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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비 님의 서재입니다.

너의 등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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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비
작품등록일 :
2022.01.27 17:15
최근연재일 :
2023.06.19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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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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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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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교황(1)

DUMMY

알프 일행과 드레이프가 대치하기 3시간 전.


천신력 1674년 11월 8일. 오후 4시.



태양이 하늘에 떠 있는 시간대라면, 대성당은 어디서라도 햇빛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대성당은 햇빛을 충분히 들여올 수 있도록 굉장히 개방적인 구조로 지어져 있었다. 그 가운데로 쏟아져 내려오는 정갈한 정화수의 폭포를 함께 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에 이 만큼 신비한 장소가 또 있을까.' 하고 이라야는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 이라야가 향하는 장소는, 이 신비한 비경 중에서도 더욱 더 은밀한 장소였다. 어쩌면 베일에 가려진 의회의 비원보다도 이 시간에 알려진 것이 없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햇빛에서 점점 멀어지며, 이라야는 사제들의 안내를 받아 대성당의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



이 곳까지는 이라야도 온 적이 없었다. 개척자의 임명은 교황이 주로 연설하는 대성당의 앞, 대광장에서 이루어졌으니까. 교황이 이 곳으로 그녀를 부른 이유는 그녀 자신조차도 알지 못했다.


웅. 우웅. 하는, 무언가가 울리는 소리가 저 밑에서부터 들려오는 것 같았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이라야를 감쌌다. 저 밑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이어진 통로를 따라가시면 됩니다."



안내는 여기까지인 듯 했다. 두 명의 사제가 문 양옆에 서서 이라야에게 합장했다.



"안내 감사드립니다."



꽤나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앞은 최소한의 빛만 있는 길다란 통로였다. 이라야는 머뭇거림 없이, 그러나 조심스레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옮겼다.


석재로 둘러 싼, 너무 과하지 않은 장식이 새겨진 통로는 모든 면이 막혀 있었다.


터벅, 터벅. 벽돌을 밟을 때 나는 보편적인 소리가 통로에 자그맣게 퍼졌지만, 귀가 좋은 이라야는 그 너머로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라야는 벽면에 마력을 흘려넣어볼까 고민했지만, 꾹 참고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통로의 끝에는 다시 양 손으로 여는 고풍스러운 문이 있었다.



"...!"



그 문을 열자, 그 앞에 보인 건 이라야가 전에 본 적 있는 장소였다.



"이건..."



원통으로 된, 틀림없이 기계장치로 구성된 자그마한 방.


이라야가 머무르던 파레의 밑에 아무도 모르게 숨겨져 있던 커다란 시설의 출입구도 지금 그녀가 보는 것과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들어가는 수 밖에 없겠군요..'



교황은 그 앞에 있을 테니까. 분명 그가 이라야를 이 곳으로 부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열려 있는 원통형의 방에 들어가자, 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방에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벽면을 찬찬히 훑어 본 이라야는 아래 방향으로 화살표가 새겨진 단추를 조심스레 눌렀다. 그러자 원통형의 방이 그때와 같이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계장치가 돌아가고, 철이 철에 쓸리는 어딘가 꺼림칙한 소리만이 정적을 메우고 있었다. 이 불편한 이동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이라야는 생각했다. 갑자기 이 방 통째로 이 성지를 뚫고 밑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려와는 달리 방은 안전하게 어딘가에 착지해 이라야의 앞에 문을 열어주었다.



"...."



이라야는 굳이 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 앞에 펼쳐진 광경에 적잖이 놀랐다.


마법인지 무엇인지 모를 환한 조명들이 그 넓은 공간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유리인지 석판인지 모를 얆디 얆은 석판들에는 알 수 없는 화면들이 어지럽게 펼쳐지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만이 가득한,


빛으로 가득하지만 어딘가 차가운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텅, 텅. 하는 울리는 소리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울려퍼졌다. 역시나 이 곳은 전부 다 기계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교황님?"



주위를 둘러 봐도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곳은 사람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인가?



"이라야?"



끄응, 하는 소리가 섞인, 무언가에 강하게 힘을 주는 듯 한 소리가 저 구석에서 들려왔다.



"잠..깐만, 기다려주게... 으읏차..!"


