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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이런 서재는 처음이지?

낙성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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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가別歌
작품등록일 :
2012.11.27 07:38
최근연재일 :
2016.12.10 22:1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5,718
추천수 :
32
글자수 :
39,679

작성
15.02.24 15:37
조회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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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쪽

강일백 매무기

DUMMY

강일백(姜一白)은 정안성(汀岸城) 계양현 사람이다.

그의 아비는 강석(姜碩)이란 자로 듬직한 생김과 달리 이해타산이 빠르고 변설에 능했다. 강석은 이 재주로 자신을 꾸몄다. 충실하고 꾸준한 호협 행세는 계양제일협(溪楊第一俠)이란 명예로 돌아왔다.

덩달아 문중기업(門中基業) 맹호무관이 빠르게 영향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 성장세는 강석이 스물 둘이 되던 해 마침내 계양현 제일 유지 최 부자네 막내딸과 연을 맺음으로써 절정을 맞이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둘 사이엔 도통 아이가 생기질 않았다. 석의 나이가 서른 즈음이 되자 문중은 날마다 그를 재촉했다. 아이를 낳아줄 새 여인을 들이든가 양자를 들이라는 간언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반복됐다. 결국 석은 항복하고 양자를 맞기로 하니, 그가 바로 맏이 백(白)이다. 아직도 회자될 만큼 질펀한 칠 주야에 걸친 연회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어느 날, 일백이 태어났다. 석과 최 씨의 피를 이은 진짜 아들이. 두 사람은 조상의 은덕에 거듭 감사하며 그를 백(百)이라 이름 했다. 이에 맏이 백은 심한 위기감을 느꼈다. 아우의 이름을 풀자면 이는 제 이름인 눈 백(白) 위에 한 일(一)을 덮은 것인데, 그 뜻이 너무나 명확했던 탓이다.

다행히 맏이 백은 영특했고 그리하여 아우 백에게 헌신함으로써 팽 당할 위기를 모면했다. 다만 발음이 비슷하여 헷갈렸던즉 형제는 이내 대백(大白)과 소백(小百)이라 나뉘어 불렸다.

하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대백은 자라면서, 핏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달았다. 그는 경애하는 아비의 무예를 모두 수습하길 바랐지만 지닌바 재능이 절실히 모자랐다. 그의 뼈는 얇고 짧았으며 폐는 쇠약하여 쉬이 지치기 일쑤였다.

반면 소백은 아비를 닮아 강골의 장사였다. 더욱이 칼까지 잘 다뤘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한 마리 범이 표홀히 날뛰는 것 같다 하여 호표도(虎慓刀)라 불렸다. 갈수록 아비는 소백을 어여쁘게 여겼고 그럴수록 대백은 예민해졌다.


그날은 몹시 추웠다. 그럼에도 저 혼자 훈불 앞에 앉아 수하를 갈구던 대백 앞에 포목점 진 씨가 날듯이 달려와 엎어졌다. 그러며 울며 한다는 말이 다음과 같았다.

"공자, 금일 현 내에 다섯 무뢰배가 날뛰고 있사온즉 저희 백성의 생계와 생명이 위협받고 있나이다. 그 위세가 워낙 강대하고 손속이 악랄하오니 부디 그 정의로운 칼을 곧추 세우시어 이들의 죄를 징치하여 주십시오."

옳거니! 대백은 손으로 제 무릎을 딱 쳤다. 마침 아비 강석은 곧 태어날 셋째를 위해 아내의 소원을 따라 처가로 간 뒤였고, 소백 역시 수련을 위해 폐관에 든 상황. 즉 일의 처분은 온전히 대리인인 자신의 손안에 있는바, 그는 마침내 때가 왔다고 여겼다.

이제 모든 것이 달라질 터였다. 소백을 누르고 아비의 인정을 받으리라. 부와 명예가 따르리라. 대백은 오랜만에 호탕하게 웃으며 상인을 안심시킨 뒤 자신에게 충실한 일곱 수하를 데리고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그의 야무진 포부는 단 일합에 박살났다. 안타깝게도 다섯 괴한이 지랄 맞게 강했던 탓이다. 그네의 장난 같은 일수에 대백과 일곱 수하의 무기는 단박에 동강이 나고 뼈는 가루처럼 바스러졌다.

특히 한 자루의 창이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이들 사이를 노닐었는데 생김부터 그 운행까지 평범한 구석이라곤 한 치도 찾을 수 없는바, 실로 전설에나 나올 법한 기병(奇兵)이요 괴공(怪功)이었다.

뒤늦게 밝혀지길 괴한 무리는 작살처럼 생긴 역린창(易鱗槍)으로 대적한 자의 몸에 잔혹하게 구멍을 내길 즐기는 잔혈괴(殘穴怪)와 그의 네 의형제라 하였다.

한편 그때 강석은 셋째를 품에 안고 있었다. 비록 양자라 하나 그의 맏이가 아비의 이름을 부르며 잔혹하게 죽어갈 때, 그는 새 생명을 품고 어르느라 바빴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즉 복수는 자연 소백의 몫이 되었다. 청년은 이 변고가 제 아비와 어미의 기쁨을 해할까 두려워 외가에 소식 전하는 것을 금한 뒤 홀로 잔악오괴(殘惡五怪)를 쫓았다.


그리고 2년. 예상보다 오래 걸렸지만 끝내 복수를 마친 일백의 얼굴은 밝았다. 소금에 절인 다섯 흉수의 대가리가 담긴 상자가 절그럭대며 소음을 일으킬 때면 덩달아 그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그리고 무관에 도착한 그는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아이고, 작은 도련님!" 째지는 듯한 목소리가 그를 깨웠다. 맨발로 뛰쳐나온 이는 종석 아범이었다. 추레한 몰골의 꼽추는 그를 껴안고 서럽게 울고 또 불렀다. 어찌 이제 오시냐고, 어찌 이리 늦으셨나고.

하지만 일백은 끝내 답하지 못했다. 저 한편에 불 타고 무너진 조사당 터를 보며, 쪼개지고 부러진 위패를 보며 그는 그저 바람에 휘날렸다. 간신히 나뭇가지에 붙은 나뭇잎처럼 그렇게, 그렇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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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별가別歌
    작성일
    20.09.25 10:48
    N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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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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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별곡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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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남협 고검 괴탁주 16.12.10 196 1 7쪽
15 동유 관천맹풍 한굉 16.12.04 110 1 5쪽
» 강일백 매무기 +1 15.02.24 251 1 5쪽
13 사기沙記 13.12.27 170 2 5쪽
12 입타상루立唾上樓 13.04.23 255 2 10쪽
11 Race Syndrome -0- 13.04.22 184 1 4쪽
10 황해(荒海) 13.03.09 304 1 3쪽
9 인생 제길 솔로 +1 12.12.26 237 1 1쪽
8 콜라주Collage +1 12.12.13 410 1 7쪽
7 으 아니……. +1 12.12.03 351 1 5쪽
6 오르골(Orgel) +4 12.12.01 668 3 20쪽
5 청소왕의 Clean&Clear - 부제 : 본격진지뻐ㄹ글 +2 12.11.29 498 3 8쪽
4 홍란(1) +2 12.11.29 358 3 5쪽
3 토선생총전, 여는 마당 +2 12.11.27 312 3 4쪽
2 추행록(1) +4 12.11.27 705 2 4쪽
1 6:40 +2 12.11.27 531 4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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