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송선 님의 서재입니다.

검적유화 劍跡儒話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송선
작품등록일 :
2022.05.18 01:11
최근연재일 :
2022.06.16 22: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383
추천수 :
142
글자수 :
170,238

작성
22.05.20 06:39
조회
37
추천
1
글자
12쪽

[4-2] 봄꽃의 붉은 기운 채 가시지 않았건만...

DUMMY

시간은 무심하게도 어찌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낙엽들이 모두 땅에 떨어지고 날씨가 쌀쌀해지는가 싶더니 금세 겨울이 왔다. 이 역시 얼마 지나지 않은듯한데 얼었던 강물은 서서히 녹아 다시 날이 따뜻해지니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봄을 알리는 꽃들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겨우내 움츠려 있던 사람들도 날이 따뜻해지자 서서히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율곡과 송익제, 심위수 세 사람이 헤어진 지도 벌써 일곱 달이 지났다. 그동안 송익제는 거처를 충청도에서 진주로 옮겨 자기 아내와 함께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아내는 최근 사내아이를 낳아서 회복하고 있는지라 아이와 부인의 수발을 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송익제는 자신의 첫 아이가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나온 데다 사내아이인지라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정신없이 아내와 아이를 위해 움직이면서도 별로 힘든 줄을 몰랐다.


덕분에 같이 바빠지게 된 사람이 있었는데 심위수였다. 그는 송익제를 도와 이웃집에 소식을 알리고 음식 등을 마련하여 나누어 주는 일도 했다. 아이가 태어난 뒤로 거의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송익제가 지인들에게 여기저기 소식을 알렸기에 많은 사람이 하루에도 서너 명씩 들락거리며 축하선물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송익제는 사람들이 오면 일일이 정중하게 대접하면서 그간에 회포도 풀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저녁나절이 되자 시끌벅적했던 소리도 줄어들고 지인들도 하나둘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송익제는 자신을 위해 수고해준 심위수가 무척이나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우가 나 때문에 고생이 많군. 네 도움이 없었으면 정말 힘들 뻔했어.”


심위수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인데 낯간지럽게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니지. 그동안 아우가 동분서주해 준 덕에 내가 얼마나 든든했는데...”


송익제는 심위수가 마치 제 일처럼 일말의 불평도 없이 많은 일을 도와줬다는 것을 알았기에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는 이번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아우에게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이 좋은 기회라 여겨 입을 열었다.

“사실 이번에 아우를 위해 집을 하나 지어 놓은 게 있는데 그리 크지 않지만 사는데 불편하지는 않을 거야. 이참에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진주로 와서 사는 게 어떤가?”


송익제는 늘 상 심위수가 충청도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돌봐가며 자신 때문에 진주로 내려와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불편해서 심위수 모르게 아내의 도움을 받아 집을 한 채 마련하였다. 아내의 집안 자체가 모아놓은 재산이 꽤 많았고 영남에 소유하고 있던 땅도 제법 있었기에 그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심위수는 크게 놀라워하며 말했다.

“형님. 그렇게안 하셔도...”


“아우. 그대 어머니도 함께 이곳으로 모셔오게 되면 우리가 다 같은 지역에 살게 되니 자주 왕래할 수도 있지 않겠어? 그러니 사양하지 말게.”

송익제가 워낙 단호하게 말하자 심위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고마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왕에 말이 나온 김에 아우는 내일 아침 짐을 꾸려 어머니를 모셔오시게.”

“고맙습니다. 형님. 그리고 제가 가는 길에 해남에 들러 첫째 형님께도 안부 전하겠습니다.”


송익제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그리해준다면야 나야 고맙지.”

다음 날 아침 동이 틀 무렵 심위수는 옷을 갈아입고 오랜만에 갓을 쓴 뒤 어깨에는 짐을 둘러멨다. 송익제도 어느새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우. 해남에 들르게 되면 이 서신을 형님께 전해주게.”

“예.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서신을 받아든 심위수는 품속에 넣은 뒤 길을 나섰다.


날이 5월 무렵으로 접어들자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했다. 슬슬 모내기 철이라 사람들이 농사일하기 시작하는 시기인데 호남지방은 다른 지방보다 약간 늦게 모내기를 하는지 아직은 농사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전라도 달량포 해안가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 한창 어선을 손질하고 있었다. 이때 두 중년의 사내는 열심히 나무를 잘라 손상된 어선을 다듬고 있었다.

“아...힘들구먼. 겨우내 움츠리고 있어서 그런가? 허리가 더 아프네그려.”


두 사람 중 다소 마르고 키가 큰 사람이 허리가 아픈지 하던 일을 중단하고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다소 통통하고 체구가 작은 사내가 답답한 듯 말했다.

