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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현의 서재입니다

8클래스 흑마도사의 귀환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윤백현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4
최근연재일 :
2023.05.24 10:00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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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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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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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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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14장

DUMMY

통. 통. 통.

손바닥 위에서 슬라임이 폴짝 폴짝 뛰놀고 있었다.

크로닌은 물끄러미 슬라임을 내려다보았다. 슬라임은 까만색이었는데 밤하늘의 어둠을 한데 모아놓는 듯 했다.

크기는 크로닌의 손바닥 절반만 했다.

아가레스의 설명에 따르면.

슬라임의 이름은 혼돈의 슬라임이었다. 아직 정복되지 않은 마계를 탐험하다가 얻은 괴 생명체라고 했다.

“라임? 라임?”

슬라임이 신나게 뛰어 놀다가 크로닌을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냐는 눈빛이었다.

이 녀석은 특이하게 사람 같은 눈동자를 가졌다. 말은 못했지만 발성 기관이 있어서 소리를 냈다.

‘어쩌다 이런 녀석을 떠맡게 됐는지....’

크로닌의 입술에서 한숨이 빠져 나왔다.


&&&


지금으로부터 30분 전.

“슬라임 따위를 나한테 주는 이유가 뭐지?”

크로닌이 슬라임을 받지 않고 물었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감시용이지. 이 녀석은 나와 영혼이 연결되어 있다. 슬라임을 통해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수 있다는 뜻이지.”

족쇄를 채우겠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는 아가레스였다.

“거절한다면?”

“뭐 다른 방법으로 네 정보를 캐야겠지. 그럼 그 과정에서 네 정체가 위험해질 테고.”

“하여간 사람 성가시게 하는 데는 일등이군.”

크로닌이 쓰게 웃었다.

계약 조건이 있어서 다소 거칠게 나가는 크로닌이었지만 아가레스는 마계 서열 2위의 대공이었다.

크로닌을 감시할 방법은 차고 넘쳤다.

문제는 그 방식이 사역마를 보내는 방식일 텐데....

사역마가 붙어 다닌다면.

사제나 동료 마법사가 크로닌을 이상한 눈초리로 볼 확률이 높았다.

“이 녀석도 마계 태생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위험한 건 마찬가지일 텐데?”

크로닌이 검지로 슬라임을 가리켰다.

“마계 태생인데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특이한 녀석이지. 그래서 혼돈의 슬라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할까?”

“그래?”

눈썹을 치켜 뜬 크로닌이 슬라임 주변에 대기를 유심하게 훑었다.

과연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구도 이 녀석을 마계의 존재라고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남은 한 가지 이유도 듣고 싶군.”

“이 녀석 말이야. 꽤 재미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

아가레스가 피식 웃으며 슬라임에게 마기를 주입했다. 그러자 슬라임이 순식간에 단검의 모습을 띠었다.

“라임! 라임!”

단검에서 우렁찬 울음이 들려왔다. ‘나 멋있지?’하고 뽐내는 느낌이었다.

“이미지를 상상하고 에너지를 불어넣으면 그 형태대로 변하는 특징이 있지.”

“그건 좀 신기하군. 강도나 유지 시간은 어떻게 되지?”

크로닌이 그제야 슬라임에게 관심을 가졌다.

“자세한 건 나도 몰라. 나조차 이런 녀석은 키워본 적이 없으니까.”

아가레스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다만 불어넣는 에너지가 막강하면 할수록. 떠올리는 이미지가 선명할수록 더 능력을 발휘하지 않겠어?”

크로닌이 고개를 끄덕이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슬라임을 빤히 쳐다보았다.

능력을 확인하고 나니.

녀석이 달라 보였다.

상황에 따라서 무기나 방어구, 또는 다른 형태로 모양을 변형시켜서 써 먹을 수 있을 듯 했다.

전직 8클래스 마도사는 옛 말이었고.

듀얼 마법사는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딛었다.

쓸 만한 보조 펫이 있다면 위험한 순간에 안전을 도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로 이 녀석, 말은 못해도 악마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공감도 할 줄 안다. 데리고 노는 것도 재밌고 정체를 밝혀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 거야.”

“좋다. 수락하지.”

크로닌이 아가레스에게 손을 뻗기 무섭게.

슬라임이 먼저 크로닌의 손바닥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녀석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회상을 마친 크로닌은 여전히 슬라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손으로 목을 쓸어내렸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아가레스가 붙인 감시역이 됐든.

자신을 도울 보조 펫이 됐든 슬라임과의 공존은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녀석의 능력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다.

“너 정말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나?”

“라임! 라임!”

