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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현의 서재입니다

8클래스 흑마도사의 귀환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윤백현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4
최근연재일 :
2023.05.24 10:0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145
추천수 :
104
글자수 :
93,280

작성
23.05.23 10:00
조회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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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제16장

DUMMY

‘어쩐지 느낌이 쌔하더니....’

하인이 등장했을 때부터 크로닌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을 예감했다.

하인은 어째서 사냥개의 산책로로 별채 정원을 선택했을까 의심스러웠고.

그 의심은 불길함으로 변했으며.

그 불길함은 빠르게 스트레칭을 끝내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크로닌은 입술을 깨물고 슬쩍 어깨 뒤를 돌아보았다.

맑은 눈의 광견들이 허겁지겁 뒤를 쫓고 있었다.

녀석들의 스피드는 발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거리가 차즘 좁혀졌다.

크로닌이 체력훈련을 하지 않았다면.

10초도 안 돼서 송곳니에 사지를 물어 뜯겼을 것이다.

정원을 가로지르던 크로닌의 발걸음이 큰 길이 아니라 샛길로 빠졌다.

눈앞에 돌담이 나타났다.

돌담 너머에 미로 정원이 있었다.

길의 양쪽을 돌담이 막고 있어서 폭이 좁은 장소였다.

“라임! 라임!”

목걸이 형태로 있던 라임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녀석도 위기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자신을 사용해달라는 뜻일까.

녀석은 어느새 목걸이 형태를 풀고 슬라임 형태로 변해 크로닌의 어깨에 살포시 앉아 있었다.

“넌 내가 위험해 보이나?”

고개를 끄덕이는 라임.

크로닌은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탓!

크로닌이 지면을 박차며 점프를 뛰었다.

담이 제법 높아 정면으로 부딪칠 뻔했지만 거기서 재치를 발휘했다. 크로닌은 손으로 담의 제일 윗부분을 밀어내며 점프하는 높이를 한 단계 높였다.

발끝이 아슬아슬하게 돌담을 스쳐 지나갔다.

“라임~~~”

괜히 라임만 비명을 질러댔다.

착!

지상에 착지한 크로닌이 다시 달렸다.

하지만 머지않아 돌담으로 앞이 또 막혀버렸다. 하필이면 미로 정원의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이다.

크로닌은 정면에 있는 돌담을 등졌다.

길의 입구를 빤히 쳐다보았다.

두 마리의 맹견이 코를 킁킁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녀석들은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걷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크로닌을 바라보았다.

“크르르릉!”

묵직하면서도 위협적인 울음소리.

맹견들이 꼬리를 세우고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이제 전투는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크로닌의 얼굴에 드리운 표정은 공포라기보다는 흥미와 기대감에 더 가까웠다.

타다다닥!

한 마리 사냥개가 먼저 달려들었다.

녀석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발 근처에 접근해서 크로닌의 발목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크로닌은 발을 뒤로 빼서 발목을 지켰다.

턱!

허공을 씹은 사냥개의 턱 소리가 무시무시했다.

녀석은 크로닌의 허벅지며 팔뚝을 무자비하게 물어뜯으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크로닌의 회피 동작이 매번 한 박자 빨랐다.

크로닌은 마치 능수능란한 투우사처럼 사냥개의 공격을 흘리고 피해냈다.

위기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 암흑 마나 1서클을 완성하지 않았던가.

그동안 체력 훈련도 꽤 열심히 하지 않았던가.

빙의 전 다양한 실전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몸이 약골이긴 해도.

사냥개 두 마리에 벌벌 떨어야 상황은 아니었다.

애초에 미로의 정원을 찾은 것도 도망쳐 온 것이 아니었다.

하인 눈앞에서 테리아를 제압하면 그 소식이 말레브의 귀에 들어갈 까봐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약한 척하는 게 유리했으니까 말이다.

한참 혼자 공격하던 사냥개가 제 풀에 지쳤다.

녀석은 어느새 제 자리에 멈춰 섰다. 혀를 길게 내뺀 채 헥헥 거리기 바빴다.

나머지 한 마리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크로닌이 도망치지 못하게 입구를 막겠다는 심보 같았다.

‘20분도 제대로 못 걷던 몸뚱이가 이만하면 훌륭하게 발전했군. 실험은 이쯤해도 되겠어.’

크로닌은 속으로 중얼거리고 반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암흑 마나를 끌어올렸다가 이내 암흑 마나를 거두어들였다(1).

이제 엄연한 글로리 가문의 일원이 되지 않았던가.

양지의 사람이 되었으니.

흑마법보다 마법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가만 보자.’