“아..금복 형님. 그러지 말고 침 좀 맞으소.”

금복이라고 불리는 사내는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도 천천히 해. 누가 잡으러 와?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형님. 이거 오늘 다 끝내야 내일 조금이라도 쉴 거 아니오.”


동생의 투덜거림에도 못 들은 척하면서 하늘을 바라보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을에서 함께 어선을 수리하는 일을 하는데 같은 동네에서 오래 알고 지내다 보니 형님 동생 하면서 격의 없이 지내는듯하였다.


금복이라는 사내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해안가 지평선 너머로 수많은 배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더 자세히 살펴보려 하였다.

“아! 형님 뭐 하는 거요? 일할 거요, 말 거요?”

“잠깐만 저기 좀 봐라... 저거 배 맞지?”


금복은 해안가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동생을 불렀다.

“배 처음 보나. 왜 호들갑을 떨고 그러는지 참...”


금복은 답답한 듯 자꾸 일어나 보라고 손짓했다. 동생은 뭔 일인가 싶어 자신도 일어나서 해안가를 바라보았는데 수많은 배들이 달량포 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형님...저..저거 뭔 놈의 배들이 저렇게 많을까요? 어림잡아도 60척은 넘어 보이는데.....”

금복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배 위에 돛의 모양을 보더니 ‘엇’하는 소리와 함께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덩달아 놀란 동생은 급하게 물었다.

“형님 또 뭘 보셧소?”

“저...저거 왜놈들 아녀? 왜놈들 배인데.....”


금복이 왜놈들 배라고 하자 동생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맞소 형님. 왜... 왜놈들이오!!”


두 사람은 머리카락이 주뼛하고 솟는 느낌이었다. 해안가에는 가끔 왜적들이 노략질하러 오곤 했는데 비록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매우 흉포한 놈들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조정에서 왜인들을 엄격하게 관리하여 약탈하는 횟수가 많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배들의 규모가 큰 것으로 보아 심상치가 않아 보였다.

“우선 관아에 알려야겠네. 자네는 마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대피하라 이르게.”

두 사람은 급히 하던 일을 뒤로한 채 한 사람은 마을로 향하고 한 사람은 근처 관아를 향해 뛰어갔다.


한편 마을에서는 이런 일을 까마득히 모른 채 사람들은 태평하기만 했다. 이때 마을 어귀에 어슬렁거리면서 뭔가 못마땅한지 표정을 잔뜩 찌푸린 군관 하나가 투덜거리며 걸어왔다.

“아니 왜 하고많은 지역 중에 여기에 발령이 난 거야. 정말 열 받는군. 뇌물을 바치지 않아서 그런 게 분명해....”


그는 입으로 연신 중얼거리며 분풀이하더니 갑자기 배가 고팠는지 근처 주막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평상 위에 대충 걸터앉아 국밥을 한 그릇 시킨 뒤 막 한 숟갈 입에 넣으려는데, 저 멀리서 왜놈들이 쳐들어왔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깜짝 놀라 숟가락을 다시 내려놓고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보니 사람들이 동요하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왜놈들이 쳐들어왔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누군가 찾고 있는데 저 멀리 마을 입구에서 한 사내가 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그는 보이는 사람들마다 도망가라고 하면서 해안가에 왜구가 나타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군관은 급히 밖으로 나가 사내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왜놈이라니... 내게 보고해라.”


그는 군관을 보더니 잘됐다 싶었는지 자신이 해안가에서 보던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리.. 소인은 해안가에서 어선을 고치고 있었는데 우연히 왜선 60여 척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알리러 왔습니다.”

군관은 깜짝 놀라 자기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네놈의 말이 거짓이 아니렸다! 진정 60여 척이 맞느냐?”

“쇤네가 목숨 줄이 열 개가 아닐 진데 어찌 그런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저와 함께 일하던 금복이라는 형님은 지금 관아로 알리러 갔습니다. 그 형님도 저와 같이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사내가 다급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보니 결코 거짓이 아닌 듯하였다. 사태가 긴박하다고 판단한 군관은 그 길로 관아로 뛰어갔다.


한편 금복이라는 사내는 군관보다 앞서 관아에 도착하여 이 긴박한 사실을 알렸다. 마을의 현감은 즉시 부하를 시켜 전라도 지역 내에 모든 현감과 군부에 이를 알리도록 지시하고 전투하기 위해 준비했다.


