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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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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킴
작품등록일 :
2021.05.13 21:41
최근연재일 :
2022.11.17 22:25
연재수 :
98 회
조회수 :
92,367
추천수 :
2,887
글자수 :
580,477

작성
21.05.31 17:15
조회
813
추천
31
글자
10쪽

10. 괴물은 멀리 있지 않다(1)

DUMMY

사박. 사박.


새들의 날갯짓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숲 한가운데, 두껍게 쌓인 눈 위를 멧토끼 한 마리가 폴짝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코를 연방 벌름거리는 폼이 아마도 먹이를 찾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한겨울 눈 덮인 산속에서 먹이를 찾기란 고목에서 열매가 열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거였다. 역시나 토끼는 별다른 수확 없이 그저 방황하기만 할 뿐, 무언갈 입속에 넣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저절로 긴장되고 숨이 차올랐다. 쟈힘은 토끼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진정해야 한다고, 침착해야 한다고 속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달빛이 비쳐 들어 오는 숲속에서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한참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조심스러운 한 걸음을 떼었다.


엎드리다시피 자세를 낮추고 엉금엉금 걷는 걸음이 자못 우스꽝스러웠지만 정작 그렇게 걷는 쟈힘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하기만 했다. 토끼는 자신을 노리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거리는 처음보다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는 만큼 점점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어제도 이 조바심 탓에 눈앞에 먹이를 놓치지 않았던가? 아니 엊그제였던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그 시간만큼 운동하지 못한 창자가 속에서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크게 다리를 벌려 뛴다면 서너 걸음이면 족할 거리까지 다가섰다.


꿀꺽!


쟈힘은 침을 한번 삼키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깊게 심호흡했다. 마침내,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쟈힘의 몸이 토끼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떨어지는 그 순간에 젖 먹던 힘까지 끌어와 양손을 휘둘렀다.


"하앗!"


바닥에 떨어진 쟈힘은 눈더미 속에 얼굴과 어깨를 처박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도약이 거셌던 만큼 충격도 만만치 않을 테지만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쟈힘은 몸을 돌려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어둠에 물든 하늘이 보이고, 그 아래 같은 빛으로 흘러가는 구름도 보였다.


허탈해지는 가슴보다 더욱 허탈해지는 배속이 아려왔다. 결국 토끼는 도망가 버렸다. 눈밭 위에서 토끼보다 민첩하게 움직이기란 아직 덜 여문 그의 다리로는 무리였던 것일까.


만 열 살이 되면 시작되는 토페익투족의 전통. 우헬 텐게스. 쟈힘은 올해로 열 살이 되었고, 그것은 곧 우헬 텐게스를 시작해야 함을 뜻했다. 그래서 보름 전 터스겅을 떠나와 야지를 헤매고 다녔던 것이다. 우헬 텐게스의 수행자들은 부족 영지 내에 머물 수 없으므로 멀리 떠나야만 했다.


그렇게 떠나온 쟈힘은 이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어디로 향해 가야 할지조차 막막했다. 떠나기 전 주변 야힌들이 이것저것 해준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런 것들은 막상 상황이 닥치자 별 힘이 되어 주지 못했다.


기력이 떨어져서인지 추위도 극심하게 기승을 부리는 것 같았다. 사실상 야생에 유기된 채로 적응하며 십 년을 견디기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일부는 죽고, 일부는 포기하며, 정해진 소수만이 성공하는 기나긴 여정. 달리 `죽음의 바다`가 아닌 이유였다.


쟈힘은 눈덩이를 뭉쳐 입에 넣고 천천히 녹여 먹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걸었다. 계속 눈밭에 드러누워 있으면 기다리는 건 오직 죽음뿐이다. 아직 어린 야힌이지만 그 정도 진리는 알고 있었다.


쟈힘은 포기하지 않고 도망간 토끼를 쫓기로 했다. 여러 흔적을 눈밭에 뿌려두고 간 탓에 추적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먹이를 찾는 쟈힘의 눈이 어둠 속에서 파랗게 달아올랐다.


* * *


"제대로 가고 있기는 한 건지 모르겠네."


"조용히 해."


"너는 불안하지도 않냐? 걱정도 안 돼? 이러다 길이라도 잃으면 이번 겨울 끝날 때쯤엔 우리 모두 전부 눈 속에서 시체로 발견될걸?"


진천이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입 닥치라는 뜻이었다. 경표는 심상치 않은 진천의 표정에, 다시 뭐라고 입을 벌리려다 말고 손에 쥐고 있던 창을 바짝 움켜잡았다.


진천이 입에 댔던 손가락을 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경표가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고목 뒤로 늘어진 어두운 그늘 사이로, 무언가 바닥에 점점이 찍혀있었다. 갯과 동물의 발자국인지 예전 그들이 키우던 사냥개의 그것과 비슷해 보였다. 진천이 무릎을 굽혀 발자국을 만지작거렸다.


"얼마 안 됐어."


작게 소곤거리는 진천의 말에 경표는 대꾸하지 않고 코를 벌름거렸다. 곧 그는 근처 키 작은 나무에서 가지에 걸린 회색빛 털 뭉치를 찾아냈다. 경표가 계속 냄새를 맡더니 중얼거렸다.


"늑대야."


"무리에서 떨어진 놈이로군."


손발을 맞춰 사냥한 지 어디 하루 이틀이던가. 하릴없이 희희낙락할 때와는 다르게 짧은 대화만이 오갔지만, 서로 뜻은 충분히 통했다.


"이런 놈은 영악한데."


"고기도 질기지!"


