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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이런 서재는 처음이지?

낙성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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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가別歌
작품등록일 :
2012.11.27 07:38
최근연재일 :
2016.12.10 22:1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5,715
추천수 :
32
글자수 :
39,679

작성
12.12.01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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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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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20쪽

오르골(Orgel)

DUMMY

※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은 우주(wooju1020)님의 <아직 이곳에 남아 과거를 연주하고 있다.>를 바탕으로 쓰여진 글로써, 원작자의 허가 아래 작성된 것임을 밝힙니다.



<오르골(Orgel)>



햇살을 등지고 절컹절컹 기차가 절컹절컹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선로를 달리는 긴 기적(汽笛) 소리가 거친 숨결 같았다. 이윽고 멈춰선 기차는 크게 숨을 몰아쉬며 굳게 닫혀 있던 입들을 일제히 열었다. 금세 그 구멍들은 시끄러워지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을 쏟아냈다. 우르르 몰려나온 사람들은 각자의 짐가방을 든 채로 목적지를 향해 갈라져 나갔다. 그 행렬에는 한 소년과 젊은 여인도 있었다. 소년은 여인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메텔, 이번별은 어떤 곳일까요?”

그녀는 배시시 웃는 소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조금 이상한 곳 같구나.”

“뭐가요?”

“도시를 보렴.”

“아······.”

그들은 어느덧 도시의 언저리에 다다라 있었다.


그들은 도시로 들어섰다. 그곳은 거대한 무덤이었다. 구획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을 건물들은 허리가 꺾이거나 머리가 날아가 흉물스레 무너져 있었다. 퇴색된 영광의 흔적 속에 남은 것은 한줄기 스산한 바람 뿐. 짧은 침묵 속에 갑작스레 차량 한 대가 나타났다. 노란 바탕에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섞인 테를 하고 있는, 무인 택시였다. 택시는 정확히 그들의 앞에 정차하더니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다.

“······메텔, 이거 타도 될까요?”

“우선은 다른 방법이 없구나.”

메텔은 가방을 무인 택시에 싣고는 소년에게 손짓했다.

“일단 가보자, 철아.”

“······으음. 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이번에도 택시는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절로 닫았다. 이윽고 운전석에서 뻑뻑한 기계음이 나더니, 하나의 온전한 언어가 되었다. 삑, 삐빅. 손.

「손님, 어디로 삑삑, 모실까요?」

메텔이 잠시 고민하는 사이, 철이가 앞좌석 사이로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도시 중심지의 호텔 가(街)요.”

「목, 목적지. 도시 중심지 호텔 가. 출발 삑, 합니다. 삐―.」

낡은 무인 택시는 끊겨 버린 도로 위를, 그 언젠가처럼 질주했다.


“이거 정말 심각한데요.”

도시 중심지 호텔 가의 한 호텔을 본 철이의 감상평이었다. 하지만 메텔은 그런 철이를 두고 어느새 호텔 입구에 서 있었다. 메텔은 뒤를 보았다. 꺼림칙함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철이가 보였다.

“그나마 이 호텔이 가장 멀쩡한 편이잖니, 철아.”

그리고 메텔은 몸을 돌려 호텔로 들어가 버렸다.

철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를 악 물고 두 주먹을 꽉 쥔 채 호텔을 향해 뛰었다.

“에익. 메텔, 같이 가요!”

오랜만에 들어선 손님들이 퍽이나 기꺼운 듯, 호텔의 대문은 삐걱대길 쉬이 멈추지 못했다.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호텔의 로비에도 사람은 없었다. 반 쯤 삭은 책상과 그 외의 기물들이 삭막함을 더했다. 책상 뒤로는 호텔방의 카드키를 꽂아 놓은 카드꽂이가 있었다. 방 번호 순으로 정리된 그것들의 대부분은 분실되거나 파손된 상태였지만, 그래도 몇 개는 아직 사용이 가능해 보였다.

“우선 씻고 뭘 좀 먹어야 겠어요, 메텔.”

