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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현의 서재입니다

8클래스 흑마도사의 귀환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윤백현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4
최근연재일 :
2023.05.24 10:0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146
추천수 :
104
글자수 :
93,280

작성
23.05.10 10:15
조회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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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13쪽

제2장

DUMMY

“으으으으.”

입센의 입술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터져 나왔다.

허리 쪽에서 찌르르 번져나가는 통증과 함께 온 몸의 감각이 깨어나고 의식이 되살아났다.

입센은 철근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시야가 아직 뿌앴다.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시력이 차차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입센이 누워 있는 곳은 귀족의 방 같았다.

일단 침대가 캐노피였다.

넓고 안락했으며 치렁치렁한 천이 침대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덮고 있는 이불에 문양은 화려했으며 이불의 촉감은 부들부들했다.

벽에는 풍경화 몇 점이 걸렸다.

테이블이며, 책장이며, 소파가 고급스러웠다.

‘설마? 성공한 건가?’

입센은 가만히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헥스의 검에 목이 달아나기 직전.

입센은 ‘소울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소울 텔레포트.

이는 술자의 영혼을 타인의 몸으로 전송하는 고도의 흑마법이었다.

술법은 까다로웠고.

술법 성공 확률은 가뭄에 벼 이삭 나듯 희박했다.

블러드 문인 날에만 펼칠 수 있다는 점.

영혼이 다 빠져나간 육체.

이른바 산송장을 찾아야한다는 점 등등.

입센조차 소울 텔레포트가 실전에서 성공할 거라 믿지 않았다.

단지 모든 흑마법을 익히고 싶다는 욕망에서 배워만 뒀을 따름이었다.

“으음....”

주변을 살피는 입센의 눈가가 이내 가늘어졌다.

스멀스멀 의심이 피어올랐다.

이게 모두 악마의 농간은 아닐까.

사실 자신은 죽었고.

죽은 자신을 엿 먹이고 절망하게 만들기 위해 악마들이 환영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저기 옷장을 열면.

아가레스가 까꿍하고 튀어나오는 거 아닐까.

‘악마 사기꾼’이라는 악명을 떨쳤던 만큼, 입센을 벼르고 있는 악마가 한 둘이 아니었다.

턱을 쓸어내리던 입센이 눈을 크게 떴다.

얼마 동안....

눈도 깜빡이지 않고 부릅뜬 눈을 유지했다.

주르르륵.

메마른 눈가에서 한 줄기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살았구나.”

입센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침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지옥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아니,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눈물조차 악마의 것이기에.

눈물은 산 자만의 특권이었다.

그러므로 입센은 살아 있었다.

생의 감각과 기쁨을 만끽하다가 입센은 빠드득 이를 갈았다.

철천지원수 헥스를 떠올린 것이다.

헥스는 평생 씹어 먹어도 모자랄 놈이었다.

그는 입센의 가족에게 마족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씌워 몰살시켰다.

영웅들을 잔뜩 끌어 모아 입센도 죽였다.

그러므로 새로운 육체를 얻었지만 입센의 목표는 단 하나 뿐이었다.

헥스에게 피의 복수를 하는 것.

단 이번 복수는 예전의 복수와는 차원이 달랐다.

입센은 헥스 말고도 헥스의 계획에 동참했던 6영웅에게 전부 복수할 작정이었다.

그래야 구천을 떠돌고 있을 억울한 가족들의 영혼을 달랠 수 있을 테니까.


황제가 되겠다고?

웃기지 마.

네 놈의 육신을 몽땅 갈아서 주스로 마셔주마.


의욕을 불태우며 입센은 침대에서 벗어났다.

창가 쪽 벽면에 걸려 있는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비친 아이는 15세 정도로 보였다.

귀족 자제일 텐데도.

아이의 팔 다리는 비쩍 말라 있었다.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해서 유약해보였다.

아까부터 몸에 힘이 없었는데.

단순히 다쳐서 힘이 없는 것은 아닌 듯 했다.

원래부터 약골인 것이다.

아이의 머리에는 흰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팔이 욱씬거려서 파자마 소매를 들춰봤더니 ‘멍 자국’도 몇 개 보였다.

몸 주인의 얼굴은 꽤 잘생긴 편이었다.

전체적으로 곱상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풍겼다.

남자보다는 여성들이 더 잘생겼다고 느낄 만한 외모였다.

하지만 이런 얼굴을 입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고?

만만해 보이니까!

거울 앞에 선 입센이 불연 듯 몸을 휘청거렸다.

