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어서 와, 이런 서재는 처음이지?

낙성별곡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중·단편, 시·수필

별가別歌
작품등록일 :
2012.11.27 07:38
최근연재일 :
2016.12.10 22:1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5,727
추천수 :
32
글자수 :
39,679

작성
16.12.04 09:30
조회
110
추천
1
글자
5쪽

동유 관천맹풍 한굉

DUMMY

굉宏은 장안현 영돈 사람으로 마국麻國 재상을 지냈던 한유의 5대손이다. 생전의 한유는 달리 포설包雪이라 불렸다. 이는 큰 일은 작은 일로 작은 일은 없던 일로 하는 그 재주에서 기인한 것으로, 덕분에 평생을 마공麻公의 총애를 받았다 한다.

한씨문중은 이때부터 세를 얻기 시작해 문인가문으로 성장하였으니, 그 적손인 굉이 무인이 된 것은 ㅡ그것도 맹인의 몸으로ㅡ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하겠다.

덕분에 굉은 강호를 종횡함에 있어 항상 구설수에 시달려야 했다.

날때부터 눈이 멀어 이를 극복하고자 무예를 익혔다거나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는 소문은 우호적인 축에 속했다.

아비가 아들을 문무양겸의 재인으로 키우고자 약을 크게 썼다가 그 부작용으로 그리 됐다느니 혹은 가문 내 반대파의 음모로 독을 먹고 시력을 잃었다느니 하는 제법 그럴듯한 추측부터 창관에서 만난 고급 예기의 미모에 빠져 그 기둥서방과 다투다 눈을 다쳤다더라, 가법을 어겨 그 벌로 눈알을 뽑혔다더라는 식의 뜬구름 같은 낭설까지 그야말로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그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뭐가 됐든 굉은 제 눈 얘기에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저 무시했고 지나치다 싶을 때는 신발코의 쇳조각을 바닥에 부딛혀 경고를 했다. 강호를 관통하는 은원의 굴레를, 그 지독함을 저간의 경험으로 깨닫고 미리 조심했던 것이다.

무림이란 게 그렇다. 매해 몇 천의 무사가 각자의 명예를 바라며 출도한다. 그 가운데 이름 석 자나마 세인의 기억에 남길 수 있는 건 고작 기 백에 불과하다. 숱한 세파를 겪으며 대다수가 죽거나 도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얻은 이름이 클수록 겪을 은원 역시 짙은 법. 처음 몇 해가 육체가 약한 놈을 거르는 시기라면 그후로는 정신이 약한 놈부터 꺾이는 시기다. 그렇게 강산이 한 번 변할 정도의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곡이라 할 진짜 강한 놈들이 드러난다.

굉의 호는 관천맹풍貫天盲風이다.

그중 앞의 세 자는 옛 고사 좌정관천에서 비롯됐다. 분명 앞을 못 보는 소경이라 했건만 굉의 부채는 빠르고 정확했다. 작년 이맘쯤인가 굉이 관부의 경 대인을 노리고 날아오는 소털 굵기의 가는 침을 단박에 둘로 가른 적이 있었다.

그러자 얘기를 들은 강호의 호사가 중 일부가 앉아서 하늘을 손끔보듯 소경이 주변을 훤히 보는 기예를 갖췄다 하여 관천맹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이후 경 대인의 정중한 ㅡ을 넘어 필사적인ㅡ 식객 제의를 거절한 일과 높아진 명성을 따라 밝혀진 이전의 바람처럼 자유로운 행보가 밝혀지면서 게다가 주무기가 부채라는 점까지 해서 마침내 관천맹풍이란 별칭이 완성됐다. 그리고 그 독특한 외향과 행동양식 또한 강호에 널리 퍼졌다.

그러길 벌써 십오년이다. 덕분에 이정도까지 하면 어지간한 자는 굉이 관천맹풍이란 걸 알고 한 수 양보하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종종 선을 넘는 자가 생겼다. 아니 사실은 매우 자주 생겼다.

무림이란 게 그랬다. 구도의 방편이란 것도 다 먹고 살만한 있는 놈들 얘기였다. 보통의 무사에게 무武는 생계를 넘어 생존의 수단이었고 그만큼 무사는 본능적, 그러니까 거칠고 무례하기 일쑤였다.


“이놈, 아무리 눈깔이 없기로서니 정녕 이분을 몰라 뵈는 것이냐? 이분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바로 일대를 호령하는 한길문의 소주 장ㄱ······.”


그날도 그랬다. 놈은 선을 넘었고 굉은 허리춤의 강철 부채를 집었다.

땅! 내딛는 발을 따라 신발코의 울림쇠가 경쾌한 소리를 지르고 쾅! 부채살로부터 일어난 쇠망치같은 경력에 놈이 비명을 질렀다.


“으엌!”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본, 일대를 호령하는 한길문의 소주라는 장ㄱ······은 잔뜩 일그러진 흉악한 얼굴로 외쳤다.


“야, 튀어!”


아, 그놈참. 결단력 끝내주네.

손에 든 흔들리는 호리병을 따라 짙은 주향이 저녁놀처럼 은은하게 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낙성별곡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남협 고검 괴탁주 16.12.10 196 1 7쪽
» 동유 관천맹풍 한굉 16.12.04 111 1 5쪽
14 강일백 매무기 +1 15.02.24 251 1 5쪽
13 사기沙記 13.12.27 171 2 5쪽
12 입타상루立唾上樓 13.04.23 255 2 10쪽
11 Race Syndrome -0- 13.04.22 184 1 4쪽
10 황해(荒海) 13.03.09 305 1 3쪽
9 인생 제길 솔로 +1 12.12.26 238 1 1쪽
8 콜라주Collage +1 12.12.13 410 1 7쪽
7 으 아니……. +1 12.12.03 351 1 5쪽
6 오르골(Orgel) +4 12.12.01 668 3 20쪽
5 청소왕의 Clean&Clear - 부제 : 본격진지뻐ㄹ글 +2 12.11.29 499 3 8쪽
4 홍란(1) +2 12.11.29 359 3 5쪽
3 토선생총전, 여는 마당 +2 12.11.27 313 3 4쪽
2 추행록(1) +4 12.11.27 706 2 4쪽
1 6:40 +2 12.11.27 532 4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