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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현의 서재입니다

8클래스 흑마도사의 귀환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윤백현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4
최근연재일 :
2023.05.24 10:0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142
추천수 :
104
글자수 :
93,280

작성
23.05.1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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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
추천
11
글자
12쪽

제1장

DUMMY

콰과과광!

고막이 터질 듯한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후폭풍으로 생겨난 광풍이 숲에 심어진 수만 그루의 나무를 뿌리 채 날려버렸다.

그 뒤를 이어 매캐한 까만 연기가 울창한 숲을 탐욕스럽게 집어삼켰다.

대륙의 허리라고 불리는 카르나스 산 중턱은 그렇게 삽시간에 초토화 되어버렸다.

“하아.... 하아.... 하아....”

소리의 근원지에 서 있던 사람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남성은 밤하늘만큼이나 까만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베이고 찔린 자국들로 로브 자락이 너덜너덜했으며 그 틈으로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성은 서 있는 것조차 버겁다는 듯 다리를 휘청거렸다.

한편 남성의 맞은편에는 총 7명의 인물들이 반원의 형태로 남성과 대치중이었다.

“너 진짜 미친놈이구나? 전설인 줄 알았던 본 드래곤을 소환하다니.”

“엘레나 없었으면 우리 브레스에 다 뒈졌어.”

“이럴 줄 알았으니까 엘레나를 데려왔지.”

일행의 리더인 헥스가 빙긋 웃으며 엘레나를 응시했다. 대답할 힘이 없어서인지 엘레나가 고개만 까닥거렸다.

“확실히 경이로운 공격이었지만 슬슬 밑천이 바닥난 것 같은데?”

헥스는 브레스를 발사하고 한낱 뼛조각으로 바닥에 흩어진 본 드래곤을 훑은 뒤 다시 눈앞의 남성을 쳐다보았다.


악마의 현신.

순수한 어둠.

파멸의 역행자.

대륙 최초의 8클래스 흑마도사.


사내를 일컫는 악명은 산더미 같았지만 그의 진짜 이름은 아직 밝혀진 적이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그는 혈혈단신으로 제국의 왕궁을 습격해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를 무찌르기 위해 동원된 것이 바로 헥스 파티였다.

파티의 면면은 초호화, 그 자체였다.

영웅 또는 영웅이 될 인재들이 그를 잡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흑마도사의 저항은 소름 돋을 만큼 거셌지만....

드디어 끝이 보였다!

전투 초반 그의 전신을 휘어 감고 있던 무시무시한 암흑 마나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의 그는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짚단처럼 쓰러질 듯 했다.


***


“하아....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던 입센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피가 줄줄 새어나오는 옆구리를 한 손으로 막아냈다. 흘러나오는 피로 손바닥이 축축하고 따뜻했다.

결국 여기까지인가.

굳은 의지와 달리 의식이 자꾸만 희미해져 갔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저 자식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 봐. 궁금한 게 있는데 뭐 좀 물어봐도 될까?”

헥스가 능글맞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대체 왕궁은 왜 습격한 거야? 조용히 살았으면 이럴 일 없었잖아?”

“널 찢어 죽이려고.”

“나를? 왜? 난 너한테 원수 진 게 없어. 심지어 오늘 초면인데?”

헥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동료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발자크 백작가를 아는가?”

“발자크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한참 뜸을 들이다가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렉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마족하고 내통해서 영주와 영주 가족, 영지민까지 깡그리 몰살당했던 천하의 역적 가문이었지? 안 그래?”

“개자식. 그건 다 네가 꾸민 일이잖아!”

입센이 이를 빠득거리며 대꾸했다.

다 죽어가던 입센의 눈동자에 거센 분노의 불길이 일어났다.

“아버님은 마족과 내통한 적이 없다. 누구보다 평화를 사랑하는 분이셨다.”

“아버지? 아하! 네가 발자크 가의 장남인가 보네. 어쩐지 장남 시체만 발견이 안 됐다고 하던데.”

뭐가 그렇게 유쾌한지 헥스가 깔깔 거리며 웃었다.

“너야말로 왜 아버님께 누명을 씌웠지?”

“설명하면 복잡한데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해주지. 너희 아버지가 눈에 거슬렸다.”

“어떤 점에서?”

