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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게임 : 염전노예에서 재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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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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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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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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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주최측의 의도

DUMMY

* * *


머리 나쁜 여덟 살 아이를 가르친다는 건 내 생각 이상으로 고달팠다.


“apple에서 a는 애인데 aqua에서 a는 왜 아야?”

“그냥 외워.”

“응!”


그래도 공부에 대한 열의가, 정확히는 이해를 생략한 암기로라도 바보 딱지를 떼고 싶단 마음이 대단해 가르칠 맛은 났다.

어쨌든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를 외우는 녀석 정도는 됐으니까.


“그런데 넌 왜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해?”


이런 놈의 태도가 지레짐작하고 있던 놈의 속내는 물론, 놈의 모든 것을 궁금하게 했다.


“나만 모르는 게 많거든. 나만 바보거든. 바보랑은 안 놀아주잖아.”

“1학년이 너 하난가?”

“응.”


선생을 욕할 게 아니었다.


“1학년이니까 이런 거 몰라도 되는데. 내가 놀고 싶은 건 여기엔 없는 1학년이 아니라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형, 누나들이거든.”

“열심히 해야겠네.”

“응. 열심히 해야 돼. 근데 난 바보라서 열심히 해도 안 되더라. 찬영이 형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했는데 가만히 있어도 바보라는 건 숨길 수가 없어.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가만히 있으면 그냥 바보거든. 몰라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


이놈은 나라는 장난감을 동원해서라도 섬의 아이들과 섞이고 싶었던 걸까?


“그래도 바보라는 건 숨겨야 하니까. 질문을 못 하겠어, 선생님한테도 형들한테도.”


사흘만 당해서일까? 아주 잠깐이지만, 동정심이 치솟았다.


“그런데 네가 형, 누나들처럼 방정식을 풀고 영어를 읽을 수 있게 된다고 형들이 너랑 잘 놀아줄까?”

“아닐까?”

“난 싫을 거 같아.”

“왜?”

“사람들은 바보보다 천재를 싫어하거든.”


솔직히 그냥 네가 싫은 걸 거다. 사자가 풀을 뜯지 않듯 10대는 아무리 심심해도 여덟 살 아이와 소꿉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거지.


“그래도 나 천재 할래!”

“해. 도와줄게.”


아주 바보는 아닌 모양이다. 자기가 뭘 해야 하는 건지 정확히 알고 있다. 하긴 학교 다니기 전부터 또래 아이들의 무시를 당하며 살았을 녀석이 이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를 발로 찰 리 없다.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알 수밖에 없지. 게다가 이놈은 평범한 여덟 살이 아니라 수년 동안 짝사랑을 하다 만신창이가 된 놈이다. 복수심이 없으래야 없을 수 없다는 거지.

마침 나라는 무기를 동원하면 자기를 무시했던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다.

놈이 이걸 안다.


“그런데 형, 그림도 잘 그리나?”

“어.”


여덟 살 꼬마보다야 잘 그리겠지만, 그림에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니다. 고등학교 미술 수행평가에서 간신히 B를 받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자신있게 잘 그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이 게임의 시스템을 이용한다면 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못돼도 이 세계에서 가장 잘 그린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될 수 있어서다.

이 세계에선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받은 포인트로 재능을 살 수 있으니까.

물론, 염전 탈출 보상으로 받은 100 포인트로는 어림없다.

일반, 희귀, 초월, 전설, 신화로 분류된 상점 중 최저 등급인 일반 상점에서 가장 싼 ‘100시간의 노력’이 100포인트다.

자세한 건 사봐야 알겠지만, 설명을 보니 ‘1만 시간의 법칙’에서 착안한 아이템인 모양이다. 한마디로 1만 시간의 법칙대로라면 저걸 100개를 사야 화가 수준의 그림 실력을 갖출 수 있는 모양이다.

나한텐 쉬웠지만, 누군가에겐 불가능했을 염전탈출의 보상으로 고작 100시간의 노력을 사는 게 끝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정하다.

어쩌면 현실보다 이 세계가 더 불공정할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주최측이 주는 퀘스트에 걸린 보상은 그저 그래 보이지만, 나를 지켜보고 있는 VIP들이 주는 퀘스트의 보상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래야 보는 맛이 있을 테니까. 역배가 터지는 맛도 있을 거고.

