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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 님의 서재입니다.

검적유화 劍跡儒話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송선
작품등록일 :
2022.05.18 01:11
최근연재일 :
2022.06.16 22:0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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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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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글자수 :
170,238

작성
22.05.1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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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2] [사나운 이리떼들 모습을 감추네]

DUMMY

한편 독사에 물린척하며 다 죽어가던 그 중년의 사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벌떡 일어나 껄껄 웃으며 말했다.

“지금쯤이면 그 불쌍한 선비가 초주검이 되어있겠군. 재밌는 구경을 나만 놓칠 수야 없지.”


그는 자신 스스로 오랜만에 한 건 올린 것이 자랑스러운지 흥얼거리며 본거지를 향해 뛰어갔다. 그가 초가집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어쩐 일인지 떠드는 소리도 없고 고요하기만 했다. 뭔가 이상하여 가까이 가봤으나 초가집 문만 덩그러니 열려있고, 사람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으니 어리둥절하였다.


“아니 이런 제미럴 기껏 먹잇감 물어왔더니 모두 어디로 내뺀 거야.”

그가 한창 투덜거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으악’하는 비명이 들려왔다. 중년의 사내는 놀랬는지 순간 움찔하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왠지 불길한 생각에 잔뜩 허리를 굽혀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기고 조용히 귀를 기울이며 잔뜩 경계했다. 이윽고 사람들 간의 몇 차례 고성이 오가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기합 소리가 들리며 서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년의 사내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신이 형님으로 모시는 도적 우두머리의 목소리가 들리자,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이 무렵 다시 한번 ‘악’하는 비명이 들리자 중년의 사내는 깜짝 놀라 급히 풀숲에 몸을 숨기고 조용히 움직였다.


잠시 후 칼을 겨누고 있던 검은 배자 사내의 호통 소리가 이어졌다.

“네 놈이 이 근방에 소문이 자자한 도적무리 들이로구나”

귀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피를 소맷자락으로 애써 억누르던 도적 두목은 이를 갈며 말했다.

“오늘 재수가 없어 이런 꼴을 당하는구나.”

검은 배자의 사내는 실소를 내뱉으며 말했다.

“아무렴, 재수가 없어도 보통 없는 게 아니지. 수많은 사람 중 하필 나와 마주쳤으니...”

이 모습을 풀숲에서 지켜보던 중년의 사내는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정말 재수 옴 붙었구나. 그나저나 나라도 몸을 빼야겠다. 괜히 잡혔다간 목숨이 열 개라도 남아나질 않겠어.’


그는 조심스레 등을 돌려 쪼그려 앉은 채로 급히 풀숲 밖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그는 도망가려는 데만 신경을 쓰는 통에 미처 뒤쪽에 있던 자줏빛 옷의 선비는 못 본 모양이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풀들이 휘청 이며 움직이는 것을 본 자줏빛 옷의 선비는 크게 소리쳤다.

“게 누구냐!”


말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허공에서 비단 찢어지는 소리처럼 파공음이 들리더니 자그마한 단도가 풀숲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동시에 ‘으헉’ 하는 소리와 함께 중년의 사내는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대경실색하여 이마에 두른 천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날아온 단도는 사내의 몸에 박히지는 않았지만, 콧잔등 바로 앞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쳐갔다. 만일 자신이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디뎠다면 단도는 어김없이 관자놀이에 박혔을 것이니 생각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판이었다.


자줏빛 옷의 선비는 성큼성큼 걸어가 넘어진 사내를 밖으로 끌어내 무릎을 꿇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8명의 도적 무리가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되자 그 꼬락서니가 매우 우스워 보였다.

옆에서 숨죽이며 지켜보던 청년은 옷을 털고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두 분 선비께서 도움을 주셔서 제가 구사일생((九死一生) 하였습니다. 참으로 이 고마움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사의 문턱을 오락가락하던 터라 자신을 구해준 두 사람이 어찌나 고마운지 세 번씩이나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러자 도리어 머쓱해진 검은 배자의 사내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하하 그만 됐소이다. 누군들 위급에 처한 사람을 보고 그냥 가겠습니까?”

