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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류 님의 서재입니다.

용사. 때려치겠습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레트류
작품등록일 :
2024.04.24 00:31
최근연재일 :
2024.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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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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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4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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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 - 카르네 에스트라

DUMMY

나는 카펫을 만들고 싶었다. 저번 회차에서 만들었던 그 튤립 내음 나던 카펫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카펫을 만들 도구를 사려면, 마을로 내려가야만 했다.


여기서 내가 방 구석구석에 묻힌 아르윈의 살점 파편 갯수를 세는 편도 시간을 때우기에는 나쁘지 않았으나. 나에게는 조금 더 자극이 필요했다.


내가 지금 '완벽한 평화'를 누린다는,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용사를 그만두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명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마을로 내려가기로 했다.


내가 즐길 수 있을 거리를, 손에 좀 넣어두기로 했다.


마을이 분명. 이 길을 쭉 걸어나가서, 거대한 나무가 보일 때. 오른쪽 방향으로 나가면, 왕궁과 죽 이어진 번화가가 나온다.


내가 '용사'였을 시절엔 시선이 무서워서 들어갈까 망설인 정도 허다했지만. 지금은 거리낄 것이 없기 때문에.


홀가분한 걸음으로,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


내가 '반가움'을 담아 인사하며 마을로 들어서자. 쾌활하던 광장의 모든 소리가 멈추어들고. 각자 다른 곳을 향하던 시선은 나에게로 집중된다.


나는 이 시선에 담긴 감정을 알고 있다. 내가 수없이 마주한 것들이기에. 혐오, 공포, 증오, 분노, 당혹··· 거 다양도 하구만.


저 시선은 아르윈이 내 '용사 포기 선언'을 들어서는 아닐 터였다. 기억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기억으로 한정될 뿐더러.


아르윈이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소문을 퍼트려. 발 없는 말처럼 멀리멀리 퍼졌다 한들.


지금은 그것을 납득하는 이보다는 부정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었기 때문에.


저들이 내보이는 감정은 그러한 특수한 상황에 대응하는 감정이 아닌. 그저 직전 회차를 겪고 난 뒤 나에게 느끼는 본연의 감정일 것이었다.


그래. 나를 보는 '진짜 시선' 말이다.


다만 나는 그 시선을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기보단. 그저 우스워,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내가 두번만 더 세계를 돌려서. '직전 세계'만 기억하는 그들의 머릿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린다면.


금방 사라져버릴 감정이라는 것을 알기에. 전부 백일몽에 불과하였단 것을 난 알고 있기 때문에.


용사의 존재는 각인이 되었지만. 리오바스라는 존재가 잊혀지면.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까라는 의문은 당연했지만.


다들 '용사가 아닌' 나한테 그렇게까지 관심은 없을걸?


내가 포기한 권한을 갖고 나타날 용사에게 더 관심이 있겠지. 그들의 기억 속엔 '아직 나타나지 않았던' 용사를 기다리며 애태우겠지.


그렇다고 한들. 아무리 내 무능이 탓이라고 한들. 단 하나의 호의적인 시선 없는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 리는 없었다.


그래서 마을을 좀 오래 돌아보겠다는 계획을 수정했다. 나름 '단골'인 빵집에 들러 빵을 먹고. 카펫을 만들 도구를 구한 뒤, 튤립 향을 추출할 꽃집에 들른다.


음. 명쾌해서 좋군.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빠르게 빵집 안으로 들어가, 주인 아주머니를 만난다. 그리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꿀빵을 두개 집어, 계산대로 향한다.


보통 단골한텐 '어서옵쇼~'같은 인사를 건네는데. 진짜 벌레새끼 보는 경멸을 담아 날 바라보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내가 미운 모양이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빵 사러 왔어요! 여기 빵 맛있더라구요?"

"닥치고 계산이나 해."


그런 말을 하며 분위기를 좀 풀어보려고 했으나. 오히려 돌아온 것은 싸늘한 말. 욕설을 내뱉는 걸 보니 어지간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이젠 참고 납득을 하기보다는. 참지 않고, 물어보기로 했다. 더이상 참을 이유가 없으니까. 참을 역할이 아니니까.


그래서 계산대에 팔꿈치를 걸치고, 아주머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어 묻는다.


"아주머니. 궁금한 게 있는데. 왜 그렇게 매몰차요?"

"그걸 몰라? 어휴, 네가 거기서 마탑만 지켰어도··· 어휴!"

"아니. 나 이해가 안돼서 그런데. 그게 지금 매몰찰 이유가 돼요?"