금복은 자기 가족 등이 걱정되어 보고를 마치자마자 다시 집을 향해 뛰어갔는데 마침 달려오던 군관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나 군관은 본체만체하더니 급히 관부로 뛰어 들어갔다. 금복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을에도 소식이 알려졌음을 알아차렸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이리저리 오가며 한바탕 아수라장이 되었는데, 한쪽에서는 짐을 챙기느라 바쁜 상인들부터 시작해서 어머니를 등에 업고 어쩔 줄 모르는 사내와,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아 헤매는 부모들부터, 땅에 주저앉아 울부짖는 아이들까지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워낙 예상치 못한 상황인지라 근처에 있는 소수의 관병만으론 도저히 통제가 안 돼 보였다.


이때 저만치서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있던 한 중년 사내가 얼굴에 근심이 가득 한 채로 금복이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자네 금복이로군.”

말을 건넨 중년의 선비는 이 마을에서 자그맣게 서당을 차리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던 훈장 최임(崔恁)이라는 사람이었다.


금복 또한 훈장을 알아보고 말했다.

“아니 훈장님, 가족들을 피난시키지 않고 왜 여기까지 나와 계십니까?”

“자네 혹시 내 아들 양위(陽偉)를 못 봤는가?””

“저도... 해안가에서 일하다가 급하게 관아에 갔다 오는지라 아드님은 못 봤습니다.”


최임은 안색이 금세 창백해졌다. 그는 온 동네를 다 돌아다녔지만, 자신의 아이가 보이지 않아 계속 찾으러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중간에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아들의 행방을 물었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금복이라는 사내는 알까 싶어 한 가닥 희망을 걸고 물어본 것이었는데, 이 자마저도 모른다고 하니 순간 눈앞이 캄캄할 지경이었다. 혈육이라고는 아들 하나인데 워낙 늦게 얻은 아들이라 금쪽보다도 귀하게 키워왔었다. 그런데 이 난리 통에 아들이 없어졌으니 그 불안감은 말도 못 했다.


금복은 훈장의 얼굴이 창백한 것을 보고는 말했다.

“조금 진정하시고 아이가 자주 갈만한 곳은 생각해보세요.”

금복의 말을 들은 훈장은 문득 눈이 커지더니 다시 말했다.

“그래.. 아까 말이야. 자네 해안가에서 왔다고 했지? 내 아이가 그곳에 있을 거야.”

금복은 소스라치게 놀라 만류했다.

“훈장님! 지금 그쪽으로 가면 그냥 죽는 겁니다. 다른 데를 찾아보세요.”


그러나 최임은 말리는 금복의 손까지 뿌리치며 해안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적유화 劍跡儒話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7-5] 산봉우리 붉은 해는 자취를 감추고... 22.06.16 17 0 10쪽
29 [7-4] 산봉우리 붉은 해는 자취를 감추고... 22.06.16 20 0 10쪽
28 [7-3] 산봉우리 붉은 해는 자취를 감추고... 22.06.06 24 0 16쪽
27 [7-2] 산봉우리 붉은 해는 자취를 감추고... +1 22.06.02 28 2 17쪽
26 [7-1] 산봉우리 붉은 해는 자취를 감추고... 22.06.01 22 0 15쪽
25 [6-10]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31 25 0 16쪽
24 [6-9]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30 22 0 16쪽
23 [6-8]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9 23 1 17쪽
22 [6-7]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8 26 0 15쪽
21 [6-6]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7 25 1 13쪽
20 [6-5]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7 22 1 14쪽
19 [6-4]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6 25 1 14쪽
18 [6-3]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6 26 0 15쪽
17 [6-2]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5 30 3 12쪽
16 [6-1]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4 30 0 14쪽
15 [5-6]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4 30 0 9쪽
14 [5-5]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3 92 0 9쪽
13 [5-4]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3 48 0 12쪽
12 [5-3]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 22.05.22 34 1 12쪽
11 [5-2]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2 28 2 12쪽
10 [5-1]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1 32 2 12쪽
9 [4-3] 봄꽃의 붉은 기운 채 가시지 않았건만... 22.05.21 31 0 12쪽
» [4-2] 봄꽃의 붉은 기운 채 가시지 않았건만... 22.05.20 38 1 12쪽
7 [4-1] 봄꽃의 붉은 기운 채 가시지 않았건만... 22.05.20 33 2 10쪽
6 [3-2] 달빛 아래 한잔 술에 벗을 사귀다. 22.05.19 45 3 10쪽
5 [3-1] 달빛 아래 한잔 술에 벗을 사귀다. 22.05.19 60 7 10쪽
4 [2-2] [사나운 이리떼들 모습을 감추네] 22.05.18 82 18 10쪽
3 [2-1] [사나운 이리떼들 모습을 감추네] +1 22.05.18 90 19 12쪽
2 [1-2] 풍악산 봉우리에 유가(儒家)의 도(道) 전하니....... +1 22.05.18 132 33 10쪽
1 [1-1] 풍악산 봉우리에 유가(儒家)의 도(道) 전하니....... +2 22.05.18 244 45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