청년은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며 동의했다.

“맞습니다. 사람이라면 다른 이의 위급함을 외면할 수 없지요. 한데 저자들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듯하면서 실은 함정에 빠트렸으니 참으로 흉악한 놈들입니다.”


청년을 속였던 중년의 사내는 겁을 집어먹으며 연거푸 절을 했다.

“나리.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두 번 다시 도적질을 안 하겠습니다.”

검은 배자의 사내는 크게 호통을 치며 말했다.

“네 놈은 참으로 간악하구나. 너에게 호의를 베푼 자에게 도리어 해를 주려 하다니..어찌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이냐?”

중년의 사내는 행여나 비위를 거스를까 싶어 전전긍긍하며 말했다.

“먹...먹고 살기가 힘들어 어쩔 수 없이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진짜 사람을 죽이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저 겁...겁만 줄뿐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자줏빛 옷의 서생이 호통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사람에게 겁을 주어 심적으로 괴롭게 만드는 것도 죽이는 것만큼이나 큰 죄인 것이다. 네 놈들이 이 산에서 분명 많은 사람을 이런 식으로 괴롭혔을 터이니 어찌 간악하지 않겠느냐?”


“나..나리. 우리가 그리 간악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산적들은 몰라도 저희 두목님은 가끔 없는 자들에게 적선을 베풀기도 하였습니다. 그 옛날 영웅호걸이었던 홍길동처럼 말이지요.”


“닥쳐라! 홍길동은 그냥 도적이다. 어찌 그런 자가 영웅이란 말이냐? 결국에는 엄귀손과 함께 의금부로 붙잡혀와 처형당한 사실을 정녕 모른단 말이냐? 네 놈도 귀가 잘려 나가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중년은 사내는 몸을 떨며 급히 고개를 숙였다.

“소인이 무지하여 말실수하였습니다. 그자는 그냥 도적입니다. 도적 입지요.”

검은 조끼의 사내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 네 입으로 영웅이라고 하더니, 상황이 불리해지자 금세 말을 바꾸는군. 참으로 배알도 없는 놈이구나.”

검은 배자를 입은 사내는 품속에서 뭔가를 뒤적이더니 연두색의 비단 주머니를 하나 꺼내 귀가 잘려 나간 도적 두목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그것은 피를 멎게 하는 금창약이니 바르면 금세 아물 것이다.”

“고..고맙소이다.”


도적 두목은 멋쩍게 말하면서 얼른 주머니를 주워 다가 귀에 바르기 시작했다. 검은 배자의 사내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네 놈의 목을 베지 않은 것은 크게 자비를 베푼 것이다. 훗날 다시 한번 마음속에 도적질할 생각이 들면 꼭 귀를 만져 보거라. 두 번 다시는 도적질할 생각이 안 들 것이다.”


“그..그리하겠습니다.”


자줏빛의 옷을 입은 서생은 소맷자락에서 가죽 주머니를 하나 꺼내 던지며 말했다.

“그 안에는 값나가는 구슬과 가락지 등이 들어있으니 그 정도면 며칠 끼니는 걱정 없을 것이다. 가지고 돌아가라. 하지만 이후로 너희가 도적질한다는 소문이 또 들릴 시에는 그때는 귀 한 짝이 아니라 머리가 잘려 나갈 것이다.”


도적들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이고 나리! 감사합니다...앞으로 도적질하지 않겠습니다.”

도적들은 두 사내의 마음이 바뀔까 싶어 허겁지겁 다친 동료들을 부축해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도적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청년은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말했다.

“두 분께서 소생을 구해주시지 않았으면 오늘 비명횡사할 뻔했습니다. 제가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혹 존함(尊銜)을 여쭤도 될는지요?”

자줏빛 옷의 서생이 말을 받았다.

“저는 송(宋)가이고 이름은 익제(益濟), 호는 무망(无妄)입니다. 그리고 옆에 검을 잘 쓰는 이 친구는 소싯적부터 알고 지낸 아우인데, 성은 심(沈)가이고 이름은 위수(偉秀), 호는 의검(義劍)입니다.”


