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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000 님의 서재입니다.

염전노예에서 재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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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000
작품등록일 :
2024.06.15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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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3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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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군자의 복수

DUMMY

* * *


사모가 날 방에 가둔 탓에 중년의 여자와는 말 한마디 나눌 수 없었지만, 그녀의 심정과 사정 정도는 방 안에만 있어도 다 알 수 있었다.


“아니, 누구는 갯바위에서 낚시하다 물에 빠져 죽었을 거라고 하고. 누구는 배를 타고 섬을 빠져나간 후로 안 보인다고 하고. 또 누구는 창녀랑 바람이 나 도망쳤다고 하고.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겁니까? 뭐가 진실이냐고요!”


진실이 있긴 한 걸까?


“진실을 말해주긴 한 겁니까?”


내가 느낀 의구심을 당사자가 못 느낄 리 없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작정하고 속이려고 드니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같은 얘기를 했다고 해도 단념하기 힘들었을 텐데, 전부가 다른 말을 하니 더 이 문제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 그렇게 우릴 못 믿겠으면 경찰에 신고하세요!”

“신고했어요!”

“그럼 그냥 집에서 기다려요! 아무렴 경찰이 당신 같은 늙은 아줌마보다 못하겠어요?”


어느 경찰서에 신고하든 결국 섬에 있는 경찰서로 사건이 배당될 것이다. 인신매매를 방관하는 걸 넘어 직접 참여하고 있을지도 모를 섬의 경찰이 그녀의 편을 들어줄 리 없다.


“제발 알려주세요! 이렇게 무릎 꿇고 빌게요!”


벽 너머에서 들리는 간절한 그녀의 목소리만으로도 그녀의 모든 것이 그려졌다.

숱한 문전박대에도 불구하고 또 섬을 찾았다는 건 도저히 아들이 포기가 안 된다는 것이고. 나 홀로 섬을 찾았다는 건 그녀에겐 이제 가족이 없다는 것이다.

섬을 왔다 갔다 한다는 건, 섬에서 아들만 찾아다닐 만큼의 경제적 여력은 없다는 거고.


“돈이 필요해서 그럽니까? 돈을 주면 우리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어요? 드릴게요! 저 돈 많아요!”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을 찾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아, 글쎄 우린 모른다고요! 경찰 부르기 전에 당장 이 섬에서 나가요!”


그녀의 간절한 외침에 몰려든 동네 사람 모두가 그녀를 쫓아내려고만 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은 무슨 일이야!”

“아줌마, 내가 전에 경고했지.”


뒤늦게 도착한 염전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아들에 이어 그 어머니까지 이 세계에서 사라질 것만 같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그럼 꺼져, 이년아! 누군 쭈글탱이 할망구 몸에 손을 대고 싶어서 대는 줄 알아?”


저 아줌마를 이용해 섬의 악마를 처단하려는 계획이 세워지기도 전에 저 아줌마가 배불뚝이 악마에게 처단될 것만 같다.

그런데 이 섬에 창녀가 있나?

사람이라고 해봐야 백 명 남짓이고 이 중 반이 남자라고 해도 대부분은 배불뚝이 악마보다도 늙은 사람인데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겠다고 섬에서 썩는 창녀가 있다고?

그것도 의사를 여자에 미치게 할 만큼의 창녀가?

말도 안 된다. 근데 창녀가 있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진 않는다.

납치라도 한 건가? 그래. 납치겠다. 고작 허드렛일을 하기 싫어 남자를 납치하는 놈들이 성욕이라는 삶의 이유를 위해 여자를 납치 못 할까? 하고도 남지.

그런데 이런 치부를 이렇게 당당히 밝힌다고? 거짓말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더니······.

아니지. 거짓말이 들키면 들춘 놈을 없애면 되니 거짓말의 수준을 높일 필요가 없었던 거겠지.

이 상황이 게임사의 설정 오류처럼 보이진 않았다. 현실은 소설을 뛰어넘는다는 말처럼 그 어느 게임과 소설보다도 현실적인 것만 같다.

단지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지옥을 한 곳에 모아놓은 탓에 모든 게 버거울 뿐이다.

이런 지옥의 악마들이 아직까지 저 아줌마를 살려두고 있는 건, 이번에야말로 일이 잘못되면 어쩌냔 걱정 때문일 것이다.


“네가 죽였지! 네가 내 아들 죽였지!”

“아줌마, 내가 당신 아들을 죽였다고 치자. 근데 왜 당신은 살려둘까?”


그런데 왠지 곧 저 아줌마만 죽이면 다시 섬이 조용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을 것만 같다.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이만 꺼지라고.”