그런 내 질문에 뚱딴지같은 소리를 내뱉는 아주머니. 그게 내가 지금 계산을 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내가 이전 세계를 내 변덕으로 구하지 못한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나는 더이상 의문을 참지 않았다. 떠오르는 의문을, 그대로 내뱉는다.


"제가 돈 안 준다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나 도둑놈인가? 나 지금 도둑질하는 건가?"

"··· 그런 건 아니지만···"


아하. 아니라고? 그렇지? 당연히 아니지?


그럼 씨발 새끼야.


왜 시간 끌어?


"그럼 잔말 말고 계산이나 해 씨발아. 장사 안 해?"

"히익···!"


내가 그렇게 말하고, 계산대를 내리치자. 계산대 위에 있는 사진이나 잡동사니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떨어지고.


그 '쾅'하는 신호에 맞춰, 아주머니가 그런 얼빠진 소리를 내뱉곤. 더이상의 불만은 없이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래. 역시 폭력은 훌륭한 대화 수단이기도 했지.


진정된 상황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한 번 보여주곤. 동화 4개를 계산대에 올린다. 아주머니는 잔뜩 긴장한 채 고개를 끄덕이고.


애초에 나는 그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장사 잘 하세요~"


손을 흔들어주곤, 봉투엔 꿀빵 하나를 넣고. 손에는 남은 꿀빵 하나를 든 채로 빵집을 나선다.


빵집 바깥에서 웅성거리던 행인들의 말소리가 내가 나옴과 동시에 멎어들었지만. 나는 최초의 목적도 달성했을 뿐더러 그들의 가십거리 따위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


그냥 내 손에 들린 빵 하나를 냠, 베어물었다.


이 꿀빵, 마음에 쏙 든다니까. 바삭한 겉껍질을 왕 베어물고, 그 부서지는 빵조각을 씹어 삼키다 보면. 그 야들야들한 속살 속 새콤달콤한 꿀이 흘러넘쳐 혀를 감싼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빵의 풍미를 덮어가는, 혀가 아릴 정도로 짜릿한 꿀의 새콤함. 고작 세 입에 사라지는 빵이지만, 순간의 행복을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으음~ 달다. 맛있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오늘 겪었던 기분 나쁜 일들이 싹 사라지는 느낌.


봉투에 담긴 두번째 빵을 먹으면, 어제 겪었던 기분 나쁜 일들도 그렇게 사라질까 싶어. 봉투에 손을 집어넣어, 와앙. 꿀빵을 베어물려고 했으나.


그것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날카로운 무언가가, 빵을. 정확히는 내 손을 노리고 날아왔고.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지만, 충분한 충격을 주어. 빵을 떨어트리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떨어진 것은, 수리검이었다. 이 제국에서 '단 한 명' 외엔 사용하지 않는 암살 도구였기에. 그 '단 한 명'이 있을 법한 장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그림자 진 뒷골목의 끝자락에. '암약의 암살자'. 영웅 중에 하나였던, 검은 복면과 복장으로 전신과 얼굴을 가린. 카르네 에스트라가 있었다.


너희들은 날 가만히 둘 생각이 없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말았다.





"여기 있을 줄 알았답니다. 리오바스 씨."


이런. 내 뒤로 접근할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네. 알았다면 빵을 지키기 위해 목을 베어버리는 것도 불사했을 텐데.


내게 그렇게, 속삭이듯 선언하며 다가오는 그녀에게. 순수한 감탄으로, 그녀를 칭찬하는 박수를 짝짝 치며 입을 열었다.


"아, 반가워요. 카르네. 암약의 암살자라는 말이 완전히 허상은 아니었네요."

"세계의 용사라는 말이 완전히 허상인 당신과는 다르게 말이죠."

"저번 회차에 걸려서 사지가 잘린 고기 인형이 된 걸 보고 허상인 줄 알았지 뭐에요?"


물론. 순수한 칭찬에 돌아오는 것이 조롱이라면, 나도 조롱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곧바로 응수하였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한쪽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은 쉽사리 눈치챌 수 있었다.


저 복면 안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마주한 것이 거진 천번에 육박하는데. 복면 따위로 가렸다고 해서 그 감정을 숨길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지.


"말조심해요. 당신도 수많은 실패 끝에 울부짖으면서 죽었던 주제에."

"그래도 전 사지 잘린 채 불타 죽진 않았는데?"

"천박하기는."


내 끝없는 도발로 인하여,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듯. 말 그대로 섬광처럼 내게 수리검 두개를 쏘아내는 카르네.


