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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숴드 님의 서재입니다.

개천-신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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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숴드
그림/삽화
연숴드
작품등록일 :
2017.12.13 18:12
최근연재일 :
2018.05.02 19: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5,642
추천수 :
25
글자수 :
119,769

작성
17.12.15 18:21
조회
286
추천
1
글자
10쪽

2장 호랑이의 아들(1)

DUMMY

짐승을 사냥할 때는 바람을 얼굴에 맞으면서 숨어야 한다. 작은 사슴 한 마리도 제 목숨을 걸고 도망칠 때는 도저히 잡을 수가 없다. 방법은 최대한 들키지 않고 접근하는 것이다.

사람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진흙을 바르고, 모습을 숨기기 위해 나뭇가지와 가죽으로 위장을 했다. 사냥감이 지나가는 자리에 땅을 파고 누워 위를 흙으로 덮고 몇 시간씩 기다리기도 했다.


호족의 사냥꾼 ‘붉은 머리’는 땅바닥에 누워 꼬박 밤을 새웠다. 그에게는 이것이 호족의 정식 사냥꾼이 되는 마지막 목표였다. 태어날 때에는 머리가 붉어 붉은 호랑이의 후손이라고 불렸지만 막상 성장해서는 왜소한 몸집과 작은 손과 발 때문에 그냥 ‘붉은 머리’라고 불렸다.


이제 갓 열다섯을 넘긴 어린 나이지만 그는 마을의 전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토끼나 작은 짐승을 사냥해오는 것이었다. 물론 사냥꾼은 예전에는 부족 전체의 존경을 받는 부류였다. 사냥꾼이 사냥을 해야 부족 전체가 먹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환님이 오시고 계절이 세 차례씩 바뀐 이후로 농작물이 늘어나고 집에서 기르는 개, 돼지의 수가 늘어나면서 사냥꾼은 이제 꼭 필요한 부류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환에게 웅자를 붙여서 그를 찬양하였고 그 이후 그는 환웅으로 불려졌다. 하지만 ‘붉은 머리’는 그래도 농사를 짓는 것보다 최고의 사냥꾼이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의 손과 발에 둘려있는 호랑이 가죽은 그의 핏줄 속에 아직 호족의 용맹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오늘은 기필코 저 놈을 잡을 테다.”


드디어 저 멀리서 지축을 울리는 먼지와 함께 ‘그 놈’이 나타났다. 괴물 같은 놈이었다. 사슴인 것 같은데 덩치가 보통 사슴의 2배는 됐다. 뿔이 날카롭게 위로 뻗어있는데 그 뿔에 찔리기라도 하면 한 번에 즉사할 것 같았다.


그 놈은 괴물이었다. 사슴 주제에 늑대나 승냥이들을 우습게 여겼다. 늑대나 승냥이들은 그 놈에게 걷어차이거나 뿔에 받쳐 살이 찢어진 후에 그 놈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붉은 머리는 풍백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대로 손을 모아 주문을 외웠다. 손을 모으고 주문을 외우기를 잠시. 붉은 머리의 머리칼이 땅에서 하늘을 향해 날리 듯이 일어섰다. 그리고 서서히 머리카락이 뒤로 날리기 시작했다. 바람방향이 바뀐 것이다. 바람은 붉은 머리의 맞은편에서 불어왔다.


“헤헤, 쓸 만하네. 그전에는 바람 때문에 네 놈에게 들켜서 낭패를 보았지만 이제는 그럴 염려가 없지.”


그 놈은 짐승주제에 ‘하늘뿔’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었다. 뿔의 길이가 길고 하늘을 찌를 듯 하다고 붙여진 이름이었다. 붉은 머리는 하늘뿔이 다니는 길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 길은 그놈이 물을 마시러 가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높지 않은 갈대들이 바람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평야 멀리서 그놈은 갈대 위로 가슴 이상을 드러내고 당당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계곡의 바위 뒤에 잔뜩 몸을 웅크린 붉은 머리의 귓속에서 심장의 박동이 뛰기 시작했다.


하늘뿔은 넓은 평야를 달려오다가 좁아진 계곡 앞에서 잠시 발을 멈췄다. 위기에 대한 본능이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한참 후에야 다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천천히... 천천히...’


붉은 머리는 숨을 참으며 허리춤에 매달린 검의 손잡이를 꼭 잡았다. 저 놈에게는 화살 따위가 먹히지 않았다. 멀리서 쏘면 비웃듯이 피해버렸고, 가까이서 쏠라치면 빠르게 달려들어 그 날카로운 뿔로 받아버렸다.

