨리 끝내란 말이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작가가 되겠다는 놈이 글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 정도로 생각하는군.


“네. 최대한 빨리 써볼게요.”


맞기 싫으면 어떻게든 해야지.


“라디오국에 보낸다는 사연은 어떻게 되고 있지?”

“운동기구를 만드는 사연을 써보면 어떨까 해요.”

“운동기구를 만드는 사연?”


보신탕을 먹던 김춘식이 깜짝 놀라 보신탕을 먹다 말고 나와 눈을 맞췄다.


“갑자기 그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지?”

“운동을 하고 싶은데 운동을 할 수가 없거든요.”

“뭐?”

“팔굽혀펴기를 하고 싶은데 팔굽혀펴기를 할 수 없다고요. 그나마 팔굽혀펴기는 무릎을 바닥에 대고 하면 어찌어찌할 수 있는데, 턱걸이는 매달리는 것조차 버거운 탓에 몸을 위로 올리기도 전에 떨어지죠.”

“그래서?”

“도르래를 이용해서 저 같은 놈도 턱걸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운동기구를 만들면 어떨까 해요.”


이놈에게 맞지 않고 운동기구를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봤다. 눈치 보지 않고 운동도 하고 싶고 말이야.


“하하, 내가 너 병신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병신인 줄은 몰랐다. 이놈아, 남자라는 새끼가 턱걸이도 못 하는 게 뭐 자랑이라고 동네방네 떠들려고 하냐? 네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쓰레기통에 버려질 사연이야! 사람들은 턱걸이도 못 하는 병신의 발버둥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당뇨 돼지처럼 팔다리는 얇고 배만 튀어나온 너부터가 턱걸이를 못 할 것 같은데, 못 하는 소리가 없군.


“소설을 쓰는 재주는 있는데, 라디오국에 보낼 사연을 쓰는 재주는 없는 것 같구나.”

“턱걸이를 하는 여자는 얼마 없는 거잖아요.”

“뭐?”

“아빠처럼 턱걸이를 하고 싶었다고 했더니 엄마가 여자는 턱걸이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아빠가 여자도 턱걸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운동기구를 만들어주셨다. 이 운동기구 없이도 턱걸이를 할 수 있게 되면 더 좋고 재밌는 운동기구를 만들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하하, 거짓말을 하자?”

“다 거짓말일 순 없죠.”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전 국민이 라디오국에 사연을 보내는 거잖아요. 나무로 운동기구를 만들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사진 정도는 동봉해야 뽑아주지 않을까요? 이번엔 또 어떤 운동기구를 만들었나 궁금해서 계속 뽑아줄지도 모르죠. 운동기구를 파는 매장이 없는 섬이라 운동기구를 나무로 직접 만들었다는 것도 이 사연을 뽑아야만 하는 이유일 거예요.”

“오······.”

“무엇보다 DJ와 PD가 여자라면 ‘여자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사연을 절대 외면할 수 없을 겁니다.”

“하하, 좋은데?”


일단 작전 성공이다.


“그런데 진짜 만들 수 있겠냐?”

“만들어야죠. 다시 염전에 가서 소금 나르기 싫으면.”

“훗, 그래. 어디 한번 잘 만들어 봐라.”


김춘식은 내 계획도 계획이지만, 내가 정말 이 계획을 실현할 만한 인물인지가 궁금해 미치겠는 표정을 지으며 보신탕을 한술 떴다.


“그런데 원래부터가 이렇게 재주가 많았던 거지?”

“네.”

“그런데도 이제야 재능을 드러낸 건 왜지? 왜 1년 넘게 병신처럼 소금만 만들다 인제 와서 글을 쓰겠다 운동기구를 만들겠다 나대는 거지?”


2년은 안 됐단 거군. 다행이다.


“그럴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말을 할 수도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었죠.”


이 섬에서 지낸 시간과 상관없이 힘을 안 숨긴 찐따 노릇을 하기엔 몸뚱이가 너무 어리지만, 사람은 믿고 싶은 걸 믿게 돼 있다.


“정확히는 말할 기회를 기다려야만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더 맞기 싫었으니까요. 그런데 1년 만에 깨달았어요. 기회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구나.”


이 게임 자체가 포인트로 시간과 재능을 사 세 살배기 꼬마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천재가 되는 게임이다.


“생각해 보니 그렇군.”


그런데 이게 과연 단순한 게임일까?


“하긴 조상님들은 너만 할 때 결혼하고 애까지 키웠지. 아무튼, 잘해봐라. 나무는 산에 있고 공구는 저기에 있다.”


게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통증 때문이 아니라 내가 현실에서 마주쳤던 인간들보다도 더 인간 같은 한 명 한 명의 몬스터들이 이 세계가 게임이라는 걸 의심하게 한다.

이건 어쩌면 이 게임을 만든 회사의 말대로 인간들이 뿌리내릴 새로운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너, 개를 좋아하는 거냐?”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먹기 싫으면 먹지 마.”


김춘식이 내 앞에 놓여 있는 보신탕 그릇을 자기 앞으로 가져갔다.


“말만 잘 들으면 사료 정도는 사주마.”


일종의 당근인 건가?


“진짜로 네 사연이 뽑히고 내가 작가가 된다면 네가 갖고 싶은 개를 사주지.”


당근이라기보단 내 개를 볼모로 잡고 싶은 모양이다.


“네.”


