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153,779
추천수 :
3,775
글자수 :
217,324

작성
19.04.13 17:34
조회
2,849
추천
65
글자
9쪽

톈진 天津 1)

DUMMY

명색이 역관인데도 사행이라고는 가본 적이 없는 나다. 처음 떠나는 외국 길이 설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반나절 이상 걸린다는 뱃길이 이제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냄새나는 선실을 벗어나 고물 갑판에서 배를 따라오는 하얀 물거품을 바라보고 있었다.

갈매기들이 배와 나란히 날며 바다를 노린다. 나지막이 날다 내리꽂힐 때면 어김없이 한 마리씩 물고 솟구친다. 크기로 보아 멸치 아니면 꽁치?

이따금씩 날치들이 미끈한 유선형을 그리며 수면 위로 날아오른다. 기다렸다는 듯 습격한 갈매기들이 날치 떼의 포물선과 교차하며 저마다 한 마리씩 낚아챈다. 그 날렵한 묘기에 보는 눈이 다 시원해진다.

“여기 있었군.”

작림이 나타났다.

“당소의 영감이 찾던데.“

두 달 전, 조선주재 총영사가 된 당소의는 원정군을 따라 수사水師 본영이 있는 위해위로 가는 길이다. 북양대신이자 북양군 총수인 이홍장에게 불려간다니 나름 긴장해 있으리라.


“잡담이나 하자고 불렀네. 장 초장도 앉게.”

나가려는 작림을 잡는다.

“둥베이 출신이라 들었네. 그곳 이야기나 좀 들려주시게.”

작림은 거북했다. 그는 국비 유학생 출신의 유식한 고관, 나이로 보나 지위로 보나 편하게 어울리기는 거북한 상대다.

“광동성 출신이라 반대쪽 끝인 둥베이가 내게는 거의 외국이라네. 그쪽 토박이라고.?”

작림은 광동어가 낮 설었다. 깐에는 관화를 쓴다지만 광동 말투라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사돈 남 말 하시네. 내겐 당신 말도 외국어라네. 이 양반아.’

“제 주제에 감히 영사님께 해드릴 얘깃거리가 있겠습니까?”

“아닐세. 살아온 세상이 서로 다르잖나, 그쪽에선 일상적인 것들이 내게는 신기할 수도 있지.”

에라, 모르겠다.

둥베이의 민감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둥베이는 기인旗人들의 고향이지만 잊혀진 땅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평소 해오던 생각들을 여과없이 쏟아놓았다.

기인旗人들은 몰락했다. 둥베이는 버려진 땅이다. 조정은 생계를 보장하는 대신 군인 외의 다른 직업을 금했다. 하지만 팔기군은 전투를 한족에 떠넘기고 구경만 하는 병풍 군대. 나태하고 뭔가 해보려는 의지도 없다. 그래서 이제는 "팔기자제" 라면 멸시 대상이다.

대청 제국의 허상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나나 한인이 이런 말을 했다면 아마도 문제가 생겼으리라. 그러나 작림은 기인이니 스스로의 허물을 까발린다 해서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소의는 환하게 웃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기인旗人이 있다는 자체가 아직 희망이 있다는 증거 아닐까?”

역시 외교관은 달랐다.

스스로 격해져버린 작림을 노련하게 다독인다.

“이 나라에는 중앙군인 팔기군과 지방군인 녹영병들이 있어. 이른바 관군이지. 하지만 태평천국의 난 같은 큰 변란을 수습한 건 언제나 관군이 아니라 회군, 성군, 단련군 같은 민병들이었어. 이상하지 않아?

민초들의 세상은 무수한 사조직들로 촘촘히 짜여있어. 천지회, 삼합회, 가로회, 대도회, 청방, 홍방... 또 다른 쪽으로는 백련교를 비롯한 숱한 종교단체들도 있고, 적어도 내가 살던 광동에서는 관보다 이들 사조직의 입김이 더 강했어. 둥베이에서는 어떤가?“

나는 슬슬 불안해졌다.

12살에 미국으로 가서 그곳에서 성년이 된 당소의.

나라 안에서만 살던 사람과는 사고방식이 다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건 도를 넘어 거의 불온한 수준 아닌가? 사상의 자유가 있는 세상을 누려본 나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시대 사람이 들으면 발고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나는 작림의 반응이 궁금했다. 아니, 그보다 그가 이 말들을 이해했는지 여부가 더 궁금했다.


"이런 세상에 실망한 사람들 반응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네. 한쪽은 체제를 유지보수하자는 쪽. 그들 중에 강유위라고 있네.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출사하지 않고 고향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는데 나보다 5살쯤 많을 거야. 부패를 근절하고 낡은 제도는 고치자는 건데 그걸 변법이라고 하더군. 북양대신 이홍장 공公의 생각 역시 그 쪽이지.

세상은 공을 욕해, 매국적인 일은 다 공의 책임이라 떠들면서. 하지만 청국은 열강에 당할 수밖에 없었어. 싸우면 지고, 지면 땅으로 배상하고, 배상하려면 책임자가 있어야 했지. 하지만 공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더 많이 잃었을 거야.

욕하는 자들 또한 나라가 못나서 당했다는 걸 알아.

다만 너무도 한이 맺혀 분풀이 대상을 찾은 것뿐이지. 공은 어려울 때 누구도 맡기 싫은 자리를 맡아 모든 화살을 오롯이 맞았어. 나라가 위급할 때 공은 용감했고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켰어. 그리고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어.“


언성이 높아간다. 격앙되어 있었다.

