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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이런 서재는 처음이지?

낙성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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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가別歌
작품등록일 :
2012.11.27 07:38
최근연재일 :
2016.12.10 22:1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5,735
추천수 :
32
글자수 :
39,679

작성
13.04.2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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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쪽

Race Syndrome -0-

DUMMY

경쟁 증후군




세상이 온통 매캐하고 쓰라리다. 거대한 소각지를 바라보며 찬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시체는 지천이었고 불길은 갈수록 높이 타올랐다. 대체 어쩌다 이리됐는지 참말 모를 일이라 생각하며 그는 발길을 재촉했다.


“그래, 누가 알았겠어.”


찬수는 크로스 보우의 몸통을 매만지며 중얼댔다. 쇠 특유의 비릿한 촉감이 손끝을 간질였다. 멀리서 보면, 얼핏 그것은 꼭 한 마리의 뱀 같았다. 좁은 날개에 길쭉한 몸통, 얼룩덜룩한 무늬가 그러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길은 점점 숲으로 이어졌다. 한 시간여의 이동 끝에 잔해만이 남아 불타오르는, 폐허가 된 도시의 영역을 거의 벗어난 것이다. 바스락 거리는 풀잎 밟히는 소리를 들으며, 찬수는 Enigma의 손잡이를 버릇처럼 꽉 움켜쥐었다.

활 수집가였던 아버지는 유독 PSE Archery社의 제품을 선호하셨었는데, 이렇듯 한 손 가득 차오르는 특유의 충족감을 느낄 때마다 찬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해했다. 다만, 아직도 의문인 것은 이와 같은 물품을 들여온 경로였다. 그가 알기로 Enigma를 포함하여 대개의 활류는 반입 금지 품목이었던 탓이다.


“그래, 누가 알았겠냐고.”


Enigma의 주둥이가 묵직하게 수풀을 헤쳤다. 의뭉스런 녀석의 날개가 스칠 때마다 무성한 잎사귀들이 좌우로 갈라지는 모습이 꼭 ‘그날’과 같았다. 그날도 그랬다. 녀석의 머리가 향하는 곳마다 길이 열렸고 덕분에 일행은 그 수라장을 비교적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날, 정부가 붕괴하고 질서는 파괴됐다. 문명을 잃은 사람은 잔혹한 약육강식의 논리 앞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실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가 다시금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녀석을 해방시켰다. ‘문명의 안전’이란 미명 하에 놈을 옭아매던 모든 규제가 사라진 덕이었다. 본래라면 수집품의 하나로써 평생을 지하실 벽에 걸려 있어야 했을 운명으로부터 풀려난 것이다. 혼돈의 이름으로 Enigma와 형제들은 자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산은 넓었지만 찬수는 거침없이 움직였다. 이는 모두 시간을 들여 반복한 결과였다. 처음엔 한 걸음 내딛는 것도 어려웠지만 이젠 달랐다. 그 많은 길을 모조리 몸으로 외운 것이다. 발을 뻗을 때마다 억센 풀잎이 바지 밑단을 훑어내리며 사사삭 사삭, 연신 잡음을 흘렸다.

그는 되도록 소리가 나지 않게 하려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시끄럽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닿는 게 싫어서였다. 발목을 붙들 것처럼 집요하게 얽혀드는 풀잎은 흡사…… 더는 도주할 수 없게 된 낙오자의 절박한 손짓과도 같았다.

어느덧 저녁, 노을이 붉어 턱선을 타고 땀이 흘렀다. 생각할수록 목울대가 간질거렸다. 그러면서 꼭 가래가 끓는 듯 가르랑대는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찬수는 땀을 훔치며, 덩달아 목을 긁어봤지만 좀처럼 이 찝찝함은 가실 줄을 몰랐다.


‘이럴 땐 진짜 담배가 딱인데…….’


하지만 주머니 속은 먼지로 가득했다. 아무리 탈탈 털어도 나오는 건 그게 전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성마저 급속도로 희박해져 가는 세상 속에 담배라고 남아날 리가 없건만, 습관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다. 하긴, 그 누가 알았겠는가?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이, 삶이, 그리고 또 모든 게 이리될 줄은…….


  “정말, 아무도 몰랐지.”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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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황해(荒海) 13.03.09 305 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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