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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숴드 님의 서재입니다.

개천-신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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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숴드
그림/삽화
연숴드
작품등록일 :
2017.12.13 18:12
최근연재일 :
2018.05.02 19: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5,646
추천수 :
25
글자수 :
119,769

작성
18.01.04 20:20
조회
185
추천
1
글자
9쪽

3장 곰의 아들(3)

DUMMY

동굴 안으로 들어서는 바람풀을 보며 웅녀는 반가운 마음에 성큼 뛰어나왔다.


“바람풀! 어서와 하루종일 기다렸어. 요즘은 네가 언제나 오나 그 생각만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어.”


생글거리며 말하는 웅녀는 어제와 또 다른 모습이었다. 갸름하고 하얀 얼굴, 붉어진 입술, 깊어진 눈망울. 어떤 사내라도 설레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바람풀은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 했다.


“이러지 마세요.”


바람풀은 웅녀를 가볍게 밀어내고 그녀보다 앞서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혹시라도 그녀의 눈 속에 고인 눈물을 들킬까 두려웠다.


“왜 그래? 에이 나 때문에 힘들게 약초를 캐느라 지쳤구나? 미안해. 하지만 나도 너한테 그런 것 시키고 싶지 않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웅녀에게 바람풀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작은 찻잔을 꺼냈다. 그리고 품속에서 꺼낸 토병을 들어 약을 따랐다. 손이 덜덜 떨렸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차마 웅녀를 보지 못하고 탁자로 쓰는 돌 위에 찻잔을 올려놓았다.


“오늘은 특별히 약초 달인 물을 가져왔어요. 이것을 마시면 더욱 아름다워지고 온 몸에 생기가 돌 거예요.”


말끝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간신히 말을 끝내고 그녀는 작은 돌 위에 앉아서 치렁치렁한 옷자락으로 덜덜 떨고 있는 자신의 다리를 가렸다.


“바람풀이 추천하면 독물이라도 마셔야지. 웅족 최고의 약초술사가 주는 건데.”

“무슨 말이에요! 그런 말이 어딨어요?”


웅녀의 입에서 독물이라는 말이 나오자 화들짝 놀란 바람풀이 자신도 놀랄 정도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그래. 농담한 걸 가지고... 미안해... 나 때문에 많이 힘들지? 말은 안해도 항상 너에게 미안해하고 있어. 어울리지도 않는 이런 짓 때문에 너만 고생시키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해.”


웅녀의 말에 바람풀은 또다시 눈에서 눈물이 솟으려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찻잔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웅녀가 또다시 환한 목소리로 바람풀을 불렀다.


“바람풀! 이것 마시면 생기가 솟고 더 예뻐진다고 했지? 이거 네가 마셔. 나는 이것 말고도 네가 가져다준 좋은 약초를 매일 먹잖아.”


바람풀은 순간적으로 온 몸이 굳어졌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들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리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애써 눈물을 누르고 있는 그녀의 시선에 해맑은 미소와 함께 찻잔을 내밀고 있는 웅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잠시 웅녀와 찻잔을 번갈아보며 바라보던 바람풀은 떨려오는 손을 억지로 다잡으며 그녀가 내민 찻잔을 받아들었다.


“언니, 고마워요. 언니는 꼭 환웅의 여인이 되어 웅족의 미래를 밝혀줄 거에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할 어머니가 될 거에요.”

바람풀은 순식간에 찻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기어이 흘러 양 볼을 적시며 바닥에 떨어졌다.


*


웅녀의 비명소리가 부족의 구석까지 퍼졌다. 순식간에 족장인 흑산과 돌가람, 그리고 적산을 포함한 장로들이 동굴 속에 모여들었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웅녀가 바닥에 쓰러진 바람풀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바람풀! 바람풀! 왜그래? 정신차려. 바람풀!”


바람풀의 입가에는 작은 핏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적산이 뛰어들어 웅녀를 거세게 밀쳐내고 바람풀을 안아들었다.


“바람풀아! 왜 이러느냐. 도대체 무슨 일이냐?”


적산의 정신없는 외침에 족장인 흑산은 웅녀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모르겠어요. 바람풀이 이 약초물을 마시더니 쓰러졌어요. 도대체 왜?”


그 말을 들은 적산은 고개를 홱 돌려 웅녀와 바닥에 떨어진 찻잔을 보았다.


“뭐라고... 바람풀이 이 약을 먹었다고?”


웅녀는 그저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었다. 적산은 미친 듯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도대체 왜! 왜 네가 먹지 않고 바람풀이 그 약을 먹었단 말이냐! 왜!”


울음이 섞인 듯 외쳐대는 그 소리를 들은 흑산과 돌가람, 그리고 장로들은 자기도 모르게 흠칫 뒤로 물러났다. 무슨 소리인가? 그렇다면 저 약을 웅녀에게 먹이려고 했는데 바람풀이 먹고 급사를 했단 말인가?


이 때, 짐승의 흐느낌처럼 딸의 시체를 안고 흐느끼던 적산이 딸을 바닥에 놓고 서서히 일어났다. 돌아서는 그의 눈은 피와 같은 붉은 빛으로 가득했다.


“모든 것은.... 너... 때문이다.”

초점 없는 눈으로 웅녀를 노려보던 적산은 갑자기 웅녀에게 몸을 날렸다. 곰이 앞발을 휘두르는 것과 같은 몸놀림은 그의 거구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든 정도로 빨랐다. 만일 그가 평소에 사용하던 도끼를 손에 들고 있었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을 것이다.


“퍽!”