방법은 가까이서 넘어뜨린 후 단검으로 단숨에 목줄을 끊는 것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붉은 머리의 손에 땀이 맺히고 쿵쿵 거리는 심장소리는 밖으로 들릴 것 같았다. 드디어 하늘뿔이 소년의 옆을 지나치는 순간! 붉은 머리는 용수철처럼 뛰어올랐다.

자신의 키 만큼이나 뛰어오른 그는 하늘뿔의 뿔 밑동을 잡아챘다. 그리고 뛰어오른 힘 그대로 그놈의 반대쪽으로 몸을 날려 그 괴물 같은 놈을 넘어뜨리려고 하였다.


하지만,

잠시 휘청하던 하늘뿔은 넘어지기는 커녕 다시 중심을 잡고 그 덩치만큼이나 괴물 같은 힘으로 붉은 머리를 하늘로 뿌리쳤다. 하지만 붉은 머리도 만만치 않았다. 하늘뿔이 머리를 흔드는 데로 몸이 공중에서 휙휙 날아다녔지만 절대로 손을 놓지 않았다.


몇 번 고개를 저어도 자신의 머리에 매달린 붉은 머리가 떨어지지 않자 하늘뿔은 계곡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붉은 머리는 순간 선택을 해야 했다. 손을 놓고 바닥에 나뒹군 다음에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칠 것인지, 아니면 허리춤에 매달린 단검을 빼서 이놈의 목줄을 끊어 놓을 것인지. 하지만 단검을 빼기 위해 한 손이라도 놓았다가는 금방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붉은 머리는 이를 악 물었다. 저절로 목구멍에서 ‘으르렁’대는 소리가 나왔고 눈빛은 점차 붉은 빛으로 물들어갔다. 호족의 선택된 용사들에게서만 나타난다는 호랑이의 기운이 소년의 몸을 지배해 들어갔다.


붉은 색의 눈빛이 실타래와 같은 기운으로 허공에 뿌려졌다. 그 순간 소년의 왼쪽 팔 작은 근육들이 터질듯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뿔을 잡았던 오른 손을 놓고 재빨리 허리춤의 칼집을 더듬었다. 드디어 칼을 꺼낸 붉은 머리는 팔을 크게 휘둘러 하늘뿔의 목옆을 깊이 찔렀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붉은 머리가 한 가장 큰 실수였다.


하늘뿔은 제자리에서 하늘을 향해 크게 앞발을 들며 표효했다. 그리고는 쿵 소리가 날 정도로 자신의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그 바람에 붉은 머리는 하늘 뿔의 머리 앞쪽으로 날아와 버렸다.

비록 뿔과 칼을 잡은 손은 놓치지 않았지만 이미 팔은 이상한 각도로 비틀어져 버렸다. 하늘뿔의 목에서는 피가 폭포처럼 콸콸 쏟아졌다. 하지만 소년을 머리 앞쪽에 태운 하늘뿔은 그대로 달려서 나무를 들이받았다.


하늘 뿔의 큰 뿔 옆에 비죽이 솟아있던 작은 뿔이 붉은 머리의 가슴뼈를 부러뜨리며 깊숙이 들어왔다.


그제서야 손을 놓은 붉은 머리의 눈에는 피를 뿌리면서도 비틀거리며 저 멀리 달아나는 하늘뿔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점차 그 모습이 핏빛으로 변하더니 점차 검붉은 빛으로, 그 다음에는 온통 검은 암흑만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엄마...’


나무 밑둥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소년의 몸이 서서히 식어갔다. 하지만 그 때는 아무도 몰랐다. 그 소년의 죽음이 얼마나 큰 재앙을 몰고 올 것인지.


*


소년의 죽음은 호족에게 큰 슬픔이었다. 소년의 엄마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 머리를 풀어헤치고 가슴을 잡아 뜯으며 땅바닥을 뒹굴었다.


부족 사람들 모두 내색은 안했지만 일찌감치 호족의 용맹함과 몇 대에 걸쳐 나타난다는 호랑이의 기운까지 품고 있었던 그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였다. 그가 가벼운 사냥부터 시작해 마을의 용맹한 전사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심지어 마을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환웅과 풍백도 아이의 영특함과 용맹함에 감탄하여 풍백의 제자로 점찍었을 정도였다. 그런 만큼 아이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고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었다.