슬라임이 고개(?), 아니 몸통을 끄덕거렸다.

“그럼 침대에 갔다가 내 손바닥으로 돌아와라.”

크로닌이 지시를 내리자 슬라임이 손바닥을 벗어나 고무공처럼 통통 튀어 침대를 찍고 크로닌의 손바닥으로 돌아왔다.

아가레스가 빈 말을 한 건 아니었던 걸까.

말은 못해도 듣는 건 제대로 하는 모습이었다.

“분노가 무엇인지는 이해하고 있나?”

“라이이임! 라이이임!”

슬라임이 몸을 좌우로 부풀리더니 눈을 부릅떴다.

단순 지시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이해하고 있을 줄이야.

크로닌은 슬라임의 인지 능력에 감탄했다.

이 녀석.

생각보다 훨씬 쓸 만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로닌의 실험이 이어졌다.

1시간 가까운 실험 결과.

얻은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슬라임은 말만 못할 뿐이지, 10살 정도 되는 아이의 지능을 갖췄다.

슬라임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게 포식도 가능했다.

물건을 먹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의자, 책상, 심지어 옷장까지도 집어 삼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보통 슬라임은 자기 몸에 5배 정도 되는 물건까지만 먹어 치울 수 있는데.

이 녀석은 평범한 슬라임보다 몇 십 배 이상 큰 물건을 포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먹은 물건을 깔끔하게 뱉어낼 수도 있었다.

그 말인 즉....

슬라임이 휴대용 아공간의 역할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앞으로 물건을 급하게 숨겨야 할 일이 생기면 슬라임의 손을 빌려도 좋을 듯 했다.

“혹시 사람도 먹을 수 있나?”

크로닌이 회심의 질문을 던졌다.

“라임.... 라임....”

슬라임의 대답이 떨떠름했다.

“못한다는 거야? 안 한다는 거야?”

라임이 갑자기 숫자 2로 변했다.

후자라는 의미인 듯 했다.

“삼킨 사람은 죽게 되나?”

도리 도리.

“사람은 결국 뱉어내게 된다는 뜻인가?”

끄덕 끄덕.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슬라임이 사람을 먹을 줄 안다면 그것도 나름의 쓸모가 있었다.

크로닌은 금방 그 용도를 발견해냈다.

‘오늘은 이만하면 됐군.’

크로닌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슬라임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앞으로 함께 지내면서 알아보면 될 듯 했다.

핵심적인 정보는 충분히 파악했다 싶었다.

“어쨌거나 네 이름은 지금부터 라임이다.”

“라임! 라임!”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라임이 제자리에서 폴짝 폴짝 뛰었다.

다만 문제는 이 녀석을 어떻게 데리고 다니느냐였다.

마기를 뿜어내지는 않는다고 해도 슬라임이 곁에 있다면 지나치게 남의 눈에 띄고 만다.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고민하던 크로닌이 두 눈을 감았다. 마나 서클에서 끌어올린 마나를 라임에게 불어넣었다.

그러자 라임이 까만색 목걸이로 변했다.

아가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에너지를 불어넣어 형상화 작업을 시도한 것이다.

아까 아가레스의 마기에도 반응하고.

이번에는 마나에도 반응하는 군.

이 녀석도 희귀 체질인 건가.

“내 명령이 없다면 앞으로 이 상태를 유지해라. 네 정체가 드러나서 좋을 것이 없다. 알았나?”

“라임! 라임!”

“추임새도 금지.”

“라임.... 라임....”

라임의 소리가 단 번에 시무룩해졌다.

단어는 한 마디도 사용하지 않는데 감정이 전해진다는 게 참 신기한 노릇이었다.

크로닌은 모처럼 피식 웃었다.


***



그날 새벽.

크로닌은 묘지 한 가운데서 암흑 마나를 수련하고 있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공기가 훅 들어갔다가 훅 나왔다.

길고 깊은 호흡이 하얀 김으로 빠져 나왔다가 들어갔다.

하얀 김이 밤안개로 퍼졌다.

호흡에 맞춰 크로닌의 가슴팍이 파도처럼 위 아래로 들썩거리고 요동쳤다.

서늘한 밤의 기운.

그리고 묘지에 흐르는 음산한 기운이 크로닌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들은 크로닌의 심장 주변을 반 시계 방향으로 회전했다.

크로닌은 암흑 마나의 회전 속도를 어제보다 2배로 높였다.

심장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흉통이 찾아왔다.

크로닌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마에 송글송글 식은땀이 맺혔다.

쿵. 쿵. 쿵. 쿵.