철이는 카드키 두 개를 잽싸게 뽑아 메텔에게 건넸다. 401호와 2호의 키였다. 메텔은 카드키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가방을 끌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4층으로 올라가야만 해. 거기에 방이 있으니까.”

“메텔, 설마 그거 농담이에요?”

땡- 하는 고전적인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수도나 여타 서비스가 끊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말끔하게 씻고 배까지 거나하게 채운 철이는 깔끔한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무인 택시, 엘리베이터, 샤워 시설에 레토르트 식품까지. 이 도시 어딘가에 멀쩡한 시설이 있다는 반증이었다. 더군다나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누군가가 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 도시의 ‘생존자’ 혹은 ‘생존자들’이.

혹시라도 이렇게 외로운 별에 남은 것이라고는 프로그래밍된 내용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기계들뿐일 거라는 가정은, 너무나 끔찍해서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메인이 되는 기계가 에너지를 생산하고 나머지 기계들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 절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 보드랍고 따뜻한 천의 촉감이,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것이라고 결코 믿을 수 없었다.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메텔도 지금쯤이면 자고 있겠지?”

철이는 반드시 이 별의 ‘지성체’를 만나고야 말겠다 거듭 다짐하며, 그렇게 잠이 들었다.


“철아, 철아.”

한참을 잘 자던 철이는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와 거친 손길에 잠에서 깨어야만 했다. 눈에 달라붙은 눈곱을 떼고 보니 메텔이었다. 그것도 나갈 채비를 마친 모습의.

“메텔, 벌써 낮이에요?”

“오, 이런. 철아 그게 아니야.”

“그럼 아직 밤이란 소린데 대체 왜······.”

“주위를 잘 봐.”

반쯤 잠에 취해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철이에게 메텔은 준비해뒀던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 시원하게 들이킨 철이는 그제야 또랑또랑한 눈으로 메텔의 말마따나 주위를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어? 호텔 벽이······.”

달랐다. 잠들기 전 호텔방은 비록 깔끔했지만, 여기저기 금이 가고 때가 탄 벽지로 인해 남루한 모습이 역력했었다. 거울도 깨끗하게 닦여 있었지만 깨진 상태였고, 잘 정돈된 커튼도 반은 찢겨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멀쩡했다. 그리고 정갈했으며, 무엇보다 방 전체에서 사람의 온기가 느껴졌다.

“대체······.”

철이는 너무 놀라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저 어벙벙한 표정으로 메텔을 바라보았다. 메텔은 그런 철이에게 이번에는 옷과 짐을 건네주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변한 건 호텔만이 아니야. 무언가 소리가 들려, 철아.”

“소리가!”

철이는 재빨리 옷을 입고 짐을 챙겼다. 그리고 입으로 검지를 가져가 메텔에게 잠시 조용해 달라는 제스처를 취한 뒤, 조심스레 문가로 다가갔다.

- 오늘은 손님이 별로 없네.

- 어쩔 수 없잖아. 전쟁이니까······.

- 너희 그 소리 못 들었어? 전쟁도 전쟁이지만, 전염병이 돈다더라.

- 정말? 큰일이네.

“사람!”

철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메텔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듯 한 눈빛. 메텔은 철이 쪽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 별, 뭔가 이상해. 기차로 돌아가야겠어.”

메텔의 말에 철이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짐 속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 만일을 위함이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메텔.”

만발의 준비를 끝낸 철이는 아주 천천히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내 작은 딸깍임과 동시에 문이 완전히 열렸다. 작게 벌어진 문틈으로 이리저리 바깥 정황을 살피던 철이는 총을 들지 않은 손으로 메텔에게 손짓한다.

“메텔, 안전해요.”

그리고는 문을 크게 연 다음 계단을 향해 뛰었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 듯싶었다. 메텔 또한 아무 말 없이 그런 철이의 뒤를 따랐다.

“엇.”

2층과 1층 사이의 계단에서 갑자기 철이가 놀란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메텔 또한 걸음을 늦췄다. 그리고 철이에게 다가가 멈춘 이유를 묻는다.

“철아, 무슨······.”