거의 죽었던 몸에 영혼이 들어온 탓일까.

동기화가 덜 돼서 그런지.

육체가 미묘하게 뜻을 따라주지 못했다.

‘이 놈의 인생은 도무지 쉬운 게 없군.’

입센은 새로 얻은 육체의 기억을 뒤져보았는데 아무 것도 손에 건지지 못했다.

원 주인의 영혼이 빠져나가면서.

기억까지 몽땅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심지어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곤란했다.

최소한의 기억은 남아 있어야 주변 사람들을 상대하기 수월할 텐데....

입센이 다시 눈을 떴다.

저벅. 저벅.

때마침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기억이 없는 상태로 누군가를 마주치는 건 위험했다. 입센은 황급히 침대로 돌아가 누운 뒤 눈을 감았다.

똑. 똑. 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누군가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입센의 실눈에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하인이 보였다.

하인이 입센에게 다가왔다.

입센은 다시 눈을 감았다.

“딱하기도 하시지. 별채에서 외롭게 지내는 것도 모자라서 다쳐서 의식도 없으시고.”

하인이 입센을 동정하며 물수건으로 입센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왜 미트라께서는 착한 사람을 봐주지 않으시는 걸까?”

“....”

“공자님, 빨리 기운 차리세요.”

하인의 넋두리에 동정심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 몸의 주인과 하인 사이에 특별한 유대관계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돌파구가 있었다!

입센이 번쩍 눈을 떴다.

“마.... 막내 도련님. 깨셨나요?”

놀란 하인이 눈썹을 치켜들었고 입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사제님을 불러올게요. 치료를 좀 더 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잠깐!”

입센은 돌아서는 하인의 팔뚝을 손으로 낚아챘다.

입센의 돌발 행동에 하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커다란 눈동자가 당장이라도 데구르르 눈 밖으로 굴러 나올 듯 했다.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치료보다 더 중요한 거요?”

“그래. 치료보다 더 중요한 거.”

입센이 단호하게 말했다.


***


레미는 방 중앙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맞은편에는 막내 공자가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공자의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변했다고.

예전과는 180도 달라진 것 같다고 레미는 피부로 느꼈다.

레미는 공자의 전담 시녀로 1년을 함께 지내왔다.

그래서 작은 변화에도 민감했다.

우선 공자의 앉은 자세가 평소와 달랐다.

평소 어딘가에 앉을 때.

공자는 허리를 곧게 펴고 두 무릎을 직각으로 굽혔다. 무릎 위에 양손을 얹어 놓았다.

그런데 지금의 공자를 보라.

두 다리를 꼰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얌전하던 예전과 달리 살짝 불량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다치면 사람 성격이 변하기도 하는 건가.

레미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를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느냐?”

공자가 한참 만에 입을 뗐다.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시는지....”

“의문을 가질 필요 없어. 넌 대답만 하면 돼.”

확실히 말투도 예전과 달랐다.

목소리에 힘이 담겼고 발음이 또박또박했다.

태도도 강압적인 구석이 있었다.

“1년 전 봄이었습니다. 지독한 열병에 걸려 길가에 쓰러진 저를 영지 시찰 나온 공자님이 구해주셨습니다.”

“....”

“별채로 데려와 치료를 해주셨고 고맙게 일자리까지 주셨고요.”

공자 덕분에 레미는 목숨을 건졌다.

아마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보잘 것 없는 평민이지만 공자를 평생 곁에서 보필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던 게.

레미의 설명을 듣고서.

공자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래. 그랬었지.”

고개를 끄덕이는 공자.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많이 황당할 거다. 장난을 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

“아닙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시더라도 저는 공자님을 믿습니다.”

“좋은 자세다.”

공자가 붕대가 감긴 본인의 머리를 검지로 가리켰다.

“내가 머리를 다쳤어? 그렇지?”

“아. 네.”

“머리를 다치면서 일이 좀 꼬여버렸다. 아무래도 기억을 잃어버린 것 같아.”

“네? 기억을 잃으셨다고요?”

“....”

공자가 대답 대신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었다. 레미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했건만.

그럼에도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기억이란 곧 그 사람 자체였다.

기억이 없다는 건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뜻이었다.

“공자님. 안 되겠어요. 당장 사제님을 불러올 게요.”

“앉아. 두 번 말 안 해.”

공자의 매서운 눈초리에 레미는 살짝 들었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였다.

공자가 이렇게 무서운 표정도 지을 줄 알았던가?