저 아줌마는 나를 대신해 이 섬을 피바다로 만들 만큼 강한 것 같지 않다. 정확히는 이 섬의 악마들이 저 아줌마보다 약하지 않다. 너무 강해 허점투성이처럼 보일 뿐이다.


* * *


“고작 개새끼 먹이자고 닭을 잡았다?”


배불뚝이 악마는 외지인을 집에서 쫓아내자마자 나를 찾아왔다.


“그 정도 자격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강이라고?”

“네.”

“이름 없이 살던 놈이 갑자기 이름이 갖고 싶어진 것까진 어떻게 이해하겠어. 생각했던 것보다 쓸 만한 것도 인정해. 근데 말이야. 내 허락도 없이 닭을 잡을 자격 같은 건 없어!”


배불뚝이의 커다란 손이 내 뺨을 후려쳤다.


“노예 주제에 나대지 말란 말이야!”


뺨을 맞고 바닥으로 쓰러지자 그의 발이 날아왔다. 또 날아왔다. 계속 날아왔다. 내 몸의 내구성을 믿는 건지, 아니면 작가도 우등생 아들도 필요 없다는 건지 그의 발길질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 살려주세요! 자, 잘못했어요!”


굴복한 건 나였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관전 중인 VIP ; 22]


내가 악마에게 굴복하자마자 50명이 넘어가던 VIP가 절반 넘게 떠났다.

사실, 더 떠나야 하는 건데, 포인트가 많아선지 아니면 내가 과하지욕의 굴욕을 견디고 보란 듯이 복수에 성공한 한신이라도 된다는 생각인지 스물두 명의 VIP들은 끝까지 남아 내 굴욕을 지켜봤다.


“후······. 나와.”


배불뚝이가 거친 숨을 뱉으며 나를 마당으로 끌고 나왔다. 마당에 묶여 있던 개는 영문도 모르고 나를 바라보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죽여.”


악마가 개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네?”

“죽이라고!”


그의 솥뚜껑 같은 손이 다시 한번 내 얼굴을 후려쳤다. 그 순간 나는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왜? 싫어?”


그는 쪼그려 앉아 바닥에 주저앉은 나를 바라보며 살기를 뿜었다.


“너를 죽여줄까?”

“아, 아니요······.”


건방지게 내 몸 하나 지킬 수 없는 주제에 가족을 만들려고 했다.


“그럼 빨리 죽여.”


배불뚝이에게 맞아 죽기 싫어 자리에서 일어나 땔감 창고로 가 땔감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내가 배불뚝이에게 얻어맞자마자 끙끙거리는 소리를 냈고 지금은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는 개 앞에 섰다.


“미안하다······.”


[동물애호가 님께서 미션을 제안합니다.]

[염전주를 죽이시오.]

[보상 : 1,000,000포인트]

[실패 시 사망]


개를 사람 위에 두는 미친놈의 머리로도 이 비극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깨갱!


[미션을 수락했습니다.]


깨갱!


내가 이 개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최대한 빨리 죽여주고 얼마나 오래 걸리든 꼭 복수하는 것이다.


“하하, 잘하네. 앞으로 이 마을 개는 네가 다 잡아라. 근데 해강아.”


배불뚝이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축 늘어져 있는 개의 목줄을 허공으로 번쩍 들더니 땔감 창고 처마 밑에 매달았다.


“개는 말이야. 머리가 아니라 몸통을 쳐서 죽여야 하는 거야.”


그는 아궁이 옆에 놓여있던 몽둥이를 꽉 말아 쥐더니 개의 온몸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이렇게 죽여야 고기가 더 야들야들해진다고.”


그리곤 내게 몽둥이를 건넸다.


“해봐. 그래야 한 그릇 주지.”


내가 자기 허락도 없이 닭을 잡아서가 아니라 그냥 나를 괴롭히고 싶은 모양이다.


“네.”


보신탕을 먹기 싫다고 하면 자기가 먹을 보신탕까지 어떻게든 처먹으라고 할 놈이다.


“이제 일하러 가야지?”


이젠 염전에서 일을 할 차례였다.


“네.”


안 그래도 이 악마굴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야 그 아줌마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 * *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내가 새벽에 산책하며 눈으로 직접 확인한 염전은 총 네 개다. 이 염전 모두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 중 가장 작은 염전이 배불뚝이의 염전이다. 그래선지 배불뚝이에겐 염전노예가 나 하나뿐이지만, 다른 염전엔 두셋은 됐다.

그런데 오늘은 염전노예가 한 명도 안 보였다.