“쉿. 메텔, 조용히.”

철이는 이번에도 검지를 입으로 가져가 메텔에게 조용할 것을 당부했다. 이어 그 손가락은 계단의 틈새로 보이는 1층을 향했다. 번쩍이는 불빛이 인상적인 1층이었다.

- 으아, 손님이 없으니 너무 심심해.

- 그런 말 마.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잘못하면 너 큰 일 난다?

- 하? 소매치기도 잡을 병력이 없어서 온 도시가 난리법석인데 누가 날 잡아?

분명 사람 소리였다. 아마도 카운터의 직원들인 듯 했다.

얼굴 한가득 걱정을 담은 철이가 메텔을 바라보았다. 마치 길을 잃은 아이와 같이 그 눈동자는 쉼 없이 떨리고 있었다. 함께 여행하며 생겨버린 버릇일까, 아니면 단순한 의존일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메텔은 항상 최선의 해답을 제시했었다는 사실이다.

“어쩌죠. 저흰 체크인(Check-In)도 안 했는데, 누구냐고 물으면 어떻게 해요?”

메텔은 언제나와 같이 차분한 목소리로 철이를 달랬다.

“태연하게 행동해. 전쟁이라잖아? 그들이 대피를 한 사이에 우리가 들어온 것일 수도 있어.”

“문도 안 닫고요?”

“전쟁이니까.”

“음······.”

그래도 철이는 불안한지 연신 턱을 문질렀다. 그러자 메텔이 말했다.

“걱정 마. 정 안되면 항상 하던 대로 움직이면 돼.”

“항상 하던 대로?”

의문을 표하는 철이에게 메텔은 살풋이 웃으며 장난꾸러기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도망가는 거야.”

“아하. 역시 메텔이에요.”

“일단 그 총은 숨기고 자연스레 걸어 내려가자. 그들의 반응을 보고 결정할 수밖에 없어.”

“네.”

두 사람은 조심조심 1층을 향해 내려갔다.


1층은 한적했다.

카운터에는 두 사내가 있었고, 벨 보이로 보이는 몇 사람이 반대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분주히 돌아다니는 여성 직원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두 사람의 등장에 반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철이가 카운터 직원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대고는 “여어-”라고 소리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메텔, 대체 이게······?”

철이는 당혹스런 표정으로 메텔을 돌아보았다.

귀신인가? 대체 이 현상은 뭐에요, 메텔?

“글쎄.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은 우리에게 결코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거야.”

“그걸 어떻게 알죠?”

“이 상황에서도 자기들 할 말만 하고 있으니까. 우리를 아예 인식조차 못 하고 있어.”

메텔은 엘리베이터의 입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거 봐. 저 손님에게는 신속하게 반응하지?”

“어?”

메텔의 말 대로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손님 역시 건물 안에 있었던 사람일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반응하고, 두 사람에게는 반응하지 않았다. 철이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자신이 투명인간이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멍청한 카운터 직원의 정강이를 향해 힘껏 발길질 했다. 에잇, 멍청이.

“아?”

그런데 놀랍게도, 철이의 발은 그의 정강이를 뚫고 지나갔다. 마치 아무 것도 없는 빈 허공에 발을 놀린 느낌이었다. 혹시······.

“홀로그램?”

두 사람은 일단 이 이상한 호텔을 나가기로 결정했다.


“이게 대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비록 여전히 도시 여기저기가 부서진 채였지만, 낮에 비해서는 놀라우리만치 정상적인 모습들이었다. 심지어 방금 전까지 그들이 묵고 있던 호텔은 마치 새 것처럼 고급스럽고 깔끔했다. 무엇보다 어디 하나 부서진 곳이 없는 게, 멀쩡했다.

