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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 님의 서재입니다.

검적유화 劍跡儒話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송선
작품등록일 :
2022.05.18 01:11
최근연재일 :
2022.06.16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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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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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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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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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0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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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1] 봄꽃의 붉은 기운 채 가시지 않았건만...

DUMMY

제4회 봄꽃의 붉은 기운 채 가시지 않았건만...


* * *

율곡과 송익제는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하다가 동이 틀 무렵 닭 우는 소리를 듣고는 자신들이 밤을 새웠다는 것을 알았다. 송익제는 따르던 술을 멈추고 율곡에게 말했다.

“아우. 우리가 정신없이 이야기하느라 날이 밝는 줄도 몰랐구먼. 이제 상을 물리고 그만 들어가 쉬게.”

율곡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보다 형님께서 술을 더 드셨으니 고단하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괜찮으니 형님께서는 눈을 좀 붙이십시오.”

“나도 괜찮네. 새벽공기가 시원하여 잠도 술기운도 모두 달아났네. 우리 위수 아우가 일어날 때까지 이야기나 더하지.”


율곡과 송익제는 밤새 유학에 관련된 이야기는 물론이고 과거와 현재 인물들을 비교하면서 서로 간의 지식을 유감없이 교류하였다. 율곡은 송익제의 생각이 깊고 풍부하며 비단 유학만이 아니라 수많은 다른 학문까지도 두루 꿰고 있자 그 넓은 식견에 감탄하였고, 송익제 또한 율곡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현재를 꿰뚫어 사람을 평가하는 안목이 실로 날카로워 내심 탄복을 하고 있었다.


비록 두 사람은 생전 처음 만났지만 서로 간의 의견을 교환하는 와중에 마치 십년지기 친구를 만나서 대화를 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일로 인하여 율곡은 송익제를 알아보았고 송익제는 율곡을 알아보았으니, 두 사람이 말은 안 해도 오랫동안 좋은 벗으로 알고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백년도 안 되는 짧은 인생 속에서 이해관계를 떠나 서로 간의 말과 뜻이 맞아떨어지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어른이 되어서는 모든 것이 이해관계를 따지는 거래의 연속이니 어릴 적 친구들과의 사이마저도 어색해지는 마당에 타인에게 이해득실을 떠나 순수하게 우애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두 사람은 대화가 진행될수록 이 만남이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잠을 자야 한다는 이유로 이야기의 맥을 끓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새 달이 모습을 감추고 동산에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율곡과 송익제가 이야기하는 동안 방 안에 있던 심위수는 어느새 밖으로 나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아니... 형님.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신 겁니까?”

송익제는 심위수가 방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도 못 들었는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우. 언제 일어났었는가? 어제 과음한듯하더니 머리는 괜찮은가?”

"충분히 숙면해서 거뜬합니다."

말을 마치고 문득 율곡과 눈을 마주쳤는데 어제의 일이 생각나서 다소 무안해진 심위수는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아우. 어제는 내가 다소 경솔하였어.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네.”

율곡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형님이 그리 말씀하시면 제가 더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심위수는 율곡의 표정을 보니 이미 자신의 이야기를 송익제를 통해 들은 듯하였다. 그는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두 사람이 밤새 즐겁게 대화하느라 기력이 많이 쇠했을 테니 이제 조반(早飯)을 들어 기력을 보충해야겠지요?”


심위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모를 불러 간단하게 음식을 준비하도록 시켰다. 이윽고 따뜻한 국과 떡 몇 가지를 심위수가 직접 들고나왔다.

율곡이 황망히 일어나 도우려 하자 심위수가 말했다.

“아우 앉아있게. 별로 무겁지도 않은데 뭘...”


세 사람은 그렇게 평상에서 간단히 조반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왔다. 주막 입구에서 세 사람은 서로 헤어지자니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송익제는 율곡에게 말했다.

“아우는 곧장 집으로 가야겠지?”