심위수는 웃으며 청년에게 말을 건넸다.

“심위수라고 합니다. 선비의 존함은 어찌 되십니까?”


“예. 저의 성은 이(李)가이고 이름은 외자로 이(珥). 호는 율곡(栗谷)입니다.”


송익제는 율곡을 보면서 그의 말투나 행동이 기품이 있고 단정해 보여 마음에 들어 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어쩌면 인연이 아니겠소? 곧 날이 저물 테니 함께 이야기나 하면서 마을로 갑시다.”

심위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그게 좋겠습니다. 선비께서는 묵을 곳이 있으십니까?”


율곡이 말했다.

“아랫마을에 알아봐 둔 주막이 한군데 있습니다.”


“아! 마침 잘 됐습니다. 우리도 주막을 알아봐야 했는데 같은 곳에서 묵으면 되겠군요.”

심위수의 의견에 송익제 또한 동의하며 말했다.

“그렇게 하면 좋겠군. 내가 오늘 한턱내리다. 낮에 마을 사람들이 말하길 저녁나절에 늙은 소 한 마리를 잡는다고 하였으니 오늘은 소고기에 탁주나 한잔 마시며 이야기하면 좋겠군요. 선비께선 어떠시오?”


율곡은 송익제와 심위수가 오늘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체면을 따진다거나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 것을 보고 매우 소탈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들이 동행을 하자고 하니 한편으로는 든든하기도 해서 마다할 리가 없었다.

“두 분께서 이렇게 호의를 베푸시는데 소생이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함께 내려간다면 저야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세 사람은 산길을 내려가면서 낮에 봤던 풍경이야기와 아직 못가 본 여러 명소 등을 이야기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해가 어느새 서산마루에 걸려 서서히 지기 시작하자 누런 노을빛이 하늘에 가득 드리워졌다. 다행히 지름길로 내려가서인지 해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마을 어귀에 당도할 수 있었다. 율곡은 자신이 미리 알아봐 둔 주막으로 길을 안내하였다.


주막은 마을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세 사람은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평상 위에 걸터앉았다. 날씨도 좋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담소를 나누면 더욱 좋으리란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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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7-1] 산봉우리 붉은 해는 자취를 감추고... 22.06.01 22 0 15쪽
25 [6-10]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31 25 0 16쪽
24 [6-9]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30 21 0 16쪽
23 [6-8]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9 23 1 17쪽
22 [6-7]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8 26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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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6-4]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6 25 1 14쪽
18 [6-3]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6 26 0 15쪽
17 [6-2]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5 30 3 12쪽
16 [6-1]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4 30 0 14쪽
15 [5-6]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4 30 0 9쪽
14 [5-5]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3 92 0 9쪽
13 [5-4]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3 48 0 12쪽
12 [5-3]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 22.05.22 34 1 12쪽
11 [5-2]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2 28 2 12쪽
10 [5-1]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1 32 2 12쪽
9 [4-3] 봄꽃의 붉은 기운 채 가시지 않았건만... 22.05.21 31 0 12쪽
8 [4-2] 봄꽃의 붉은 기운 채 가시지 않았건만... 22.05.20 37 1 12쪽
7 [4-1] 봄꽃의 붉은 기운 채 가시지 않았건만... 22.05.20 32 2 10쪽
6 [3-2] 달빛 아래 한잔 술에 벗을 사귀다. 22.05.19 45 3 10쪽
5 [3-1] 달빛 아래 한잔 술에 벗을 사귀다. 22.05.19 60 7 10쪽
» [2-2] [사나운 이리떼들 모습을 감추네] 22.05.18 82 18 10쪽
3 [2-1] [사나운 이리떼들 모습을 감추네] +1 22.05.18 90 19 12쪽
2 [1-2] 풍악산 봉우리에 유가(儒家)의 도(道) 전하니....... +1 22.05.18 131 33 10쪽
1 [1-1] 풍악산 봉우리에 유가(儒家)의 도(道) 전하니....... +2 22.05.18 244 4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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