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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 님의 서재입니다.

검적유화 劍跡儒話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송선
작품등록일 :
2022.05.18 01:11
최근연재일 :
2022.06.16 22:0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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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0
추천수 :
142
글자수 :
170,238

작성
22.05.18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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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2] 풍악산 봉우리에 유가(儒家)의 도(道) 전하니.......

DUMMY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날아 위아래가 같으니 鳶飛魚躍上下同


이것은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닐세. 這般非色亦非空


무심히 한 번 웃고 내 신세를 둘러보니 等閑一笑看身世


석양 지는 숲속에 홀로 서 있네. 獨立斜陽萬木中


노승은 크게 흡족해하며 부채를 소매 속에 집어넣고는 다시 암자에 들어가 좌선에 들어섰다. 청년은 노승이 명상에 잠기자 더는 말을 걸지 않고 산 아래로 발길을 돌렸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문득 그 노승의 정체가 궁금하여 다시 올라가 물어보려 하였으나 이내 생각하길.

‘날도 서서히 저무는데 그곳까지 다시 올라갈 엄두가 안 나는군. 나중에 다시 와서 물어봐야겠다’


해가 다소 짧아진 건지 산에 얼마 머물지 않은 것 같은데 해는 뉘엿뉘엿 서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부지런히 걷지 않으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마을로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걸음걸이에 속도를 올렸다. 부지런히 몇 마장쯤 갔을까.


바위틈에 사람이 누워있는데 산 건지 죽은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미동조차 없었다. 불안한 마음이 든 청년은 급히 달려가 그를 살펴보았는데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얼굴에는 절반가량 덥수룩한 수염이 덮여 있었고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패 있는 것으로 보아 나이가 중년이 넘어 보이는 남자였다.


청년은 그를 흔들어 깨웠다.

“이보시오. 정신 차리시오. 내 말이 들리오?”

사내의 몸을 몇 번이나 흔들며 재차 말을 걸자 그가 천천히 눈을 뜨며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나 좀 살려주시오.”

청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대체 어찌 된 거요?”


중년의 남자는 말을 하는 것도 다소 버거운지 조금 뜸을 들였다.

“나는 이 근방에 사는 약초꾼이올시다. 한데 오늘 일진이 사나운지 그만 독사에 물린 것 같소.”

청년은 남자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집이 어디요? 내가 업고 산 아래로 내려가리다.”

중년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말씀은 고마우나 산 아래로 내려가기도 전에 독이 퍼져 죽게 될 거요.”

청년은 다급해졌다.

“하면 어찌하면 좋겠소. 해독할 수 있는 풀 모양이라도 알려주면 내가 캐오리다.”


“이 근방에 나와 함께 온 동료 약초꾼들이 있는데 아마도 나를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오.”

남자는 말을 하기가 힘든지 크게 숨을 몇 번 들이키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서 서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임시로 지어놓은 초가집이 있는데 종종 동료들이 그곳에 모이니 한번 다녀와 주시면 참으로 고맙겠소.”


청년은 다행이다 싶어 얼른 그러겠노라고 말하면서 남자가 알려준 방향대로 뛰어갔다. 비탈길이 많아 가는 길이 편하지는 않았으나 얼마 가지 않아 사내가 말한 대로 초가집 한 채를 발견했다. 다소 외진 곳에 지어졌는지라 신경 쓰지 않았으면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청년은 중년의 사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초가집 문 앞으로 다가가 소리쳤다.


“안에 사람이 계시오? 당신의 동료가 다 죽어가고 있소. 안에 아무도 없소?”

몇 번이나 불러도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자 청년은 난감해하며 생각했다.

‘집안에 약초꾼들이 남겨둔 상비약이 있을지도 모르니 한번 살펴봐야겠다. ’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니, 예가 아닌 줄 알지만, 부득이 들어가겠소.”