정확히 나를 죽이기 위해, 미간과 목 한가운데에 노리고 쏘아지는 수리검에. 수백 세계 전의 어리숙한 나라면, 그 수리검에 미간이 꿰뚫려 부질없이 죽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었기에. 990번의 윤회를 마친 나는, 마왕마저 단신으로 잡을 만큼 강해졌기 때문에.


그 날아드는 수리검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뒤 힘을 주는 것 만으로 멈춰세울 수 있었다. 잡아버릴 수 있었다.


"어머? 이 정도는 이제 적응했나봐요? 원숭이보단 이제 좀 낫네요."

"이제 상처받을 일도 없어서."


그러한 행동이 예상 외라는 듯. 다시금 눈썹을 꿈틀거리는 카르네였지만. 나는 고작 그 모습을 보려고 마을에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손가락 사이의 힘을 풀어, 수리검을 바닥에 떨구곤. 할 말을 재촉하기 위해 손을 까딱인다.


"그러세요. 지금 당신을 억지로 마주하고 있는 건 잡담이 목적은 아니라."

"저도 억지로 마주하기 싫은데. 헤어질까요?"


물론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기기 싫은 카르네는 계속해서 도발을 일삼지만. 난 그보다 더 심한 말에도 무감각해졌기 때문에 적당히 맞받아쳤고.


나보다 먼저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듯. 카르네는 먼저 복면을 벗어 던져버리곤, 팔짱을 낀 채. 그 새하얀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연다.


"아, 됐어요. 그래요. 아르윈 씨를 만나지 못했나요?"

"아르윈?"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당신을 찾으러 뛰쳐나가는 걸 봤거든요. 물론, 전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따라가진 못했지만."


그녀는 진지했다. 카르네는 진지했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니면 그녀가 혹시 무슨 짓을 당했는지. 진지하게 궁금하였기에, 가장 유력한 나에게 그렇게 묻는 것이었다.


그 궁금증을 띈 하얀 눈동자의 생기가. 불만이지만 듣겠다는 듯, 나를 그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바라보는 그 모습이.


평소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임무에 실패할 때마다 내 목에 독침을 꽂아 암살하던 그녀의 표정이 낯설었기에.


정색하거나, 혐오하거나. 그 두 표정 중 하나가 아닌, 이렇게나 다채로운 표정을 띌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기에.


내가 그녀를 죽여버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거슬려서 죽여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연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암약의 암살자라면서, 그녀가 내게 죽어버렸다는 사실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아둔함을 비웃어버리고 싶지만. 그것보단 더 좋은 방법이 떠올랐기에.


나는 거기에 곧바로 대답을 해주는 대신에. 왼 손에 주먹을 쥐곤 들어보였다.


"맞춰볼래요? 아니, 맞춰봐. 이름하야, 용사의 퀴즈쇼 같은 거지."

"전 용사겠죠?"

"헤. 소문이 거기까진 퍼졌구만."


참을성도 없이 조소하며 비꼬는 그녀의 말을 흘리고, 들어낸 손에서 검지를 펴보인다.


그녀는 내 그 일련의 행동에, 아무런 경계를 하고 있지 않았다. 원숭이보단 낫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위험도 면에선 원숭이와 취급이 비슷한 모양이지.


그런 그녀가. 사실을 접하고 나면, '떠들어보라'는 듯한 여유있는 표정을 과연 어떤 표정으로 바꿀까. 어떤 다채로움으로 물들일까.


"첫째. 나는 아르윈을 만나지 못했다."

"그럴 리가. 로드스터 특유의 마나가 당신 몸에서 진동을 하는데."

"그 정도로 진한 관계를 갖진 않았거든."

"농담 따먹기는 됐어요. 그래서, 다음 보기는?"


저건 블러핑이 아니다. 실제로 카르네는 아르윈과 내가 접촉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통할 거짓말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나와 다르게 '영웅'이라고 칭해진 자들은 제 분야에서는 유능한 것이 맞았으니.


'달의 마나'를 제외하곤 흐름과 특성 자체는 전부 동일하기에 '개인 특유의 마나'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으나.


거기서 운용 방법이나, 회로가 얼마나 간섭하는지 등에 따라 '개인의 특성' 정도는 존재하였고. 카르네는 그것을 판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기에.


"둘째. 나는 아르윈을 죽였다."

"··· 셋째는?"

"없어. 보기는 이게 끝이야."


그리고 유능한 것은 아르윈도 마찬가지다. 비록 내게 단칼에 죽어버리긴 했지만. 그건 내가 거진 천 번에 가까운 윤회를 거쳐 강해졌기에 벌일 수 있던 일.