“황제폐하, 그러니까 아버님께서 큰형님에게 왕권을 물려주시려고 했던 건 이미 알 거다.”

헥스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네 아비는 제1황태자파의 핵심축이지. 무력은 허접한 게 입담은 어찌나 화려하던지.”

“....”

“제1황태자파는 네 아비의 혀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하지만 넌 황권에 관심이 없다고 했잖아!”

입센이 없는 힘을 쥐어짜서 외쳤다.

황위계승에 뜻이 없다고, 헥스는 오래전부터 천명한 상태였다.

“입으로는 그랬지. 입으로는.”

헥스가 빙긋 웃으며 검지로 본인 입술을 툭툭 건드렸다.

“흑마도사 치고는 의외로 순전한 구석이 있군.”

“완전히 몰랐던 건 아니야. 네가 이렇게까지 쓰레기일 확률이 낮다고 생각했을 뿐. 하....”

입센의 입에서 허망한 한숨이 빠져 나왔다.

설마설마 했는데 가장 허접한 추리가 정답이었을 줄이야.

헥스는 위선자, 그 자체였다.

황위에 관심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고서는 몰래 힘을 키워 정치적인 적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있었다.

어느 새부터 입센의 주먹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제3황태자 헥스의 야심 때문에.

제3황태자 헥스의 야망 때문에.

제3황태자 헥스의 위선 때문에.

가족들과 영지민들은 마족과 내통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개죽음을 당했다.

저 씹어 먹을 놈 때문에 입센의 인생은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입센이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헥스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놈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선견지명이 있었군.”

헥스가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를 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어쨌거나 발자크 혈통인 네가 대륙 최초의 8클래스 흑마도사가 됐잖아?”

“....”

“그러니까 너희 영지를 박살낸 건 제국을 배척하는 이단을 미리 처단한 일이나 다름없는 셈이지.”

“미친 새끼. 나를 악마로 만든 건 너다.”

“과연 그걸 누가 믿어줄까? 하늘에 있을 너희 부모와 가족들? 아니면 영지민들?”

헥스가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입센은 당장이라도 헥스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러기에는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쿨럭. 쿨럭.”

피를 한 바가지 토해낸 입센은 더 이상 서 있지도 못했다.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너희 가문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너희 아버지 일도 그렇고. 너도.”

“....”

“너를 해치우면 나는 왕권에 더 가까워진다. 슬슬 아버님도 나를 눈여겨보고 계시거든.”

시력에 이어 청각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는 걸까.

헥스의 말에 웅웅 이명이 섞여서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입센은 초점 없는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입센의 처치만큼이나 하늘은 어두웠다.

달이 평소와 달리 ‘불길한 붉은 빛’을 흩뿌려대고 있었다.

최후가 가까웠기 때문일까.

지난 시절이 주마등으로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


왕궁 기사단이 영지를 쳐들어오던 비극의 날.

입센은 저택에 숨겨진 비밀 통로 중 하나로 빠져 나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택에 남아 있었는데 진심을 다해 해명하면 황궁에서도 가문을 이해 해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필사적인 해명과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결국 목숨을 잃었다.

비밀 통로로 도망친 형제·자매 중 살아남은 이는 입센이 유일했다.

각자 다른 통로로 이동한 동생들은 다 죽어버렸다.

어쩌면 내통자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입센은 곧 제3황태자가 아버지에게 마족 누명을 씌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복수할 힘은 없었다.

졸지에 역적 가문이 되었으므로.

세상에 어느 곳에도 기댈 수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하는 수 없이 거지·부랑아들과 뒤엉켜 지내던 입센에게 하루는 기적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묘지에서 잠잘 곳을 찾던 중.

구울을 소환하는 흑마도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제게 흑마법을 가르쳐주세요. 시키는 거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입센은 흑마법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매달렸다.

마족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썼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 말대로 악마의 힘을 빌어서 헥스에게 복수하고자 했던 것이다.

“흑마도사가 되면 선택지는 단 3가지뿐이란다. 그게 뭔지 아니?”

“뭐죠?”

“악당으로 몰려서 죽거나, 미쳐서 죽거나, 악마에게 이용당해서 죽거나. 죽고 싶어서 안달 난 게 아니라면 이쪽 길은 거들떠보지도 말 거라.”