안에 사람이 없을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이렇게 말이라도 하고 들어가야 마음이 편했다. 스스로 유가의 공부를 하고 있으면서도 대낮에 다른 이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뒤진다는 것이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으나, 사람 목숨을 위한 일이기에 이 정도는 융통성 있게 해도 된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조심스레 문을 밀었다. 곧이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스르르 열렸다.


“다행히 문을 잠그지 않았구나.”

그러나 이내 찝찝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문을 잠그지 않았다면 필경 중요한 물건이 없을 터인데 어쩌면 약이 없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코를 가리고 약이 있을 만한 곳을 뒤적거렸다. 그러나 들짐승 가죽 몇 가지와 말라버린 쑥, 그리고 칡뿌리 한 덩이가 전부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실망감보다도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숨이 넘어가는 사람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자 초조해졌기 때문이었다. 초가집에 더 머물러 있어 봐야 소용없음을 알고 일단 중년의 사내에게로 돌아가 업고서라도 산에서 내려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행여나 가는 도중에라도 동료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청년은 결심하고 문득 문 쪽으로 몸을 돌리려는데 순간 차가운 무언가가 목덜미에 와닿자 본능적으로 몸서리가 쳐져 몸이 굳어버렸다. 정신을 가다듬고 진정하려고 애를 썼다. 가만히 주의를 기울여 보니 등 뒤에서 사람의 숨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자신의 목 옆에 있는 차가운 물건은 다름 아닌 서슬퍼런 칼날이 아닌가. 청년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누...누구시오?”

청년이 묻자 뒤에 있던 사람이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굵은 음성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어찌 남의 거처에 들어와 물건을 뒤지는 것이냐?”

청년은 크게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남의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고, 외밭에서는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참으로 오해받을 짓을 하였구려.”

청년의 말을 들은 남자는 크게 비웃었다.

“허허, 세상에 남의 집에 버젓이 들어가 물건을 뒤지는 것은 도둑질인데 어찌 오해받을 짓이라 하는 게냐? 정신 나간 놈일세.”


청년은 사내의 비웃음에도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곳 초가집의 집주인 되시오?”


“네 놈이 주인이 아닌 건 확실하니 내가 주인일 테지.....껄껄”


사내가 웃자 뒤에서도 덩달아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청년은 등을 보이는 상태라 고개를 돌려 이들을 볼 수는 없었으나 대충 웃음소리로 감을 잡아보니 여섯 명이나 일곱 명쯤 있는 것 같았다. 청년은 이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참으로 다행이오. 사실 나는 도둑질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약초를 캐던 당신 동료가 독사에 물려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온 것이오. 다만 집안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상황이 워낙 급해서 혹여 약초라도 있을까 싶어 이렇게 들어오게 된 것이오. 그러니 목덜미에 칼 좀 치워주시오. ”


청년의 말을 듣자 뒤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뭔가 조용히 말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굵은 목소리의 사내는 칼을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린 피차 오해 한 것이군.”


청년은 목덜미에 칼이 사라지자 급히 등을 돌려 사내들을 쳐다보았다. 맨 앞에 덩치가 큰 사내는 키도 제법 큰데 살집이 있어 보였고, 수염도 덥수룩하게 나 있었다. 머리에는 하얀색의 띠를 둘렀고 옷은 사슴 가죽으로 만든 털 배자를 입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같은 복장이었는데 하나같이 약초꾼 같은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청년은 이 사람들이 아직도 반신반의 하는 듯 보여 자신이 풍악산에 올라온 일부터 시작해 어떻게 쓰러진 동료를 발견하게 되고, 그 동료의 생김새가 어떠하였는지 간략하게나마 설명하였다.

그러자 사내들은 크게 놀란 표정 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가만히 서 있기만할 뿐 찾으러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청년은 더욱 애가 타서 말했다.


“보시오. 일각이 여삼추외다. 어서 가지 않으면 동료가 죽는단 말이오.”