말을 안 들으면, 기대를 저버리면 내 개를 또 보신탕으로 만들어버리겠단 거지.


“일단은 염전에 묶여 있는 개를 주마.”


쳇,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직업-대필작가가 되었습니다.]

[1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총 포인트 200,142]


잠깐만,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강민이 성적을 올려주면 닭을 주실 수도 있는 건가요?”

“또 선을 넘는군.”

“닭이 힘들면 병아리라도 계란이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

“하하, 그래. 그 정도는 주마.”


[직업-가정교사가 되었습니다.]

[1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총 포인트 200,242]


돈을 받는 직업을 갖게 되면 100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뭐 이런 건가? 정말 그렇다면 좋군.


* * *


김춘식은 약속대로 염전에 묶여 있던 개를 나에게 줬다. 나는 이놈에게 ‘사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박하사탕처럼 하얀 털의 개라서였다. 그리고 열심히 훈련시켰다. 진돗개의 피가 흐르고 있는 놈이지만, 진돗개의 지능만 물려받고 고집은 물려받지 않은 듯해 훈련이 어렵진 않았다.


“우리 집에 있는 개도 이놈처럼 앉으라고 하면 앉고, 손을 주라고 하면 손을 줄 수 있는 거야?”


마을 사람들은 내 개의 개인기를 신기해하는 한편 생김새만큼은 비슷한 자신의 개도 내 개처럼 개인기를 하길 바라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아이들이 그랬다.


“어.”

“그럼 내 개도 훈련시켜줘!”


나와 비슷한 체구의 남자아이가 자신의 개를 부탁했다.


“너희 집에 있는 대패를 빌려주면 내 개처럼 앉아 정도는 할 수 있게 해줄게.”

“진짜?”

“어.”

“잠깐만 기다려!”


[1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총 포인트 180,342]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산책을 시키고 훈련을 시켰을 땐 아무런 포인트도 받지 못했지만, 고작 대패를 빌려주는 보상임에도 일단, 대가를 받겠다고 하니 직업을 얻었다는 메시지가 뜨면서 100포인트가 들어왔다.

그런데 같은 훈련사라고 해도 급이 있다.

대패 대여 정도가 아니라 개통령이라 불리는 애견훈련사만큼의 돈을 받을 수 있는 훈련사가 된다면 더 많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무조건 그럴 것 같다. 포인트 상점부터가 일반, 희귀, 초월, 전설, 신화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무엇보다 이제 더는 목공 기술에 100시간의 노력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게 그 증거다.

더 높은 목공 기술의 경지는 있어도 일반 등급의 아이템으로는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거다.

정확한 건 더 실험을 해봐야겠지만, 노예 신분이라 마음대로 몸값을 올릴 수 없어 쉽지 않다. 혹시나 기회가 된다면 꼭 실험해 봐야겠다.


“내 개도 맡아줘!”

“안 돼.”

“왜?”

“일이 많아. 나무도 하러 가야 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바쁘다고.”


기회는 생각보다 금방 찾아올 것 같다.


“그러지 말고 맡아줘. 나는 대패를 줄게!”

“그거 네 거 아니잖아.”


아이들은 나 이상으로 개에, 훈련에 관심이 많아 보이니까.


“여기!”

“사료랑 개 갖고 와. 그럼 훈련시켜줄게.”

“사료?”

“사료가 있어야 훈련을 시킬 수 있어. 앉으면 사료를 먹을 수 있다는 걸 학습시켜야 하는 거라고.”

“아······. 근데 우리 집에 사료 없는데?”

“없으면 사와. 아니면 나처럼 닭 잡아서 주다 얻어터지든가.”


아이에게서 대패를 받아 나만의 작업실로 향했다.


“이, 이러는 법이 어딨어! 대패 빌려줬잖아!”

“다시 가져가든가.”


사실 대패는 배불뚝이 집에도 있다. 단지 실험하고 싶었을 뿐이다. 보상을 받고 일을 하면 직업을 획득할 수 있는지, 계약이 무산되면 포인트가 회수되는지.


[총 포인트 180,342]


포인트는 회수되지 않았다. 당장은 계약이 엎어졌지만, 내가 돈을 받고 훈련시켜준다는 사실은 확실해서인 모양이다.

그럼 이제 희귀 등급의 상점엔 어떤 아이템이 있는지 알아볼까?


[희귀 상점 이용권을 구매했습니다.]

[이제 희귀 상점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총 포인트 170,342]


희귀 상점에 들어가자마자 내 시선을 확 잡아당기는 아이템이 보였다. 무려 100만 포인트짜리 아이템 ‘한계 돌파’였다.


[한계 돌파 – 일반 기술의 숙련도를 희귀 등급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해줍니다.]


남은 포인트로 초월 상점 이용권을 사려고 했는데, 100만 포인트를 모을 때까진 참아야겠다.

어차피 초월 상점에 있는 물건을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제대로 된 운동기구를 만들기 위해선 ‘한계 돌파’ 아이템이 먼저니까.

문제는 희귀 등급의 기술을 연마하는 데 필요한 100시간의 노력은 일반 상점에서 파는 100포인트짜리 아이템이 아닌 희귀 상점에서 파는 1,000포인트짜리일 것만 같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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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최측의 의도 24.06.26 106 4 12쪽
3 아버님,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24.06.26 119 4 13쪽
2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노예 24.06.25 161 9 13쪽
1 염전에서 탈출하시오 +2 24.06.24 23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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