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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이런 서재는 처음이지?

낙성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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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가別歌
작품등록일 :
2012.11.27 07:38
최근연재일 :
2016.12.10 22:1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5,716
추천수 :
32
글자수 :
39,679

작성
12.12.13 05:01
조회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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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7쪽

콜라주Collage

DUMMY

「그대 무엇을 고민하나요? 망설이지 말고 몸을 던져요. 저 어두운 하늘로. 뒤는 생각하지 말아요. 두려워 마요. 그대는 다시 태어날 수 있어요. 그대의 찢겨진 몸, 내가 꿰매 줄게요. 두려워 마요. 그대는 나만의 봉제 좀비. 나의 손길이 필요한 나만의 잔혹한 인형.」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저녁이다. 다 낡은 전축에서는 80년대를 주름 잡던 명곡, 코딘 바커스의「봉제 좀비(Sewing Zombie)」가 흘러나오고 있다.

나지막한 음악 소리로 가득 찬 오두막은 허름하기 이를 데 없다. 곳곳에는 거미줄이 가득하고, 집주인이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에는 먼지가 한 가득이다.

하지만 집주인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익숙한 모습으로 들고 온 (깨끗한 천으로 감싼) 물건을 안락의자 앞의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우선 페도라 모자와 롱코트를 벗었다. 그리고 자켓과 베스트, 붉은 코사지와 흰색 와이셔츠도 벗었다. 마지막으로 정장 바지까지 벗고 나니, 그가 걸친 것이라고는 검은 장갑과 짧은 속바지가 전부였다.

털썩. 안락의자에 앉은 그는 이내 검은 장갑도 벗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잡아 당겼다가는 손가락 하나가 뽑혀 나갈지도 모르는 일. 그의 손놀림은 지극히 조심스러웠다.

“후우.”

이 짓도 못할 노릇이야. 그리 되뇌면서도 그는 부지런히 손을 놀려 (테이블 위의) 천 꾸러미를 풀었다.

부스럭 부스럭. 그 속에 든 것은 잘 포장된 약간의 가죽과 다리 한 짝이다. 마녀 돌로레스 키에르타가 운영하는 인체 상점 <내 다리 내놔>에서 특별히 공수해 온 것으로 이른바 특A급 파츠들이다.

이어 안락의자 아래로부터 도구 상자를 끌어내 뚜껑을 여는 모습이 퍽 손에 익은 듯 자연스러웠다. 그 속으로 여러 도구가 가지런히 누워 있는데, 사내는 먼저 식염수통을 꺼내 준비한 컵에 따랐다.

꼴꼴꼴꼴꼴. 식염수가 이내 컵 속을 가득 채우자 그는 수술용 메스를 꺼내 컵 속에 그것을 담갔다. 이로써 간략한 소독을 마친 그는 재빨리 제 오른쪽 무릎으로 그 예민한 날붙이를 찔러 넣었다.

“흐읍.”

단박에 그 속에 자리했던 실이 끊겨나가고, 벌어진 틈 사이로 어설프게 붙은 채로 썩어가는 살덩이가 보였다. 오, 맙소사. 그냥 유령이나 될 걸. 존재감도 없는 희끄무레한 그림자로 살 바에야 차라리 생기生氣는 없더라도 육신을 가진 시체가 나을 줄 알았건만…….

아, 더러운 좀비 인생. 실밥이 다 트더져 너덜거리는 제 팔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곰돌이의 심정이 꼭 이럴 테지. 그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그러나 이제는 만성인 듯 무덤덤하게 ‘쓰레기가 되어버린 다리’를 몸통에서 분리해냈다.

떨어져 나간 오른쪽 다리가 털푸덕, 다 낡은 마루 위로 길게 눕는다. 먼지가 날리고, 후우,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두렵지만 어쩔까. 눈을 질끈 감고 절단면을 향해 과산화수소수를 쏟아 붓는다.

“으따 제에기라아아아알!”

실로 수 천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통증이다. 그러나 어쩔까.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인 것을. 그냥 놔둬도 썩는 몸뚱이인데, 상처 부위로 세균이라도 침투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테였다.

