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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현의 서재입니다

8클래스 흑마도사의 귀환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윤백현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4
최근연재일 :
2023.05.24 10:0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141
추천수 :
104
글자수 :
93,280

작성
23.05.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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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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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3쪽

제3장

DUMMY

‘일단 급한 불은 껐군.’

입센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딱딱하게 굳었던 얼굴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몸 주인에 기억이 하나도 없는 마당에 갑자기 하인이 방으로 쳐들어왔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거친 입센이라도 이런 경험은 없지 않은가.

당혹스럽고 난감했다.

하지만 입센은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머리에 붕대를 감았다는 사실을.

번개처럼 파악하고 이를 기억상실로 포장해서 필요한 정보를 일부 얻어냈다.

임기응변.

이는 입센을 8클래스 흑마도사로 키워준 무기 중 하나였다.

입센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레미가 전해준 정보 중 뼈대만 곱씹었다.


몸 주인의 이름은 크로닌 글로리.

나이는 15세.

백작에 4남 1녀의 자식 중 막내 공자.

어머니는 첩 출신으로 2년 전 사망.

성격은 착하고 따뜻하다(호구다).

다른 형제자매와 달리 크로닌은 별채에서 생활한다.


글로리 가문에 관해서라면 입센, 아니 이제 크로닌이 된 크로닌도 알았다.

글로리 가문은 마법 명가였다.

크로닌을 죽인 6클래스 마스터 제롬에 ‘라이벌’이 되는 마법 명가였다.

흑마법사가 마법사의 몸을 빌려서 다시 태어나다니....

크로닌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설마 소울 텔레포트가 성공한 것도.

운명이란 놈이 자신을 더 가지고 놀겠다는 의도였던 건가 싶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이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지도 몰라.’

크로닌은 사고방식을 180도 바꾸었다.

만약 마법과 흑마법을 같이 배울 수 있다면 어떨까.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팔뚝에 소름이 돋아났다.

흑마법은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많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무엇일까.

바로 신성력이었다.

흑마법은 신성력에 쥐약이었다.

저주가 해체 당하고, 소환한 언데드가 약해지고, 흑마법사 본인도 약해지고 등등.

크로닌이 헥스 일행에게 고전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차기 성녀 후보인 엘레나의 신성마법이 그의 흑마법을 상쇄시켰던 것이다.

만약 마법과 흑마법을 같이 배울 수 있다면 어떨까.

크로닌은 처음 던졌던 질문을 다시 던졌다.

소름은 어느새 전율로 바뀌었다.

마법과 흑마법.

양쪽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복수를 위한 비단길이 깔린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흑마법의 단점을 마법이 전부 덮어줄 테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듀얼 마법사의 길은 크로닌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마나와 암흑마나는 공존할 수 없었다.

인간의 몸은 서로 다른 성질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둘을 동시에 체내에 축척한다면 육체는 폭발하고 만다.

단 예외도 있긴 했다.

통칭 ‘축복 받은 몸’.

모든 종류의 마나를 빠르게 흡수하는 특이 체질.

축복 받은 몸이 아니라면.

마도사 또는 흑마도사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흑마도사의 길은 자연스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 명가에서.

흑마법을 익혔다간 죽임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급한 대로 마나부터 수련해보자.’

크로닌은 카펫이 깔린 방구석으로 이동했다.

가부좌를 틀고 천천히 마나 연공법을 수련했다.

크로닌은 흑마법에 대가였지만 마법에도 제법 지식이 있었다. 적을 알아야 적을 쓰러트릴 수 있었기에.


- 마법 명가 출신이면 나도 마법에 재능이 있나?


- 죄송하지만.... 재능이 탁월한 편은 아니세요. 마법 수업도 제대로 안 들으셨고 아직 1클래스에도 오르지 못하셨어요.


문득 레미와 나눈 대화의 한 조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크로닌은 실망하지 않았다.

이 몸의 주인이 정말 마법에 재능이 없다면.

아쉽기는 하겠지만.

가문을 떠나서 흑마법사가 되면 그만이었다.

대기에 떠도는 마나를 느끼려 노력하면서 크로닌은 숨을 들이마시고 숨을 내쉬었다.

써클을 만들려면.

우선 써클의 토양이 되는 마나부터 느낄 줄 알아야 했다.

촉각을 곤두세우며 마나 연공법을 펼친 지 10분 째.

크로닌은 금방 눈을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

벌어진 입술로 맥 빠진 한숨이 새어나왔다.

예상치 못한 뜻밖의 결과가 그를 충격에 빠트렸다.