부족의 젊은이들은 환웅이 알려준 흰색 옷을 벗어버리고 움막 안에 깊이 넣어두었던 호랑이 가죽을 꺼내들었다. 비록 짐승이라고 할지라도 호족의 아이를 죽인 것은 철저히 복수를 해야 했다. 그들은 그렇게 배웠다.


그들의 맨 앞에 선 것은 이제는 마을의 족장이 된 ‘주검’이었다. 주검은 아버지가 환웅과 만난 이후 얼마 안 돼 숨을 거둔 이후, 정식으로 족장이 되었다. 아버지는 환웅과 부딪치지 말고 환웅이 말하는 인간이 되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오늘은 참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검은색 짐승 털을 몸에 두르고 호랑이 발톱을 손에 감은 그는 젊은이들과 함께 숲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 큰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었다. 이미 깊은 상처를 받은 하늘뿔은 소년이 죽은 곳에서 얼마 가지 못하고 가쁜 숨을 내쉬면서 널부러져 있었다.

주검은 하늘뿔의 머리를 발로 밟고 천천히 호랑이의 발톱을 목에 쑤셔 넣었다. 하늘뿔의 몸은 잠시 부르르 떨렸지만 이내 축 처지고 말았다.



그날 밤 호족의 마을에서는 큰 불길이 피어올랐다. 하늘뿔의 시체를 횃불 옆에 던져두고 부족민들이 달려들었다. 이미 흰옷은 벗어버리고 벌거벗거나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쓴 부족민들은 붉은 머리의 엄마가 먼저 칼로 짐승의 배를 가르는 것을 묵묵히 보고 있었다.


그녀가 손으로 내장을 긁어내고 칼로 근육을 가르다가 제풀에 지쳐 기절하듯 쓰러졌을 때 마을 사람들이 앞으로 나섰다. 원수의 피를 마시고 내장을 씹으리라는 복수의 일념으로 눈빛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불꽃 근처에서 시끄럽게 울려 퍼지던 곡소리와 짐승이나 낼 것과 같은 소음이 일순간 싹 가실 정도로 크고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를 돌아본 그들의 눈에는 일렁이는 불빛에 붉게 물든 얼굴의 환웅이 보였다.


환웅의 얼굴은 단순히 불빛에 물든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붉게 물들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고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부락을 감싸고 있었다.



2장 호랑이의 아들(1) 끝


작가의말

호족과 환웅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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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6장 마지막 전쟁(4)-완결 18.05.02 78 0 8쪽
23 6장 마지막 전쟁(3) 18.03.14 102 0 10쪽
22 6장 마지막 전쟁(2) 18.02.06 141 0 9쪽
21 6장 마지막 전쟁(1) 18.02.01 173 0 10쪽
20 5장 하늘과 땅의 전쟁(4) 18.01.29 165 0 13쪽
19 5장 하늘과 땅의 전쟁(3) 18.01.23 194 0 18쪽
18 5장 하늘과 땅의 전쟁(2) 18.01.22 140 0 12쪽
17 5장 하늘과 땅의 전쟁(1) 18.01.18 148 2 10쪽
16 4장 북방의 전설(6) 18.01.16 162 0 12쪽
15 4장 북방의 전설(5) 18.01.11 142 0 14쪽
14 4장 북방의 전설(4) +2 18.01.10 202 3 10쪽
13 4장 북방의 전설(3) 18.01.09 182 0 12쪽
12 4장 북방의 전설(2) 18.01.09 154 1 13쪽
11 4장 북방의 전설(1) 18.01.05 171 1 10쪽
10 3장 곰의 아들(3) 18.01.04 185 1 9쪽
9 3장 곰의 아들(2) 18.01.04 175 1 11쪽
8 3장 곰의 아들(1) 17.12.29 210 1 12쪽
7 2장 호랑이의 아들(4) 17.12.27 228 2 15쪽
6 2장 호랑이의 아들(3) +2 17.12.19 260 2 14쪽
5 2장 호랑이의 아들(2) 17.12.18 270 1 10쪽
» 2장 호랑이의 아들(1) 17.12.15 287 1 10쪽
3 1장 신의 나라(2부) 17.12.14 382 2 11쪽
2 1장 신의 나라(1부) +2 17.12.13 679 2 11쪽
1 프롤로그 - 신의 죽음 17.12.13 813 5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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