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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EN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1
최근연재일 :
2023.07.14 12:25
연재수 :
72 회
조회수 :
3,850
추천수 :
8
글자수 :
392,447

작성
23.06.17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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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향랑각시

DUMMY

녹색의 우중충한 하늘 아래, 회색의 말라비틀어진 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그림 속 풍경처럼 삭막하고 기괴한 그곳은 이른바 도깨비 길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사사사삭!


활 같은 삼각형에 지네처럼 길고 짙은 갈색의 몸, 1000개가 넘는 한 쌍의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는 거대한 노래기가 나무들 사이를 요리조리 헤집고 지나갔다. 그 위에는 한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말을 탄 것처럼 앉아 있었다.


“으헉!?”


갑자기 노래기가 둔덕을 지나가는 바람에 균형을 잃은 남자가 놀란 소리를 내뱉으며 비틀거렸다. 그러자 바로 그의 뒤에 앉아있던 흰 소복을 입은 여성이 팔을 뻗어 붙잡아줬다.


“도령, 괜찮아? 조심해야지!”

“아, 예! 괜찮습니다! 향랑각시를 조종하는 것에 집중하느라 둔덕을 알아채지 못했어요!”


혜성이 놀란 심장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가장 뒤에 앉아있던 려월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불쑥 끼어들었다.


“굳이 도깨비 길로 이동할 필요가 있나요? 예전에야 바리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랬다지만, 이제 그는 죽어서 없으니 신경 안 써도 되잖아요! 그냥 도술을 써서 소백산까지 가죠?”

“안 돼. 지금 바깥세상은 우리 같은 영적인 존재나 도술이 흔치 않은 세상이야. 다른 이들의 눈에 띄어 좋을 게 없어. 그리고 지금 도령은 요기를 쓰는 훈련도 해야 하고.”


혜성은 우렁각시와 인간의 혼혈로서 요기를 지니고 태어났다. 거기에 임맥과 독맥을 타통하며 초고수의 반열에 이르렀다. 월연 스님이 선물로 준 묵주를 통해 법력을, 천년호의 여우구슬을 통해 여우의 요기까지 지녔다. 하지만 이 힘을 제대로 쓰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인간의 전투방식에 너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까? 그는 요기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미리가 그런 점을 콕 집었다.


“바리와의 싸움에서도 그래! 도령이 요기를 제대로 쓸 줄만 알았어도 피해는 크게 줄였을 거야! 어쩌면 간단히 그를 제압할 수 있었을 지도...... 물론 도령을 탓하는 건 아니니 미안해할 것 없어. 어쨌든 미래를 위해서라도, 도령은 요기를 제대로 쓰는 법을 익혀야만 해. 그런 의미에서 향랑각시를 조종해 보는 것은 좋은 훈련이 될 거야!”


향랑각시는 겉보기엔 지네와 비슷해 꽤나 무서운 생명체 같지만, 실상은 아주 얌전하고 말을 잘 듣는 순둥이였다.


“그런데 이름이 왜 향랑각시죠? 노래기 아니에요? 건드리면 몸을 둥글게 말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혜성이 자신의 요기를 흘려 향랑각시를 조종하며 물었다. 미리가 살포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면 듣는 노래기 섭섭하잖아. 이무기가 큰 뱀보다 용이라 불러주면 좋아하는 것처럼, 노래기도 아름다운 향기를 퍼뜨리는 각시라 칭해주면 더 좋아해.”


미리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인지, 향랑각시가 기분 좋게 ‘치르르륵!’ 소리를 냈다. 미리가 향랑각시의 단단한 등껍질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귀엽다는 듯 소리 내어 웃자, 혜성과 려월은 그녀의 취향이 참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때 그들이 지나가려던 커다란 흰 바위에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홍난삼을 입은 매서운 얼굴의 미녀가 불쑥 튀어나왔다.


“...... 억!?”

“......!”


향랑각시와 홍난삼의 미녀가 부딪치기 직전, 혜성이 급히 향랑각시를 멈춰 세웠다. 다리가 워낙 많아서 그런가, 향랑각시는 바로 코앞에서도 잘 멈춰 섰다.


“...... 뭐야, 놀랐잖아!”


홍난삼의 미녀가 흠칫 놀라며 반사적으로 연화장의 기수식을 취했다가, 바로 앞에서 멈춰선 향랑각시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는 금방 자세를 풀었다. 그녀 역시 노래기가 겉모습만 흉측할 뿐 순한 녀석이란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잠백옥이 한손을 들어 올려 혜성 일행에게 사과하며 말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군! 내가 급히 서두르느라 미처 이곳의 상황을 확인하지 못했어! 딱히 부딪치지 않았으니, 좋게 좋게 그냥 넘어가자고!”