“계속 이렇게 살 바엔 그냥 죽을래요. 아저씨가 죽여주실래요?”

입센의 눈동자에서 무언가를 읽었는지 흑마도사는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입센은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헥스를 향한 복수심이 워낙 뜨거웠기에 입센은 미치지 않았다.

악마들 사이에서 ‘악마 사기꾼’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경이롭게 성장했다.

하지만 하늘은 다시 한 번 입센을 버렸다.

헥스를 죽이기 위해 왕궁 기습을 감행했거늘.....

헥스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수십의 사제들이 황궁에 진을 치고 있었다.

배신자가 있었는지.

사역마의 존재가 들켰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입센은 기습의 실패로 그동안 모아둔 언데드 병력에 80퍼센트를 잃었다.

운명이란 지독할 정도로 얄궂은 놈이었다.

아니, 녀석은 애초부터 입센의 편이 아니었다.

녀석은 입센의 복수를 원치 않았다.


***


“단 꿈은 슬슬 다 꾸셨나?”

헥스의 이죽거리는 목소리에 입센이 희미하게나마 정신을 차렸다.

“지금 상황을 너무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 없어. 저승에서 너희 부모님과 형제를 만나서 그동안 못 나눈 대화를 실컷 할 수 있게 됐잖아.”

“쓰레기 같은 놈. 제국이 네 손에 떨어지면 제국은 1년도 못 가서 망하겠지.”

입센은 남은 기운을 쥐어짜서 빈정거리고 헥스 뒤에 있는 일행들을 훑었다.

“이 봐, 너희들. 너희가 믿고 따르는 제3황태자가 이렇게 역겨운 놈이라는 거 알고 있나?”

“....”

“이런 놈한테 정말 제국을 맡겨도 되는 거냐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침묵은 긍정이었다.

끼리끼리 논다고 이 자리에 있는 녀석들 모두 겉만 멀쩡하지 속은 썩어빠진 놈들이라는 뜻이었다.

“쿨럭. 쿨럭.”

입센이 다시 한 번 피를 토해냈다.

땅바닥이 피로 젖었다.

이제는 주저앉은 것도 힘들어서 아예 드러눕고 싶었다.

저벅. 저벅.

만면에 미소를 띤 헥스가 입센에게 다가왔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입센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둥근달이 핏빛으로 빨갰다.

‘블러드 문?’

입센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당했고.

격전을 치르느라 몰랐는데 아직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는 건지도 몰랐다.

성공확률이 지극히 드문, 도박 같은 ‘술법’이 하나 남아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아.

내게 마지막 힘을 보태줘.

난 아직 죽을 수 없어.

적어도 저 새끼를 죽이기 전까지는 결코.


심장을 감싸고 있는 암흑 코어에서, 입센은 암흑 마나를 짜내고 또 짜냈다.

중간에 몇 번이고 혼절할 뻔했지만 집념으로 버텨냈다.

복수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저 녀석이 황제가 되어 떵떵거리는 꼴을 어떻게 두고 보란 말인가.

입센은 식은땀을 흘려가며 암흑 마나와 ‘무언가’를 손바닥으로 방출시켰다.

그의 오른손바닥에 검은 구체가 두둥실 떠올랐다.

“헥스. 조심해! 저 녀석 무슨 꿍꿍이가 있나 봐.”

“넌 그냥 나와 있어. 내가 익스플로전으로 통구이를 만들어버릴 테니까.”

동료들이 뒤에서 뭐라고 떠들어댔지만 헥스는 들은 척도 안 했다.

헥스는 입센을 머리카락 한 올만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근접한 최연소 소드 마스터였다.

이빨 빠진 사자.

입센 따위는 맨손으로도 죽일 수 있었다.

“넌 내 손에 죽어야 해. 너도 그걸 원할 테고 안 그래?”

코앞까지 다가온 헥스가 입센을 내려다보며 입센에게 검을 겨눴다.

숨 막히는 대치 상황.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입센이었다.

뜻밖에도 입센은 암흑 구체가 생성된 손을 ‘헥스’가 아닌 ‘하늘’을 향해 뻗었다.

그와 동시에 헥스의 검이 섬뜩한 궤적을 그렸다.

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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