'검성'인 그녀는 1대1 전투로 마왕을 제외한 누구와도 상대해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그 마왕과도 1대1 전투를 '성립'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카르네가 이번에도 터무니없는 소리라 일축하며, 다음 보기를 재촉하는 것도 납득 가능한 일이었다.


"보기는 둘이 끝이 아닐 텐데요. 셋째. 당신은 당신을 심판하려는 아르윈 씨에게서 도망쳐, 사람이 많은 번화가로 왔다."

"흐음. 판단의 근거는?"


내 이어지는 두개의 보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제 검지를 엄지로 당겨 뚜둑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곤. 날 압박하듯 그 새하얀 시선을 내 시선과 정면으로 맞부딪히며.


생각의 정리가 끝난 듯, 나를 따라 손을 들어, 세 개의 손가락을 펼치곤. 그녀 나름의 답을 꺼내어 내민다.


어차피 틀릴 것을 알았지만. 나는 내가 '우위'에 서서 하는 이 대화가 상당히 즐거웠기에. 그 말을 헛소리라고 일축하기보단, 오히려 되물으며. 이어질 대답을 유도한다.


"첫째. 당신같은 악한 이와는 다르게. 아르윈 씨는 민간인을 공격하지 못하거든요. 그걸 당신도 모를 리가 없을 테니, 숨기에 이만큼 적합한 장소는 없었겠죠."

"그건 꽤 흥미로운 발언이네. 두번째 근거는?"

"둘째. 당연한 거죠. 당신같은 무능한 사람이. 아르윈을 어떻게 죽여요?"


저것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사고의 끝에 다다른, 모범 답안이었다. 내 행적과 아르윈을 모두 저울질하여 그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답변.


채점하는 사람의 입장으로써, 박수와 함께 만점을 주고 싶었다만은. 그렇다고 없는 보기를 만들어서 정답을 달라고 우기는 행동이 옳은 것은 아니었기에.


그녀를 똑바로 마주하며. 고개를 저어주었다.


"근데 틀렸어."

"하. 오기인가요?"

"글쎄. 객기인가?"


물론 그것이 정답이라 찰떡같이 믿어 의심치 않은 카르네의 한쪽 눈만이 크게 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렇게 비꼬고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그녀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이성적으로 대꾸하는 대신. 상대를 비꼬고 들기 일쑤였고.


세간에 알려진 냉혹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녀는 꽤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에 속했다.


그 모습이 퍽 한심했고. 퍽 귀여웠고. 퍽 가소로웠기에. 절로 흘러나오는 웃음을 떠내려보내곤.


"아하하,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 힌트 하나 줄 테니까. 자."


대답을 요구하는 그녀의 앞에. 차마 다 털어내지 못한 핏자국이, 그대로 굳어버린 채 수납된. 용사의 검을 꺼내들어 내보인다.


그 행동이 궁지에 몰린 자의 발악이라 여겼는지, 단검을 양 손에 역수로 쥐고 전투 태세를 취하려는 그녀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드는 것을 보고 나니.


이러한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는 것은. 잡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광경도 꽤 재미있구나, 하고.


"당신, 설마···"

"응. 바로 그 설마야."

"하지만, 하지만··· 이상하잖아요.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그녀는 당혹과 혼란을 표정에 그대로 내보인 채로. 생각을 재듯 여러번 입을 벙긋거리다, 그제야 의문을 정리한 듯 떨리는 호흡으로 거칠게 내뱉으며 따져 묻는다.


내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면 '아직도 몰라요?'라고 비꼬고 들었을 텐데. 본인에게 되돌려주면 나와 비슷한 반응을 할까?


"이유?"

"그래요. 이유."

"아. 납득할 수 있는 이유 말이지? 음. 그러니까~"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그것이 아군이건 적이건, 위험하건 위험하지 않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따져 묻는 것은 그녀의 버릇이었다.


지금 내가 아르윈을 죽였다는 것은 자명했고. 아르윈보다 대인전이 약한 카르네 자신 역시 그 꼴이 될 수 있음을 감수하고도 묻는 버릇, 그 자체였다.


납득엔 타당한 이유가 필요하다고. 그녀는 그 버릇 덕인지, 탁월한 암살자이자 현명한 전략가이기도 했으니까.


지적하는 이도 없었고, 지적한다 한들 그녀는 '훌륭한 인간이 되려면 이렇게 해야만 한다'라고 둘러대고는 말 뿐이었으니까.


