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야공자 제7화--2
수련을 마친 진조범은 곧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능취취가 이미 방에서 두 사람을 위해 차를 준비해둔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능취취 역시도 진조범의 이런 기행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매일 밤 애처로운 눈빛으로 달을 바라보는 진조범의 모습은 능취취의 가슴까지도 무척이나 애절하게 울리고 있었다.
능취취는 다소 측은한 눈빛으로 진조범을 바라보며 말했다.
“ 밤바람이 차갑습니다. 우선 따뜻한 차로 몸부터 녹이시지요. 오늘은 대공자께서 특별히 오공자님을 위해 보내주신 최고급 용정차(龍井茶는 짙은 향, 부드러운 맛, 비취 같은 녹색 그리고 참새 혀 모양의 잎사귀라는 네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어 '4절(四絶)'이라고 호평을 하기도 한다.)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취취는 가만히 진조범의 뒤로 다가가 이불로 진조범의 몸을 살짝 덮어주었다. 진조범이 이런 능취취를 바라보면서 살포시 미소를 머금었다.
“ 대사형께는 항상 신세만 지는군요.”
진조범의 미소에 능취취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 오늘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진조범의 말에 방안으로 들어서던 원중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의당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참,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원중도의 좋은 소식이라는 말에 진조범이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 좋은 소식?”
진조범이 검마맹에 들어온 지 6개월, 원중도의 입에서 좋은 소식이라는 말은 처음 나왔다. 사실 딱히 진조범에게 좋은 소식이 될 만한 일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의아한 표정의 진조범을 향해 원중도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 오공자님과 함께 이곳에 온 담야수가 오늘 잠영대의 초급과정을 모두 끝마쳤습니다. 고작 6개월 만에 초급과정을 통과한 것은 아마도 야수가 처음일 것입니다. 이대로만 간다면 늦어도 6년 이내에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으실 것입니다.”
진조범은 담야수의 소식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담야수는 이곳에 오자마자 원중도의 소개로 잠영대의 훈련과정에 참여했다.
그 뒤로 진조범은 처음으로 담야수의 소식을 접한 것이었다. 확실히 기쁜 소식이기는 하지만 진조범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6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과연 자신이 이곳에서 그 6년이라는 세월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매일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무수한 시선들, 아직 정확히 그들이 어디서 자신을 바라보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무공이 진보하면서 점차 이들의 존재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오히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차라리 저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다시 한 번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진조범이 자신의 이런 심정을 담아 다소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과연 내가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진조범의 중얼거림에 능취취가 안타까운 표정을 진조범을 바라보았다.
원중도 역시 착잡한 표정으로 한동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잠깐 동안의 정적, 그 암울한 정적을 깬 것은 원중도였다.
“ 너도 이제 그만 들어가 쉬도록 하여라.”
원중도의 축객령에 능취취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방을 벗어났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원중도가 가만히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던가?
원중도는 오감을 집중해 한동안 주변을 감지한 연후에 진조범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원중도와 진조범은 함께 진조범의 방에 마련된 지하 연공실로 향했다.
만사불여튼튼이라고 했던가?
연공실의 문이 닫히고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으로 들어서자 비로소 원중도가 다시 진조범을 향해 입을 열었다.
“ 월광검법의 성취는 어떻습니까?”
진조범이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 글쎄요, 성취랄 것이 뭐 있겠습니까만 지난 6개월간 대략 어느 정도 그 모양새는 갖춘 듯합니다.”
원중도가 고개를 숙이면서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 외람되오나 제게도 잠시 그를 견식 할 기회를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다른 뜻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오공자님을 경호하려면 오공자님의 성취를 알아두는 것이 좋을 듯해서 말입니다.”
순간 진조범의 얼굴에 짓궂은 표정이 스치듯 지나갔다.
동시에 아무런 경고도 없이 진조범이 수중의 검을 빠르게 움직였다.
갑작스런 진조범의 발검과 연이은 공격에 원중도가 대경하며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순간 진조범이 그를 추격하며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원중도 역시 황급히 수중의 검을 뽑으며 이런 진조범의 검에 대항했다.
뒤이어 십여 수의 교환이 끝난 이후에 진조범의 움직임이 멈췄다.
일련의 진조범의 움직임에 원중도의 얼굴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 고작 6개월, 6개월 만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진조범이 펼친 월광검법은 도합 7개의 검초였다.
300년 전 최고의 자객인 월야검객 이도립이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모든 절기를 압축해서 만들어낸 최고의 검식, 그 위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이도립의 절기가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비록 창졸간에 시작된 일전이었다고 하더라도, 또한 갑작스런 선공을 내주었다고는 할지라도 고작 6개월 만에 진조범이 어느덧 원중도를 위협할만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진정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6개월 전의 진조범과 지금의 진조범은 그야말로 다른 사람이었다.
장안의 유가장에서 이무경을 제압한 자신감을 시작으로 검마맹으로 이르는 와중에 자객들과 원중도를 통해서 얻은 깨달음이 진조범에게 크나큰 힘이 되었다.
이로 인해서 무공의 흐름을, 일종의 감각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비로소 무공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 곤륜파 도사의 무공을 지켜보면서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그 무언가가 진조범의 손에 조금씩 잡히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6개월을 이어온 긴장감이 이런 감각을 더욱더 활성화시키고 있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진조범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낸 것이었다.
‘ 이대로 3년만 지난다면. 어쩌면.’
원중도는 설레는 마음으로 두근거리는 자신의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진조범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이렇듯 원중도가 갑자기 공손히 허리를 숙이자 진조범이 조금 당혹스런 표정으로 원중도를 바라보았다.
“ 아무래도 내 장난이 좀 지나친 듯하오,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러니 그대가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오.”
원중도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원중도의 대답에 진조범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원중도는 양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진조범은 괜스레 이런 원중도의 모습에 기습으로 시작한 비무가 미안한 듯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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