크로닌이 최대한 빠르게 캐스팅할 수 있는 마법은 3가지였다.

라이트와 배리어, 매직 미사일.

하지만 상황 자체는 이번이 하피 때보다 오히려 좋지 않았다.

하피 때는 기사들이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었다.

유도 기능이 있는 매직 미사일은 분명 위협적이었지만 개들을 쫓던 매직 미사일이 오히려 크로닌을 덮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크르르릉!”

사냥개가 크로닌을 덮쳐왔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충혈된 눈동자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젠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후우우웅.

크로닌의 손에서 어른 주먹만 한 하얀 구체가 쏘아졌다.

팟!

구체가 터지면서 하얀 섬광이 주변을 뒤덮었다. 크로닌의 선택은 의외로 라이트 마법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유효했다.

“커어어엉.”

달려오던 사냥개의 움직임이 멈췄다. 라이트 마법이 터지면서 일시적으로 시야가 멀었던 것이다.

잠깐 눈을 감고 있었던 크로닌이 곧바로 매직 미사일을 발사했다.

펑! 펑!

두 발의 미사일이 사냥개의 몸통을 강타했다.

허공에 붕 떴던 녀석이 지상으로 고꾸라졌다. 혀를 내밀고 죽어버렸다.

전직 흑마도사다운 변칙적인 마법 활용이었다.

크로닌의 경험으로 보아도.

라이트 마법을 공격용으로 사용하는 마법사는 없었다.

고지식한 녀석들은 어둠을 밝힐 때만 라이트 마법을 썼으니까.

“라임. 라임.”

어깨에서 진동이 느껴져서 고개를 살짝 돌리니 라임이 제자리에서 콩콩 뛰고 있었다.

크로닌을 응원하는 눈치였다.

하는 짓이 귀여워서 크로닌은 일단 내버려두었다.

한편 남은 사냥개가 죽은 녀석에게 다가와 몸을 비비고 털을 혀로 핥아댔다.

그러다가 크로닌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꼭 복수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그래서 크로닌은 생각했다.

세상만사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은 결국 복수가 아닐까 하고.

당하면 되갚아주고.

앙갚음은 앙갚음으로 이어지고.

한 번 생긴 원한의 고리는 끊어질 줄 모르고.

예를 들어보자.

아주 먼 훗날.

크로닌이 헥스와 6영웅을 전부 몰살시켰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들의 가족이나 지인들은 목숨 걸고 크로닌에게 보복하려고 들 것이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 때 대문호를 꿈꾸던 크로닌은 헥스를 용서하자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수많은 소설들이 지겹도록 말하지 않았던가.

복수란 타인을 죽이기 위해 자신이 독을 마시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복수란 출소 없는 감옥이라고.

수없는 번민 속에 헤매다가.

크로닌은 결국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냈다.

대문호의 꿈을 찢어버리고 위대한 소설들을 등졌다. 그는 기어이 복수의 화신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세상에 복수가 존재한다면.

그것도 나름의 존재 이유와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구린 놈들이 보복을 당하기 싫어서 복수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건지도 모르고 말이다.

“크르르릉.”

사냥개의 울음소리에 크로닌은 퍼뜩 상념에서 빠져 나왔다.

그에게 복수라는 테마는 너무 강렬해서 심지어 짐승이 자신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는 때에도 생각이 많고 깊어졌다.

이 굴레는 아마 헥스와 헥스 일당을 죽이기 전까지는 결코 벗어날 수 없으리라.

타다다닥.

남은 사냥개가 크로닌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왔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이번엔 네 실력을 보여주거라.”

“라임?”

“먹어!”

“라이이이임!!!!”

크로닌이 냅다 라임을 사냥개에게 던졌다.

쎄에에엑!

직선으로 날아가던 라임의 몸뚱이가 갑자기 커다란 입으로 변했다.

꿀꺽!

라임이 사냥개를 삼켰다.

사냥개가 발버둥 치면서 라임의 몸이 이리저리 늘어났다. 하지만 이내 잠잠해지는 움직임.

퉷!

라임이 사냥개를 뱉고서 다시 크로닌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남은 사냥개 역시 죽었다.

라임의 몸속에서 질식해 죽은 것이다.

“라아이임~”

라임이 갑자기 몸을 길쭉하게 늘리면서 크로닌을 쳐다보았다.

나 어땠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크로닌은 대답 대신 손으로 라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앞으로 이 녀석과 꽤 괜찮은 콤비가 될지도 모르겠다.


***


‘하. 씨 괜히 또 마음 약해지네.’

