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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153,816
추천수 :
3,775
글자수 :
217,324

작성
19.04.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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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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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글자
7쪽

석탄 난로 3)

DUMMY

내막을 알아보니 병사들이 겨울나기 준비에 바빠서라는 결론이 나왔다. 장령들 또한 처음 만든 포로수용소 관리와 겨울나기 지원에 바빠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했다. 바빠진 이유는 전에 없던 난방기구, 석탄난로와 캉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새로운 연료, 석탄이 있었다.

평양거리가 평온해진 것은 석탄 덕분이었다. 탄광개발은 신경석의 공.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누리는 평화로움이 누군가의 덕분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실로 군자로다.“

신 감사는 감복했다. 그는 경석의 상사이니 당연히 아는 사이다. 하지만 공을 세우고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큰 인물임은 알지 못했다. 그가 없었더라면... ? 평양성은 승전군의 위세를 업은 청군들 등쌀에 지금쯤 몸살을 앓았을 것이다. 명의란 병자를 잘 치료하는 자다. 그러나 진정한 명의는 병을 예방한다 했다. 그는 평양성에 닥칠 재앙을 예방한 명의였다. 어떤 식으로든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던 민 감사는 청군 지휘부로 공문을 보냈다.

“물건을 쓰려면 그 값을 내야 한다. 병영과 수용소에서 쓰는 석탄 값을 광주 신경석에게 지불하라.”

또한 평양성 전투에 기여한 공으로 청군에 발탁된 경위와 탄광을 개발해 평양성의 외국군 3만 병력이 겨울나기 준비를 무사히 마치게 한 신경석의 공을 아뢰는 장계를 올렸다.그리고는 일체 티를 내지 않았다. 공을 드러내지 않은 군자에게 자기 나름의 예를 갖추는 민 감사였다.


나는 난방 문제와 탄광 개발에 몰입해 세월 가는 줄 모를 만큼 바쁘게 지냈다. 하지만 그걸 돈과 관련 지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자칫하면 포로들이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 때문에 열심히 뛰었을 뿐.

석탄을 찾기 위해 미래지식까지 동원했지만 어떤 사심도 없었기에 좌 장군이나 오오시마 소장에게 떳떳한 태도로 인력지원을 청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선 민 감사가 탄광을 내 재산이라고 선언해버렸다. 그 시대를 살다 온 나보다도 더 자본주의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제야 이 시대의 광업권 제도를 알아보았다. 별다른 게 없었다. 조정이나 지방관청에서 몇 자 적고 관인을 쾅 찍으면 그게 바로 권리증이고 등기문서였다. 내가 아는 역사와는 다르겠지만 여하튼 산업화 시대는 열릴 터. 석탄은 산업시대의 쌀이니 탄광사업은 규모가 점점 커질 것이다. 석탄 난로나 구멍탄도 큰 사업이 될 것이고..

휴전협상이 마무리되면 평양 주둔군의 거취도 정해질 것이다. 아직 두어 달 여유는 있겠지만 언제 이동할지 모른다. 불시에 군령이 떨어지면 불문곡직 따라야 하니 이 사업은 누군가에게 맡겨야 했다.

나는 이 시대에 와서 인연이 생긴 사람들을 꼽아보았다. 장작림, 부친, 돌쇠, 좌보귀,대 이랑, 당소의, 오오시마, 그리고 석탄 연구소 연구원 3명, 하지만 이거다 싶은 사람이 없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가족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


병영에 박혀 지내던 나는 오랜만에 본가를 찾아 나섰다. 본가의 아궁이는 구공탄용으로 싹 바뀌어 있었다. 석탄 난로와 야외용 질화로도 들여놓고 석탄 저장용 광도 지어놓았다. 부친은 같은 성내에 있으면서도 자주 오지 않은 아들이 섭섭한 눈치였다. 그러나 그 동안 벌린 일들의 자초지종을 들으며 감탄했다.

“자주 못올 만도 했었구나.”

비로소 서운한 기색을 거둔다. 그러나 탄광과 온천 권리문서를 내놓자 다시 서운한 얼굴이 된다. 영영 타국으로 떠난다는 실감이 나서였으리라.


평양에서 철수하는 제 1진은 봉군과 단련군으로 결정되었다.

“증남포(진남포, 지금의 남포항)에서 북양 함대에 승선해 여순으로 이동하라.”

증남포는 평양성 서남쪽 백오십리쯤에 있는 대동강 하류의 항구. 출발준비로 분주한 한 달을 보내고 3월 초순이 되자 대동강 하구에 북양함대가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냈다.

증남포는 대동강 하구에서 60리 정도 상류에 있다. 함대의 주력이자 기함인 정원과 진원은 수심이 얕은 대동강 진입이 어려워 외항에 정박하고 2천 톤급 이하의 소형 선단만 증남포로 향했다.