심장소리가 북소리 마냥 거칠어지면서 통증은 더욱 강렬해졌다.

이러다간 심장이 터질 듯 했다.

그럼에도 크로닌은 과감하게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암흑마나의 회전력을 한층 더 높였다.

“크으으윽!”

고통을 견디지 못한 크로닌이 한손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한참을 고통스러워하던 크로닌이 고개를 들었다.

달빛이 비친 그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체 내에 집중하자 심장 주변을 반 시계 방향으로 도는 튼튼한 고리가 느껴졌다.

새로운 육신을 얻은 지 3주 만에 암흑 마나 1서클에 달성한 것이다.

흑마도사의 1서클이 마법사의 1서클보다 이루기 쉽다고는 해도.

이는 경이로운 속도였다.

전직 8클래스 흑마도사라서 가능한 성취였다.

크로닌은 무릎을 펴고 일어나서 손으로 무릎을 툭툭 털었다.

가만히 달을 올려다보았다.

달을 양피지 삼아 앞으로의 계획을 적어 내려갔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이라도 헥스와 6영웅들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아직 능력이 모자랐다.

당분간은 글로리 가문 생활에 좀 더 적응하면서.

흑마법이 아닌 일반 마법을 배워볼 생각이었다.

‘진짜 괴상한 버릇이 들었단 말이지.’

크로닌이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또 한 손으로 자신의 목 주변을 매만졌다.

왜 자꾸 목을 만지고 싶은 걸까.

그 이유를 크로닌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1차 목표를 달성했으므로.

크로닌은 평소보다 일찍 별채로 돌아왔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별채는 고요했다. 하인들이 잠든 것처럼 별채도 잠들어 있었다.

샹들리에가 꺼져 어두운 로비를 크로닌이 통과했다.

발소리를 죽이며 2층으로 올라가는데 왼쪽 복도 끝에 아른거리는 등불이 보였다.

등불이 집사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집사는 크로닌이 기거하는 방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구린내가 진동하더니만 이럴 줄 알았지.’

크로닌의 왼쪽 입 꼬리가 삐죽 올라갔다.

집사는 아마도 말레브가 심어놓은 염탐꾼일 것이다.

정황이 그랬다.

낮에 서재에서 독서를 하던 당시.

집사는 크로닌을 위한다면서 다과상을 들고 왔지만 사실 그건 크로닌이 서재에서 무엇을 하는지 감시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지금쯤이면 크로닌이 무슨 책을 읽었는지 까지도 말레브의 귀에 훤히 들어갔을 것이다.

흑마도사 1클래스가 된 기념으로 가볍게 손을 봐줄까.

.... 하는 생각을 크로닌은 접었다.

지금 집사와 마주치면 오히려 크로닌이 잃을 게 많았다.

줄곧 방 안에 없었다는 사실이 들통 날 테니까.

그럼 바깥에서 무엇을 했냐고 추궁을 당할 수 있었으니까.

한참 방 앞을 서성이던 집사가 크로닌 쪽으로 등불을 돌렸다.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마땅히 숨을 곳이 없었다.

저녁에 옷을 갈아입은 탓에 회중시계도 품에 없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가면 속도가 느려져 금방 시야에 잡힐 것이다.

반대편 복도는 바닥을 공사 중이라 지나가면 소음이 날 게 뻔했다.

크로닌은 벽에 등을 찰싹 붙은 채 암흑 마나를 끌어올렸다.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저벅. 저벅.

선명해지는 발소리.

등불의 은은한 빛이 어둠을 밝히며 전진해왔다.

집사는 크로닌이 벽에 붙은 자리에서 잠깐 걸음을 멈췄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집사가 사라진 후에야 크로닌은 어둠 속에서 나왔다.

방금 사용한 마법은 쉐도우.

어둠에 몸을 숨기는 은신술의 일종이었다.

제법 감이 좋은 녀석이군.

말레브가 신뢰하는 이유가 있어.

크로닌이 복도 반대편을 응시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가 책상 앞에 앉았다.

서재에서 챙겨 온 마법사를 읽기 시작했다.

흑마도사로.

또 야행성으로 살아온 탓일까.

낮보다 밤에 더 머리가 쌩쌩 돌고 책이 더 잘 읽혔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독서 삼매경에 막 빠지려던 그 때!

쨍그랑!

요란한 소리와 함께 책상 옆에 위치한 창문이 박살났다.

유리 조각이 바닥을 어지럽혔고 그 틈에 얼음으로 만들어진 화살 한 발이 놓여 있었다.

크로닌은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이동했다.

달빛 아래 나풀거리는 하얀 로브 자락이 나무 뒤로 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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