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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쏘 님의 서재입니다.

주사위를 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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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프레쏘
작품등록일 :
2015.12.17 22:01
최근연재일 :
2016.01.19 11:2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8,850
추천수 :
183
글자수 :
153,042

작성
15.12.31 11:54
조회
489
추천
6
글자
11쪽

17. 그 날 이후 (1)

DUMMY

"......"


온통 어두운 공간, 차혁은 홀로 서 있었다.


"차혁....오차혁......"


그 때,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앗 하는 사이에 불쑥 그의 코 앞으로 다가오는,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진 친구의 얼굴.


"이 씹새끼가.....너 때문에.....너 때문에 내가....."


원망이 가득 담긴 말을 체 끝내지도 못하고 고꾸라지는 박훈. 그 신체는 차혁에게 닿지도 못한 체 허무하게 부스러지고 만다.


"....."


말없이 친구였던 자의 가루를 온 몸에 맞으며 계속 서 있는 차혁.


짝, 짝, 짝.


그 뒤로 들려오는 박수소리. 정장을 잘 차려입은 금발의 청년 모습을 한 악마가 모습을 드러낸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긴 것이 아닙니다."


악마는 기묘하게 뒤틀린 웃음을 만면에 짓고 있었다. 차혁을 조롱하듯이. 갑자기 그가 있던 공간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으으....."


부스럭


다시 차혁이 눈을 떴을 때도 주변은 온통 어두웠다. 하지만, 그 때처럼 온 사방이 검은 공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렴풋하게 벽이 보였다. 차혁은 이불을 덮고 있었다. 그가 얻어서 살고 있는 방이었다.


".....하아."


그는 한숨을 푹 쉬며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때 이후, 악마의 게임에서 생환한 이후로 지겹게도 꾸는 악몽. 하지만 익숙해지는 일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씨발, 좆같네."


누구한테 하는 건지도 모를 욕지거리를 지껄이며, 차혁은 방의 불을 키고 냉장고로 향했다.


"읍......꿀꺽."


대충 물통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 차혁은 도로 그것을 냉장고 안에 처박았다. 냉장고 안에는 물과 술 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8평 남짓의, 한 사람 정도면 적당히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원룸. 악마에게 받은 보상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을 정도의 하찮은 방. 그리고 그 안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한 사람이 누워 잠들 수 있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온통 쓰레기과 잡동사니 천지. 마구 뒤엉킨 옷가지며 먹고 제대로 치우지도 않은 편의점 도시락 곽, 컵라면 용기, 빈 맥주 캔이며 담배 곽 같은 게 굴러다녔다. 그나마 바퀴벌레 같은 게 없다는 게 위안점일까.


"에이씨!"


시간을 확인한 차혁. 새벽 3시다. 도로 잠들려던 그였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악몽 때문에 잠이 싹 달아나고 말았다. 뒤척뒤척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다 결국 두 눈을 뜨고 반쯤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누가 그 때 가라고 했냐고 개자식아....."


수염을 밀기는 커녕 제대로 씻지도 않은 그는 잔뜩 떡진 머리를 벅벅 긁어가며 이제는 없는 이의 원망을 했다.


"씨발, 씨발.....병신 새끼, 좆병신새끼.....주라고 준 나도 병신이지만 그 새끼가 제일 병신이야. 씨발, 왜 꿈에서까지 나타나서 지랄이냐고!"


반복해서 친구의 욕을 하는 차혁. 그래도 잠은 오지 않고, 속 안에 담긴 괴로운 심정은 풀릴 줄은 몰랐다.


.....


오차혁, 김민철, 박훈, 최영수, 미래를 걱정하며 힘겨운 삶을 이어가던 네 사람. 그들이 악마와 목숨을 건 게임을 하고 살아돌아온지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새파란 20살이었던 그들은 이제 전역하고 복학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돌아오지 못했던 자를 제외하면 말이다.


허나 이미 어마어마한 돈, 아니 그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보상을 받아버린 그들에게 있어서 대학은 아무 의미 없었다.


"하.....씁."