"교황님..?"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니, 그곳에는 교황이 기계장치로 보이는 판을 열심히 끼워 맞추고 있었다. 배관으로 가로막혀 성인 남성이 겨우 몸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곳이었다.



"아, 혹시 이걸 여기에 끼워줄 수 있을까..? 이게 팔에 힘이 안 들어가서.."



이라야는 일단 모든 의문점을 제치고 교황을 도와주기로 했다. 우선 자력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끼어 있는 교황을 빼내 준 뒤, 교황을 대신해 기계판을 비어 있는 홈에 끼워 넣었다.



"하하하, 정말 고마워! 하필 저기가 수리가 필요하는 신호가 들어와서 말이야."


"....별말씀을...."



교황은 '상황실' 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방으로 이라야를 안내했다. 상활실에 유일하게 놓여 있는 커다란 의자에 이라야를 앉히고, 교황 자신은 철판이 덧대어진 간이 의자에 털푸덕 주저앉았다. 법복이 아닌 후줄근한 복장에, 땀을 많이 흘린 교황이 자신에 얼굴에 연신 손부채질을 했다.



"아, 차라도 한잔 하겠나?"


"...괜찮습니다."


"그래? 나는 물 좀 마셔야겠어. 아까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



교황은 기계장치 어딘가에 대충 널부러져있는 물통을 벌컥벌컥 마시고 푸하, 소리를 내었다.



"자, 궁금한 게 많을 것 같은데, 천천히 질문하게. 시간은 많으니."



---



교황 안토니오 하인스.


올해 43세인 그는 젊은 나이서부터 세계 각지에서 종횡무진 활약해 38세에 교황에 오른 인물이었다.


분명 개척자 임명식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에게는 비범한 분위기가 있었다. 온화하지만 그 속에는 강인한 심성이 자리잡고 있는 듯 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놀라지는 않는군. 전에도 본 적이 있어서 그런가?"


"..."



이라야가 경계의 눈빛을 보내자 교황이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래 뵈도 자네의 앞에 있는 건 교황이네. 자네가 아는 건 나도 알고 있어."


"그렇다면.. 교황님도 다 알고 계셨던 겁니까? 파레의 밑에 무엇이 있었는지."


"그런 셈이지."



교황에 건조한 대답이 이라야의 주먹에 순간 힘이 꽉, 들어갔다.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언제든지."


"그때 결사단이 파레에서 계획한 일들을, 그리고 벌어진 일들을.. 저 위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인지요."


"...알 사람들은 알았겠지. 자네가 말하는 '저 위'가 교황인 나를 포함한 의회의 장로급 같은 윗분들을 지칭하는 거라면, 그들은 확실히 알았지."


"그렇다면..!"



이라야가 순간의 감정을 못 이기고 순간 언성을 높였다.


결사단이 파레에 들이닥쳤을 때, 다 알고 있다던 그들은 무엇을 해주었는가.


메데이레의 도움으로 인명피해는 최소화 할 수 있었지만, 이미 마물의 습격으로 죽어간 이들은 돌아올 수 없었다. 이라야는 그 날의 감정을 떠올렸다. 남겨진 그들을 뒤로 하고 항해길에 오를 때, 그들의 아픔을 애써 외면하고 배에 오르던 그 무력함을.



"...절 이곳에 부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라야는 애써 침착을 유지하고 대화를 돌렸다.


"다 알려주기 위해서지."


"'다'라면, 교항께서 알고 계신 모든 것을 말인지요."



교황은 팔짱을 낀 채 말없이 끄덕거렸다.



"어째서 저에게."


"자네는 그걸 봤으니까."



그것이라 함은, 파레 아래에 있던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이라야는 짐작했다.



"나도 그것에 대해 함구한 것에는 책임을 느끼고 있네. 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말이야. 이 자리는 많은 걸 강제로 떠안기만 하고 정작 움직일 수는 없는 불편한 자리거든."


"...대체.."



교황만이 들어올 수 있는 이 장소. 기계들로 뒤덮인 이곳에서 교황은 무엇을 하는 것인가.



"교황은 무엇입니까."


"좋은 질문이야. 꼭 물어봐 주었으면 했거든."



교황은 천장을 바라보고 할 말을 고르는 듯 생각에 잠겼다.