말을 마친 백옥이 날렵한 신법으로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홀연히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와중에, 미리가 벼락같이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도령? 당장 쫓아가! 저 녀석이잖아, 그 연화봉 도깨비!”

“예? 아, 예!”


미리의 다그침에 정신이 번쩍 든 혜성이 월영보를 써서 쫓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미리가 그의 어깨를 붙잡고 힘으로 찍어 누르며 말했다.


“향랑각시를 놔두고 어딜 가려해? 이대로 쫓아!”

“예? 하지만 저렇게 빠른데......!?”

“괜찮아! 향랑각시라면 따라잡을 수 있어! 지금까진 훈련 삼아 요기를 약하게 썼잖아? 이제 도령도 향랑각시도 서로의 요기에 익숙해졌을 터, 더 강한 요기를 써 보라고!”

“그래도 괜찮을까요?”

“괜찮아!”


미리의 확신에 찬 대답에 용기를 얻은 혜성이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요기를 끌어올렸다. 묵주가 작게 빛을 내며 반응했지만, 천년호의 여우구슬이 가진 정순함 때문인지 금세 괜찮아졌다. 혜성이 끌어올린 요기를 향랑각시의 몸에 집어넣었다.


치르르르!


강한 요기를 전달받은 향랑각시가 머리를 거칠게 투레질하며 기함을 토했다. 넘쳐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몸을 꿈틀거리던 향랑각시가 혜성의 생각을 읽고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앞을 가로막는 나무는 죄다 들이받아 박살내버리고, 모래 먼지를 구름처럼 휘날리며 달렸다.


다다다닥!


“......!”


엄청난 스피드에 놀란 혜성, 미리, 려월이 납작 엎드려서 향랑각시의 등껍질을 붙잡고 버텼다. 바람이 불다 못해 얼굴을 마구 때리고 지나갔다.


“응?”


뒤에서 쫓아오는 기척을 알아챈 백옥이 힐끔 뒤를 돌아보고는 눈썹을 추켜세웠다.


“설마 날 쫓아오는 건가?”


백옥이 잽싸게 몸을 홱 돌리며 땅의 바위를 발로 밀어 찼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그녀의 몸에 닿는 즉시 썩어서 죽어버리지만 무생물은 괜찮았기에 바위를 이용해 추적을 견제하려한 것이다.


“......!”


휘잉!


육중한 바위가 향랑각시를 향해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왔다. 그걸 본 혜성이 황급히 향랑각시를 움직여 달리던 방향을 틀었다.

아슬아슬하게 향랑각시를 지나친 바위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땅을 찧고 데굴데굴 구르며 회색 나무들을 박살냈다. 퍼석퍼석 소리를 내며 힘없이 부서지는 나무들을 돌아보며, 혜성이 작게 경탄성을 내질렀다.


“가볍게 걷어차는 것 같더니 내공을 실어서 날렸어요! 저 큰 바위를......! 도깨비면서도 대단한 고수라더니, 호군의 말이 사실이었네요!”

“조심해, 도령!”


미리의 경고에 아차하고 놀란 혜성이 백옥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혜성의 눈에 산산조각 난 나무 파편들이 바늘 무더기처럼 쏘아져 날아오는 게 보였다.


“억!?”

“......!”


피할 겨를이 없었던 혜성의 앞을 미리가 급히 막아섰다. 그리곤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강한 바람을 일으켜 나무 파편들을 일제히 튕겨냈다.


파바바박!


힘없이 튕겨나간 나무 파편들이 모래로 된 땅에 꽂히듯 박혔다.


“호오, 꽤 실력이 좋은 요괴로구나! 딱 봐도 도깨비는 아니고, 정체가 뭐냐?”


자신이 날린 공격을 고작 소맷자락의 바람만으로 튕겨내는 걸 본 백옥이 눈에 이채를 띠며 물었다. 그녀는 예전부터 호승심이 강하고 저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미리의 강함을 눈으로 확인하자마자 투기가 치솟아 올랐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저는 설악호군께서 보낸 사람입니다!”


백옥과 미리가 금방이라도 치고받을 것 같아, 혜성이 황급히 끼어들었다. 미리와 려월은 만파식적 같은 보물을 그녀가 쉽사리 내놓을 리 없으니 좀 더 계책을 쓰자 했으나, 혜성은 우선 대화로 풀어보고 싶었다.


“설악호군? 아, 지금의 백호라는 자...... 그 이야기라면 그 까치를 통해 분명히 거절했을 텐데?”


백옥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톡 쏘아붙였다. 혜성이 싸울 생각이 없다는 듯 양손을 들어 항복표시를 하며 향랑각시의 등 위에서 뛰어내렸다. 백옥이 그런 그를 경계하며 말했다.