“그러한 공에게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자들이 있어. 그 바람에 쌓은 업적은 가려지고 공은 오명만 쓰게 될 지도 몰라. 공의 그늘에서 자란 소인배들이 모든 업적을 가로채게 될까 두려워. 막상 어려울 때는 야멸차게 외면하던... 원세개 같은 자. 나는 조선에서 10년도 넘게 그와 함께 있었다네.“

말을 멈춘 당소의는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잠시 침묵했다.


“나는 자네들을 만나 희망이 생겼네. 한 조각 사심도 없이 포로수용소 난방에 힘쓰던 모습, 자칫 불이익을 당할 지도 모르는데 지휘부에 적정을 알리려 애쓰던 모습. 자네 같은 젊은이들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고 믿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말을 끊고 묵묵히 우리를 응시했다.

“원세개 같은 부류들을 조심하게. 이익만 된다면 무엇이든 하고도 남을 자. 음모, 배신, 매국노...“


“또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는 사람도 있지. 아예 판을 바꾸자는 혁명가들, 언젠가 말한 손중산도 그런 부류야. 그 또한 방법이겠지. 여하튼 잘해보려는 거니까. 그리고 원세개 따위와는 격이 다른 사람들이니까.“


발해만,

요동 반도와 산동 반도에 갇힌 남북 480㎞, 동서 306㎞의 바다. 황해로 열린 출입구, 발해해협의 너비는 105㎞. 황하 등 5개의 강이 이곳으로 흘러든다. 남쪽에서 힘차게 북상한 열대해류 쿠로시오黑潮는 황해의 북단 요동반도에 막혀 되돌아간다. 또한 발해만으로 밀려들어 대륙을 관통해온 강물들과 섞인다. 대륙의 민물과 열대의 바다가 뒤섞이는 이곳 모습을 닮은 도시가 베이징의 관문도시 톈진이다.


톈진天津은 하늘 나루라는 뜻,

하지만 시가지를 들어서면 별자리의 나루터는커녕 남루와 무질서만 눈에 띈다. 사방이 평야인데도 특산물 따위는 없다. 내세울 만한 특징이나 구경거리도 없다.

굳이 꼽는다면 안개.

혹서와 폭염이 지난 봄, 가을의 톈진은 안개의 바다로 변한다. 초저녁부터 내린 안개는 다음 날 정오까지 가시지 않아 다시 새 안개와 섞인다. 이유가 뭘까?

해발 수 미터에 불과한 저지대이고 바람이 적은 점도 있겠지만 음陰이 유달리 강해서다. 시가지를 가로 지르는 하이허海河, 호수, 수상공원 등. 물이 많은 톈진의 남자들은 마르고 여자들은 살찐다는 말도 있다.


변방도시 톈진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청조 말의 개항기 이후부터다. 1860년 이래 영국, 미국, 프랑스 조계가 생겼다. 조계를 통해 서구문명을 접한 톈진은 각성했다. 서구를 따라잡기 위한 양무운동의 전진기지가 됐다. 철도·전보·전화·근대교육 등이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보급됐다.

조계는 자치권과 치외 법권을 갖는 외국인 거주지. 반식민지 국가가 열강에 빌려준 땅을 말한다. 1856년 광저우廣州에서 터진 애로호 사건은 2차 아편전쟁의 좋은 구실이었다.

열강은 1858년 톈진 다구포대大沽炮台를 점령해 톈진조약을 체결하고 베이징의 황실 공원 원명원까지 약탈한다. 1860년에는 톈진성의 8배에 달하는 동쪽과 동남쪽 지역을 조계로 차지했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 9개국 조계가 톈진을 잠식해갔다.


조계는 각국 양식의 건물들로 채워졌다. 상하이 와이탄外灘에 버금가는 건축 박물관이었다. 도로 이름도 각양각색. 중국 도시들이 동서 도로를 가街, 남북 도로는 로路로 부르는데 반해 톈진은 서북에서 동남쪽으로 향하는 도로는 로路, 동북-서남선은 도道라고 불렀다.

70개 도로를 차지한 영국은 금융가 빅토리아 도道를 비롯해 디킨스· 그리니치 등 유명인 이름이나 영국 지명을 붙였다. 프랑스 조계는 사람 이름. 하얼빈도가 디옹 총영사로 식이었다. 독일 조계는 1호가, 2호가, A가, B가, 러시아는 페테르부르크로 같이 러시아 지명. 이탈리아 조계는 마르코폴로· 단테· 피렌체 등 낭만적인 이름을 사용했다.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남경. 상해. 봉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톈진 天津 4) +2 19.04.17 2,629 66 8쪽
16 톈진 天津 3) +3 19.04.15 2,658 75 7쪽
15 톈진 天津 2) +2 19.04.14 2,748 70 7쪽
» 톈진 天津 1) +2 19.04.13 2,850 65 9쪽
13 석탄 난로 3) +6 19.04.12 2,833 69 7쪽
12 석탄 난로 2) +3 19.04.11 2,802 64 7쪽
11 석탄 난로 1) +4 19.04.10 2,900 74 8쪽
10 파견 근무 3) +3 19.04.09 2,905 69 7쪽
9 파견 근무 2) +1 19.04.08 2,980 67 7쪽
8 파견 근무 1) +3 19.04.06 3,262 73 7쪽
7 평양 전투 6) +7 19.04.05 3,381 77 8쪽
6 평양 전투 5) +1 19.04.04 3,339 71 7쪽
5 평양 전투 4) 19.04.03 3,495 75 7쪽
4 평양 전투 3) +4 19.04.03 3,818 80 9쪽
3 평양 전투 2) +3 19.04.02 4,452 71 7쪽
2 평양 전투 1) 19.04.01 5,953 94 7쪽
1 서 序 +13 19.04.01 7,834 97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