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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게임 : 염전노예에서 재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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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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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5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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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노예

DUMMY

* * *


주인의 아들은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듯 책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어디 한번 해봐!”


책가방에선 밀린 방학숙제가 쏟아져나왔다.


“아니기만 해!”


놈은 숙제를 떠넘기자마자 전등 없는 창고를 밝히기 위해 손전등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갑자기 창고 한쪽에 세워져 있던 몽둥이를 들었다.

무섭진 않다. 이 몸이 아무리 비루하다고 해도 그래봐야 몽둥이를 든 여덟 살 꼬맹이한테 당할 리 없으니까.

이놈도 이 정돈 알 것이다. 그런데도 이럴 수 있다는 건, 게임의 설정 때문일까?


“뭘 봐! 숙제나 해!”


설정이라면 설정이지. 그런데 설정이라고만은 생각되지 않는다.

그냥 자기는 뼛속까지 주인이고 나는 뼛속까지 노예라는 생각이 있으니 이럴 수 있는 거다.

무엇보다 이 몸이 단 한 번도 반항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폭력은 갈수록 심해지고 지위는 낮아진 것이다.


“숙제가 많네.”

“다 해!”


이만한 아이들의 방학숙제는 뻔하다. 일기, 독후감, 만들기, 그림그리기. 그리고 ‘탐구생활’이라 불리는 방학 학습용 교재.

변수는 이 시대가 ‘초등학교’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는 시대라는 거지만, ‘국민학교’의 방학숙제라고 다를 건 없다.


“빨리하라고!”

“어떤 게 있나 먼저 좀 볼게.”


한가하게 이놈의 방학숙제를 전부 해줄 생각은 없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나는 이놈처럼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만 하면 놀아도 되는 한가한 존재가 아니니까.

애초에 나는 이놈의 숙제로 염전을 벗어나야 한다.

단순히 숙제를 끝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잘해야 한다.

‘이걸 진짜 네가 했다고?’ 정도 되는 감탄이 나와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이게 그리 쉬운 문제만은 아니다. 교과서 문제를 잘 푸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지만, 당연한 일인 것도 사실이니까.

무엇보다 숙제 검사도 일이다. 이놈이 아직까지 탐구생활을 한 페이지도 안 푼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이놈의 부모님은 공부 검사는 물론, 숙제 검사에도 소홀하다.

선생이라고 다를까? 선생도 결국 인간이다. 방학숙제는 걷어도 그 숙제를 일일이 뒤적거릴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방학숙제를 낼 땐, 내신에 반영한다고 하지만 절대 내신에 반영할 수 없는 게 방학숙제다. 무엇보다 선생은 바쁘다. 다른 일을 하느라 애들을 가르치고 관리할 시간이 없을 만큼.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열 명 남짓일 이 섬의 분교에 있는 선생님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근데 일을 하는 게, 덜떨어진 미성년자들의 낙서를 들여다보는 게 과연 재밌을까? 그럴 리가.

다만, 수업시간에도 연필을 쥐지 않던 놈이 방학에 연필을 쥐었다고 하면 신기해서 슬쩍 훑어는 볼 수 있겠지.

나는 이 ‘신기함’을 노리고 있다.

‘네가 숙제를 했다고?’, ‘네가 일기를 썼다고?’ 내가 아무리 ‘웹소설’의 등장 덕분에 작가가 됐고 근근이 입에 풀칠이나 하던 삼류 작가 나부랭이 1에 불과했다지만, 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마음을 못 흔들까?

내 필력이 아무리 구려도 ‘여덟 살이 이렇게 글을 잘 쓴다고?’ 정도 되는 말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기 한 편을 멋들어지게 쓰려고 했었다. 이 시대의 선생님들이 아무리 썩었다고 해도 밥을 먹었다. 친구들과 놀았다. 잠을 잤다. 정도 되는 문장으로 짤막하게 구성된 아이들의 일기 정도는 지적할 테니까.

지적하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의 일기장을 펼쳐는 볼 게 뻔하다.

무조건 1학년의 일기장을 펼칠 것이다. ‘1학년이 이렇게 쓰는데 너희가 일기를 이렇게 쓰면 어떡하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마침 분교의 특성상 한 교실에 전 학년이 모여있을 게 뻔하다.

그런데 난 이 말 대신 ‘이거 누가 써줬니?’라는 말을 소환할 계획이었다.

그럴 필요 없겠다. 일기보다 더 좋은 걸 발견했다.


“너 상 받아 본 적 있어?”

“아, 숙제나 하라고!”

“없구나?”

“너 진짜 죽을래?”

“내가 상 받게 해줄까?”

“어, 어떻게?”