마나가 느껴졌다!

마나 연공법을 딱 10분만 펼쳤을 뿐인데 말이다!

마도서에서 마나는 솜털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입자라고 묘사했는데 정말 그 말 그대로였다.

일반인과 마법사의 차이는.

마나를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

마나를 몸 안에 가두느냐, 못 가두느냐.

이것에 따라 나뉘는 것이라는 책에 정의도 피부에 와 닿았다.

마나는 평소에도 사람의 몸을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크로닌은 지금도 피부를 통과하는 마나의 감촉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에 크로닌은 한 가지 기대를 품었고 한 가지 의문도 품었다.

어쩌면 이 몸의 주인이....

‘축복 받은 몸’을 타고 났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 엄청난 마나 감응력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문.

‘축복받은 몸을 타고 났다면 왜 마법 수업을 제대로 못 받았지? 왜 아직까지 1클래스에도 오르지 못했지?’

크로닌은 현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법 명가라면 재능 있는 자신을 키워주는 게 정상 아닌가.

그런데 왜 별채에 가둬놓고 방치하고 있었던 거지?

아무래도 몸 주인에 대한 정보를 더 모아 봐야할 듯 싶었다.


***


그날 저녁.

크로닌은 심각한 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손으로 연신 이마를 문질러 대고 있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실험이 남았다.

이 몸으로 마나에 더해서 암흑 마나까지 축척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이 몸이 축복받은 몸이라면 암흑 마나를 연공했을 때 살아남을 것이고.

아니라면 병신이 되거나 죽을 것이다.

위험한 시도였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헥스와 6영웅에게 복수하려면.

흑마법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빌어먹을 신성력에 대항하려면 마법의 보조가 필수였다.

한참 번뇌하던 크로닌이 창가로 이동했다.

창문을 활짝 열자 선선한 봄바람이 얼굴을 훑었다. 하늘에는 뾰족한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

크로닌의 두 눈이 감겼다.

그는 입을 살짝 벌린 채 입으로 숨을 쉬었다.

쓰으읍. 후우우.

쓰으읍. 후우우.

숨을 들이 마실 때마다 가슴이 팽창하고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이 수축했다.

입으로 호흡하기 때문일까.

크로닌의 모습이 꼭 어둠을 들이마시는 듯 했다.

현재 크로닌은 암흑 마나 연공법을 펼치고 있었다.

마나가 빛의 에너지라면.

암흑 마나는 암흑의 에너지였다.

당연히 낮보다 밤에 더 짙었다.

그리고 흑마도사는 코 호흡이 아닌 입 호흡으로 암흑 마나를 축적했다.

모든 마나 연공법이 호흡과 관련이 있는데.

호흡량이 많아지면 쌓을 수 있는 마나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럼 일반 마법사는 왜 입 호흡을 하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마나 안에 있는 다른 불순한 에너지를 거르고 순수하게 마나만 축적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흑마도사는 불순한 에너지 따위는 거르지 않았다.

불순한 에너지가 육체에 부담을 주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쉽게.

이는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흑마도사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가치관이었다.

크로닌은 짧은 시간에 소량의 암흑 마나를 축적했다.

“크크크큭.”

크로닌의 입가에서 광소가 흘러나왔다.

체 내에 마나와 암흑마나가 공존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기운이 서로를 밀어내고 당기고 난장판을 벌이고 있었지만.

분명 심장 주변에 존재했다.

즉 이 몸은 ‘축복 받은 몸’이 맞았던 것이다.

다만 문제는....

앞으로 이 앙숙 같은 에너지로 어떻게 서클을 만들어 내느냐였다.

지금도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말이다.

듀얼 마법사로의 가능성은 열렸으나 고생문이 훤한 것도 사실이었다.

똑. 똑. 똑.

때마침 들리는 노크소리.

들어오라고 말하자 레미가 아닌 정장을 차려입은 집사 같은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크로닌은 사내를 보자마자 피식 웃었다.

“첫 병문안이 가족도 아니고 마계의 대공이라. 이거 영광이군.”

“공자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되지도 않는 발 연기는 집어치우지 그래? 아가레스.”

“아가레스?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만....”

“그러니까 재미없다고. 여기까지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데.”

크로닌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악마에게는 악마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유일무이한 8클래스 마도사.

악마를 등쳐먹고 지냈던 악마 사기꾼 크로닌은 악마들의 냄새를 귀신 같이 맡고 또 분류도 할 수 있었다.

“칫. 재미가 없는 건 너다. 장단을 맞춰주면 어디 덧나는 건가?”