“예. 그렇지요.”


율곡 또한 이대로 헤어지는 것이 어쩐지 아쉬웠으나 그렇다고 계속 동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옆에 있던 심위수는 율곡이 집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말을 건넸다.

“아우. 강릉까지 가는 길에 요기 할 거리도 없지 않은가? 잠시만 기다리게 내가 말린 육포라도 얻어다 주겠네.”


율곡이 채 말릴 새도 없이 그는 큰 걸음으로 금세 주막 안으로 들어갔다. 심위수 또한 막상 이렇게 헤어지려니 아쉬운 마음에 율곡에게 간식거리라도 주어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여서 한 행동이었다.

송익제는 율곡을 보며 말했다.

“아우. 이렇게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헤어지려니까 조금 섭섭하군.”

율곡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가 산 넘고 물 건너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사는 곳만 안다면 언제든 만날 수 있지요.”

“말이야 그렇지만 실상 살다 보면 그게 어디 쉽겠는가? 우리가 이렇게 헤어지면 한참 지나서야 만나게 되겠지.”


송익제는 그간 많은 사람을 만나오면서 늘 상 시간 되면 봐야지 하면서도 먼 거리를 가려면 준비할 것도 많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는지라 일 년에 아는 지인 한두 사람 만나는 것도 큰맘 먹고 해야 할 일이었다. 서로 떨어져 있는 곳이 멀다 보니 당시에는 서신을 주고받는 일 외에 자주 찾아가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이러한 사정을 율곡이 어찌 모르겠느냐만은 송익제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현했다. 송익제는 품속에서 자그마한 물건을 하나 꺼내 들어 보였다.

“자... 이것을 받게”

율곡이 두 손으로 받아든 뒤 말했다.

“이것은 옥패가 아닙니까?”


“맞네! 일전에 내 형님이 나에게 옥패 한 쌍을 주신 적이 있는데 이것이 액운을 물리치는 효험이 있다더군. 그 중 하나는 의검아우를 주었고, 내 것은 자네에게 선물로 주려 하네. 가는 길에 또 안 좋은 일을 당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송익제는 율곡과 가는 방향이 달라 동행할 수가 없었다. 율곡이 강릉까지 혼자 가게 되니 다소 불안한 마음에 자신이 몸에 지니고 다니는 옥패를 선물로 줌으로써 마음에 위안을 얻고자 하였다.

율곡은 크게 감사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이 중요한 것을 저에게 주시면 형님은 어찌합니까?”

“나에게는 늘 의검 아우가 옆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그러니 사양하지 말고 가져가게. 혹여 미신이라 생각되어 꺼림직한가?”


유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꺼림직하게 여기거나 혐오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는데 혹시 율곡에게 이런 물건을 줌으로 해서 실례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재차 물어본 것이었다.

율곡은 즉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형님.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본래 이런 것을 크게 맹신하지는 않지만, 상대의 정성이 깃들어 있으니 그 자체로 귀한 것입니다. 대장부의 말 한마디도 무거울 진데 뜻이 깃든 물건은 더욱 소중하지요. 늘 몸에 지니고 있겠습니다.”


송익제는 다행스럽게 여기며 말했다.

“이다음에 아우가 벼슬을 해서 자신을 스스로 지키고 감당할 때가 되면 이 옥패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줘도 좋네.”

율곡은 조심스레 옥패를 품속에 갈무리한 뒤 말했다.

“그런데 형님께서는 사시는 곳이 어디입니까? 이 아우가 서신을 보내 종종 안부를 전하겠습니다.”

“현재 집은 충청도에 있지만 조만간 거처를 옮기게 될 듯하니, 내가 나중에 자네의 집으로 서신을 보내겠네.”

“예. 알겠습니다. 그럼 형님도 곧장 집으로 가시겠군요.”

“아닐세. 이번에 나는 곧바로 퇴계 선생을 뵈러 갈 생각이네.”


