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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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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킴
작품등록일 :
2021.05.13 21:41
최근연재일 :
2022.11.17 22:25
연재수 :
98 회
조회수 :
92,350
추천수 :
2,887
글자수 :
580,477

작성
21.05.22 00:00
조회
1,382
추천
43
글자
16쪽

5. 먹이를 찾아서(2)

DUMMY

창현은 이제 완전히 몸을 일으킨 채로 달리고 있었다. 예상보다 가깝게 접근하지 못했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결과는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껑충껑충 내딛는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한 걸음씩 뗄 때마다 감정이 고조되며 이내 심장이 격렬히 뛰었다. 묘한 고양감과 힘이 치솟아 올라 자꾸만 그를 충동질했다. 얼굴에 와 부딪히는 차가운 바람이 더없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앞을 보니 벌써 녀석과의 거리가 반 이상 좁혀져 있었다. 그와 반대쪽에서 이제 막 뛰쳐나오고 있는 이용의 모습도 보였다.


창현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빨랐다.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낯설 정도로 그가 알고 있는 속도의 감각을 훨씬 초과해 달리고 있었다. 발아래에서 눈이 폭발하듯 터져나가고 그 밑에 언 땅도 깨어져 날렸다.


달려오는 창현을 향해 곰이 거대한 몸을 돌리고 벽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빳빳하고 새카만 털이 전신을 뒤덮고 그와 대비되는 새하얀 털이 가슴에 초생달 문양을 그리고 있었는데, 곰이 아니라 마치 어떤 다른 괴수에 더 가까워 보였다.


단지 몸을 일으켰을 뿐인데도 멀리서 보았을 때는 느끼지 못하던 위압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곰은 빠르게 다가서는 창현을 전부터 인식했다는 듯 당황하거나 겁먹은 태세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흉포한 빛을 그 큰 눈알에 떠올리며 포효를 내질렀다.


"크와아아앙!"


물소의 머리라도 단번에 씹을 듯한 큰 입이 벌어지고 뒤이어 귀를 울리는 포효가 산을 뒤흔들었다.


벌어진 아가리에서 끈적한 침이 고여 땅으로 떨어졌다. 거친 콧김과 번들거리는 흉포한 눈빛이 마치 찾아 헤매던 먹이가 앞에 나타나 주어 반갑다는 인사처럼 보였다.


그 앞에선 창현은 순간 정말로 자신이 먹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겁을 집어먹지는 않았다. 이보다 더욱 살기 짙고 목숨을 내놓은 위기를 몇 번이나 헤쳐온 자신이 아니던가.


"네놈이 아무리 거칠다 해도 오늘 너의 불운을 피하진 못할 것이다."


창현이 작은 소리로 웅얼거린 순간, 숲 사방에서 그림자들이 일어나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가촌의 다른 청년들이었다. 때마침 곰의 어깨가 비틀리고 발이 떨어졌다. 그것을 본 창현은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치우치며 허리를 숙였다.


부웅!


왼쪽 뺨으로 곰의 앞발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갈퀴 같은 발톱에 걸린 바람이 비명을 지르며 찢겨졌다. 바람이 아니라 육신에 닿았으면 바로 걸레짝이 되어버릴 만큼 강한 위력이었다.


창현은 그것을 굳이 몸으로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지체하지 않고 계속 움직여 나갔다. 체중이 한곳으로 쏠린 상태에서 급격히 방향전환을 한 것이라 대퇴근과 허리에 강한 부하가 걸렸지만, 창현은 그것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다시 반대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질기고 단련된 그의 근육이 한계까지 팽창하며 몸에 전해지는 모든 부하를 효율적으로 버텨내 주었다. 공격이 지나갔다 느낀 순간, 곰의 반대편 발이 다시 그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높은 체고(體高)를 바탕으로 찍어내리 듯 휘두르는 그 앞발은 실로 감탄스러운 것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몸을 움직여 나가던 창현은 한순간 근섬유 한올 한올마다 활력이 가득 들어차는 기분에 휩싸였다. 뼈와 인대가 마치 강철처럼 느껴졌고 자신의 의도대로 몸이 정확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몸 안에 흐르는 한 방울의 피마저도 제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창현은 반복적으로 허리를 굽혔다 펴며 높낮이를 구별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곰이 짜증 난다는 듯이 앞발과 심지어 뒷다리까지 사용해 무차별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창현에게 닿기에는 한참이나 요원해 보였다.