“만파식적은 능력이 부족한 자가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전 주인이었던 백호도 그저 봉인시켜놓고 아무 것도 못했던 물건이야! 지금의 나 역시 그것의 저주 때문에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자가 되어버렸지만...... 만파식적은 돌려줄 수 없다. 애초에 줄 생각도 없지만, 돌려준다 해도 내 몸에 걸린 저주를 씻어내는 것이 먼저야.”

“저주? 대체 무슨 저주입니까? 말씀해주시면 저희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흥! 너희가 뭐라고......”

“전 보잘 것 없는 인간이지만, 이 옆에 계신 분은 무려 천년 가까운 세월을 사신 이무기입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분이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이무기?”


백옥이 미리를 훑어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갑자기 요기가 불쑥 솟구쳤다. 기문둔갑술로 위치 바꾸기를 사용한 려월이었다.


“속박의 술!”

“......!”


려월이 백옥의 몸을 순식간에 속박했다. 백옥이 놀란 숨을 집어삼키며 눈알만 굴려 려월을 쏘아봤다. 자신의 몸에 닿은 생명체는 모두 순식간에 썩어 죽는다. 이 사실을 려월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바보 같은......!’


백옥이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려월이 요기를 자신의 오른손에 가득 끌어 모은 채 만파식적의 기운이 느껴지는 백옥의 심장을 향해 손을 내뻗는 것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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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거인과의 싸움 23.07.02 28 0 13쪽
67 괴적단의 습격 23.06.30 30 0 11쪽
66 천사옥대 23.06.29 32 0 14쪽
65 개마고원 능구렁이 23.06.27 34 0 10쪽
64 너구리 영감 이래온 23.06.25 36 0 10쪽
63 너구리 영감 이래온 23.06.24 36 0 12쪽
62 내기 23.06.22 34 0 17쪽
61 유령선 23.06.19 38 0 10쪽
» 향랑각시 23.06.17 36 0 10쪽
59 눈빛 23.06.15 31 0 10쪽
58 설란의 귀환 23.06.13 37 0 11쪽
57 소백산파 도장의 죽음 23.06.12 42 0 13쪽
56 연화봉 도깨비 23.06.10 33 0 11쪽
55 설악호군의 의뢰 23.06.10 32 0 15쪽
54 파괴의 끝 23.06.09 35 0 13쪽
53 난전 23.06.09 34 0 16쪽
52 치열한 전투 23.06.09 32 0 12쪽
51 아스트라 23.06.08 31 0 13쪽
50 땅속에서의 사투 23.06.07 32 0 12쪽
49 고독 23.06.07 32 0 12쪽
48 야차와 가물치 장군 23.06.06 37 0 13쪽
47 유현의 정체 23.06.06 32 0 11쪽
46 별장으로 23.06.05 38 0 10쪽
45 학선무 23.06.05 36 0 11쪽
44 모습을 드러낸 바리 23.06.03 36 0 14쪽
43 달을 찢어라 23.06.03 34 0 15쪽
42 새끼 지네 23.06.02 35 0 14쪽
41 명옥 선녀의 죽음 23.06.02 38 0 11쪽
40 불 지네 왕 23.06.01 41 0 14쪽
39 사라진 여의주 23.06.01 36 0 14쪽
38 설악산 전투 23.05.31 37 0 15쪽
37 바리의 소환술 23.05.31 33 0 14쪽
36 금화선녀 23.05.30 36 0 15쪽
35 만신 23.05.30 39 0 12쪽
34 려월의 꿈 23.05.29 46 0 15쪽
33 저주 23.05.29 44 0 14쪽
32 탈출 23.05.27 44 0 17쪽
31 흡혈귀 은동 23.05.27 43 0 12쪽
30 영사 23.05.26 43 0 10쪽
29 영사 23.05.26 44 0 9쪽
28 천년호의 여우구슬 23.05.25 47 0 13쪽
27 붙잡힌 팔척귀신 23.05.25 43 0 11쪽
26 선유도 전투 23.05.24 4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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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려월과 허씨 부인 23.05.23 51 1 11쪽
22 용왕의 사자 23.05.22 50 0 13쪽
21 북두 그룹의 지하시설 23.05.22 48 0 11쪽
20 여우골을 향해서 23.05.20 53 0 13쪽
19 다가오는 위협 23.05.20 51 0 12쪽
18 낮도깨비 23.05.19 56 0 13쪽
17 팔척귀신 23.05.18 61 0 10쪽
16 소백산파 이설란 23.05.18 60 0 12쪽
15 설악호군 23.05.17 58 0 11쪽
14 미리의 여의주 23.05.17 56 0 12쪽
13 영력 대결 23.05.16 6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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