두 사람은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문명의 빛에 의해 부활하는 거대한 도시의 모습을 보았다. 빛은 마치 축포처럼 순차적으로 빠르게, 그리고 무엇보다 화려하게 피어났다. 그 속의 사람들은 전쟁과 전염병으로 인해 불안하고 고달파 보였다. 후우, 벌써 라일 시(市)가 점령당했다던데. 뭐, 라일 시라면 우리 도시랑 그리 멀지도 않잖아. 그래, 덕분에 전선이 뒤로 밀리는 모양이야. 다른 곳들도 순차적으로 점령당하고 있다더군. 말세로군. 자네 그 얘기 들었나? 뭘? 전염병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더군.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이 도시에도 감염자가 있다더라고. 끔찍하군. 전선 상황도 나쁘다는데, 후방으로 이사를 가든가 해야지. 가려면 빨리 가게. 벌써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어. 그들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촛불과 같은 삶의 끈을 절박하게 잡고 있었던 것이다.

“메텔······.”

철이는 메텔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도시의 사람들조차 둘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공포였다. 마치 자신들이 없어진 존재가 된 느낌. 어린 철이는 그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메텔조차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그래서 철이는 계속해서 메텔을 불렀다. 메텔, 메텔.

“쉿. 철아, 이 소리를 잘 들어보렴.”

불안에 못 이겨 메텔을 큰 소리로 부르려던 찰나였다.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던 메텔이 철이에게 ‘소리’를 들으라고 했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 기계들이 움직이며 도시를 정비하는 소리? 대체, 대체 어떤 소리?

순간이었다. 뭔가 잔잔하게 흐르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 것은.

“저곳이야.”

메텔의 눈동자가 향한 곳은, 도시의 중앙에 위치한 시청이었다.


그곳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입에 담배를 문 그는, 다리가 부러진 낡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없는 다리를 대신해서 돌을 놓아 균형이 맞지 않았지만,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그는 연주하고 있었다. 너무나 슬픈 곡을, 점점 더 슬프게 연주하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스치고, 담배 끝이 새빨갛게 빛날 때면, 없던 가사가 생겼다. 그 가사는 귀로 들리지 않았다. 그 가사는 눈에 보였다. 사람의 형상을 한 가사는 각자의 사연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연주는 계속되었다. 사내의 담배가 짧아질수록, 연주가 슬퍼질수록 나타나는 가사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가사는 자신의 사연을 풀어내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 시내로 간 것이리라. 마치 호텔의 사람들처럼, 거리의 사람들처럼. 마지막의 날을 되풀이하고 있겠지.

모두가 사라지고 사내의 곁에는 단 하나의 가사만이 남았다. 그것은 소녀였다. 병색이 완연한 소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사내에게 속삭였다. 절 기억해줄 수 있나요? 저를 연주해주세요. 연주해주세요. 연주해주세요.

“그래, 아직 이렇게 연주하고 있는 걸.”

이윽고 담배는 필터만을 남기고 모두 타 버렸다. 그의 연주도 함께 끝났다. 툭, 하고 그의 입에서 담배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적막. 사내는 숨 막히는 정적 속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툭, 하고 그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손등으로 떨어진다. 툭, 툭. 손을 들어 눈가를 닦던 사내는 이내 픽, 웃어버린다.

문득 사내는 무언가에 홀린 듯 중얼거렸다.

“모두, 사라지겠지만. 기억은 남아서 연주해야 하지 않겠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공허하게 메아리치는 사내의 목소리가 시청의 강당을 가득 채운다. 과거도, 과거도, 과거도.




툭.

힘겹게 이어지던 연주는 어떤 이질적인 소리에 의해 중단되었다. 건반을 누비던 사내의 손가락이 멈추고, 고개만이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돌아갔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낯선 두 사람.

“······사람?”

순간이었다. 쒸엑-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내가 사라졌다. 이내 나타난 곳은 둘의 코앞이었다. 서로 놀란 표정을 한 그들은 잠시간 기묘한 대립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사내의 행동이 빨랐다.

“이 별에 생존자가······.”

메텔은 본능적으로 앞으로 나서며, 철이를 자신의 뒤에 두었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사내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저희는 은하철도 999호(號)의 승객들이에요. 이번 정거장이 이 도시인지라······. 저희는 단지 이곳을 둘러보던 차였습니다.”

