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153,815
추천수 :
3,775
글자수 :
217,324

작성
19.04.05 06:00
조회
3,381
추천
77
글자
8쪽

평양 전투 6)

DUMMY

이쯤 되면 돈이나 승진을 들먹이기 마련이지만 작림은 달랐다. 사내자식이 재물 따위의 신외지물身外之物에 집착하면 졸렬해진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질그릇을 걸고 활을 쏘면 잘 쏠 수 있지만 허리띠의 은고리를 걸면 마음이 흔들리고, 황금을 걸면 가물가물해진다. 그건 또한 유목민 성향이 짙은 둥베이 사람들의 기질이기도 했다.


차려 자세로 서 있던 작림이 덜컥 무릎을 꿇었다. 마루가 쿵 울린다.

“청컨대 수하로 거두어 주십시오. 장군님을 모시며 배우고 싶습니다.”

과연 그 다운 행동. 거두절미하고 수하를 자청하자 좌보귀는 껄껄 웃었다.

“됐네 이 사람아, 물팍 깨지겠어. 자네 같은 젊은이라면 오히려 내가 먼저 청해야겠지. 환영일세. 단지 그 뿐인가?”

작림은 경석을 돌아보았다.

“소관이 보고했던 정보는 신 역관의 제보였습니다. 퇴로차단과 기마부대의 건널목을 일러준 것 또한 이 사람, 평양감영의 역학훈도 신경석입니다.“

좌보귀는 나를 향해 끄덕였다.

“봉변당했단 얘기는 들었네. 그래 몸은 좀 어떤가?”

나는 작림과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이제 다 나았습니다. 흉악한 왜구들로부터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바라는 걸 말하라 하셨지만 그것만으로도 백골난망인데 감히 다른 소원을 말하겠습니까?”

좌보귀는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들 마음 씀씀이가 실로 기특하이.

오늘같이 기쁜 날, 술 한 잔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세 사람은 늦게까지 통음하며 담소했다. 작림의 우직한 됨됨이는 진즉 겪어본 바였지만 역학훈도 청년의 식견은 실로 놀라웠다. 고금동서의 문물에 두루 해박했고 심지어 청나라 조정의 정세까지 꿰고 있다. 좌보귀는 이 청년이 탐났다.

“자네, 혹시 청나라에서 입신해볼 생각은 없나?”

뜬금없이 툭 던지는 말에 나와 작림은 장군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장군은 다시 말했다

“ 장 초장과는 동갑이라지? 함께 내 곁에 있으면 어떤가? 이미 조선의 관원으로 출사出仕 한다니 자격도 충분하고... “

조선의 암울한 미래를 아는 나로서는 불감청일지언정 고소원(감히 청하지는 못하지만 바라던 바)이었다. 벌떡 일어나 자세를 바로 한 나는 정성을 담아 큰절을 올렸다.

“어린 저를 그리 보아주시니 영광입니다. 성심껏 노력하겠습니다.”

마음에 흡족한 부하를 한꺼번에 둘이나 얻은 좌보귀는 기뻤다. 은 백 냥씩을 정표로 주며 기꺼운 마음을 표시했다.


‘장작림과 함께 만주로 간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비록 유웅재 무대략 有雄才 无大略 (영웅의 재주는 있지만 국가 대계는 없다.) 이라는 평가는 받았지만 그는 동북의 제왕이 될 인물. 내 새로운 삶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리라.

새로 시작하면 이 몸의 전생인 경석의 과거와는 어차피 결별할 터. 역관 집안답게 그의 집도 제법 부유한 축에 든다. 신분은 중인이지만 노비가 여럿 있고 어릴 때부터 함께 한 몸종도 있다. 나는 돌쇠라는 그 몸종이 성가셨다.

내게 일어난 변화의 낌새를 챈 듯해서다. 경석과 함께 자랐다는 녀석은 내가 다쳐 돌아오던 날 뭔가를 느낀 모양. 의아하게 지켜보는 눈길이 늘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래 봤자 다. 귀신이 아닌 바에야 이 몸의 주인이 바뀐 사실을 어찌 알겠는가? 그 또한 새로운 삶을 출발하면서 사라질 인연일 뿐.


좌보귀 장군을 따라 청나라로 출사하게 되었다는 말에 부친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청나라 사정에 밝은 부친은 좌 장군을 따르는 것이 만주총독인 성경(봉천의 옛 이름)장군 휘하에서 입신할 기회임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갈수록 암담해지는 조선에 있느니보다는 나으리라. 그러나 섭섭했다. 유독 많은 정을 준 큰 아들이 집을 떠난다니 당연한 일.

그러나 지금의 침묵이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리라. 영문 모를 써늘한 느낌. 50대인 부친보다 나이가 많은 나는 그 감회가 단지 섭섭함만이 아니리라는 것을 짐작한다.


그렇다! 그의 진짜 아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천륜으로 이어진 본능은 막연하게나마 변고의 낌새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아들은 멀쩡하게 눈앞에 있지 않은가? 영문 모를 불안의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혹해진 침묵이리라. 이윽고 침묵을 깬 부친은 뚜벅 말했다.

“돌쇠를 데리고 가거라.”

‘어, 이건 아닌데...!’

난데없는 혹을 달게 되었다. 뭔가 말하려던 나는 깊은 슬픔이 담긴 부친의 눈을 본 순간 입을 다물었다. 사실상 자식과의 영영 이별인 부친의 마음을 더 이상 아프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수굿이 절만 올리고 나왔다.


