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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이런 서재는 처음이지?

낙성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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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가別歌
작품등록일 :
2012.11.27 07:38
최근연재일 :
2016.12.10 22:1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5,724
추천수 :
32
글자수 :
39,679

작성
12.11.27 12:08
조회
705
추천
2
글자
4쪽

추행록(1)

DUMMY

<추행록追行錄>

- 흔적을 쫓다


한 20여 년 전의 일이다. 해결사로서의 내 명성이 한창 높던 때다. 어느 날 비선(秘線)을 통해 전달된 한 통의 흰 편지지 앞에서 나는 문득, 이 열일곱 번째 의뢰가 결코 간단치 않으리란 예감에 사로잡혔다.

예상대로 일은 쉽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욱한 안개에 빠진 것만 같았다. 단서는 많으나 그 어느 것도 쓸모가 없었다. 이놈이 맞는가 하면 저놈도 맞고 이제야 가닥을 잡았나 하면 어느새 다른 길로 새버렸다. 수많은 파편들은, 다만 범죄에 이용되었다는 것 외엔 어떤 연관성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명성을 떠나 범인의 무서울 정도로 치밀하고도 대담한 수법에 절로 깊은 호기심을 갖게 되었던 탓이다.

그리하여 무려 육백하고도 이십여 일. 길고도 지루했던 추적 끝에 나는 정관시(釘關市) 외곽의 무량객잔(無量客棧)에서 한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엽답비(葉踏飛).”

젊을 시절의 그는 대단한 강호인이었다. 하루는 그가 오직 낙엽만 밟으며 장장 천 리 길을 한숨에 치달으매 그 모습이 꼭 나는 것만 같다 하여 엽답비, 달리 천주객(天走客)이라 불렸었다 했다. 한때는 세상이 입 모아 말하길, 천하의 그 무엇도 그를 앞지를 수 없다고까지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도 세월만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간, 그는 참 볼품없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입술은 주글주글한 것이 한껏 오므라들어 있고, 그 틈새로 보이는 치아는 싯누렇거나 혹은 시커멨는데 그마저도 성한 것이 몇 없어 듬성듬성했으며, 그 위로 자리한 코는 그 끝이 붉고 폭삭 내려앉은 것이 막 어딘가에 심하게 부닥치고 온 꼴이다. 단지 흐린 가운데서도 서늘하니 한 가닥 날카로운 기색을 품은 눈동자만이 하릴없이 과거의 영광을 되새김질할 뿐이었다.

노인은 한 손엔 곰방대를 다른 손엔 제 턱수염을 쥔 채 영 말이 없었다. 나른한 눈길을 따라 엇물린 입술 틈새로 연기가 솟아오르고, 끔뻑끔뻑, 빠알간 담뱃불은 다만 시간을 재우고 있을 뿐이었다. 이 침묵은 일종의 시위였다. 그는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으되 그러나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역시…….


확실했다. 이 노인은 주모자(主謀者)가 아니었다. 긴 시간 동안 사건을 조사하며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이 범행을 수립한 작자는 지극히 냉철하고 치밀하며 대담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었다. 고로 이 노인은 아니다. 이토록 속셈이 훤히 보이는 얄팍한 수를 쓰는 자가 결코 ‘그’일 리 없었다.

이윽고 기묘한 침묵이 이어졌다. 알면서도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 역시 침묵한 탓이었다. 노인과 나는 서로 마주 앉아 있었지만, 그러나 어떤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노인은 수차례, 습관적으로 담뱃재를 떨어낼 뿐이었고 나는 그 맞은편에 앉아 싸구려 녹차를, 호루룩하고 마시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것은 이미 인내심 싸움이었다. 먼저 파탄을 드러낸 쪽이 질 수밖에 없는, 그런…….

물론 나는 이길 자신이 있었다. 젊을 적 노인은 천하가 좁다하며 유랑을 일삼았었다. 생각하기보단 움직이길 좋아했었고, 기다리기보단 나아가길 즐겨했었다. 그는 인내심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치는 채 반 시진을 가지 못했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 그는 조금씩 동요했다. 눈꼬리가 치솟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다음엔 콧방울이 벌름댔으며, 또 다음으론 어깨가, 팔목이, 손가락이 슬그머니 움직였다.

갈수록 파탄은 커졌고, 이제 두 시진 쯤 지나자 노인의 얼굴은 온통 누르락붉으락한 것이 한계에 달한 듯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노인의 담뱃잎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리고, 마침내……

“이노―옴!”

꽈광!



작가의말

언젠간 2편이 나올 지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Personacon 이설理雪
    작성일
    12.11.30 19:09
    No. 1

    언젠가라니요 하루에 몽땅 올려놓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곳에 올려진 걸 퍼오셨나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별가別歌
    작성일
    12.11.30 19:15
    No. 2

    반응 좋으면 필 받아서 2편 쓰게 될지도 모른다 이거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별가別歌
    작성일
    13.01.06 01:14
    No. 3

    임무의 등급과 쪽지의 빛깔과 명칭.
    1. 최하급 - 청색 - 능맹(能盲) : 청맹과니, 즉 장님도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의뢰라는 뜻. 창맹(唱盲).(어쩌겠나, 눈 가리고 아웅이라도) 노래하는 장님. 즉 의뢰를 수행하다.
    2. 하급 - 황색 - 답지(踏地) : 발 디딘 땅. 발을 디딘 땅처럼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흔한 의뢰라는 뜻. - 행지(行地). 땅을 걷다.(내친 김에 마저 딛음세) 즉 의뢰를 수행하다.
    3. 중급 - 흑색 - 심야(深夜) : 깊은 밤. 밤이 깊어 어두우니 쉬이 진행할 수 없는 의뢰라는 뜻. - 월야(月夜). 밤을 견디다.(조각달 외로이 밤을 견디니) 희미한 달빛에 의지한다는 뜻. 즉 의뢰를 수행한다.
    4. 상급 - 적색 - 출혈(出血). 피를 흘리다. 수행하는 과정에서 피를 볼 수밖에 없을만큼 어려운 의뢰라는 뜻. - 능혈(耐血). 능히 피를 흘리다. 의뢰를 위해서라면 능히 피를 흘리는 것을 감내한다는 뜻.(한 가닥 피 쯤이야 능히) 즉 의뢰를 수행하다.
    5. 최상급 - 백색 - 야설(夜雪) : 밤눈. 밤에 내리는 눈처럼 어두운 와중에 막막하며 뼛속까지 시린 혹독한 의뢰라는 뜻. - 대설(對雪). 내리는 눈을 마주하다. 즉 피하지 않고 밤눈을 맞는 것.(내린다면 맞을 밖에) 의뢰를 수행한다는 의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조희연.
    작성일
    13.05.05 12:07
    No. 4

    2편 보고싶어요~!
    카테고리에 있는 추행록이 이 편과 관련있는건가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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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황해(荒海) 13.03.09 305 1 3쪽
9 인생 제길 솔로 +1 12.12.26 238 1 1쪽
8 콜라주Collage +1 12.12.13 410 1 7쪽
7 으 아니……. +1 12.12.03 351 1 5쪽
6 오르골(Orgel) +4 12.12.01 668 3 20쪽
5 청소왕의 Clean&Clear - 부제 : 본격진지뻐ㄹ글 +2 12.11.29 499 3 8쪽
4 홍란(1) +2 12.11.29 359 3 5쪽
3 토선생총전, 여는 마당 +2 12.11.27 312 3 4쪽
» 추행록(1) +4 12.11.27 706 2 4쪽
1 6:40 +2 12.11.27 532 4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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