그러나 사내들은 능청스럽게 웃어젖히더니 청년의 모습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이내 칼을 든 덩치 큰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대가 좋은 마음으로 이곳까지 왔으니 참으로 장한일이오만 세상일이 선(善)을 베풀었다고 해서 그 결과가 좋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오. ”

청년은 어리둥절하였다.

“제가 무엇을 바라고 온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저울질하는 소인배로 보이시오?”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 길에 쓰러진 자는 내 아우인데 참으로 고약한 취미가 있소. 꼭 해 질 녘에 쓰러져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외친단 말이오.”


청년은 사내의 말을 믿지 않았다.

“세상천지에 그런 해괴한 취미를 가진 자가 어디 있습니까? 평소에 아우님이 거짓말을 많이 하신 모양인데 이번에는 진짜 독사에 물려서 죽어가고 있소이다.”


그 말을 들은 사내들은 일제히 박장대소를 하였다. 이윽고 덩치 큰 사내가 말했다.

“내 아우의 취미는 고약한 데가 있지만 나름 기특한 면도 있지. 가끔 세상 물정 모르는 선비를 낚아다가 이렇게 우리 앞에 데려다 놓기도 하니 말이오. ”


청년의 안색은 단박에 굳어지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자들이 어째서 나를 우롱하는 것인가? 설마 모두 같은 도적떼들인가?’


애석하게도 청년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이들은 산에서 때로는 사냥꾼처럼 행동하고 때로는 약초꾼처럼 위장하며 사람을 속여 강도질하는 무뢰배 들이였다. 세상 경험이 적은 젊은 청년은 쓰러진 자의 상처나 얼굴에 피부색 등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그들의 얕은 술수에 걸려든 것이었다. 청년은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생각했다.


‘이들이 한통속이 틀림없다. 일이 참으로 재미 적게 돌아가는구나. 여기를 어떻게 벗어난단 말인가?’


청년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당최 이들을 따돌릴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정말 이런 상황에서는 공자나 맹자의 말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경전 속의 글들도 모두 소용없는 것이었다. 정말 이 순간만큼은 항우와 같은 큰 힘이 생겨나 일순간에 이들을 제압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가의 선비로서 위기의 순간에 공자나 맹자가 아닌 항우를 떠올릴 줄은 몰랐는데,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자신의 신세가 한심스러워 허탈하게 실소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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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7-1] 산봉우리 붉은 해는 자취를 감추고... 22.06.01 22 0 15쪽
25 [6-10]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31 25 0 16쪽
24 [6-9]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30 21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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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6-3]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6 26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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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6-1]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4 30 0 14쪽
15 [5-6]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4 30 0 9쪽
14 [5-5]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3 92 0 9쪽
13 [5-4]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3 48 0 12쪽
12 [5-3]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 22.05.22 34 1 12쪽
11 [5-2]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2 28 2 12쪽
10 [5-1]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1 32 2 12쪽
9 [4-3] 봄꽃의 붉은 기운 채 가시지 않았건만... 22.05.21 31 0 12쪽
8 [4-2] 봄꽃의 붉은 기운 채 가시지 않았건만... 22.05.20 37 1 12쪽
7 [4-1] 봄꽃의 붉은 기운 채 가시지 않았건만... 22.05.20 32 2 10쪽
6 [3-2] 달빛 아래 한잔 술에 벗을 사귀다. 22.05.19 45 3 10쪽
5 [3-1] 달빛 아래 한잔 술에 벗을 사귀다. 22.05.19 60 7 10쪽
4 [2-2] [사나운 이리떼들 모습을 감추네] 22.05.18 82 18 10쪽
3 [2-1] [사나운 이리떼들 모습을 감추네] +1 22.05.18 90 19 12쪽
» [1-2] 풍악산 봉우리에 유가(儒家)의 도(道) 전하니....... +1 22.05.18 132 33 10쪽
1 [1-1] 풍악산 봉우리에 유가(儒家)의 도(道) 전하니....... +2 22.05.18 244 4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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