역시 이놈은 어른들의 칭찬에 목말라 있다. 단지 나 같은 놈으로는 ‘숙제를 다 했다고?’ 정도 되는 칭찬만 받아도 다행일 게 뻔하니까. 내가 없으면 숙제를 다 할 수도 없어서 놀기만 한 놈인 거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럼 상 받을 수 있어. 이 섬에 있는 학교가 아니라 진짜 학교에서 말이야.”

“어?”

“운동회 하러 가는 학교 말이야.”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열 명 남짓인 학교에서 운동회를 할 수 있을 리 없다. 어거지로 운동회를 열었다간 과장 조금 보태 1학년과 6학년이 서로를 상대로 달리기에 줄다리기까지 해야 할 테니까.

이에 분교에 있는 학생들도 운동회처럼 큰 행사가 있는 날이면 배를 타고 육지에 있는 본교로 가 행사에 참여한다.


“지, 진짜?”

“어.”


다만, 안타깝게도 본교 학생들에게 분교 학생들은 이방인보다 더 이방인 같은 이일 뿐이다. 내 앞에선 무자비한 주인인 이놈이 본교 학생들에겐 동물원 원숭이 넘어 샌드백일 거라는 거지.


“거짓말이면 죽는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 참 많았었나 보다. 단 한마디의 말에 어마어마한 복수심이 잔뜩 담겨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그냥 내가 한 숙제를 네가 한 숙제로 만들어.”

“뭐?”

“난 네 숙제를 해줄 거야. 그런데 글씨가 네 글씨가 아니잖아.”

“아······.”

“베끼기만 해선 안 돼. 완전히 이해 해야 해. 왜 이게 필요한지.”


많고 많은 숙제 중 내 시선을 확 잡아끈 건 발명 숙제였다. 지우개와 연필을 합쳐 지우개 연필을 만들자 정도 되는 아이디어만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숙제지만, 군계일학이라는 것도 있는 거니까. 나는 이놈을 일학으로 만들어줄 거다.


“뭘 만들 건데?”

“우산 잃어버려 본 적 있니?”

“많지!”

“어쩌다 잃어버렸어?”

“우산꽂이에 넣어뒀는데 다시 가보니까 없었어!”


누구나 몇 번은 겪었을 일이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어쨌어?”

“어쩌긴 뭘 어째! 다른 우산 가지고 나왔지!”


당하고만 있을 순 없어 기꺼이 우산 도둑이 된 이들도 참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고아가 그럼 그렇지라는 말을 듣기 싫었으니까.

그래서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답은 하나였다. 우산을 교실 밖 우산꽂이가 아닌 교실 안 내 책상 옆에 두는 것.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문제였지만, 커다란 비닐에 담아두면 됐다. 동급생들은 이런 날 비웃었었지만, 덕분에 난 더 이상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러다 20대가 되어 은행에서 일회용 비닐 우산집을 건네주는 걸 보고 생각했다. 아, 이거 내 건데.

이번엔 내 거로 만들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일회용 비닐 우산집은 꼭 필요한 물건이다. 카페의 노트북과 핸드폰은 안 훔쳐도 우산과 자전거는 훔치는 게 한국인이니까.

게다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더 야만하다. 21세기의 대한민국보다 더 ‘일회용 비닐 우산집’이 필요하다.

단지 이 시대의 정부가 국민의 편의를 위해 일회용 비닐 우산집을 대량으로 구매해 줄 생각이 있을 리 없다는 것 정도다.

그래도 은행과 호텔은 다를지도 모른다. 기업까지 갈 것 없이 개인 고객이 알아서 일회용 비닐 우산집을 사줄 것이다.

우산을 잃어버리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물에 젖은 우산을 들고 버스나 지하철에 타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단지 그럴 수밖에 없을 뿐이다. 푼돈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할 것이다.


“안 훔친 걸로 하자.”

“어?”

“도둑놈이 되기 싫어서 비를 맞고 매도 맞은 걸로 하자고.”

“아······.”

“친구들을 도둑놈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일회용 비닐 우산집을 만든 걸로 하자.”

“일회용 비닐 우산집?”

“어.”


무엇보다 이 발명품은 상품성만 뛰어난 게 아니다.


“일회용 비닐 우산집이 있으면 우산을 잃어버릴 일도 친구를 도둑놈으로 만들 일도 없어.”

“오······. 좋은데?”


이런 돌머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이디어인 것이다.


“그럼 네가 한번 직접 해봐.”

“어?”

“어쩌다 일회용 비닐 우산집을 만들게 되었죠?”


심지어 이런 돌머리가 만들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아이디어다.


“우산꽂이에 우산을 넣고 교실에 들어갔다가 우산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어요! 저도 우산을 훔쳐야 하는 건가 했는데······.”