악몽 때문에 한 밤 중에 일어나 잠을 설치다 겨우 다시 잠들었던 차혁이 가늘게 눈을 떴다. 벌써 해가 중천이었다.


꼬르륵~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리고, 배 안이 아렸다.


"아, 배 고파. 배 고파 뒤지겠다. 뒤져서 그 새끼 따라가게 생겼다."


부스럭부스럭 속옷차림으로 이부자리에서 빠져나오는 차혁. 대충 바닥에 널부러져있던 위아래도리를 챙겨 입은 뒤 바깥으로 향했다. 신체가 명하는대로, 뭐라도 위장에 먹을 걸 밀어넣기 위해서다.


그는 바깥으로 튀어나가 집 앞의 편의점에 들어갔다.


딸랑, 딸랑


"어서오세요."


알바생의 인사를 무시한 체 도시락을 모조리 싹 쓸고, 맥주며 소주며 라면이며 있는대로 카운터에 턱턱 가져다 두는 차혁. 알바생의 질렸다는 표정부터 시작해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아, 진짜.....저 사람 뭐야? 거진가?"


"아우 냄새. 좀 씻고 다니지....."


"야, 거지가 어떻게 씻고 다니겠냐. 이 추운 날 얼어죽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할 걸?"


"그런데 용케 저렇게 많이 사가지고 간다?"


"어....그러게. 뭐지? 설마 실은 엄청 부자라던가....."


"그럴 리가 없잖아. 어디 심부름이라도 하는 거 아냐?"


"킥, 그렇겠지?"


가지각색의 반응. 하나같이 부정적이라는 점은 똑같다.


'하, 진짜 거지새끼들이 무슨.....'


차혁은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거지같은 꼴에 방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악마가 준 보상. 검은 카드.


그들이 상대했던 몬스터의 재질처럼 검고 매끄러운 그것은 소유자의 마음대로 꺼냈다 없앴다 할 수 있었다. 어디에서나 돈을 뽑아낼 수도 있고, 신용카드나 체크카드처럼 사용이 가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그 카드의 한도는 무한이라는 점이다.


"5만 6천원입니다."


대체 어디서 저렇게 시꺼먼 카드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부모님에게 받은 것으로 판단한 알바생은 성의없는 멘트를 날렸다. 차혁은 아무 말 없이 카드를 건넸다.


결제가 끝나고 카드와 물건을 들고 문쪽으로 향하는 차혁. 이제 막 편의점에 들어가려던 사람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슬슬 자리를 피하고, 길을 비켰다. 차혁은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기분도 집에 들어오는 순간 사라졌다. 그들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국 친구를 희생해 얻은 돈이다.


우걱우걱


인상을 팍 찌푸린 체 전자레인지에 돌리지도 않은 차가운 도시락. 그 뚜껑을 아무렇게나 뜯어내고 게걸스럽게 내용물을 마구 먹어치웠다.


"끄억."


배가 부르자 만족한 차혁은 싱크대에 남은 잔해를 쑤셔박았다. 하두 그래서 그곳에는 엄청난 악취가 감돌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악취도, 더러움도.


'그 악몽만 제외하면 말이지.'


전역하고 난 뒤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 꿈이었다. 그나마 군대에 있을 때가 차라리 나았다. 더럽게 피곤해서 꿈 같은 걸 꿀 시간조차 없었거든.


"하....이럴거면 거기 말뚝박을 걸 그랬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아무리 힘든 곳이라도 익숙해지는 순간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박훈이 얼굴을 들이밀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자살이 답이네."


역시, 그럴 수 없다. 부탁받은 게 있으니까. 그나마 그가 할 수 있는 건 죽을 때까지 엉망으로 사는 것.


삐리리릭


"아.....뭐야. 갑자기. 귀찮게시리."


갑자기 벨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차혁은 쓰레기장인 바닥을 뒤져 휴대폰을 찾아냈다. 화면에 찍힌 번호와 이름은 그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의 것.


"앗....."


그는 풀린 몸과 정신을 바로잡은 뒤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세희야?"