율곡은 크게 반색하며 말했다.

“저 또한 그분의 명성을 어릴 적부터 익히 들어왔는지라 평소에 존경하였습니다. 조만간 저도 뵈러 갈 생각입니다.”

송익제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아! 그런가? 그럼 잘됐군. 영남지방에 오면 꼭 나에게 기별하게나.”

“설마 형님은 영남지방으로 거처를 옮기려 하시는 겁니까?”

“그리될 듯싶네. 내 형님께서도 이번에 해남군으로 발령이 나셨는데 그곳에 연고자가 없어 아무래도 적적하다고 하시니, 내가 내려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어?”


율곡은 문득 이상하여 다시 물었다.


“그런데 형님. 해남군은 호남인데 어찌 집은 영남으로 가신다고 하는 것입니까?”

“사실 내 아내 고향이 진주인데 그곳에 계신 장인어른께서 내 아내에게 재산을 분배해 주신다며 집을 마련해 주셨네. 형님도 진주와 멀지 않은 해남에 계시고 퇴계 선생도 영남지방에 계시니 나로서는 잘된 일이지.”


율곡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군요. 지리적으로도 아주 좋습니다. 제가 영남에 가게 되면 꼭 진주에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때 심위수가 저만치서 달려오는데 한 손에는 커다란 자루가 들려있었다.

“아우. 내가 육포와 보리떡을 얻어왔으니 가지고 가게.”

율곡은 공손히 받아서 들며 말했다.

“형님 정말 고맙습니다.”

“가다가 허기지면 하나씩 꺼내 자시게.”


율곡은 다시 한번 허리 굽혀 인사를 한 후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하면 이 아우는 여기서 작별을 고할까 합니다. 나중에 강릉 오죽헌(烏竹軒)으로 서신을 보내 주십시오.”

“알았네. 아우도 부디 몸 조심히 잘 가시게. 우리도 이만 가야겠네.”

서로 간의 아쉬운 작별 인사가 끝난 후 심위수와 송익제는 서쪽을 향해 걸어갔다. 율곡은 두 사람의 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지켜본 뒤 자신도 강릉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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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7-1] 산봉우리 붉은 해는 자취를 감추고... 22.06.01 22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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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6-9]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30 22 0 16쪽
23 [6-8]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9 23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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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6-3]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6 26 0 15쪽
17 [6-2]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5 30 3 12쪽
16 [6-1] 대장부에게 어찌 두 마음이 있으랴. 22.05.24 30 0 14쪽
15 [5-6]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4 30 0 9쪽
14 [5-5]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3 92 0 9쪽
13 [5-4]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3 48 0 12쪽
12 [5-3]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 22.05.22 34 1 12쪽
11 [5-2]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2 28 2 12쪽
10 [5-1]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연자비(無緣慈悲) 있으리... 22.05.21 32 2 12쪽
9 [4-3] 봄꽃의 붉은 기운 채 가시지 않았건만... 22.05.21 31 0 12쪽
8 [4-2] 봄꽃의 붉은 기운 채 가시지 않았건만... 22.05.20 37 1 12쪽
» [4-1] 봄꽃의 붉은 기운 채 가시지 않았건만... 22.05.20 33 2 10쪽
6 [3-2] 달빛 아래 한잔 술에 벗을 사귀다. 22.05.19 45 3 10쪽
5 [3-1] 달빛 아래 한잔 술에 벗을 사귀다. 22.05.19 60 7 10쪽
4 [2-2] [사나운 이리떼들 모습을 감추네] 22.05.18 82 18 10쪽
3 [2-1] [사나운 이리떼들 모습을 감추네] +1 22.05.18 90 19 12쪽
2 [1-2] 풍악산 봉우리에 유가(儒家)의 도(道) 전하니....... +1 22.05.18 132 33 10쪽
1 [1-1] 풍악산 봉우리에 유가(儒家)의 도(道) 전하니....... +2 22.05.18 244 4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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