곰이 더욱 광분해 날뛰기 시작했다. 자연재해라도 일어난 것처럼 점차 주변이 파괴되어 갔다. 하긴 자기 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동물이 빨리 죽어주지 않아 거슬릴 법도 할 터였다.


그러나 곰이 원하는 대로 쓰러져 줄 수는 없는 일이라 창현은 더욱 민첩하고 영활하게 움직였다. 몸을 쓰면 쓸수록 재미까지 붙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이용이 끼어들었다.


쉬익!


이용은 달려오던 속도를 이용해 곰의 등 뒤로 새처럼 날아내렸다. 보통보다 조금 작은 키, 왜소한 몸집을 지녔지만 그 점이 이용에게 있어서는 더욱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 같았다. 등에 올라탄 이용이 녀석의 어깻죽지를 향해 창을 찔러 넣었다.


퍽!


그러나 아직 여물지 못한 힘으로는 무리였던 것인가. 안타깝게도 창은 곰의 질긴 거죽과 근육을 완전히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쿠워어어어!"


도리어 화만 돋군 것 같았다. 크게 포효를 내지른 곰이 귀찮은 파리를 내쫓듯 앞발을 뒤로 돌려 휘둘렀다. 붕붕거리는 앞발이 위협적으로 눈앞을 스쳐갔지만 이용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한팔로 곰의 목을 감싸 안고 창질을 계속했다.


"크윽!"


그러나 어느새 이용의 어깨와 등허리는 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찢어진 옷이 걸레짝처럼 너덜거렸다. 갈퀴 같은 곰의 발톱을 전부 피할 순 없었던 탓이다.


"헉... 헉...!"


이젠 한계에 달한 모양, 이용은 다시 한번 창을 찔러넣다가 결국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는 다만 곰의 목을 힘차게 끌어안고 죽기 살기로 달라붙었다.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하지만 고목에 매달린 매미마냥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곰의 행동에 제약이 생긴 것은 사실이었다. 그 틈을 창현이 놓칠 리 없다.


"합!"


푹!


한줄기 기합성과 함께 창이 곰의 배를 꿰뚫으며 한 뼘이 넘게 박혀 들었다. 창대를 타고 벌떡거리는 내장의 움직임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곰이 시선을 내려 창현을 바라보았다. 큰 눈알에 떠올린 본능적인 살기. 그 눈빛에는 아무리 숙련된 사냥꾼이라도 오금이 저리지 않을 수 없을 거였다. 창현도 새삼 긴장되는 마음에 침을 꿀꺽 삼켰다.


"크아아앙!"


한동안 이용에게 신경을 빼았겼던 곰은, 누가 가장 위협이 되는지 이제야 파악한 모양이었다. 곰은 정말 분노한듯했다. 배의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네발로 뛰어서 창현을 향해 덮쳐가는 거였다. 창현은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급히 창을 빼내며 뒤로 몸을 날렸지만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먹이도 제대로 못 먹었을 텐데 어디서 이런 체력이 샘솟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뛰어도 모자랄 판에 뒤로 몸을 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결국 따라잡히고 말았다. 후려쳐 오는 곰의 발이 크게 확대되었다. 창현은 다시 창을 내질렀다.


슉!


창은 앞발을 꿰뚫고 깊이 박혔지만, 그것으로 곰을 막을 순 없었다. 녀석은 고통에 포효하면서도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힘을 주며 앞발을 내리찍었다. 창현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퍽!


창대를 관통하여 타고 내려온 앞발이 마침내 창현의 가슴을 후려쳤다. 아무리 반감되었다고는 하나, 충분히 사람을 날려버릴 만큼 강한 위력이었다. 창현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컥!!"


그가 방심한 탓도 있겠지만 상리를 벗어난 곰의 공격방식이 제대로 먹혀 들어간 것이다.


곰이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퍼 올리는 것처럼 앞발과 배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왈칵왈칵 흘러내렸지만 거기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쿠워어어어!"


승리의 포효를 내지른 곰이 마침내 앞발을 들어 올렸다. 확실히 끝장내고 먹어 치우려는 심산 같았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던 한가지 사실 때문에 녀석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놈!"


난리 통 속에서도 이름처럼 용하게 떨어지지 않고 버텼던 이용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어느새 빼 든 단도를 휘둘렀다.


팍!


곰의 뺨을 뚫고 들어간 단도가 혀를 썰었다. 고통이 심했는지 곰은 팔을 허우적거리며 휘청거렸다. 흔들림이 심했지만 그것으로 이용을 멈출 순 없었다.