그에 사내는 매우 실망한 듯 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깍듯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셨군요. 저는 이 별 최후의 생존자, 아가프입니다.”


아가프의 연주가 끝난 도시는, 다시 낮의 그 황량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인적이 없어졌으며, 그들이 묵었던 호텔 또한 적막한 곳이 되었다. 세 사람은 인근의 그나마 멀쩡한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별의 전설, 역사, 문화, 사람들, ······그리고 최후의 날까지.

아가프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그만큼 많은 것을 이야기하였다. 쉬이 끝나지 않는 그의 이야기는, 절박함과 아련함, 그리고 짙은 외로움을 담고 있었다.

“저는 오랫동안 홀로 이곳을 지켜왔습니다.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또 그리며.”

사내의 엄지가 하릴없이 커피 잔의 가장 자릴 맴돈다.

“그러나 이젠 그마저도 지쳤습니다. 당신들을 본 순간······ 저는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어졌어요. 당신들은 나의 일상을 깨버렸습니다. 견고하게 쌓아 올렸던 나의 아성(牙城)은 당신들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요.”

그는 식어가는 커피를 후루룩, 한 모금 들이켜 목을 축였다.

“하지만 저는 당신들을 탓하지 않습니다. 제 상태는 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것은 덧없는 것이었습니다. 한 순간의 파랑도 버텨낼 수 없는 모래성이 무너진 것일 뿐이에요. 다만 그로인해 저는 이 세상의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고, 저에게는 이를 이겨낼 힘이 없을 뿐이랍니다.”

순간 철이는 양손으로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쾅.

“그럴 순 없어요! 아가프, 저희와 함께 가요. 분명 이곳의 역사(驛社)에도 999호의 승차권이 있을 거예요. 관리하는 사람도 없을 테니, 그걸 가지고 저희와 함께 가요.”

아가프는 요동치는 테이블로 인해 넘쳐흐른 커피 자국을 냅킨으로 닦으며 쓸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럴 수 없어요. 미소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요. 어째서. 외롭다며. 혼자가 싫다며. 그럼, 그럼 여길 떠나면 되잖아요!”

드르륵. 아가프는 의자를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흐릿한 조명이 깜빡이며 그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다.

“저는 이 별의 ‘기억(記憶)’이니까요.”


뿌뿌―.

사람의 향수를 자극하는 진부한 기적 소리와 함께 기차가 출발했다.

절컹절컹. 절컹절컹. 철로의 이음새를 지날 때마다 흔들리는 기차를 따라, 특급실의 철이와 메텔도 절컹절컹 흔들렸다.

절컹절컹. 절컹절컹. 뿌뿌. 절컹절컹.

“철아.”

메텔이 철이를 불렀다. 그러나 철이는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그들이 떠나온 별을 바라볼 뿐이다. 황량하고 슬픈 별. 그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기억하며, 추억하며, 언제나 과거만을 연주하는 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아껴 도저히 버릴 수 없는 별. 그래서 그만의 적막이 깨진 순간, 자살을 택한 별. 아가프.

“메텔, 정말 아가프에게 남은 것이 죽음뿐이었을까요?”


쾅, 콰과광. 쾅쾅.


아름답던 별은 마지막 숨을 격하게 내쉬고 있었다.


“정말 아가프는 죽음 밖에 택할 수 없었을까요?”


쾅, 콰과광. 쾅쾅. 쾅!


산산조각 나는 별은, 마치 깨져버린 알사탕 같았다. 쾅쾅. 이내 그것은 하나의 먼지덩어리가 되어 어그러지기를 반복한다. 팽창과 수축. 부풀어 오르고 다시 쪼그라든다. 마치 무언가를 애타게 부르는 것처럼, 깊이 들이마신 우주를 보이지 않는 소리로 내뱉는다. 나의 소중했던 기억들이여, 안녕―.



힘겹게 외로움과 싸우던 별은 결국,

그렇게 죽었다.



······저를 닮은 오르골 하나만을 남긴 채.


작가의말

우주(wooju1020) <아직 이곳에 남아 과거를 연주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카페 [판타지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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