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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이런 서재는 처음이지?

낙성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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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가別歌
작품등록일 :
2012.11.27 07:38
최근연재일 :
2016.12.10 22:1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5,736
추천수 :
32
글자수 :
39,679

작성
12.11.29 22:57
조회
359
추천
3
글자
5쪽

홍란(1)

DUMMY

<홍란紅亂>

- 별춘취상別春驟霜 (1)

- 별난 봄의 느닷없는 서리


팔랑이는 가을 낙엽 위로 한올한올 이야기가 실린다. 애달프게 불어온 바람은 거세게 심장을 흔들고, 끊어질 듯 여린 음성은 시리도록 날카로와 베일 듯했다. 강하게 몰아칠 때에는 화려하도록 풍부한 박력에 압도되었고, 잔잔히 물러갈 때에는 자유로운 가진假眞의 넘나듬에 매료되었다. 낙엽은 나비가 되고, 수줍은 손짓은 너풀너풀 나래짓이 되었다. 천천히 방 안을 맴돌던 희푸른 나비는, 이내 잦아드는 바람과 함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점차 날개에 힘을 잃고 비틀대더니, 이내 둥그런 차탁茶托 위로 내려 앉는다. 달그락.

“좋군.”

인생의 겨울의 초입에 발을 디딘 노년의 사내, 서혜 중모의 칭찬에 탐스런 검은 머리칼의 청년 악사는 깊이 고개 숙였다.

“감사합니다.”

서혜 중모는 다시금 양손을 모아 찻잔을 집어 올렸다. 향긋한 내음이 코끝을 스치운다.

“정유, 자네가 이곳에 머문지 얼마나 되었지?”

서혜 중모의 질문에 정유라는 이름의 악사는, 햇수로 4년이옵니다. 라고 공손히 답했다.

“꽤나 오래되었군. 그동안 많이 늘었어. 여러모로. 처음 왔을 때에는 벌벌 떨며 연주도 제대로 못하던 애송이였는데 말일세.”

푸근히 웃으며 걸어오는 서혜 중모의 농짓거리에 정유는 식은땀이 났다. 떨리는 손이 들킬세라, 서둘러 소매 속으로 감추었다.

“과……찬이십니다, 어르신.”

정유의 순진한 반응이 기꺼웠던지, 서혜 중모는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참으로 유쾌했다. 최근 일이 잘 풀리질 않아 속이 답답했었는데, 달콤한 휴식에 그러한 것이 많이 가심을 느꼈다. 찻잔을 막 입에 댄 순간이었다. 문가에서 인기척이 났다.

“소인 신걸이옵니다.”

서혜 중모의 충복이랄 수 있는 신걸의 접견 요청이었다. 아무래도 ‘그 일’과 관련하여 급한 소식을 물어온 듯하여 서혜 중모는 손짓으로 정유를 급히 물렸다. 정유는 깊히 읍하고는 천천히 일어나 뒤돌아 섰다. 방문 앞에 다다르니, 좌우로 선 호위병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정유는 호위병들 뿐만 아니라, 막 들어오는 신걸에게도 간단한 묵례를 하고는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가주의 방을 벗어났다.

“그래, 어인 일인가?”

이어서 서혜 중모는 손짓으로 호위병들마저 방 밖으로 내몰았다. 그 누구도 들어서는 안될, 중요한 이야기라는 소리. 신걸은 바짝 긴장하며, 조금 전까지 정유가 앉아 있던 방석 위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무릎걸음으로 가주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새로운 소식이 있습니다.”

이는 매우 무례한 행위였으나, 서혜 중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착 가라 앉은 눈동자로 신걸에게 말을 이을 것을 종용할 뿐이었다.

“……랍니다.”

“끄응, 젠장.”

곤란했다. 아주 곤란했다. 서혜 중모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사실 답은 간단했다. 그냥 죽이면 된다. 그러면 아무런 후환도 없고, 일도 깔끔하게 해결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썩 내키지 않으시옵니까?”

참다 못한 신걸이 불쑥 치고 들어왔다. 가주는 유독 살생에 민감했다. 살생 이야기만 나오면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마뜩찮은 표정으로 끙끙대며 속앓이하기 일쑤였다. 독심장부라 하였건만, 가주께서는 어이하여 아직까지 이리 여린 면을 간직하고 계십니까? 신걸은 목이 타는지 찻잔의 찻물로도 모자라, 아예 찻주전자 째로 차를 들이켜는 서혜 중모를 보며 속으로 한탄했다. 조금만 더 독하셨더라면, 당신은 이미 이 나라의 주인이 되셨을 겝니다. 그러나 사람의 천성은 쉬이 바뀌지 않는 법이었다. 신걸은 익히 알고 있었다.

“가주께서 찾아 계신다고 말씀 전하오리까?”

조심스런 신걸의 질문에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서혜 중모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이런 우유부단한 면을. 하지만 도저히 고쳐지질 않으니 어찌하란 말인가? 그나마 그녀가 있어 다행이었다. 서혜 중모는 그 많은 찻물로도 가시지 않는 깔깔함에 입을 다셨다.


“아닐세. 가지. 안사람이 어디 있는지는 내 알고 있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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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황해(荒海) 13.03.09 305 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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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콜라주Collage +1 12.12.13 410 1 7쪽
7 으 아니……. +1 12.12.03 352 1 5쪽
6 오르골(Orgel) +4 12.12.01 669 3 20쪽
5 청소왕의 Clean&Clear - 부제 : 본격진지뻐ㄹ글 +2 12.11.29 500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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