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나를 찾아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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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나를 찾아서 _1
“강래워니!! 일찍 도착했네!! 일단 이쪽으로 앉아라. 뭐 마실 것 좀 줄까??”
누가 봐도 바빠 보이는 철수가 반갑게 강래원을 맞이한다.
“아니야. 너 바쁜 거 일 보고 천천히 와.”
“아~ 그래? 미안하다. 아~ 우리 셋째가 저번 주에 태어나서 내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보통은 더 일찍 출근해서 여유가 있는데, 요즘은 늦게 나와서 오전에 더 바쁘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셋째 나왔어??”
“어~ 그 꼬맹이 승질도 급하지 예정일보다 한참 일찍 나와서 정신이 없다.”
“야~ 축하한다!”
“옹야. 축하도 잠시 후에 받자. 좀 만 기다려~”
그렇게 자리를 떠난 철수는 한참이 지나서 주방에서 나온다.
“아이고!! 시간이 벌써 이렇게 가버렸다. 래원아 너 점심 좀 일찍 먹을래? 내가 보통 장사 시작하기 전에 좀 먹어둬야 안 지치거든... 배 안 고프니?”
“뭐 먹으면 먹는 거지.”
“그래. 그럼 기다려.”
철수는 주방에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가져온다.
그냥 놀러 온 게 아니라 상담을 하러 온 강래원은 도와줘야하나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어허이~ 강래워니 무슨 일이야?? 왜 안하던 짓을 하지?? 너 진짜 무슨 일 있어??”
“안하던 짓이라니~ 하~ 촬스~ 내가 언제 친구가 빡세게 일하는 데 외면한 적 있니? 나는 늘 주변을 돌아보며~ 어~ 누구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나 살피며~ 이 사회에 내가 어떻게 기여해야할까 고민하며~”
“아이고!! 됐다!! 이거 나 봐라!!! 우리 세찌다!! 어때?? 예쁘지?? 이거 봐라!! 코 오똑한 거봐라~ 신생아가 이렇게 코 오똑하기 쉽지 않다!!”
신나게 갓 태어난 셋째 사진을 들이대는 철수, 하지만 신생아를 처음 본 강래원은 그저 쭈글쭈글 눈도 못 뜬 아기 사진일 뿐이다.
“이야... 우람하네... 너 닮아서 야... 장군감이다!”
뭐라도 띄워줘야 할 분위기에 강래원은 급조한 칭찬을 날린다.
“장군감이라니... 우리 공주한테...”
“아... 딸이야? 아하하하...”
휴대폰을 치운 철수가 먼저 밥을 한 술 뜬다.
“그래서 할 이야기가 뭔데?”
일장 연설을 하던 강래원도 같이 밥을 뜨며 말을 꺼낸다.
“나도 음식점 좀 해볼까 싶어서~”
“뭐?? 음식점?? 강래워니 니가??”
뜬금없는 음식점 드립에 철수는 밥숟가락을 내려놓는다.
“평생 한량 팔자 강래원이 왜?? 갑자기?? 무슨 일 있나?”
“아니... 내가 음식점 좀 해보겠다는 데, 일은 무슨...”
“그러니까 너는 이런 거 안해도 돈 많은 전직 은행장 아버지가 부족함 없이 돈을 펑펑 쏴주잖아. 왜...? 너무 노니까 심심해??”
“하이고... 놀다니... 누가? 나는 늘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야~”
“야야야~ 됐다!! 음식점 이거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다가는 그냥 쌩돈만 날린다. 그 돈으로 그냥 너 하던 대로 신나게 놀고, 펑펑 돈이나 쓰며 살아라~ 그게 속 편하다!”
강래원을 너무 잘 아는 철수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친다.
“촬스~ 나 진짜 진지해. 자 내 말을 들어봐. 너 봐라. 내가 어디 회사 들어가서 직장 생활 할 스타일이니??”
철수는 밥을 오물대며 고민 없이 대답한다.
“아니지.”
“그래.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는 뭐 이렇게 살아왔어도... 앞으로 내가 만약 가족이 생기고 내 아이가 생기면 뭔가 직업이 있어야겠다...”
“너 진짜 무슨 일 있구나!!”
평생 안하던 말을 하는 강래원을 보고 철수는 확신한다.
“무슨 일은??”