"그런 걸 따질 때냐. 아무튼 따라가 보자고."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금방 의견을 모았다. 먹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런 맹수가 주변에 돌아다닌다면 아무래도 다른 먹잇감들을 구경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이동 중인 일행 근처를 경계도 할 겸, 먹이도 구할 겸 나온 길이었는데 뜬금없는 맹수 사냥이 시작되어 버렸다. 그래도 그들은 두려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발자국 크기로 보아 다 큰 늑대일 확률이 높다. 만만치 않은 맹수라는 뜻이었다. 무리에서 쫓겨난 늑대는 쇠락하여 전성기 때의 힘은 없지만 그보다 노회한 머리가 더욱 무서운 법이다. 그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더욱 신경을 곤두세웠다.


발자국은 숲 안쪽을 향해 나 있었다. 아직은 일행과 거리가 가까웠으므로 진천과 경표는 나무에 표식을 남기며 주저 없이 숲으로 들어갔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빛조차 온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약간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바닥, 아무리 대범한 그들이라도 마냥 태평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서로 창을 곧추세우고 추격을 계속했다. 먹이를 찾는지 발자국은 숲 이곳저곳을 불규칙하게 돌아다녔다. 신통치 않은 모양, 왔던 길을 되돌아간 흔적도 있고 중간에 한번 소변을 본 흔적도 발견되었다.


진천과 경표는 한동안 그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짐승의 짙은 노린내가 맡아지자 깜짝 놀랐다. 그들은 바로 자세를 낮추고 정황을 살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후에 그들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앞 관목 옆에서 사냥의 흔적을 찾아낸 것이다.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닌걸. 내걸 뺏긴 기분이야."


어지럽게 수 놓인 그놈의 발자국과 짐승의 털, 그리고 선열한 붉은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 짧고 갈색을 띤 털은 산에서 흔하게 보이는 멧토끼의 털 같았다. 때마침 만만한 먹이를 발견하다니, 그놈도 굉장히 운이 좋다고 해야 할 거였다.


"네놈 말에 동감하긴 정말 오랜만인데. 이건 진짜 얼마 안 된 거 같아. 빨리 가보자."


"젠장.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얼른 와! 해 떨어지겠어."


이후 추격엔 시간이 많이 들지 않았다. 먹이를 찾았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녀석의 발걸음은 더는 복잡하게 움직이지 않고 한곳을 향해 곧장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안전한 은신처에서 배를 채울 모양인 듯했다.


진천과 경표는 발자국을 계속 따라갔다. 숲이 아직 끝나지 않은 지점, 작은 산처럼 치솟은 바위 둔덕 밑으로 제법 큼직한 동굴이 나타났고, 역시나 발자국은 그 동굴로 이어지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언저리를 지나가는 중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칠까?"


"그럼 내일 잡을래?"


"아니, 그냥 물어본 거야."


"후딱 끝내고 해지기 전에 돌아가자. 간만에 고기 좀 씹겠는데."


그들은 동굴 앞으로 다가가 창을 겨눴다. 동굴은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정면에 서서 들여다보자 내부가 전부 파악되었다. 그들의 생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였다.


큼직한 늑대 한 마리가 있는 건 맞았지만, 그 늑대가 죽어있는 건 그들의 예상과 완전히 틀린 거였다. 게다가 인간과는 또 다른 생명체, 그들이 증오해 마지않는 괴물이 그곳에 있으리라고는 전혀 꿈에도 생각 못 했던 일이었다.


"...!"


진천과 경표는 경악한 얼굴로 창을 든 자세 그대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먼저 정신을 차린 진천이 경표의 어깨를 잡아끌며 한걸음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경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눈을 치뜨며 잇소리를 냈다.


"괴물이 왜 여기에!"


공포의 대명사, 천재지변으로만 여겼던 괴물이었다. 인간에게 괴물은 분노보다는 두려움과 피해야 할 대상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이가촌이 멸망하던 날부터, 사람들은 맘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분노를 표면으로 끄집어 올렸다.


경표는 그래서 인간이 아닌 존재, 자세한 이름도 분명치 않지만 페이트라고 부르는 그 생명체를 향해 맹렬한 분노를 쏟아냈다. 분노라는 감정에 온도가 있다면 이미 괴물은 뼈까지 불타올랐을 것이다.


"크악! 이렇게 된 이상 죽이고 간다!"


"잠깐 기다려 봐! 뭔가 이상해!"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사태를 지켜보던 진천이 그런 경표를 말리고 나섰다. 둘 다 성질 억세기로 따진다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지만, 그나마 최근 들어 진천은 그런 성질이 많이 죽어 있었던 것이다.


"뭐가! 괴물을 보면 보이는 족족 죽여 없애기로 약속하지 않았냐!"


시선은 여전히 괴물에게 못 박은 채 경표가 소리쳤다. 매우 흥분한 모습이었다.


"저 괴물... 우리가 알던 놈들과 좀 다르지 않아?"


진천 역시 흥분하긴 매한가지였으나 애써 가슴을 진정시켰다. 어차피 해가 떠 있는 낮시간. 밤에도 일 대 일이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만큼 지금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게 뻔했다.


`어차피 놈은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금 더 여유를 가져도 될 거였다. 진천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경표가 신경질적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뭐가 다르다는 거야? 낮에 저놈들이 병신마냥 힘을 못 쓴다는 건 나도 알아. 그러니까 지금 잡아 죽이자고. 대체 왜 그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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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괴물은 멀리 있지 않다(1) +1 21.05.31 814 3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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