정원을 헤매고 다니던 칼츠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돈에 눈이 멀었던 탓에.

넷째 공자의 살인의뢰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작전은 간단했다.

막내 공자와 동선을 맞춘 뒤 실수로 테리아의 목줄을 놓아버리기만 하면 됐다.

누구의 손에도 피가 묻을 일 없는, 그야말로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물론 후환이 두렵긴 했다만.

넷째 공자는 그 부분까지 보증을 해주었다.

막내 공자의 시체를 확인하는 대로 영지를 몰래 떠날 수 있게 마차 편을 준비해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목돈을 챙겨.

새로운 영지에서 새 삶을 사는 것도 꽤 괜찮은 생각이라고 칼츠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죄 없는 막내 공자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 찜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막내 공자도 불쌍한 인간이었다.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온갖 수모를 겪고.

마법 명가에서 태어났는데.

마법을 쓰지 못한다는 이유로 별채에서 유배 생활을 한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막내 공자는 하인들이 동정하는 유일한 귀족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내 코가 석자니까.’

칼츠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죄책감을 떨쳐내려 노력했다.

정원을 얼마나 싸 돌아다녔을까.

칼츠는 마지막으로 미로의 정원 끄트머리로 향했다.

“....!”

현장에 도착한 칼츠는 그 자리에서 돌이 되고 말았다.

현장의 풍경이 끔찍했는데.

그 끔찍함은 칼츠가 예상한 끔찍함이 아니었다.

자빠져 죽어 있는 것은 크로닌이 아닌 맹견 테리아들이었다. 정작 크로닌은 멀쩡하게 서서 칼츠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칼츠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맙소사.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구름 위를 밟고 서 있는 것 같아서 칼츠는 자신의 볼을 힘껏 꼬집어보았다.

얼얼한 게 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말 크로닌이 테리아를 죽였단 말인가.

마법도 못 쓰는 약골이 사냥개를 사살했다고?

대체 무슨 방법으로?

충격에 빠졌던 칼츠는 뒤늦게나마 상황을 수습하고자 나섰다.

“도.... 도련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칼츠는 크로닌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안부를 묻는 척했다.

크로닌이 싸늘한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섬뜩함을 느낀 칼츠의 머리카락이 뾰족뾰족 솟아올랐다.

요즘 성격이 180도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 정도면 아예 다른 사람 아닌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실수로 목줄을 놓치는 바람에 공자님께 큰 폐를 끼쳤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방금 실수라고 했나?”

“아. 네. 어제 잠을 못 잤더니 피곤해서.”

“으음.... 알다가도 모르겠군.”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자네 연기력이 형편없는 건지 아니면 대본을 준 사람이 이런 상황까지는 예측을 못한 건지 말이야.”

크로닌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하지만 칼츠는 앞으로 계속 오리발만 내밀기로 마음먹었다.

크로닌이 자신의 살인 의도를 입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개를 산책하던 중 목줄을 놓쳐 개가 날 뛰는 것은 흔히 벌어지는 사고였다.

딱 잡아뗀다면 지가 뭘 어쩌겠는가 싶었다.

“어려운 이야기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바다처럼 너그러운 마음으로 공자님께 용서를 구할 따름입니다.”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할 필요 있나?”

크로닌이 피식 웃으며 칼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자네, 말레브 형님의 사주를 받았지? 보아하니 수법은 사냥개의 목줄을 실수처럼 풀어버려서 날 죽이려는 것이었고.”

크로닌의 말은 칼츠와 말레브 사이의 은밀한 관계를 관통하고 있었다.

침착하던 칼츠도 이번만큼은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포커를 치는데 자기 패가 상대에게 완전히 읽힌 것만 같았다.

반면 칼츠는 크로닌의 패를 아무 것도 몰랐다.

그가 어떻게 테리아 두 마리를 감촉같이 죽였는지.

앞으로 어떤 식으로 나올지 등등.

불안과 공포에 압도당한 칼츠는 차마 입도 뻥긋 못했다.

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구나.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초조함을 느낀 칼츠가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네 입으로 진실을 고하거라. 저승에서도 맹견들을 산책 시키고 싶지 않다면.”

크로닌이 싸늘하게 말했다.

처참하게 죽은 테리아들을 검지로 가리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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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장 +1 23.05.23 159 3 12쪽
15 제15장 +1 23.05.22 17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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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7장 +1 23.05.14 353 6 12쪽
6 제6장 23.05.13 380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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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4장 23.05.11 484 8 13쪽
3 제3장 23.05.10 568 10 13쪽
2 제2장 23.05.10 733 11 13쪽
1 제1장 23.05.10 952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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