아가레스가 김빠졌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크로닌과 마주했다.

“황태자에게 꼼짝 없이 죽을 줄 알았는데 용케 살아남았군.”

“왜 아쉽나?”

“물론. 다 잡은 물고기를 놓쳤으니까.”

아가레스가 쯧쯧 혀를 찼다.

크로닌은 아가레스의 권능을 빌리는 대가로 영혼을 저당 잡혔다.

그리고 영혼을 저당 잡혔기에 누구보다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만약 크로닌이 ‘소울 텔레포트’에 실패했다면.

그 때 그 자리에서 죽었다면.

크로닌은 마계에서 평생 아가레스의 노리개로 지내야 했다.

헥스에게 복수도 못하고 말이다.

“설마 소울 텔레포트를 성공시킬 줄이야. 나 같은 대공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술법인데.”

“인간의 집념은 때론 악마를 초월하는 법이지.”

“뭐, 그건 인정해. 네가 그만한 잠재력이 있었으니까 내가 선뜻 너와 계약했던 거고.”

“그래서 용건은?”

크로닌이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아가레스의 방문이 달가울 리 없었다.

크로닌은 아가레스의 빚쟁이었다.

영혼의 빚쟁이.

빚을 받으러 온 이를 반겨주는 빚쟁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딱딱하게 굴지 마. 오늘은 그냥 이야기만 하러 왔을 뿐이니까.”

“지나가던 개도 안 믿을 소리를 하는 군.”

“지금 많이 곤란해 보이는데?”

아가레스가 빈정거리며 화제를 돌렸다.

“소울 텔레포트에 성공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말이야. 하필이면 마법사의 육체를 가지게 되었더군.”

“....”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이번 생은 마도사로 살아갈 건가? 아니면 다시 흑마도사로?”

아가레스는 일부러 크로닌의 아픈 곳을 찔렀다.

그리고서 배를 잡은 채 깔깔 웃어댔다.

마도사를 택한다면.

기존에 배웠던 흑마법을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크로닌이 지닌 최고의 무기를 잃게 되는 것이었다.

다시 흑마도사의 길을 간다고 해도 그 역시 차악의 선택이었다.

마법 명가 글로리 가문에서 흑마도사가 되겠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설령 가문을 떠나 흑마도사가 된다고 해도 신성력이 또 발목을 붙잡을 테고.

한 마디로 앞에도 절벽, 뒤에도 절벽이랄까.

드디어 이 얄미운 인간의 영혼을 회수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아가레스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보니 시비를 걸러 왔군.”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너도 알잖아? 악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

“알지. 너희들이 세상에 둘도 없는 사기꾼이라는 것도.”

“악마 사기꾼에게 사기꾼 소리를 들을 줄이야. 어이가 없군.”

아가레스가 피식 웃었다.

대화가 잠시 끊기고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숨 멎을 듯한 긴장감이 침소를 휘어 감았다.

밖에서 흐느껴 울던 밤벌레가 어느새 울음을 뚝 그쳤다. 계속 불어오던 밤바람조차 침소에 들어오기를 꺼렸다.

“그래서 네 선택은?”

“내 선택이라면 이미 정해져 있어. 나는 마도사이자 동시에 흑마도사가 된다.”

“지나가던 개도 안 믿을 소리를 하는 군.”

아가레스가 아까 크로닌이 했던 말을 되갚아주었다.

아가레스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그건 불가능해. 내가 악마이면서 동시에 천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

“나는 네가 모르는 고대시절부터 살아왔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마법과 흑마법을 공존 시키지 못했지. 그런데 그걸 네가 해내겠다고?”

아가레스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흑마도사로서 크로닌의 재능은 백 번 인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흑마법과 마법을 함께 다루는 건 아예 다른 차원의 영역이었다.

“이 육체는 축복 받은 몸이다. 듀얼 마법사로서의 가능성은 충분해.”

“축복 받은 몸? 그래도 소용없을 걸?”

아가레스가 빈정거렸다.

“마나와 암흑 마나가 서로를 방해할 텐데 서클이나 제대로 만들 수 있겠어? 어림도 없는 소리.”

“복수만 가능하다면 난 뭐든지 해낼 수 있어.”

“....”

“복수에 걸림돌이 된다면 설령 너라도 죽인다.”

크로닌의 눈빛이 지옥의 불길만큼 맹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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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6장 23.05.13 380 7 12쪽
5 제5장 23.05.12 413 7 11쪽
4 제4장 23.05.11 484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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