작심하고 휘두른 그의 칼은 눈이며 귀며 할 것 없이 곰의 얼굴을 무참하게 난도질했다. 분수처럼 튀어오른 피가 사방으로 퍼졌다. 이용은 무자비했으며, 끊임이 없었다. 신열이 오른듯 붉게 물든 얼굴이 이순간 마치 악귀와 같아 보였다.


"으아아! 죽어!"


"용아! 창현이 형!"


때마침 장내에 다른 청년들이 난입해 들어왔다. 강철같은 체력을 자랑하던 곰도 이제는 지쳤는지 아까처럼 빠르고 강력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청년들은 도착하자마자 고통에 몸부림치는 곰의 몸에 병기를 박아넣었다.


* * *


탁. 타탁.


말갈기처럼 휘날리는 불꽃이 어두운 굴속에서 빛났다. 충분히 마른 나무가 아닌지 끊임없이 불티가 튀고 생연기가 심하게 났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불티가 튀던 아예 불붙은 장작이 걸어 나가던 상관없을 터였다.


연기 따위도 안중에 없었다. 그 위에서 익어가고 있는 기름진 고깃덩이에 비하면 그 외에 다른 문제들은 무엇이 되었건 사소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치익.


줄줄 흘러내리는 기름방울이 불꽃에 닿자 다시 한번 메케한 연기가 솟구쳤다. 울묵줄묵 편한 대로 모닥불가에 둘러앉은 청년들이 연기가 다가오자 얼굴을 분분히 비켰다. 그렇지만 찌푸린 눈살로나마 익어가는 고기에서 시선을 돌리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꿀떡!


누군가 삼킨 침이 목울대를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경표가 불쏘시개로 모닥불을 깨작거리다 누구에게랄 것 없이 중얼거렸다.


"이제 다 익은 거 아닐까?"


그가 흘리는 침이 앞섶을 다 적실 지경인 것을 보니 조금 전 침 넘어가는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대강 짐작할 만했다.


"모르는 소리! 곰고기는 질긴 편이라 한참 익혀야 한다구. 아직이야."


"그래도 이렇게 냄새가 좋은데?"


"그놈에 성질머리는 왜 그렇게 급해? 냄새에 속은 적이 한두 번이냐. 잔말 말고 가만 있어. 곧 다 되니까."


"고루한 놈. 젊은 놈이 할애비 같은 소리만 해대니 매일 그렇게 욕 얻어먹는 게 아니야. 그냥 대충 넘어가."


"너 빼고는 욕하는 사람 없으니 걱정 말고 이거나 잡아. 먹성 빼면 남을 것도 없겠다 너는."


진천의 타박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불쏘시개만 놀릴 뿐이었다. 결국 진천이 한마디 더 하자 그제야 곰 앞발을 꿰어놓은 나뭇가지를 건네받았다.


둘은 스무 살 동갑내기로 동년배가 드문 마을에서 운 좋게 같은 해에 태어난 친구들이었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성격이 잘 맞아 어릴 적부터 유독 붙어 다녔는데 그 탓인지 창을 손에 잡은 시기도 엇비슷했다. 둘 다 걸쌈스러운 성격에 괄괄한 것도 마찬가지라 티격태격하는 일이 잦았지만 그래도 배짱이 맞는 단짝이라면 서로뿐이었다.


이용은 언제나 그렇듯 일행과 묘하게 떨어진 위치에서 무릎을 팔로 감싼 채 말이 없었고 구성은 형들의 눈치를 보며 고기 꼬챙이를 조심스럽게 돌리고 있었다. 워낙에 기세등등한 소위 `마을 형들`에게 잡혀 산 것이 어언 반평생이니 이곳까지 따라와 눈치를 보더라도 그의 잘못이라고는 못할 거였다.


창현이야 원체 과묵한 성격이고 이용도 창현 이외에는 그다지 친한 이가 없으니 그렇다 쳐도 이상한 것은 명모였다. 청년층에서 능글맞기로 둘째가라면 서럽고 괄괄하기로는 태무 이상이라는 그가 마을을 떠나온 이후 계속 조용한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창현도 바보는 아니라 명모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점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안 시간이 얼마고 사귄 세월이 얼마인가. 이젠 서로의 숨소리만 들어도, 눈빛만 보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사이가 아니던가.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창현은 섣불리 다가가 위로할 수 없었다. 혈육을 잃은 고통과 지체(肢體)를 잃은 고통, 두 가지 모두 제삼자가 관여해 이러쿵저러쿵할 계제가 아니라는 것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주제넘은 간섭 같아 그렇게 하기 싫다는 게 진짜 속마음이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은 먼저 마음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위장을 자극하는 구수한 냄새가 모두의 코를 들쑤셨다. 고기가 어느새 다 익은 모양이었다. 통째로 올려진 곰 앞다리가 썩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냄새만은 기가 막혔다. 내내 말이 없던 창현마저도 기대에 찬 표정이었으니 나머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게다. 칼로 조심조심 찔러보던 경표가 소리쳤다.