문제는 나를 지켜보고 있는 VIP들이 없다는 거지.


[관전 중인 VIP : 0]


안타깝지만, 염전노예의 삶이 궁금한 VIP도 승승장구를 바라는 VIP도 아직은 없는 모양이다.


[남은 플레이어 : 82]


불안한 건 또 플레이어가 셋이나 줄었다는 거다. 정말 사형수나 시한부에게 빙의라도 했던 걸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빨리 18명이나 되는 플레이어가 사라졌을 리 없다.

정말로 플레이어들끼리 서로 죽이는 중인 걸까?

어쩌면 염전노예가 된 건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당분간 플레이어들한테 죽을 일은 없다는 거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섬을 탈출하라는 퀘스트가 참 가혹하게 느껴진다.

얼른 진짜 전쟁터로 가라는 거잖아.

확실히 주최측의 퀘스트는 VIP들의 유희에 초점이 맞춰진 모양이다.


“나, 그림도 가르쳐줄 거지?”

“어.”

“그럼 우리 이제 그림 그리자!”


복수심의 크기가 어떻든 여덟 살의 몸과 마음으론 한 번에 2시간 이상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래. 그리자. 그런데 그림 실력은 단번에 늘지 않아.”

“그럼 더 많이 그려야겠다!”


요령을 부리는군.


“땡.”

“왜!”

“내가 독후감 쓸 때 뭐라고 했지?”

“뭐라고 했어?”

“남들과 다른 감상.”

“아, 맞다!”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남들과는 다른 그림?”

“딩동댕.”


내 첫 직장은 학원이었다.

나쁘지 않은 머리와 공부를 해야만 하는 고아인 덕분에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었고. 돈을 벌어야 했기에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학원강사가 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보다 학원강사를 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었다.

나름 잘나갔었다. 재밌는 강의를 하는 강사도 알찬 강의를 하는 강사도 아니었지만, 학생들의 성적은 많이 올려줬으니까.

비결은 하나였다. 예상 문제의 적중률. 괜히 일타들이 나를 조교로 탐낸 게 아니었다.


“과학 상상화 숙제가 있지?”

“네!”

“뭘 그릴 거지?”

“우주도시요!”


그럴 줄 알았다.


“너처럼 우주 도시를 그릴 사람이 몇 명일까?”

“음······. 전부?”

“전부는 아닐 거야. 해저도시를 그리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아, 맞다!”

“뭘 그려야 될까?”

“뭘 그려야 돼요?”


나는 지금도 재밌는 강의를 할 수 있는 강사도 알찬 강의를 하는 강사도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예상 문제의 적중률이 높은 강사다.


“스마트폰을 그려보자.”


내신 문제는 물론, 수능 문제도 적중시키는데 시골에 있는 초등학교의 미술 숙제에 담긴 의도 정도는 껌이지.


“네?”

“컴퓨터와 전화기를 합쳐놓은 물건이지. 그런데 작아. 다이얼도 키패드도 키보드도 없지.”


1973년 4월 3일. 마틴 쿠퍼가 최초의 핸드폰을 발명했다. 벽돌처럼 커다란 핸드폰이었지만, 핸드폰답게 무선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전 세계인이 깜짝 놀랐다.


“과학 상상화는 잘 그리는 것보다 아이디어가 중요해.”


김강민의 나이가 고작 여덟 살인 건 어마어마한 호재다.

과장 조금 보태 20세기 최고의 SF 드라마로 23세기를 배경으로 한 ‘스타 트렉’에 나오는 핸드폰 비슷한 ‘커뮤니케이터’의 디자인이 피처폰에 불과하다는 건 횡재다.

이놈의 과학 상상화가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작가의 상상력을 뛰어넘었다는 거니까.


“아이디어야말로 부족한 네 그림 실력을 포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야.”

“어떻게 생긴 거예요?”

“그냥 손바닥보다 작은 직육면체야. 그런데 이 작은 직육면체에 카메라가 들어있고 컴퓨터가 들어있고 전화기가 들어있지.”

“카메라가 달린 전화기면 목소리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얼굴도 볼 수 있는 거예요?”

“당연하지.”

“그런데 다이얼이 없는데 어떻게 전화를 걸어요?”