“기억을 잃으셨다면 더더욱 사제님을 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사제가 기억을 치료한다는 말은 들은 적 없는데? 그럼 애초에 기억상실증이라는 것도 없었겠지.”

“그거야 그렇지만....”

“잘 생각해 봐.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고. 그럼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얼마나 걱정하겠어? 안 그래?”

레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공자가 이렇게 말을 조리 있게 잘했던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일상을 지내다보면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어. 그런 경우, 종종 있지.”

“네. 저도 머리를 다치고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요.”

“내 요점이 그거다.”

공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계속했다.

“그런 의미로 오늘 일은 너와 나, 둘만 알고 있어야 해. 소문이 퍼져서 좋을 게 없으니까.”

“네, 공자님. 비밀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기억은 얼마나 잃으신 건가요?”

“아주 곤란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아. 심지어 내 이름마저.”

공자의 충격적인 발언에.

레미는 순간적으로 말문을 잃어버렸다.

본인 이름까지 기억이 안 난다면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었다.

“혹시 제 이름은 기억하시나요?”

“내 이름도, 부모님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데 네 이름을 기억할 리가 없잖아.”

공자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네 이름은 뭐지?”

“도련님의 전담 하인 레미라고 합니다.”

“기억해두겠어.”

“감사합니다.”

“그래서 레미,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들려줬으면 좋겠다. 최대한 자세하게.”

공자가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무릎에 양 팔꿈치를 대자 삼각형이 만들어졌다.

그 삼각형의 꼭지점에 공자가 턱을 괴었다.

이 역시 평소 본 적 없는 행동이었다.

공자의 사소한 행동에서 레미는 카리스마 같은 것을 느꼈다.

이 정도면 사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아닐까 싶은 수준이었다.

“그러면 정말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도 될까요?”

“바라던 바야.”

“공자님의 성함은 크로닌 글로리입니다. 나이는 올해로 15살이시고 마그니 백작님의 막내아들입니다.”

레미는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공자에 대한 정보를 전했다.

공자는 귀를 쫑긋 세워 들었다.

중간 중간 본인이 궁금한 것을 묻기도 했다.

대화는 무려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해줘야 할 말이 한참 모자랐다.

공자가 앞서 말한 대로.

공자의 기억은 완전히 백지 상태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레미가 다 알려줘야 했다.

“일단 지금은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공자가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레미도 공자를 따라 같이 일어났다.

“네 공자님. 그런데 제 착각인지 몰라도 도련님이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어떤 점에서?”

“뭐랄까. 더 거침없고 솔직해지신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싫은가?”

“아니요. 굳이 따지면 좋은 쪽입니다.”

레미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하인인 레미가 보기에도 예전의 공자는 답답한 구석이 있었다.

남의 눈치를 보고.

해야 할 말을 못하고.

언제 어디서든지 쭈글쭈글해서 귀족의 품위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에 비해 다친 후에 공자는 어딘지 모르게 시원시원하고 믿음직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이제 우린 한 배를 탔어. 무슨 뜻인지 알겠나?”

“네. 공자님.”

“레미, 네가 나를 잘 보필하면 응당 좋은 보상이 있을 거다.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내게 잘 해라.”

“....”

“나는 원수도 잘 갚지만 은혜도 잘 갚으니까.”

“갑자기 원수는 왜....”

“뭐 그런 게 있다. 그리고 저녁에 한 번 다시 와. 아직 못 들은 이야기가 많다.”

“알겠습니다.”

“참고로 내가 깨어났다는 사실은 당분간 절대 비밀이야. 네가 해준 말들을 정리하고 외워야하니까.”

레미는 고개를 끄덕이고 공자의 방을 나왔다.

그제야 몸이 가벼워졌다.

공자와 함께 있는 내내, 묘한 압박감을 느꼈던 것이다.

성격이 180도 달라진 공자가 앞으로 가문 생활을 어떻게 해나갈지 궁금해 하면서.

레미는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때마침 맞은편에서 집사 알프레드가 걸어오고 있었다.

“응? 아직까지 공자님 방에 있었니?”

“네. 집사님.”

“혹시 공자님이 깨어나신 게냐?”

알프레드가 레미를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레미는 시무룩한 척 연기를 했다.

“아니요. 아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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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7장 +1 23.05.14 353 6 12쪽
6 제6장 23.05.13 380 7 12쪽
5 제5장 23.05.12 413 7 11쪽
4 제4장 23.05.11 484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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