그 아줌마에게 허튼소리를 하면 어쩌냔 걱정에 집에 가둬둔 걸까?


“얘야!”


아니나 다를까 동네 사람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하며 쫓겨났던 아줌마가 나를 찾아왔다.


“이 아줌마랑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몇 번이나 섬에 왔었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걸 넘어 새로운 숙제를 떠안은 아줌마 입장에서 낯선 아이는 꼭 잡고 싶은 지푸라기일 수밖에 없다.

최소 다른 사람들과 다른 얘기를 내놓을 테니까.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일의 진상을 안다고 보긴 힘들었지만, 지금은 이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조카라는 놈이 거리의 비렁뱅이처럼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데다가 만신창이가 된 얼굴인 게 중요한 거다.


“혹시 이 아저씨 본 적 있니?”

“몰라요!”

“얘! 나 나쁜 사람 아니야!”

“아, 글쎄 모른다고요!”


나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배불뚝이의 집으로 향했다.


“잠깐만!”


아줌마는 힘으로라도 나를 붙잡겠다는 듯 양손으로 내 옷을 붙잡았다.


“이거 놓으라고요!”


어찌나 세게 붙잡았는지 옷의 일부가 찢어졌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할 말 없다고요!”

“그러지 말고 자세히 좀 봐봐. 이 섬에서 1년이나 근무했던 의사 선생님이야!”


이 아줌마에겐 어떤 말도 해줄 수 없다.

하지만 전할 편지는 있다.


“이건······.”


방에 갇혀 있는 내내 쓴 편지를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아줌마의 손에 쥐여줬다.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혼자는 찾아오지 마세요. 당신 혼자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으니까.


* * *


“벌써 일을 다했다고?”


평상에 앉아 보신탕을 기다리고 있던 배불뚝이가 가쁜 숨을 몰아 내쉬고 있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 그 아줌마가 자꾸만 말을 걸어서요.”

“아니, 그 여편네가 아직까지 이 섬에 있다고?”

“네······.”

“이 여편네가 진짜······.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설마······.”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진짜?”

“네!”


[관전 중인 VIP : 38]


아줌마가 내 계획대로 움직여줄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관전 중인 VIP를 늘리는 데에는 일단 성공했다.


“왜?”

“주인님의 사랑을 받고 싶으니까요.”

“하하! 뭐?”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러니 제발 여기에서 살게 해주세요!”

“훗, 다시 냄새나는 창고로는 돌아가기 싫다는 거냐?”

“네!”

“일단, 씻고 나와. 얘기 좀 해보자. 닭 잡는 건 누구한테 배운 건지.”


다시 배불뚝이의 집에 살 기회도 잡았다.


“어떤 글로 날 작가로 만들어주겠다는 건지 한번 얘기해 보자고.”


훗, 진짜로 작가가 되고 싶은 모양이다. 하긴 이 섬의 염전주 중 가장 낮은 서열인 데다가 동네 안에서도 그다지 서열이 높은 것 같지 않다.

일단 집이 작고 마누라가 예쁘지 않다. 그 아들 역시 변변치 않아 보이고 말이야.

가만 보면 이놈 아들을 괴롭히고 있는 열등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열등감이 이놈을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 어떻게든 작가라는 감투를 쓰고 싶은 게 아닐까? 이 섬의 유일한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다.


“바다에 사는 남자의 이야기인 거지?”


강민이와 마찬가지로 내 아이디어를, 내 소설을 완벽히 훔치고 싶은 모양이다.


“일회용 비닐 우산집을 만들어 파는 남자의 이야기는 어떠세요?”

“뭐?”

“바다에 사는 남자의 이야기는 바다에 사는 남자 모두가 쓸 수 있지만, 일회용 비닐 우산집을 만들어 파는 이야기는 ‘일회용 비닐 우산집’을 만든 아들을 둔 아버지만 쓸 수 있는 거잖아요.”


애초에 내 노림수는 김강민이 아니었다. 김강민의 아버지 김춘식이었다.

아들의 숙제를 도와주다 있는지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해 작가로 성공한 이가 됐단 헛된 꿈을 이용해 김춘식을 내 편으로 만든다면 이 섬을 탈출하는 것은 물론, 이 섬의 악마들을 처단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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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노예에서 재벌까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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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더 돈이 되는 일을 할게요 24.06.28 83 4 11쪽
5 상점의 아이템 24.06.27 88 6 13쪽
4 주최측의 의도 24.06.26 106 4 12쪽
3 아버님,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24.06.26 119 4 13쪽
2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노예 24.06.25 161 9 13쪽
1 염전에서 탈출하시오 +2 24.06.24 23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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