미칠듯한 화끈거림 속에서 그는 침착하게 보라색 약통을 꺼내 들었다. 이 젤 타입의 연고는 뼈를 연결하고 근육을 잇는 효과를 가진 마녀의 약이다.

이 약을 바르지 않고 그냥 실로 살덩이만 봉합한다면 백날 힘을 줘도 움직이지 않을 터.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절단면 전체에 꼼꼼하게 약을 발랐다.

그리고는 밀봉되어 있던 유리병 중 하나를 열었다. 그러자 그 속에서 싱싱하게 펄떡이는 다리가 튀어나왔다. 그의 새로운 오른 다리가 되어줄 녀석이다. 사내는 그것을 집어 오른쪽 무릎에 대고는 준비한 바늘로 능숙하게 무릎을 꿰매기 시작했다.

“것참, 이제 어디 하나 내 것이 없군.”

어느새 바느질은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있었다. 역시 바느질 1랭을 찍은 좀비의 솜씨다웠다. 하지만 그가 할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는 심각하게 부패한 피부를 교체해야 했다. 못 쓰게 된 다리를 새 것으로 교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크, 끔찍하군.”

다시 한 번 메스를 식염수로 소독한 그는 이번에는 옆구리의 피부를 잘라냈다. 부패하여 고름이 생기고 악취가 나는 살덩이가 테이블 위로 툭 떨어졌다.

그는 아무런 동요 없이 네 번째 약통을 집어 들었다. 강제로 새 살을 돋게 하는 약이다. 그는 이전과 같이 상처 부위를 과산화수소수로 소독한 다음 약을 발랐다.

두껍게 약을 펴바른 그는 두 번째 유리병의 밀봉을 뜯었다. 퐁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녹색 액체 사이로 손바닥만 한 가죽 쪼가리가 보였다.

“어떻게 손 쓸 수도 없는 등은 아니니,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실제로 지난 번에는 등가죽이 심각하게 썩은 탓에 비싼 돈을 주고 좀비 전문 병원에서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아야만 했었다.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었는데, 단순히 손이 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병원엘 갔던 것이다.

“아오, 확 팔을 네 개로 늘려버려?”

기각. 불법개조는 좀비 당국에 발각될 경우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단순히 벌금으로 끝날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등 쪽에 문제가 생겼을 때 처리할 방법이 없다. 이는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지속적으로 병원엘 가야한다는 말이자 매번 막대한 지출을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안 돼!”

순간이었다.

한 가지 기발한 생각이 그의 머릿 속을 스쳤다.

“룸메이트.”

꼭 이 일을 혼자 해결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좀비라면 누구나 피부 이식의 달인인 법. 여럿이 함께라면 등 쪽에 문제가 생겨도 결코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사이좋게 일렬로 앉아 서로의 등 피부를 교체해주는 룸메이트 좀비라.

무릎과 옆구리에 붕대를 감아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끝낸 그는 안락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어질러진 집안을 치우는 그의 손끝이 흥분으로 덜덜 떨려왔다. 룸메이트 좀비라, 룸메이트 좀비…….

“멋지군.”

밤이 오기 전, 마지막으로 그 몸을 붉게 태우는 노을이 유달리 아름답던 날이었다.


작가의말

아주 옛날 걸 찾았는데, 이래 꺼내보니 참 마음에 안 든다. 나중에 꼭 고쳐야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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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황해(荒海) 13.03.09 304 1 3쪽
9 인생 제길 솔로 +1 12.12.26 237 1 1쪽
» 콜라주Collage +1 12.12.13 410 1 7쪽
7 으 아니……. +1 12.12.03 351 1 5쪽
6 오르골(Orgel) +4 12.12.01 668 3 20쪽
5 청소왕의 Clean&Clear - 부제 : 본격진지뻐ㄹ글 +2 12.11.29 498 3 8쪽
4 홍란(1) +2 12.11.29 358 3 5쪽
3 토선생총전, 여는 마당 +2 12.11.27 312 3 4쪽
2 추행록(1) +4 12.11.27 705 2 4쪽
1 6:40 +2 12.11.27 531 4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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