박훈이 마지막에 죽어가면서 겨우 한 부탁의 대상 중 하나, 그의 여동생인 박세희다. 박훈이 살아있었을 적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그녀는 이제 꽃다운 스무 살이 되어있었다.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어?"


[아 그게.....걱정이 되어서 한 번 해봤어.]


자주 박훈에게 멧돼지니 고릴라니 침팬치 같은 흉악한 동물들로 비유되었던 그녀이지만, 성인이 되고나서는 쌓아두었던 포텐이 터졌는지 꽤 예쁜 얼굴과 적당히 잘 빠진 몸매,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자랑했다. 사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그리 못생기거나 하지도 않았지만.


"하하, 오빠는 걍 잘 살고 있다. 곧 있으면 복학인데 그 동안 좀 쉬고 있어야지. 이 때 아님 또 언제 놀겠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한 오빠 친구를 필사적으로 연기하는 차혁.


다른 이들도 두 모녀를 신경써서 이것저것 베풀어주고 있었지만, 차혁은 특별히 더 신경쓰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유달리 사이가 좋아진 박세희와 차혁. 마치 남매나 다름없는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막 또 술 마시고 방 어지르고 그런 거 아니지?]


"헉, 아니 안 그래. 이제 적당히 치우고는 산다고."


정곡이 찔린 차혁이 황급히 대답했다. 물론 순 거짓말이다.


[나중에 함 검사하러 울 엄마하고 쳐들어간다?]


"안 그래도 괜찮아!"


[그럼 인증샷 찍어서 보내주던가.]


"....."


[역시 가봐야겠다.]


"아니, 아니! 오지 않아도 괜찮아! 곧 치울게!"


[......곧?]


"앗....."


[어휴 정말 못 살아! 아무리 남자라고 해도 그렇지 방이 그게 뭐야!]


"미안....치울게."


[우리 오빠도 그러지는.....]


세희가 입을 다물었다.


"....."


[아, 미안해. 괜히 말했나봐.]


".....괜찮아."


박훈은 술을 진탕 마셨던 그 날 공원 화장실에 들렀다가 넘어져 머리를 부딪쳐 즉사한 걸로 되어있다. 아무런 증거도, 하다못해 시체조차 없어도 말이다. 이게 다 악마의 가공할만한 힘 때문이다.


"좀 있다가 인증샷 보낼게. 이만 끊자."


[앗, 차혁 오빠!]


뚝.


"하아....."


차혁은 씁쓸함을 느꼈다. 아무리 그 녀석 부탁대로 남은 가족을 돌봐주었지만 그의 빈 자리를 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정도 아수라장이면, 그리고 그가 가진 돈이라면 청소하는 사람을 부르는 게 정답이다.


그렇지만 차혁은 그러지 않았다. 지금까지 가난하게 살아온 탓에 인에 박혀버린 흙수저 근성 탓이요,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돈이 한 사람의 희생 끝에 얻어낸 것이기 때문이었으니까.


그런 것 치고는 벌써 방을 구하고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데 쓰고 있긴 하지만.


"어우, 귀찮아."


먼저 바닥의 맥주캔이나 도시락 뚜껑 같은 것들을 한 데 모아 편의점 봉투에 마구 쑤셔박았다. 그것만으로 조금 숨통이 틔였다.


"이제 남은 것들도 싹 치우고 닦고 씻고 해야겠구만. 으하암~ 근데 졸립다."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쩍 하품을 하는 차혁. 폐인 생활 끝에 늘어난 건 피곤함이요, 게으름이다.


"아 몰라, 내일 마저 하자 내일."


차혁은 언제 빤 건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곰팡내가 풀풀 나는 이부자리에 드러누웠다. 뭔가 잊어버린 것 같았지만 피곤한 그에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좋을 법한 일이었다.


"......"


이번에도 또 같은 꿈을 꿀 것이다. 제대로 잠을 잘 수 없겠지. 그렇게 확신하면서도 차혁은 결국 두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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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어느덧 중반이 지났다 15.12.23 576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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