“뭐야?? 뭔데?? 카사노바의 전설을 쓰겠다던 강래워니가 왜 갑자기 가족을 생각하고 아이를 생각해? 너는 미래 뭐 계획 이런 거는 니 체질 아니잖아. 강래워니 드디어 방황의 세월을 끝내 줄 운명의 그녀를 만난거야??”
정말 나의 모든 것을 아는 친구 앞에서는 돌려 말하기가 안 되는 구나;;;
강래원은 한 숨을 푹 내쉰다.
“만났지...”
“옴마!! 이야!! 강래워니!! 임자 만났구나! 이쁘냐?”
“당연하지!! 임뫄!! 내가 만난 애들 중에 안 예쁜 애가 있었냐?”
“그래. 이번에는 잘 해봐라! 축하한다. 만난 지 얼마나 됐는데? 뭐 진지하게 결혼 얘기가 오고 가는 거야? 아님 시작 단계야??”
“만난지는 어디 보자... 중간에 헤어진 기간이 오래 되지만 한 어언 10년째 되가는 거 같다.”
“10년?? 야~ 뻥도 어느 정도 쳐야 넘어 가주지... 10년이면 우리 고등학교 때... 너 혹시 서우 다시 만났어??”
쿠사리를 날리던 철수의 동공이 커진다.
“역시... 촬스...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
“그렇게 찾더니... 결국 만났네?? 우와... 강래워니 인간 승리네~ 다시 만나도 서우가 그렇게 좋아?”
“다시 만나도 여전히 예쁘고, 여전히 좋더라.”
“진짜 운명인가 보네~ 근데~ 왜 서우가 너 팽팽 논다고 뭐라 해? 서우는 뭐 고등학교 때부터 너의 한량 기질을 다 아는 데 뭔 갑자기 장사를 할라 그래? 그냥 집에 돈 많은 걸로 밀어붙여버려~”
“그게... 서우는 뭐...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내 주니어한테는...”
철수는 깜짝 놀라 밥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이거 이거!! 강래원니 행동력 보소... 아주!! 다시 만나자마자 그냥 자빠뜨려버렸구나!! 참네... 결혼 전에 혼수 먼저 만든 거야?? 강래워니 애국자네~”
“애국자는 무슨...”
“야~ 요즘 같이 출생율이 떨어지는 시기에 애 낳는 게 애국이다. 그래... 출산일은 언제야?? 임신하면 여자들 엄청 피곤해 하는데~ 결혼 준비도 하려면 니네 엄청 바쁘겠다!”
“철수야... 그게... 임신이 아니야.”
“잉??”
“애가 벌써 7살이야.”
“뭐?? 애가 7살 이라고?? 뭐야... 서우 이혼했어??”
“아니... 내가 사고치고 서우 혼자 애 낳고 키우고 있었더라고...”
“뭐...”
철수는 아예 식사를 중단하고 의자에 등을 기댄다.
“너 몰랐냐??”
“야!! 당연히 몰랐지!! 아니 이제까지 몰랐지. 나도 안지 얼마 안 돼.”
“아니... 어떻게... 그래서 너 그렇게 서우를 찾았던 거야??”
“그래... 그러니까... 나도 아무한테도 말도 못하고 미치는 줄 알았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철수는 연신 감탄사만 내 뱉으며 친구의 상황에 기가 막혀한다.
“그래서... 암튼... 뭐 그렇게 됐어. 근데 다시 만나도 서우가 좋더라. 어차피 애도 있고 해서 나는 정말 서우랑 다시 잘해보고 싶은데... 아... 서우가 철옹성이야. 아주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어!! 서우는 출근하는데, 나는 백수처럼 집에 있고... 오늘은 애 유치원 데려다 주는데 맨날 나보고 백수라고 외쳐대던 놈이 친구 앞에서는 아빠 바쁘다고 하더라고... 그 소리 듣는데 기분 참...”
강래원의 말에 철수는 같은 아빠로서 1000%공감을 한다.
“캬아... 강래워니... 이거 마냥 꼬꼬마인줄만 알았는데 이제 좀 으~른 대열에 접어드네~”
“뭐라는 거야~ 내가 이 나이 먹고 어른이지! 애냐??”
“야! 사람이 숫자 나이만 먹는 다고 어른이 아니다! 이 가정을 꾸리고!! 애를 낳고!! 가정을 지키고!! 이야... 강래워니 이거 짠 한번 해야 하는데! 일단 맹물로 한 잔 때려!”
철수는 물을 따라 소주처럼 입속에 털어 넣는다.
