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야공자 제1화--2
금옥강의 아버지 금작림은 이 작은 마을의 유일한 유지였다.
이곳 우곡촌의 대부분의 땅이 그의 소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당연히 이 마을에서 금작림의 비위를 거스르고는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이라고 어찌 눈치가 없겠는가?
아버지의 후광은 자연스레 그 아들 금옥강에게도 미치고 있었다.
이렇게 금옥강은 마을의 아이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존재였다.
아이들끼리 무엇을 하더라도 금옥강은 자연스레 동네 아이들의 대장이 되었다.
어른들조차도 금옥강을 도련님이라 칭하며 쉽게 대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금옥강은 이곳 우곡촌에서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반면 소년은 언제나 외톨이였다.
집안일을 거들어야 하는 소년으로서는 아이들과 어울릴 형편조차 되지 못했다.
이런 소년의 눈에 자신과 너무나 극명하게 대비되는 금옥강이 곱게 보일 까닭이 없었다.
부모를 잘 만나 호강에 겨운 부잣집 도련님 금옥강, 질투심에 빠진 소년의 눈에 보이는 금옥강의 모습은 이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삐뚤어진 눈으로 바라보는 사물은 왜곡되기 마련이었다.
소년의 눈에 비치는 금옥강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다른 어른들의 도련님이라는 호칭에도, 아이들이 한결같이 자신을 떠받드는 분위기속에서도 금옥강은 결코 우쭐하지도, 심지어 그것을 달가워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금옥강은 나이답지 않게 겸양의 미덕을 아는 소년이었다.
삐뚤어진 소년의 눈은 이런 금옥강의 모습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년은 극단적인 생각에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바로 이 오만한 소년 금옥강을 자신이 한번쯤은 손봐주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일단 결심이 서자 소년은 이를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소년은 시간이 허락하는 데로 금옥강의 동정을 살피며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금옥강의 귀가가 늦어지던 어느 날, 소년은 은밀하게 금옥강의 뒤를 밟았다.
그리고 금옥강이 그를 따르는 아이들과 헤어져 혼자가 되기를 기다렸다.
금옥강의 집으로 향하는 작은 골목, 소년은 제대로 그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다.
소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덮쳤다.
단순히 부잣집 도련님으로만 생각했던 금옥강, 하지만 금옥강은 소년의 생각처럼 그리 만만한 생대는 아니었다.
소년의 급작스런 공격에도 불구하고 금옥강은 맹렬하게 저항을 시작했다.
그렇게 두 소년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선공에 기습전의 효과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특히 아이들의 싸움에서 그 효과는 더더욱 컸다.
결국 이 대결의 승리는 이런 효과를 놓치지 않은 소년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승리한 소년은 승리를 기뻐하기보다는 다소 멍한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금옥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쓰러져 코피를 흘리는 금옥강을 바라보면서 ‘ 아차.’ 하는 마음이 소년의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갔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를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없는 소년의 집안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은 당연히 어머니였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의 일을 도와주는 품앗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2년 전 어머니가 몸져누우면서 불가능해진 상황이었다.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눈앞이 막막한 상황, 그래도 소년의 가정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작은 시골마을의 훈훈한 인심 때문이었다.
이웃의 도움으로 그나마 굶지는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년이 지금 이 마을의 유일한 유지의 아들인 금옥강을 때려눕힌 것이다.
이것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사실 누군들 금옥강이 예뻐서 그렇게 떠받들고 싶었겠는가?
금옥강의 아버지 금작림의 비위를 거스르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소년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년이 지금 금옥강을 때려눕혔다.
그리고 금옥강은 분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금옥강에 의해서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어쩌면 그동안 소년의 가족을 도와주었던 이웃들마저 등을 돌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년은 계속해서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금옥강을 바라보았다.
온갖 상념이 소년의 작은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 빌어먹을, 차라리 죽여서 묻어버릴까?’
아이들의 생각은 단순하기에 때론 이렇게 무서웠다.
분한 듯 자신을 노려보는 금옥강을 바라보며 소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의를 느꼈다.
너무나 다급한 마음에 이런 생각까지 떠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소년은 지그시 눈을 감고 말았다.
소년은 자신이 그럴 용기도, 또한 그래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절망하는 것뿐이었다.
절망 속에서 소년이 천천히 눈을 뜨는 순간 그때까지도 소년을 노려보고 있던 금옥강이 ‘피식.’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 너 제법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금옥강은 코피를 훔쳐내며 소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소년은 여전히 다소 멍청한 표정으로 금옥강의 손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소년은 비로소 금옥강이 코피를 흘리고 쓰러진 상황에서도 울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때 금옥강의 나이는 소년과 동갑인 7살에 불과했다.
이 나이 즈음의 어린 아이들의 싸움이라는 것이 으레 그러하듯 통상 코피는 눈물이었고, 상대방의 눈물이 곧 승리를 의미했다.
하지만 이런 원칙이 금옥강에게는 통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단순히 코피가 문제가 아니었다.
금옥강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소년에게 흠씬 얻어터진 상황이었다.
으레 우는 것이 정상이었다.
도련님의 자존심이었을까?
그도 아니라면 남자로써의 오기였을까?
소년 금옥강은 적어도 눈에서 눈물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멍청한 표정으로 마주잡은 소년의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 오늘은 내가졌다.”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는 금옥강의 모습은 소년에게 더더욱 의외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소년은 금옥강의 손을 붙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소년은 그제야 위기를 넘겼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리고 비로소 여유를 되찾은 듯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 그저 부잣집 샌님인줄 알았는데 너 제법 깡다구가 있구나.”
깡다구가 있다는 표현은 소년이 아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날의 사건은 소년에게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었다.
그날의 사건으로 소년과 금옥강은 친구가 되었고, 그 이튿날부터 소년은 금옥강의 집에 땔감을 팔기 시작했던 것이다.
금옥강은 그냥 친구가 된 소년을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을 친구라고 생각하는 소년의 자존심이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땔감이라는 명목으로 소년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이 역시 나이답지 않은 사려 깊은 행동이었다.
소년 역시 이런 금옥강의 배려를 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3년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금옥강의 집에 나무를 해다 날랐다.
이것 역시도 소년의 자존심이었다.
일자무식의 소년은 글을 배울 형편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금옥강의 배려로 소년은 우곡촌에서 두 번째로 글을 잘 아는 소년이 되었다.
이렇게 두 소년의 우정은 3년을 이어져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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