수송할 병력은 5천 명 남짓하지만 이들은 기마 부대. 말을 포함하면 머릿수는 두 배로 늘어난다. 그래서 차지하는 공간은 같은 수의 보병 두 배 이상. 게다가 전리품으로 챙긴 말까지 있어 실제 사용공간은 껑충 늘어나 보병 2만 명 규모의 수송선박이 필요했다. 사실상 북양 함대의 총 동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중일 갑오전쟁의 개선군, 대접받을 자격이 당당했다. 이들 덕분에 함대의 본거지 여순항이 무사했고 연합 함대 또한 제압할 수 있었던 해군으로서는 극진히 모셔야 할 빈객이지 궁시렁거릴 입장이 아니었다.


십여 척의 수송선단이 종진대열로 강을 거슬러오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승선을 기다리며 모래톱에 정렬한 병사들은 이 보기 드문 구경거리를 놓칠세라 몰려든 인파에 포위되었다. 각자의 말과 나란히 선 병사들 중에는 두 마리씩 데리고 있는 자도 상당수 있다.

환송대의 일본군 장교들은 가외加外로 끌고 가는 말이 자신들의 군마임을 알아보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함께 있는 청군 장령들을 의식해 무표정을 유지하던 그들도 끌려가는 자신들의 애마를 보는 순간 자제력을 잃고 만 것이다.

청군이 일본군 장교들을 굳이 이런 자리로 끌고 와 욕보이는 이유는 열등감 때문이었다.

아시아의 선진국 일본에 대한 평소의 열등감을 이런 식으로나마 해소해보려는 소아병적 유치함의 발로였고 상처를 헤집어 소금을 뿌리며 낄낄대는 잔인한 심사였다.


북양함대에서는 소형함 취급을 받는 2천 톤급 이하의 선박들이지만 어항에 불과한 증남포에서는 대형선박이라 접안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승선인력과 물자들은 일단 상자 배(바지선)로 강심에 정박한 선박으로 이동해 다시 옮겨 실어야 했다. 번거롭기 짝이 없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상자 배가 한 번에 나를 수 있는 인원은 일 초哨 (50명)남짓. 항구의 상자 배가 총동원되었지만 승선 작업은 꼬박 하루가 걸렸다.


돌쇠와 함께 배에 올라 강변을 바라보던 나는 환송대의 오오시마 소장과 눈길이 마주쳤다. 나를 알아본 듯 고개를 끄덕여준다. 멀어서 잘은 보이지 않지만 울 듯한 표정.

끌려가는 말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장교들에 비해 자신은 행운아라고 생각하는 오오시마였다. 그 행운을 가져다 준 젊은이가 저기 있다. 보스를 데려와 나를 위로하고 석탄과 온천으로 병사들을 달래주던 젊은이가...


눈보라의 답장이런가. 흩날리는 사꾸라는...

일기일회一期一會의 인연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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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38 tkwhdghf
    작성일
    19.04.12 21:10
    No. 1

    잘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2 knf
    작성일
    19.05.06 04:20
    No. 2

    청일전쟁때면 이미 조선은 끝장이니 청으로가는게 최고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3 무득
    작성일
    19.05.16 16:23
    No. 3

    열등감이 아님
    그당시 일본에 대한 감정은 그냥 왜구로 취급하던 야만인이 갑자기 힘이 쎄져서 나를 괴롭히는걸 보는 문명인의 느낌이랄까.
    당시의 일본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접어두고..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8 하산
    작성일
    19.05.16 20:51
    No. 4

    북양군 수준은 『아큐 정전』 주인공 정도였으리라 봅니다.
    요행수로 이긴 주제에 제 잘나 이긴 줄 알고 기고만장 하는...

    그건 그렇고, 필명이 참 좋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은은한 목탁소리 느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6 PofM
    작성일
    19.05.24 12:56
    No. 5

    글쎄요 실상이야 어쨋든간에 당시의 청나라인들이 일본인에 대해 열등감을 느꼈을까요, 그것도 전쟁에서 이겼는데? 가학적인 의도가 차라리 어울려 보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술마루
    작성일
    19.06.16 16:18
    No. 6

    너무 친일 느낌이라 보기감 힘듬.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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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탄 난로 3) +6 19.04.12 2,835 69 7쪽
12 석탄 난로 2) +3 19.04.11 2,802 64 7쪽
11 석탄 난로 1) +4 19.04.10 2,900 74 8쪽
10 파견 근무 3) +3 19.04.09 2,906 69 7쪽
9 파견 근무 2) +1 19.04.08 2,980 6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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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평양 전투 3) +4 19.04.03 3,818 80 9쪽
3 평양 전투 2) +3 19.04.02 4,453 71 7쪽
2 평양 전투 1) 19.04.01 5,954 9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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