“번호를 누르고 싶을 때 화면을 누르면 키패드가 뜨거든. 이 키패드로 번호를 입력하고 문자를 입력할 수 있지.”

“와······.”


설명이 많이 필요한 그림이라는 점에서 대상감은 아니지만, 절대 뻔하면 안 되는 ‘과학 상상화’라는 주제를 토대로 뻔한 그림만 심사하던 이의 눈을 아주 제대로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면 되는 거죠?”

“아니.”

“그럼요?”

“스마트폰만 그려.”


네 조악한 그림이 스마트폰이라는 아이디어를 감히 깎아내릴 수 없게.


“그, 그러다 혼나면 어떡해요?”

“누가 널 감히 혼낼 수 있을까?”

“선생님이요.”

“네가 ‘일회용 비닐 우산집’이라는 발명품을 만들어낸 천재라는 걸 아는 선생님이?”

“아, 안 혼날까요?”

“당연하지. 오히려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을 거야. 이게 도대체 뭐니?”


아직 이놈의 담임을 만나진 못했지만, 그려진다.

굳이 분교에 있는 초등학생들에게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가르치고 2차 방정식까지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자존심과 지적 허영심이 어마어마할 거다. 아무리 좋게 말하려고 해도 결국 현학적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스마트폰이라는 아이디어를 절대 지나칠 리 없다.

무조건이다. 일타를 압도하는 적중률을 자랑하는 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아마 시험문제도 쓸데없이 어렵게 내고 있을 것이다.


“그럼 또박또박 말씀드려. 스마트폰이 뭔지.”

“네!”

“어떻게 10개의 숫자판이 스물네 개나 되는 한글을 담을 수 있는지도.”

“10개의 숫자판이 스물네 개의 한글을 담는다고요?”


욕심만큼은 출세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도 천지인 키보드의 가치 정도는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문제는 과연 이게 옳냐는 거지.

천지인 키보드라는 천기누설이 나를 열아홉 번째 탈락자로 만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도박을 아예 안 할 순 없다.

VIP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나를 제외한 81명의 플레이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주최측과 VIP들이 준 퀘스트를 수행하며 포인트를 얻고 이를 통해 상점의 온갖 것들을 사고 있을 테니까.

사실 진짜 무서운 건 상점을 통한 성장을 압도할지도 모를 이 세계의 돈과 권력일 거다.

한마디로 나는 도태되고 있고 다른 이들은 발전 중이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건, 복권 당첨자들이 가장 먼저 바꾸는 게 배우자라는 것 정도다.

솔직히 복권 당첨 이상이지. 말이 게임이지 여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곳이자 현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이다. 지금은 이 천국을 무너뜨리고 현실로 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점점 사라질 것이다. 게임을 끝내는 게 무서워질 것이다.

게임을 끝내지 않기 위해 서로를 도우려고 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 걸었다.

마침 이 세계는 미래 지식과 시스템만으로는. 혼자 힘만으로는 정복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이 세계는 회빙환 소설의 세계와 똑같을 수 있어도 우린 회빙환 소설의 흔한 주인공이 아니니까.

고작 사흘이지만, 깨달았을 거다. 회빙환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사라진 열여덟 명의 플레이어는 플레이어가 아닌 이 냉혹한 세계에 치여 사라진 걸지도 모른다.

좀비물의 진짜 빌런이 사람인 것처럼 이 세계의 진짜 빌런은 플레이어가 아닌 이 세계의 사람들일 테니까.

애초에 나 포함 이 게임이 아니었으면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았을 플레이어가 대부분이다. 게임과 상관없이 자본주의의 포식자들한테 이보다 좋은 먹잇감이 또 있을까?

돈이 돈을 번다고? 그래. 확실히 그렇다. 그런데 돈은 냄새를 풍긴다. 이 냄새가 사기꾼을 부르고 주인을 질식시킨다.

나도, 다른 플레이어들도 동료가 필요한 것이다.

도저히 꼬이지 않는 VIP를 꼬시기 위해서라도 이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한편 다른 플레이어들 주변을 알짱거릴 필요가 있다.

다만, 목숨이 하나니 대리인은 세워야겠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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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버님,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24.06.26 42 2 13쪽
2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노예 24.06.25 60 6 13쪽
1 염전에서 탈출하시오 24.06.24 10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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