"진짜 다 된 거 같은데?"


진천이 다시 뭐라고 타박하려다 모두의 얼굴을 돌아보곤 피식 웃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배가 고픈 건 똑같은 모양인지 다들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이 정도면 된 것 같군."


뻐근한 가슴을 문지르며 창현이 한마디 하자 모닥불가에 앉아있던 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가운데로 바투 모여들었다. 한쪽에 옹송그리며 쭈그려있던 이용도 꾸물꾸물 다가섰다. 뭉청뭉청 잘린 못생긴 고깃덩이를 하나씩 들고 짓는 행복한 표정이란 썩 볼만한 거였다.


하긴 눈 덮인 산속을 헤매며 곰을 추적하는 며칠 동안 생더덕 몇 뿌리 씹은 게 고작이었으니 허기가 져도 보통 진 게 아니었을 게다.


"이거 위장이 놀라겠는걸. 오랜만에 기름진 걸 넣어줬더니 말야."


"걱정되면 나한테 양보하던가. 귀한 고기 처먹으면서 재수 없는 소리는."


"너 이 자식! 남 먹는 걸 탐내는 놈은 흠씬 두들겨 맞아도 할 말이 없다고 우리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누가 니껄 탐낸다 그러냐? 지저분하게스리. 말이 그렇다 이거지."


경표가 발작하려는 걸 창현이 눈짓으로 꾸짖었다. 감히 창현에게는 뭐라 하지 못하고 그저 씨근덕대며 다시 고기를 뜯을 뿐이었다.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네. 며칠 정도 더 헤맬 거라 생각했는데."


한참을 먹다가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진천이 고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그래. 이 녀석이 바로 나타나 준 것은 확실히 운이 좋았던 거지. 하루라도 헛되이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내일 중으로 떠나도록 하자."


해가 지려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창현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침울한 얼굴이 되었다. 남아있는 이들이 생각난 것이다.


그들이 이곳으로 나온 이유. 주린 배를 부여잡고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희희낙락하며 배를 채울 기분도 사라져버렸다. 가장 어린 이용은 무던했지만 비슷하게 어린 구성과 경표, 진천은 먹던 고기도 내려놔 버렸다.


어리다고 슬픔을 모를 리 없다. 아니, 그것을 모를 정도로 그들이 어린 게 아닐 것이다. 그들도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모든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지켜보며 그것이 자기의 고통이 되기까지 이미 충분히 겪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됐다. 고길 지고 가려면 일단 우리가 기력을 회복해야지. 남았으니 귀한 음식 버리지 말고 다 먹어. 푹 쉰 다음 움직일 거니까."


사냥한 곰은 그대로 들고 이동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크고 무거웠다. 그들은 곰의 배를 갈라 피를 몽땅 빼버리고 창자는 나무에 걸어두었다. 다른 짐승이라도 먹도록 보시를 한 것이다.


가죽은 벗겨내 차곡차곡 접어들고 사지는 토막 내 눈 속에서 얼렸다. 뼈와 힘줄도 따로 발라내어 갈무리했다. 버릴 게 하나도 없었다. 이 작업으로만 하루를 다 잡아먹을 정도로 할 일이 많았다.


그래도 청년들은 어느 정도 성과를 봤다는 기분에 힘든 줄 몰랐다. 어느덧 밤이 찾아왔다. 청년들은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한데 모여 누웠다. 시린 공기가 어깨를 감싸고 발을 적셨지만 그네들은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그들은 다시 길을 나섰다. 마을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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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99 참좋은아침
    작성일
    21.07.29 18:52
    No. 1
  • 작성자
    Lv.13 g6******..
    작성일
    21.11.21 00:32
    No. 2

    흔치않은 어휘들이 굉장히 자연스러워 읽기가 즐겁습니다. 작가님이 전공자 이신듯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9 브랜드킴
    작성일
    21.11.21 13:52
    No. 3

    g6574_ge님 안녕하세요! 전공자는 아니지만 제 능력 안에서 많은 어휘들을 가져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잠깐이지만 제 글을 읽고 즐거움을 느끼셨다니 저는 더 바랄게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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