"교황이란, 만들어지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


"나는 철저한 계획 아래에 교황이 되었다. 교황이 하는 일은 두 가지로 나뉘지. 첫 번째는 천신교의 수장으로서 의무를 다 하는 것. 두 번째는.."



교황은 일어나 이라야가 상황실의 수많은 계기판들 중 하나를 건드렸다. 그러자 눈 앞에 무언가의 설계도가 펼쳐졌다. 자그마한 빈 공간도 없이 빼곡하게 구성된 설계도였다.


이라야는 그것이 무엇의 설계도인지 단박에 알아챘다.



"바로 이 '성지'의 유지보수다."



이라야는 놀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차기 교황으로 선정된 자는 천신교의 교리보다도 더 먼저 이 성지의 기계장치를 다루는 법을 배우지. 세간에 알려진 나의 정보는 모조리 가짜야. 진짜 이름 마저도."


"...그럼 이 '성지'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복잡하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전국적인 감시망이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 곳에서 볼 수 있는 거지.. 하지만 기능이 점점 고장나고 있어."


"어째서?"


"성지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라야 너도 이젠 알 수 있겠지. 파레 뿐만이 아닌 다른 곳에도 '그런 것'들이 있다는 걸."


".."


"파레도 시설이 거의 다 멈춰 있었지? 그건 그나마 작동이라도 되는 몇 안 되는 시설들 중 하나야. 대부분은.. 신호조차 잡히지 않거든. 거길 내가 가서 고칠 수도 없고."


"그렇다면 그 '시설'들마다, 괴물이 잠들어 있는 것입니까?"


"아아, 그건 아니야. '시설'은 다양해. 순수한 연구, 감옥.. 정말 다양하지. 그런 옛 신화의 괴물을 가둬 놓은 시설은 몇 없어. 파레의 '크라켄', 파르다 대륙에도 하나.. 그리고,"



교황은 손가락을 아래로 향해 땅을 가리켰다.



"여기지."


"...!"


"아마 결사단이 성지에 침입한다면 분명 이 밑의 놈을 노리고 오는 거야."


"성지의 밑에도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까..!?"



교황은 대답 대신, 한 화면을 상황실에 크게 띄워 보여주었다.



"더한 놈이 있지. '크라켄'은 옛 신의 권속이지만, 이 놈은 신격 그 자체니까."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새하얀 빛이 가득 메워져 있는 두꺼운 감옥이 화면에 나타났다.



"신격이라니... 그럴 수가."


"비록 약소한 신격이긴 하지만, 권속보다는 한 단계 위에 있는 존재다. 아, 본체를 볼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야. 눈이 멀거나 미치거나 둘 중 하나일테니."


"도대체...!"



이라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의문점을 해소할 때마다, 의문점이 배로 늘어났다.



"천신은.. 어떤 존재이길래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지요?"


"...."



막힘없이 대답을 이어가던 교황도, 이라야의 질문에 잠시 대답을 멈추었다. 그저 무엇에 홀린 듯이, 상황판 위에 보이는 신격의 빛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누구보다 천신님을 갈망했고 섬겨왔지.. 그런데 교황이 되어 그 분들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천신께서는 한낱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임을 더욱 깨닫게 되더군."



교황은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않고 물통의 물을 들이켰다.



"내가 아는 모든 걸 알려주겠네. 결사단의 목적, 숨겨 놓은 진실들을, 이 세계가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그러니.. 자네가 판단해 주게. 우리가 해야 할 게 무엇인지."



교황은 길고 긴 이야기의 첫 시작을 조심스럽게 펼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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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20. 진실과 거짓의 경계(2) 22.10.07 58 0 16쪽
81 20. 진실과 거짓의 경계(1) 22.09.07 6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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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19. 시련의 성녀 아르미아(2) 22.08.10 182 0 14쪽
75 19. 시련의 성녀 아르미아(1) 22.08.08 192 0 13쪽
74 18. 빛과 그늘(3) 22.08.04 206 0 12쪽
73 18. 빛과 그늘(2) 22.08.03 216 0 13쪽
72 Extra 02. 진주는 언제나 검어야 한다 22.08.01 221 0 12쪽
71 18. 빛과 그늘(1) 22.07.28 224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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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16. 어둠을 걷어내고(8) 22.07.20 248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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