한 살 적은 돌쇠는 나를 친구로 여긴다. 소꼽 동무였던 그로서는 당연하리라.

“도련님 덕분에 청나라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요.”

싱글벙글 한다. 좋아 죽겠다는 표정.

“그건 아버님 말씀이고... 싫으면 안 가도 된다.”

“그 무슨 날벼락 맞을 말씀을, 감히 어르신 말씀을 거역하다니요.”

짐짓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 귀찮은 녀석을 어떻게 떼어버리지?‘

“청나라에 가면 뭐 하냐? 말도 안 통하는데.”

슬쩍 염장을 질러주었다.

“그거야 도련님이...”

“내가 따라다니며 수발하랴?“

이내 시무룩해진다. 제아무리 영악해도 아이는 역시 아이였다.


돌쇠를 데리고 말을 보러 나섰다. 만주는 말이 없으면 꼼짝도 못한다는 작림의 권고 때문이었다. 나야 맹탕이지만 어릴 때부터 부친의 말을 돌본 돌쇠는 말이라면 모르는 게 없다. 아까는 퉁박 주었지만 지금은 녀석에게 잘 보여야 한다.

마 시장에는 전리품인 일본군 전마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이말 저말 둘러보며 걷던 돌쇠가 문득 멈추더니 듬성듬성 털이 빠진 비루먹은 밤색 말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떻습니까? 타기는 좀 그러티만 짐말로는 그럭저럭... ?”

눈을 꿈적인다. 눈치를 챈 나는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이렇게 비루먹은 녀석이 먼 길을 갈 수나 있겠나?”


짐짓 수작을 나누자 말 장수는 펼쩍 뛴다.

“손님, 이 말은 그렇게 쓰일 말이 아닙니다. 돌보지 않아 꼴은 이렇지만 혈통 좋은 말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높은 사람이 아끼던 말일 겁니다.”

“무슨..., 퇴물이 다된 노마를 가지고. 짐말로나 쓰게 스무 냥에 넘기시게.”

“아이구 손님, 적어도 그 세배는 받아야 합니다요.”

울상이 된다.


“어차피 두 필이 필요하니 한 마리 더 보자.”

돌쇠가 의아한 표정이 된다.

‘왜...?’

“넌 청나라까지 걸어갈 거냐?”

돌쇠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두 마리라는 말에 신이 난 말 장수는 털에 윤기가 자르르 한 다른 말을 추천했고 우리는 아까 돌쇠가 찍은 말과 함께 셈을 치렀다.

“말은 나중에 신 역관 댁으로 보내주시게.“


돌쇠의 능청 덕분에 한 마리 값에 두 마리를 산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바람에 쌈짓돈까지 탈탈 털려 땡전 한 푼 안 남았다. 주머니가 텅 비니 뱃속도 텅 빈 듯, 거지 든 것처럼 출출하다.

하지만 녀석의 관심사는 오로지 청나라.

“저도 슬슬 중국말 배워야 하디 않나요?”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역관 집 녀석이 왜 중국말 한마디를 못 하냐?

“집에 말이 있는데도 승마 못하는 도련님이나 매 한가지 입니다요.”

“짜식이 보자보자 하니까 진짜...”

“언제는 솔직히 말하라면서요.”

“그런 눈치로 어떻게 살았냐? 크게 되긴 애 저녁에 글렀다.

배고픈데 집에 가 밥이나 먹자.“


그때였다. 돌쇠가 바지춤에 손을 쓱 넣었다 꺼내는데 반짝이는 은전 두 개가 손가락 사이에 떡하니 끼어 있다. 꺼내다 흠칫 하며 잽싸게 집어넣더니 달랑 한 개만 흔들어댄다.

“말 장수한테 개평으로 챙겼습죠. 어케, 날도 쌀쌀한디 뜨끈한 온면이나 한 그릇씩 때리고 갈 깝쇼?”

“만두는?”

“그건 기본으로 깔고 가는 거디요.”

“이런 크게 될 놈을 봤나. 날래 가자우.”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남경. 상해. 봉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톈진 天津 4) +2 19.04.17 2,631 66 8쪽
16 톈진 天津 3) +3 19.04.15 2,659 75 7쪽
15 톈진 天津 2) +2 19.04.14 2,751 70 7쪽
14 톈진 天津 1) +2 19.04.13 2,851 65 9쪽
13 석탄 난로 3) +6 19.04.12 2,834 69 7쪽
12 석탄 난로 2) +3 19.04.11 2,802 64 7쪽
11 석탄 난로 1) +4 19.04.10 2,900 74 8쪽
10 파견 근무 3) +3 19.04.09 2,906 69 7쪽
9 파견 근무 2) +1 19.04.08 2,980 67 7쪽
8 파견 근무 1) +3 19.04.06 3,262 73 7쪽
» 평양 전투 6) +7 19.04.05 3,382 77 8쪽
6 평양 전투 5) +1 19.04.04 3,339 71 7쪽
5 평양 전투 4) 19.04.03 3,495 75 7쪽
4 평양 전투 3) +4 19.04.03 3,818 80 9쪽
3 평양 전투 2) +3 19.04.02 4,453 71 7쪽
2 평양 전투 1) 19.04.01 5,954 94 7쪽
1 서 序 +13 19.04.01 7,836 97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