“그래. 얼라가 생기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더 고민되지. 옹야. 강래워니 아빠의 세계에 들어온 거 축하한다.”
“아!! 그래서... 내가 뭐라도 해보려고 이것저것 생각하다 음식점이나 해볼까 한 거야~”
“그치... 음식점, 카페, 치킨집... 뭔가 차리기 쉬울 거 같고 만만해 보이지... 음... 그래그래...”
이 대목에서 철수는 또 한 번 맹물을 원샷한다.
“하지만, 내가 아까도 말했듯이 너 장사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니가 정말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너 우리 가게에서 며칠만 일 해볼래?? 백문의 불여일견이다. 며칠 해보면 니가 정말 장사를 해도 되겠는지 답이 나올 거다.”
“그래. 내가 뭐 알바라도 해봤어야 알지~ 나도 그거 부탁하러 온 거다. 내 주변에 그래도 이렇게 떡하니 성공한 싸장님이 너 밖에 더 있냐??”
“야... 성공은 무신... 물밑에서 안 가라 앉을라고 X나게 물장구 치고 있는 중이다! 암튼 그럼 너 내일부터 일 해볼래??”
“내일?? 내일 주말인데??”
“아... 우리 강래워니... 그래... 내가 친구니까 이해한다. 친구야. 자영업을 하면 주말이고 휴일이고 더 바쁘다. 니가 장사를 시작하면 앞으로 니 인생에 빨간 날 쉬지는 못한다고 생각하고 시작해라. 그래 니 인생의 마지막 주말이라고 생각하고 신나게 놀고 그럼 월요일부터 나와서 같이 일해보자. 내가 최저시급으로 알바 비는 챙겨줄게.”
“오케이!! 콜!!”
철수에게 모두 털어놓고 나니 강래원은 마음이 홀가분하다.
27살... 20대의 끝자락 늦었다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못할 나이... 하지만 40대가 봤을땐 뭐든 시작해도 시작할 수 있는 나이다.
강래원은 이제부터 진짜 인생의 진로 찾기를 시작하는 기분이다.
***
강래원의 본가 김옥분 여사의 집은 여전히 반찬을 대량 생산 중이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이 놈의 시키... 내일이 토욜일인데 몇 시에 온다는 연락도 없는 거 보니까 이 녀석 또 까먹었어...”
반찬을 만들며 김옥분 여사는 혼잣말로 꿍시렁 거린다.
지난 주 토요일에 온 다던 강래원이 연락도 없이 안와서 집에 반찬이 쌓였지만, 김옥분 여사는 또 다른 반찬들을 준비 중이다.
“크흠...”
남편 강신묵은 못마땅한 듯 헛기침을 한다.
“딱 하룻밤만 외박하고 오겠다는 데~ 뭘~ 그렇게... 내가 당신 먹을 거 다~~~~~ 준비 해 놓고 가니까 냉장고에서 꺼내 먹기만 하면 돼요!! 설거지는 안 해도 좋으니까 싱크대에 물 헹궈만 놓고! 참네~ 정~ 심심하면 저기 예진이 남편이랑 같이 낚시라도 가던가 해요!”
김옥분 여사네 동네로 절친 손예진 여사의 남편이 얼마전에 내려왔다. 절친 손예진 여사. 원래 이름은 김꽃순. 하지만 죽기 전에 개명 하는 게 소원이었던 그녀는 손예진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들 부부는 신개념 노년부부다. 그녀의 남편의 평생 소원은 귀농, 그녀는 곧 죽어도 도시 녀. 그래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합의하에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손예진 부부의 소식을 듣고 모든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며칠 전 김옥분 여사는 손예진 여사와 통화를 하면서 아들내미의 방문 파토에 속상함을 털어놓았다.
“너도 참 속상할 것도 많다! 요즘 젊은 애들이 다 그렇지 뭐!! 야!! 나는 아직 장거리 운전 껌이다!! 준비해놔!! 내가 이번 주 주말에 내려가면서 너 픽업해서 니 소원인 둘째 아들내미 집에 데려다 줄 테니까!!”
같은 나이지만, 김꽃순에서 손예진으로 개명한 뒤 친구는 확실히 더 젊게 살고 있다.
든든한 친구의 말에 김옥분 여사는 그때 시간 없어 못했던 반찬들을 더 하고 있다.
“이 만큼은 예진네 주고... 이거는...”
평생 가정주부로 음식해서 남을 먹이며 살아온 김옥분 여사다. 그녀는 본인이 좋아하고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행복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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