몸을 날려 적산을 밀쳐 낸 것은 바로 그의 형이자 웅녀의 아버지인 흑산이었다.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적산을 흑산은 다시 한 번 괴성과 함께 후려쳤다. 적산은 몸이 축 늘어졌다.


며칠 후, 부족의 장로들은 당장 적산을 죽여야 한다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흑산은 그럴 수 없었다. 하나 뿐인 딸을 잃고 밧줄에 묶인 채 힘없이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적산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며 흑산은 그에 대한 미움보다 측은함이 더 크게 들었다.


“떠나라!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이것이 웅족의 족장이자 그의 형이 적산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그 말을 들은 적산은 갑자기 쿡쿡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돌가람이 다가와 밧줄을 풀어주자 그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쿡쿡거리며 비틀비틀 북쪽을 향해 사라졌다.


그 일이 있은 후 웅녀는 말을 잃었다. 동굴에서 예전과 같이 약초를 먹고 꽃물에 몸을 담궜지만 표정도 없고 말도 없었다. 간혹 돌가람이 찾아와 그녀를 위로하고 웅족의 위대한 미래에 대하여 말을 했지만 그저 고개를 숙이고 듣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환웅이 웅족을 찾아왔다.


환웅은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었다. 호족을 그렇게 내치고 나서 자신이 세우고 있는 인간의 나라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자신을 거부하고 떠난 호녀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다.


웅족의 족장 흑산과도 가볍게 인사만 나눌 뿐 한마디의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호족을 그렇게 만든 것이 자신의 순간적인 분노 때문이었다는 자책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흑산과 돌가람은 불안함을 숨기지 못했다.

웅녀는 아직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고 환웅 역시 모든 것에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다. 과연 이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데로 남녀의 연을 맺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환웅이 자신이 묵을 동굴로 안내 받았을 때 그 안은 상서로운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가득 차 있다고는 하나 일부러 향기를 피운 것이 아닌 원래부터 그런 향기가 있었던 것처럼 코가 아닌 머리로 느껴지는 상쾌한 기운이 있었다. 100일에 걸쳐 서서히 스며든 향기는 들어서는 이의 마음을 충분히 편안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웅녀가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너는 누구냐?”

“저는 웅녀라고 합니다.”


환웅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웅족의 무리가 하는 짓이 가소롭기도 했지만, 지금 자신의 처지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기 위해 하늘에서 왔다고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웅족의 시선은 아무 여인하고나 사랑을 나누는 그런 짐승 같은 인물인 듯 싶었다.


“물러가라. 혼자서 쉬고 싶다.”


환웅의 말에도 웅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물러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약간 언성을 높이며 말했지만 웅녀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환웅은 다시금 그녀를 자세히 보았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환웅은 걸음을 옮겨 웅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서자 그제야 온전하게 웅녀의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웅녀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가늘고 긴 목 아래로 동그랗게 말린 어깨가 안쓰러울 정도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왜 그리 떨고 있느냐. 고개를 들고 나를 봐라.”


환웅의 말에도 웅녀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환웅은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제야 웅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웅녀는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깊은 눈망울에서 나온 맑은 눈물은 그녀의 하얀 뺨을 타고 갸름한 턱으로 쉴 새 없이 흘렀다. 그녀의 처연한 아름다움에 환웅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왜 이리 우느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온화하게 흘러나오는 환웅의 말에 웅녀는 붉은 입술을 움직여 힘겹게 한마디씩을 이어나갔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그 운명을... 만들기 위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웅녀의 말을 듣는 동안 환웅은 그녀로부터 알 수 없는 슬픔이 가슴깊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환웅은 조용히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날 밤, 그녀의 몸속엔 기적과도 같이 운명의 생명이 깃들었다.


<3장 곰의 아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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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6장 마지막 전쟁(4)-완결 18.05.02 78 0 8쪽
23 6장 마지막 전쟁(3) 18.03.14 102 0 10쪽
22 6장 마지막 전쟁(2) 18.02.06 141 0 9쪽
21 6장 마지막 전쟁(1) 18.02.01 173 0 10쪽
20 5장 하늘과 땅의 전쟁(4) 18.01.29 165 0 13쪽
19 5장 하늘과 땅의 전쟁(3) 18.01.23 195 0 18쪽
18 5장 하늘과 땅의 전쟁(2) 18.01.22 140 0 12쪽
17 5장 하늘과 땅의 전쟁(1) 18.01.18 148 2 10쪽
16 4장 북방의 전설(6) 18.01.16 162 0 12쪽
15 4장 북방의 전설(5) 18.01.11 142 0 14쪽
14 4장 북방의 전설(4) +2 18.01.10 202 3 10쪽
13 4장 북방의 전설(3) 18.01.09 182 0 12쪽
12 4장 북방의 전설(2) 18.01.09 154 1 13쪽
11 4장 북방의 전설(1) 18.01.05 171 1 10쪽
» 3장 곰의 아들(3) 18.01.04 186 1 9쪽
9 3장 곰의 아들(2) 18.01.04 175 1 11쪽
8 3장 곰의 아들(1) 17.12.29 211 1 12쪽
7 2장 호랑이의 아들(4) 17.12.27 228 2 15쪽
6 2장 호랑이의 아들(3) +2 17.12.19 260 2 14쪽
5 2장 호랑이의 아들(2) 17.12.18 270 1 10쪽
4 2장 호랑이의 아들(1) 17.12.15 287 1 10쪽
3 1장 신의 나라(2부) 17.12.14 383 2 11쪽
2 1장 신의 나라(1부) +2 17.12.13 679 2 11쪽
1 프롤로그 - 신의 죽음 17.12.13 813 5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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