염전 탈출을 조금 미뤄야겠다.


“이게 과연 팔릴까요?”

“어?”

“팔린다고 해.”

“어!”

“누가 살까요?”

“어?”

“국민을 도둑으로 만들기 싫은 국가와 고객을 도둑으로 만들기 싫은 기업. 그리고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은 국민이 살 거라고 해.”


이 어린 악마가 ‘그럼 그렇지’ 소리를 듣는 것보단 ‘좋은 선생을 만나면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구나’ 소리를 듣는 게 나한테 더 유리하니까.


“뭐라고? 다시 말해봐!”

“다시 말해주세요.”

“어?”

“다시 말해주세요.”

“다, 다시 말해주세요······.”


일단, 이놈이 날 선생님으로 보고 있다. 학교의 선생님도 집안의 어른들도 이놈의 밑천을 드러내는 존재지만, 난 아니니까.

곧 이놈의 애미, 애비도 날 선생으로 보겠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자식에게 명문대 졸업장을 선물해 주고 싶은 게 부모니까.

게다가 난,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은 안 한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당분간 안 하게 해줄 수 있다.


“이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야?”

“요······.”


누가 그러더라. 일타강사는 공부에 관심 없는 학생도 공부를 하게 하는 존재라고.

문제는 어떻게다.

누군가는 수업의 탈을 쓴 예능으로 일타강사가 되고. 누군가는 수업의 탈을 쓴 팩트폭행으로 일타강사가 되고. 누군가는 그 어떤 참고서로도 담아내지 못한 명강의로 일타강사가 된다.

나는 일타가 아니다. 다만, 이 어린 악마에게 희망이라는 걸 선물해 줄 순 있다.


“학교가 원하는 독후감은 하나야.”

“하나요?”

“어.”

“그게 뭔데?”

“데?”

“요······.”

“남들과는 다른 감상.”


상을 받을 수 있는 공식 정도는 알려줄 수 있다는 거지.


“흥부와 놀부 알지?”

“네!”

“누가 나쁜 놈일까?”

“당연히 놀부죠!”

“땡.”

“네?”

“남들과는 다른 감상이 중요하다고 했잖아. 실제론 흥부가 착하더라도 넌 놀부가 착하다고 해야 해.”

“하지만······.”

“놀부가 부자가 될 때까지 흥부는 도대체 뭘 한 걸까?”

“음······.”

“자식을 제대로 보살필 수도 없는 주제에 자식을 많이 낳았어.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말대로인 거지.”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다. 마침 시대마저 나를 돕고 있다.


“풉! 뭐라고요?”

“못 들어봤어?”

“들어본 거 같아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둘도 많다.”

“흥부가 진짜 나쁜 사람인 거네요?”

“놀부는 흥부의 형이기 전에 한 집안의 가장이야. 형제보다 아내, 자식을 챙겨야 하는 사람이라는 거지.”

“음······.”

“아예 안 도와준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놀부는 제비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렸었잖아요!”

“너 산낙지 먹어봤지?”

“당연하죠!”

“살아있는 낙지를 잘근잘근 씹어먹었다고 해서 네가 나쁜 놈인가?”

“아, 아니요······.”


어린 악마가 눈을 내리깔며 말을 더듬었다. 풉! 설마 지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는 건가?


“인간은 원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존재야.”

“지, 진짜 그렇게 써요?”


애는 애다.


“조금 더 부드럽게 써야겠지. 놀부는 어쩌면 제비에게서 받은 금은보화로 가족을 챙기려다 놓친 형 노릇을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미 흥부는 제비 덕분에 부자가 되었지만, 흥부를 부자로 만든 건 형이 아닌 제비라는 게 형으로서는 마음이 쓰였을 테니까.”

“와!”


그래봐야 신분제 폐지에 대한 역사와 인권, 윤리를 배우고도 자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염전노예를 부리고 부리다 죽일 녀석이다.


“그런데 형 원래 이렇게 똑똑했어요?”

“다음 숙제나 하자.”

“네!”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일단 머리가 나쁜데 노력까지 안 하는 아들을 노력은 하는 아들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놈은 조만간 상 몇 개를 받을 것이다. 분교 대표 넘어 본교 대표로 온갖 대회를 나갈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만 된다면 주인은 자라봐야 염전주인일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이 염전보다 섬보다 더 큰 세상에서 날뛸 거라는 환상을 품게 될 거다.

이 환상의 뿌리가 나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난 염전노예 생활을 청산할 수 있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노예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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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버님,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24.06.26 42 2 13쪽
»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노예 24.06.25 60 6 13쪽
1 염전에서 탈출하시오 24.06.24 10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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