그와 반대로. 누군가 그녀에게 '왜'를 물으면. 그녀는 그녀가 묻던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 역시 납득할 수 있는 그녀 최선의 답을 내려주었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너는.


막상 내 이야기만 연관되면.


'무능하고 악하다'라는 좆같은 이유를 들어서 너 혼자 납득했잖아.


"어째서. 어째서 마왕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지? 어째서 마왕군을 물리치지 못하는 거야? 응?"

"그건 당신이 타인의 생명을 벌레처럼 여기는 악한이라서죠. 희생이 없었다면 시민군이 진군을 막아줬을 테니까요."


내가 그렇게 물으면. 너는 이렇게 응수했고.


"왜 나는··· 아무도 구하지 못하는 거야. 카르네. 제발··· 너라면 알 수 있잖아. 이유를···알려줘."

"그건 당신이 수백번 루프해도, 마왕 하나 이기지 못하는 벌레라서죠. 당신이 마왕을 이겼다면 다른 곳에 병력을 집중시켰을 테니까요."


내가 이렇게 물으면. 너는 그렇게 응수했으니까.


"부탁이야. 카르네. 부탁이야. 제발, 내가 강해질 수 있는 길을 알려줘··· 더이상.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아···"


내가 너에 대한 감정을 내려놓기 전에, 마지막으로 네게 답을 구했을 때에.


"무능과 악함을 내려놓으세요. 그렇게 한다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 불가능하겠지만, 당신에게는."


너는 내게 마지막으로, 그런 답을 내렸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서.


너는 결국 훌륭한 인간이 되었는가?


고작 마왕군들에게 사로잡혀, 사지가 잘리는 실패자가 되지 않았는가?


아하하.


우습다. 실로 우스워서.





"타인의 생명을 벌레처럼 여기는 악한 새끼라서?"

"··· 네?"

"마왕 하나 못 이기는 벌레 새끼라서?"

"하···! 넘겨짚기는. 그새 피해망상이라도 생겼나요?"


듣지 못할 것을 들었다는 듯.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 어벙한 반응만을 남기는 그 모습이 실로 우스워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부여잡고 한참을 웃었다. 그것이 광소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자의로 멈출 생각은 없었다.


이건 애초에 내 자의가 아니었으니까.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피해망상이 아니라. 그냥 미쳐버린 것 같네요. 대답해줄 생각이 없다면-"


내게 '타당한' 대답을 듣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카르네는, 무력으로라도 알아내야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몸을 낮추곤, 그대로 내게 뛰어들었으나.


아르윈보다도 느린 움직임에 내가 당해줄 이유는 전혀 없었기에.


"말 똑바로 해, 카르네. 전부 '납득할 타당한 이유'잖아."


뽑아낼 칼도 휘두르지 않고. 그대로 그녀의 목을 잡아채 무력화시키곤.


"이 벌레 새끼야."


그대로 땅에 쳐박아버린 뒤. 우악스럽게 움켜쥔 손에 힘을 주어, 그녀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숨통이 조여가는 소리, 카르네의 켁켁거리는 소리. 소란에 몰려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모든 것이 뒤섞이고 뒤섞여 아수라장이지만.


내 마음만은 고요했기에. 나는,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기에.


"컥, 께엑···"

"벌레가 누구야? 벌레가 누구지? 응? 버르적거리는 건 누구더라?"

"끅, 아악··· 당, 신··· 왜···?"


그렇게 죽어가면서도. 눈물이 고여가, 시야가 흐려지고. 힘이 풀려, 떠들 여력이 없음에도. 마지막 힘을 짜내여, 나를 노려보며. 대답을 촉구했지만.


있잖아, 카르네.


내가 너같은 벌레 새끼한테 만족할만한 대답을 줄까봐?


"왜냐니."


뿌득.


목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참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서."


대답이 필요하다면 지옥에서나 들어줘.


다음 세계에서 내가 너를 만나러 갈 일은 없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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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91 - 대책 회의 24.04.26 3 0 21쪽
8 991 - 아르윈 로드스터 24.04.25 5 0 18쪽
7 990 - 세계의 윤회. 24.04.24 11 0 15쪽
6 990 - 루네라 모노리스 24.04.24 9 0 15쪽
5 990 - 에리스 선라이즈 울셰인 24.04.24 9 0 21쪽
4 990 - 리셰 일라이오스 24.04.24 8 0 16쪽
» 990 - 카르네 에스트라 24.04.24 8 0 20쪽
2 990 - 아르윈 로드스터 24.04.24 11 0 15쪽
1 용사로서의 마지막. 24.04.24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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